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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신학

태몽(胎夢)-꿈, 성경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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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몽(胎夢), 성경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유럽 박물관에서

 

 

1. 태몽은 무엇인가? or 태몽은 실재하는가?

 

태몽(胎夢)은 아이를 잉태할 징조의 꿈이나 또는 잉태했을 때 꾸는 꿈을 말한다. 이 꿈을 풀이하는 태몽점(일명 해몽)은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발달되어 내려온 민간 신앙이다. 주로 태아의 성별이나 미래 운명을 예시한다고 알려져 있다.

 

태몽은 주로 어머니가 꾸는 꿈이지만 때로는 아버지나 가까운 친척이 꾸기도 한다. 태몽은 태아 상징물이 몸으로 들어오거나 그런 상징물을 보거나 만지거나 몸속에 지니는 경우 등 신체접촉의 형태로 자주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해, 달, 별, 벼락, 바위, 산, 금장도, 금비녀, 호랑이, 돼지, 용, 잉어, 자라, 구렁이, 수탉, 고구마, 고추, 인삼, 밤, 대추 등은 남아를 상징하고, 반달, 흑뱀, 실뱀, 흑룡, 조개, 달걀, 새 종류, 참외, 오이, 밤송이, 꽃, 꼭지 떨어진 과일 등은 여아를 상징하는 꿈이고, 용, 돼지, 잉어, 자라, 아름답고 선명한 꿈 등은 길몽(吉夢)이고, 벼락 맞거나 죽음과 관련된 꿈 등은 흉몽(凶夢)으로 여긴다. 태몽은 보통 꿈보다 더 강하게 각인(刻印) 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만큼 임신을 전후로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이 생각이 많아진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겠다.

 

2. 성경적으로 태몽은 옳은가?

 

꿈은 잠자는 동안 경험되는 일련의 인식이나 이미지이다. 성경은 일상적, 하찮은 꿈(욥 20: 8; 시: 73: 20; 시 90:5; 사 29: 7-8)이 있는 반면 계시적 꿈(욥 33: 15-17; 창 20: 3; 행 9: 10)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와 애굽 등의 왕실에서는 세속적 꿈 해석을 위한 박사와 술객을 두고 있었다(창 41:8; 단 2: 2).

 

이스라엘 사람들도 꿈 해석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계시적 꿈에 대한 바른 해석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믿었다(창 40:8; 단 2:20-23). 술 맡은 관원장, 떡 굽는 관원장,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준 것은 요셉이었으며(창 40, 41장 참조), 느부갓네살의 이상(異像)들을 해석해 준 것은 다니엘이었다(단 2:27-45; 4: 19-27). 하지만 모세 율법은 거짓 해몽가(解夢家)들을 처형하라고 경고하고 있으며(신 13: 1-5), 예레미야 선지자도 거짓 해몽가들을 두 번이나 경고하고 있다(렘 23: 25-32; 29: 8-11).

 

다만 성경은 태몽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예수님 모친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현몽하여 메시아의 동정녀 잉태에 대한 기별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민간 신앙의 태몽점과 연결하면 절대 안 되는 초월적 사건이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현몽하여 마리아를 데려오도록 했으며(마 1:20), 애굽으로 피신시켰다가(마 2:13) 다시 돌아오도록 했고(마 2: 19-20), 꿈을 통해 요셉과 마리아 부부가 갈릴리로 가도록 인도하였다(마 2: 22). 동방 박사들이 그들이 왔던 동일한 길로 자신들의 고국으로 돌아가지 말도록 경고 받은 것도 꿈을 통해서였다(마 2: 12).


이들 일련의 꿈들은 모두 초월적 사건을 위한 계시적 현몽이었다. 태몽도 일종의 꿈이다. 따라서 태몽이 있는 것은 분명하나 이것으로 길흉을 말하거나 태아의 성별을 가르는 것은 전혀 옳지 않다. 그저 우리 마음속의 바람이나 무의식 안에 있던 불안감이 강한 꿈으로 나타난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어떤 것은 길(吉)하고 어떤 것은 흉(凶)한 것의 상징으로 보는 것도 옳지 않다. 성경에서 불결하거나 악의 상징으로 묘사되는 용이나 돼지 등이 길몽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들 꿈 해몽이 신앙의 관점에서는 별 타당성이 없음을 나타낸다. 괜히 태몽의 잘못된 해석으로 불안감을 가지거나 과도한 기대를 하게 만들어 쓸데없는 운명론에 빠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해몽에 대한 집착은 결국 사람들을 미신이나 세상 점치는 사람을 찾게 만든다.

 

3. 일반은총의 관점에서 태몽의 비기독교적 내용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일반 은총 관점에서는 이미 꿈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꿈을 무의식 속에서 나타난 일종의 신경증으로 본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1900년 발표된 <꿈의 해석>에서 꿈을 발현몽(發現夢, 보통사람들이 보통 꿈이라 말하는 꿈으로 생각나는 부분과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모두 포함), 잠재몽(潛在夢, 잠자는 동안 사람이 받게 되는 지각 자극, 현 삶의 상황, 하루 일과, 유아기의 기억, 환상 그리고 인간의 잠재된 탐욕, 성욕, 공격심과 같은 본능 등이 잠자면서 무의식 안에서 지속하는 활동 과정), 꿈 작업(꿈의 내용이 적나라하면 괴로워 할 인간의 잠재몽 내용을 투사, 상징화, 전치, 압축 등의 방법을 통해 스스로 검열하여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의 것으로 변형시켜 발현몽으로 내보내는 것) 등 3 요소로 나누었다.

 

칼 G. 융은 꿈에 있어 프로이드가 말하는 억압된 욕망이나 본능도 중요하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고 꿈에는 어떤 목적이 있다고 했다. 융의 해석은 프로이드와 유사하면서도 프로이드가 성적 무의식에 많이 치우친 반면 좀 더 신화적이고 상징적이다.

 

잠과 꿈에 대한 연구는 1935년, 루이스 등에 의해 수면을 뇌파로 구별하면서 획기적 전화점을 맞이한다. 디켄트(1955)는 역설수면(paradoxical sleep)과 꿈의 관계를 보고하였다. 역설수면이란 각성시의 뇌파와 유사하고 눈동자도 움직이고 맥박과 호흡수는 불규칙적으로 빨라지고 성기도 발기하여 각성 상태와 유사함에도 근육의 힘은 없어지고 오히려 깨우기는 힘든 수면 상태라 붙여진 이름으로 D(dreaming)-sleep이라고도 한다. D-sleep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역설수면 때 대부분 꿈을 꾸기 때문이다.

 

이제 생화학과 전자기파 연구가 깊어지면서 꿈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진화론적, 신경생리학적, 신경약리학적 연구 등으로 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행동, 감정, 기억 등을 관여하는 도파민, 세로토닌, 아세틸콜린, 엔돌핀, 가바, 노오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들이 알려지고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도파민이 크게 증가한다. 그럴 경우 망상, 환청, 공격적 행동, 상동증(常同症, 의미 없는 동작 또는 말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증상) 등이 증가한다. 도파민이 증가하면 당연히 이상한 꿈도 많아진다. 정신분열환자들이 이상한 기도원이나 이상한 부흥사들을 찾아 안수 받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명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치료시기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불치병을 기도로 치유 받은 입장이라 신유를 믿으나 하나님의 일반 은총 영역도 하나님의 크신 은총임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의사는 처방하여 돈을 벌고 치유는 하나님이 하신다. 그러므로 일반 은총 영역의 지혜와 지식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늘 갈고 닦아야 한다.

 

4. 나가면서

 

결국 잠은 하나님이 주신 우리 심신(心身) 모두를 최적 상태로 만들려는 신체의 자율 회복 기능이요, 태몽을 포함한 꿈이란 잠을 통해 우리 몸이 심신을 본래 기능으로 안전하게 회복시키는 과정에서 우리 두뇌가 경험한 모든 크고 작은 요소들(경험의 잔상들)을 처리하면서 나타나는 (아직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은)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따라서 사람이 신경을 쓰거나 우울증과 같은 어떤 이유로 여러 날 잠을 못 자게 되면 신경전달물질들의 정상적 균형이 깨지고 심신 회복 기능에 문제가 생겨 착각, 환상, 망상 등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꿈이나 태몽 등을 잘 꾸는 사람들도 이런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남들보다는 좀 더 예민해진 경우라 볼 수 있겠다.

 

교회에도 보면 유난히 꿈을 잘 꾸는 권사님이나 집사님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대개는 미신과 신앙을 구분하는 분별력이 약하거나 신비주의적 경향이 강한 분들이 꿈도 자주 꾸는 것을 본다.

 

꿈의 과학이 꿈의 신비를 모두 해석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꿈의 일반은총적 해석이 분명 꿈 해석에 유용한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민간 꿈 해석가들은 이런 꿈의 과학을 모르기 때문에 꿈에 대해 오랫동안 민간에 내려온 미신이나 경험에 단순하게 의존하게 된다. 해몽의 경우 보석이 산 같이 쌓인 꿈을 꾸면 이것은 길한 꿈이 아니라 매사에 실패하기 쉬운 흉한 꿈으로 여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는 꿈은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요, 준마 탄 꿈은 길몽, 놀란 말 타는 꿈은 흉몽, 백마 탄 꿈은 사망할 꿈으로 본다. 꿈에 용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내용을 기억하며 대개 흉몽으로 여길 것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오히려 운수대통하고 입신출세할 꿈으로 여길 것이다. 이런 불안감이나 기대감이 사람들에게 괜한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들 수 있다.

 

하나님의 세상에 우연은 없다. 꿈에도 일정한 의미가 분명 있다. 그것을 기독교적 해석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태몽은 우리 인간의 잠재의식 안에 있는 어떤 바람(소망)이나 불안감을 반영하므로 기독교적으로는 꿈 자체를 무조건 미신이라고 무시하거나 반대로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꿈이든지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징조로 여기고 위로하고 격려하여 늘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덕담으로 승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3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