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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구약

거친 시므온과 레위(야곱의 둘째, 세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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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야곱의 예언

 

거친 시므온과 레위(야곱의 둘째, 세째 아들)

 

거친 시므온(창 49: 5-7절)

 

야곱이 둘째 아들 시므온에 대해 성경은 놀랍게도 그 장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록을 하지 않는다.

 

반면 시므온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속이고 그 족속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으로 보아 대단히 잔혹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창 34:25, 49:6-7절).

 

야곱은 시므온을 형제 레위와 함께 "잔해하는 기계"(5절, "켈레 하마쓰")라 했다. '켈레'는 '무기', '하마쓰'는 '잔인하고 난폭하여 생명을 해치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두 형제가 대단히 난폭하고 잔인한 성품의 소유자들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들 후손들은 그리 번창하지를 못했다. 난폭하고 잔인한 모성이 있던가. 난폭과 잔인한 성품은 하나님의 창조의 선함과 사랑과 평화의 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런 성품의 소유자들의 후손이 번성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시므온 지파에 대한 모세(레위 지파)의 축복이 없음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물론 변명이 있을 수 있다. 세겜 성을 공격하고 그곳 모든 남자들을 도륙한 것은 누이인 디나가 겁탈 당한데 대한 정당한 복수 아닌가?

 

시므온에 대해 요셉이 정당한 복수전을 폈다면 시므온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 지를 생각해보라.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바로 그렇게 하셨다.

 

시므온 지파는 훗날 별 볼 일없는 지파로 전락한다. 시므온 일부 자손은 가나안 지경 밖 에돔과 아말렉 족속의 지경에 거주하였다(대상 4:39-43). 그리고 시므온 지파는 훗날 유다 지파에 흡수 되어 버렸다(수 19:1). 세상적으로도 궁극적으로 잔인한 사람의 자녀가 잘 되는 경우란 거의 없다(세종대왕 후손들의 번창과 연산군 후손들의 쇠락을 보라!).

 

사랑은 살리고 거친 잔인은 사람을 죽인다. 당연한 충고이기는 하나 그리스도인들은 선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시므온을 닮은 레위, 시므온과 다른 레위(5-7절)

 

야곱은 셋째 아들 레위에 대해 시므온과 유사하게 취급하여 장점을 말하지 않는다.

 

레위는 시므온과 유사한 성품의 패턴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럼 이들과 같은 인물들은 전혀 소망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시므온과 레위는 닮은 듯 다른 형제였다. 야곱은 레위에 대해 시므온과 다른 예언을 한다. 훗날 레위 지파는 시므온 후손들과 달리 회개하여 경건을 회복한 지파가 될 것이다(신 33:8-11절).

 

비록 레위 후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저주를 받아 흩어지게 될 지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바꾸시는 분 아니신가. 광야의 금송아지 사건 때 이들 레위 지파는 유일하게 하나님 편에 선다(출 32: 26-29). 이렇게 그들은 놀랍게도 하나님께 바쳐진 이스라엘 모든 장자들을 대신하는 자들이 되었다(민 3:12-13, 41, 45).

 

 

사람은 모두 다르다!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가 다르듯 모든 민족과 열방은 저마다 독특한 다름의 특성이 있다. 성경은 각 민족별, 씨족별 일정한 특성이 있을 수 있음을 분명히 말한다. 그 열방의 DNA(유전자)는 어떤 식으로든 승계 된다. 성경은 부모의 영적, 인격적 특성이 일정한 부분 자녀들에게 내려 갈 수 있음을 말한다.

 

하나님은 그런 특성 그대로 민족 마다 열방 마다 개인 마다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의 서로 다른 놀라운 특성들을 편애하거나 책망하거나 지적하지 않고 존중하려고 세심한 주의와 배려를 기울인다.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더욱 그렇다. 몸의 지체가 다르듯 각 지체 마다 달란트는 다르며 그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은 각 개인을 통해 그 모습 그대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롭게 태어난다(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성경은 시므온과 레위가 비록 그 출발점은 비슷했으나 그 후손 지파들은 서로 전혀 다른 경로로 접어 든 것처럼 우리가 참회하고 돌아서면 새로운 길로 접어들 수 있음을 말한다. 성경에는 레위 지파의 놀라운 결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출 32: 26-29). 이스라엘 공동체는 아론과 백성들의 죄악을 끊기 위해 그 아들과 형제들을 죽이면서까지 무서운 결단을 내린다. 레위 지파는 제사장 지파로 명예가 회복된다. 모세는 레위 지파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였다(신 33:8-11).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그 어떤 저주도 끊을 수 있음을 기억하고 망령된 행실을 끊고 결단하여 나아가자! 야곱의 예언은 놀랍게도 그대로 적중되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이다.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 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히 9:17)."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이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