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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역사 & 세상 만사

헬라 철학, 자연철학의 발상지 이오니아(밀레도와 사모스) 풍경 주전 6세기 서양 철학이 시작된 밀레투스. 철학의 3대원조, 탈레스(물, 일식 예측)와 제자 아낙시메네스(월식, 공기)와 아낙시만드로스(아페이론 이론, 무한정자)가 모두 밀레투스 출신이다.피타고레이오 항구성경 마지막 계시가 임한 밧모섬 가는 사모스섬의 기항지, 피타고라스(주전 580년경-500년경) 기념 조형물 사모스섬의 붉은 토기와 청동기는 밀레투스와 정확히 일치한다.사모스 섬의 초거대 동상©사모스 고고학 박물관내셔널지오그래픽에 까지 소개되었을 만큼 유명한 거대 동상이다.과거 사모스 섬은 거대 동상의 섬이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우상 신전에 분노했던 사도 바울이 거대 인간 동상으로 가득한 이 사모스 섬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발굴 당시의 사진작은 이 섬에는 놀랍게도 고도 1400미터가 넘는.. 더보기
예루살렘, 다윗 이전 팔레스틴 땅이 아니었나? 가나안 해안가에 포진한 블레셋(팔레스틴)​다윗 이전 예루살렘은 블레셋(팔레스틴)의 땅이 아니었다. ​블레셋이라는 이름은 일찌감치 성경에 등장한다(창 10:14, 21:32,34; 26:1-18; 출 13:17; 15:14; 23:31). 이들은 오늘날 아랍 민족이 주장하는 아브라함 후손인 셈족 이스마엘의 후손이 아니었다.​블레셋은 주로 가나안 해안가에 살던 7 부족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은 함족 미스라임의 후손으로 애굽과 크레타(그레데) 섬 등을 떠돌다 이스라엘 민족처럼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 주로 해안가를 중심으로 포진하였다.욥바의 일몰 풍경©조덕영이들 블레셋 민족은 아브라함 일행과 일찌감치 조우(遭遇)한다. 블레셋은 아브라함보다 먼저 가나안의 북서부 욥바로부터 가사 남부까지 해안 평야를 따라 정착한 민.. 더보기
성경 속 이스라엘과 이란은?(메대-바사의 신제국, 페르시아와 이란)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보복 공격이 결국 13일 시작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스라엘의 북부와 남부에 수백대의 이란 무인기(드론) 공격이 이어졌다는 CNN 등의 보도가 있었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이 두 나라는 도대체 성경 속에서는 어떤 관계였을까? ​ 선지자들(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시대의 마대, 엘람, 앗수르, 바벨론의 강역/ 메디아의 강역이 엘람보다 현재의 이란 대부분을 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A Hisstorical Atlas of the Jewish People, NY: Schocken Books, 26). 마대(메대) 후손들의 정착지 ​ 성경 속, 같은 야벳 자녀들 가운데 형들인 고멜과 마곡이 아라랏 산의 서북쪽을 향한 것과 달리 마대(Madai)의 후손들은 티그리스 강의.. 더보기
모세 일행의 출애굽, 아멘호텝 2세 때였을까? 아멘호텝 2세(주전 1450-1425, 19년)가 모세의 출애굽을 허락한 파라오였을까? ​ 함의 아들 미스라임의 후손들은 애굽 문명을 일구어 번성하면서 이스라엘 민족과 운명적 만남을 가지게 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주거지 브엘세바유적/ 이스라엘 브엘세바 국립공원©조덕영 이 역사적 만남은 무엇보다 성경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의 애굽 방문 이후 애굽에서 현달(顯達)한 요셉의 도움으로 야곱과 그 후손들은 가나안 땅을 떠나 비옥한 애굽 고센 땅에 정착하여 4세기 동안 애굽에서 살았다(창 15:13). ​ 하지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 파라오가 등장하면서 야곱 후손들은 시련에 처하고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 그리고 때가 차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이 노예의 질곡(桎梏)에.. 더보기
고조선 개국 당시 애굽(이집트)에서는 무슨 일이? 아브라함과 야곱은? 고조선 개국 당시 애굽(이집트)에서는 무슨 일이? 아브라함과 야곱은? 소의 도살을 묘사한 애굽의 무덤 부조. 기원전 2350년경, 제5왕조 말 이집트 제 5왕조는 주전 2500~2350년경까지 우세르카프부터 우나스까지 9명의 파라오가 통치한 시기였다. 7명의 파라오가 통치한 제6왕조(주전 2350~2180)때 고조선은 설립(주전 2333년)되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브엘세바 국립공원(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주거지) 이때 당연히 이스라엘은 없었다. 히브리어도 없었다.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주전 2166-1991)은 갈대아 우르에서 그 부모들이 달신 우상을 섬기며 살았다. 브엘세바 유적 풍경©조덕영 브엘세바 유적은 족장 시대의 아브라함 가족이 어떠한 환경 가운데 있었는지를 추론할 수 있다... 더보기
비잔틴(동방기독교) 시대의 유물들(베를린 Neues Museum 소장품) 비잔틴 시대의 유물들 ​ 로마 제국이 종교적으로는 가톨릭, 언어는 라틴어를 사용한 반면 비잔틴 제국(4-15세기)은 종교적으로는 동방정교회(그리스 정교회), 언어는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석관 모양으로 석고석, 초기 비잔틴, 5~6세기 세기 아파메네(시리아) 비잔틴 미술관 발견된 곳 : Apamea(그리스어: Ἀπάμεια, Apameia, 아랍어: آafاميا, Afamia)는 오론테스 강 오른쪽 기슭에 있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였다. 이곳은 마케도니아 통치하에 아파메네의 수도였으며, 십자군 시대에 다시 로마 말기 속주 시리아 세쿤다의 수도이자 대주교관구가 되었다. 인상적인 고대 유적 중에는 로마 세계에서 가장 긴 약 2km에 달하는 대주랑과 추정 좌석 수를 갖춘 로마 제국에서 가장 큰 현존 극장.. 더보기
윤석열 대통령 3.1절 기념사에서 독립운동, 일본, 북한 인권 언급 윤석열 대통령 3.1절 기념사 독립운동, 일본, 북한 인권 언급 기미독립선언 뿌리에 당시 세계사의 큰 흐름인 ‘자유주의’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 합당한 평가 받아야 자유와 인권, 인류 보편 가치 부정하는 북 정권 우리의 통일 노력,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 되고 등불 되어야 ▲윤석열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대통령실 3.1 운동은 종교인들이 중심이 된 독립운동으로 유명하다. ​ 민족대표 33인 중 이승훈 장로, 길선주 목사 둥 기독교인이 16인이요 손병희 등 천도교인이 15인, 만해 한용운 등 불교계 2인이 참여했다. 1919년 한국의 인구는 약 2천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그중 기독교인은 25-30만 명으로 추산된다. ​당시 기독교 신자는 전체 인구의 1-1.5%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 더보기
기독교 최대 박해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 튀르키에 박물관들을 여행하다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우상은 제우스와 헤르메스 두상들이다. 그 다음에 자주 눈에 띠는 두상은 바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코 깨진 상들이다. 제 11대 로마 황제(81-96년)였던 그는 기독교를 유난히 핍박한 황제로 유명하다.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던 티투스(훗날 로마 10대 황제)는 바로 그의 형이었다. 지금도 남아있는로마 광장 입구 개선문이 티투스가 세운 것이다. 히에라폴리스의 웅장한 이 원형 극장은 당시 로마 황제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이 산 위로 순교자 빌립 기념교회가 있다. 빌립은 이곳에서 돌에 맞고 도미티아누스(Domitian, Domitianus) 황제에 의해 십자가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87세때였다. 순교자 성 빌립기념교회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은 밧모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