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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악에 매몰되지 말라(솔로몬의 교훈) 악에 매몰되지 말라(솔로몬) 평신도를 위한 신정론 해석(11) ▲조덕영 박사 1) 세상 누구보다 많은 것을 누려 본 솔로몬 세상에 과연 솔로몬처럼 다재다능하고 위대한 인물이 있었을까? 그는 기도 속에 지혜와 부와 명예까지 얻는 인물이 되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셨다. 그는 식물과 동물에 관해서도 매우 박식했다(열왕기상 4:29~34). 또한 그는 3천 가지 잠언을 썼고 1천여 곡의 노래를 지은, 시인이요 음악가였다. 한 아이를 놓고 두 여자가 서로 자기 자식이라고 우긴 소동 가운데, 아이의 생모를 찾아 준 솔로몬의 판결은 그의 충만한 지혜를 보여 준다(열왕기상 3:16~28). 또한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으며, 언약궤를 .. 더보기
다윗을 통해 본 악과의 투쟁(악과의 투쟁은 어떻게 성공하는가) 악과의 투쟁은 어떻게 성공하는가 -다윗 평신도를 위한 신정론 해석(10) ▲조덕영 박사. 1. 악과의 투쟁은 근본적으로 세상과 다른 싸움이다 악과의 투쟁도 당연히 싸움이다. 다만 악과의 싸움은 근본적으로 세상의 싸움과 다른 동기와 형식과 방식을 가진다. 이 이상한 성경적·신앙적 싸움에는 보통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요셉의 방식이요 다른 하나는 다윗의 방식이다. 요셉이 선으로 악을 제어하였다면, 다윗은 그와 조금 다른 형식의 투쟁을 보인다. 그것은 악과의 적나라한 투쟁이요 전면적 전쟁 선포 방식이다. 진정한 애굽 도성과 출애굽 도성의 진검 싸움이다. 요셉의 형식이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 십자가 방식이라면, 다윗의 투쟁은 악과의 전면전이다. 성경은 악한 원수 마귀는 사랑과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꾸짖.. 더보기
세상과 차원이 다른, 기독교의 인과응보(인과응보는 성경적인가 -욥의 친구들의 경우) 인과응보는 성경적인가 -욥의 친구들 인과응보에 대한 인간의 상식 인과응보(因果應報)는 본래 선(善)을 행하면 선(善)의 결과가, 악(惡)을 행하면 악(惡)의 결과가 반드시 뒤따른다는 불교적 용어다.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보통 늘 상식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편견선입관(偏見先入觀)이다. 즉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이 같은 인과응보적 사고는 인간이 품은 아주 오래된 편견 가운데 하나다. 욥 친구들의 인과응보적 사고 창세기 1-11장을 제외하면 욥기는 성경 중 가장 오래된 내용이다. 오래된 책인 만큼 욥기에는 십계명이나 모세의 율법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선·악, 죄악과 심판, 상과 벌 등 인간이 지닌 생생한 문제들이 파노라마처럼 나열되고 있다. 이 오래된 욥기.. 더보기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요셉은 예수를 닮았는가)/평신도를 위한 신정론 해석(8)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요셉은 예수를 닮았는가)/ 평신도를 위한 신정론 해석(8) ​ 1) 요셉, 절반의 그리스도(?) ​ 시련을 당한 점에 있어 욥과 요셉은 분명 닮았으나, 많은 점에서 욥과 요셉의 경우는 정말 달랐다. ​ 즉 신정론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욥과 요셉을 통해 주시려는 메시지는 조금 달랐다. ​ 요셉은 욥과 달리 예수의 모형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 비록 요셉이 위대한 사람이기는 하나, 그 조상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과 비교할 때 영적으로 미흡한 존재가 아니던가. 그가 어떻게 예수의 모형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그의 조상들처럼 언약을 받은 적도 없고, 메시야는 유다의 후손으로 오지 않았던가. 신약성경에서도 요셉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보지 않지 않는가. ​ 그렇다. 그렇다면, 그럼.. 더보기
악의 구조 속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과 신정론 악과 아브라함, 이삭, 야곱 평신도를 위한 신정론 해석(6) 1. 악의 대중화 속 믿음(아브라함) 악은 세상 속에서 만연하면서 대중화한다. 아브라함은 사람 중에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성경 인물 중 하나님의 벗으로 인정받은 유일한 인물이었다(대하 20:7). 그래서 어거스틴은 아브라함 시대를 ‘하나님 도성의 청년기’라고 말한다. 그런 인정 속에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이의 조상이 되었다. 그런 아브라함조차 세상에 만연한 악의 세력 속에 자신의 삶을 의탁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그의 고향 갈대아 우르는 우상을 섬기는 지역이었으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命)으로 고향을 떠났음에도 사회적으로 만연한 악의 장중에서 여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는 오랫동안 불임(不姙)에 시.. 더보기
의인 노아와 두 도성( 세상 도성과 하나님의 도성) 이야기 의인 노아와 두 도성( 세상 도성과 하나님의 도성) 이야기 평신도를 위한 신정론 해석(5)-타락 속 악의 만연, 심판과 구원의 신정론 1) 홍수 이전(세상, 두 도성의 시작) 에덴동산을 떠난 인류는 어찌되었을까? 타락의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사람이 땅에 번성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을 아내로 삼았다. 이들 사이에 태어나 자녀들이 바로 네피림이라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합 사건’을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 속에서 악에 물들어 버린 두 도성의 혼합”으로 설명한다. 성경은 사람의 죄악이 땅에 가득하였고, 그 마음의 생각은 항상 악했으며, 하나님은 사람 만든 것을 후회하여 탄식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창 6:6). 악에는 대가가 .. 더보기
아담과 하와를 통해 본 악(평신도를 위한 신정론 해석 4) 악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평신도를 위한 신정론 해석(4)-아담과 하와를 통해 본 악 ▲조덕영 박사. 성경의 인물로 본, 악과 고통에 대한 신학적 단상 성경의 인물들을 정형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악의 문제와 관련하여 성경의 주요 인물들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따라서 각 인물들을 악과 고통의 문제와 관련하여 신정론적 해석에 접근해 보려는 것이 본 신학적 단상의 취지이다. 악에 대해 성경이 알려 주는 분명한 사실 선과 악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어거스틴은 이 문제에 대해 무려 288개의 철학 학파가 있다고 했다. 이렇게 성경과 신앙을 떠나 인간이 선과 악의 구체적 목적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성경이 알려 주는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즉 선과 악의 시작에 대해서는 성경이 명확하게 알.. 더보기
창조과학의 젊은 창조 연대 주장은 악의 문제 해결에 우호적인가? 젊은 창조 연대는 악의 문제 해결에 우호적인가? [조덕영 칼럼] 평신도를 위한 신정론 해석(2) 어거스틴이 악의 문제에 대해 접근한 이후, 루터와 칼빈 그리고 라이프니츠를 거쳐 이후 임마누엘 칸트, 헤겔, 화이트 헤드, 칼 바르트, 포사이스(P. T. Forsyth, 1848-1921), 몰트만 등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를 다루어 왔지만 결론은 쉽게 나지 않는다. 철학과 신학의 거물들이 뛰어들었지만 결론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 문제가 초월의 문제와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신학자 벌콥도 하나님과 죄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비밀로 남아 있다고 언급한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나, 하나님을 힘써 아는 일(knowing God)이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천사나 마귀의 기원이 젊은 창조 연대에 우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