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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구약

사랑이 전부다-사랑으로 거두는 열매(아가서 강해 21. 아 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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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전부다-사랑으로 거두는 열매(아가서 강해 21. 8:8-12)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까

그가 성벽이라면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이라면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 두고 그들로 각기 그 열매로 말미암아 은 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솔로몬 너는 천을 얻겠고 열매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아 8:8-12)

 

 

사랑하면 반드시 열매가 맺힌다. 아가서는 사랑의 열매로 크게 두 가지를 언급한다. 그 열매들을 살펴보자.

 

 

1. 첫째 성숙이라는 사랑의 열매(8-9절)

 

1) 모든 사랑이 사랑은 아니다.

 

성숙하지 않은 사랑은 가치 있는 사랑이 아니다. 참된 사랑은 반드시 성숙한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래된 연륜의 성숙한 부부들을 보라! 신혼부부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풍긴다. 마치 잘 정돈된 오래된 정원처럼 무언가 익숙하면서도 품격 있는 다른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게 성숙한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성숙은 훈련으로 된다. 훈련 없는 사랑은 미숙하거나 본능적인 사랑일 뿐이다. 미숙한 사랑도 당연히 존재한다. 또 그런 사랑도 필요하다.

 

2)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훈련되어야 한다.

 

기술과 예술은 절대 단시간에 숙달 되지 않는다. 사랑도 그렇다. 에릭 프롬은 사랑 훈련은 기술과 예술처럼 사람 평생에 있어 필요한 훈련이라 했다. ‘사랑 학교에 입교한 사람들은 반드시 이 사랑 훈련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도 숙련되어 간다.

 

3) 하나님은 본질이 사랑이시나 우리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에게 있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타락 이후 온전치 못하게 무너졌다. 하지만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비로소 성령으로 거듭나고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 시작되기 시작하며(성화 과정) 삶 속의 훈련에 따라 성숙의 길로 나아간다. 성숙한 자는 반드시 이런 열매를 예비한다

 

 

2. 둘째 기쁨이라는 사랑의 열매(10-12절)

 

1) 평안에서 오는 기쁨(10)

 

사랑은 평안을 선물한다. 화평과 평안이 최고의 기쁨이다. 술람미 여인은 신랑을 만족시킴으로 놀라운 평강을 체험한다. 그리스도를 만족시키는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샬롬이다!

 

2) 부요에서 오는 기쁨(11)

 

사랑은 영육 간에 부요를 추구한다. 신부 술람미 여인의 부요한 신랑 솔로몬은 최고 신랑감이었다. 술람미 여인은 그 기쁨을 노래한다. 하나님께 속한 자도 술람미 여인 같은 놀랍고 신비한 부요함을 체험하게 된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부요함을 아는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아직도 그 만족감이 없는가?

 

3) 나눔에서 오는 기쁨(12)

 

(1) 여러분 혹시 과수원 집 주인 자녀들을 부러워해 본 적은 없는가?

 

필자는 사과의 고장 충주의 과수원 집 아들이었다. 우리 집 과수원에는 자두, 딸기, 땅콩, 살구, 복숭아, 배, 사과가 그득하였다. 가을이 되면 수확한 과일들이 작은 산처럼 넘쳐났다. 여름 날 온 땀을 흘리며 수고한 열매였다. 농사꾼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처럼 빨간 사과가 산처럼 쌓인 그득한 과일 풍경을 본 적이 있는가. ‘사과를 따고 나서’라는 아름다운 프로스트의 시를 보면 수 천, 수 만 개의 과일을 만지면서 노력과 노동과 땀의 현실이 꿈속에서 재현되고 휴식은 보상된 꿈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다. 그 시절 수확을 앞둔 가을 어느 날, 과일이 먹고 싶으면 그저 과수원 근처를 지나가며 ‘수고 한다’고 덕담 한 마디하면 그만이었다. 모든 과일을 맛보는 것은 공짜였다. 그렇게 고향 충주의 가을은 사과 열매 향기로 넘쳐났다. 지금도 고향 예성(충주의 옛 이름)의 가로수는 사과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그 가로수 사과나무 열매들은 가을이 되면 수확하여 나눔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유치환의 시처럼 ‘사랑하는 자가 사랑 받는 자보다 더 행복’하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사랑하는 것은 즐겁지만 사랑을 받는 것은 즐겁지 않다고 했다. 과일 나누어주는 주인이 지나가는 나그네보다 더 행복했다. 땀으로 수고한 열매들을 이웃과 나눌 수 있고 그 열매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과수원을 소유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일까? 술람미 여인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포도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 포도원이 있으니 그곳에는 사랑으로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났다.

 

(2) 하나님도 가진 것을 나누려고 세상을 지으시고 이 땅에 친히 오셨다.

 

친히 십자가 지러 오셨다. 모든 사람은 이 땅에 와 살려고 발버둥 치나 오직 한 사람! 예수! 그는 이 땅 고난의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 죽으러 오셨다. 그렇게 자기 생명을 나누러 오셨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모두는 세상 과수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천국 포도원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이여! 머무르지 말고 사랑의 성숙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참된 사랑의 기쁨을 누려라!

 

조덕영 목사(창조신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