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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역사 & 세상 만사

모세 일행의 출애굽, 아멘호텝 2세 때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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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호텝 2세(주전 1450-1425, 19년)가

모세의 출애굽을 허락한

파라오였을까?

함의 아들 미스라임의 후손들은 애굽 문명을 일구어 번성하면서 이스라엘 민족과 운명적 만남을 가지게 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주거지 브엘세바유적/ 이스라엘 브엘세바 국립공원©조덕영

 

이 역사적 만남은 무엇보다 성경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의 애굽 방문 이후 애굽에서 현달(顯達)한 요셉의 도움으로 야곱과 그 후손들은 가나안 땅을 떠나 비옥한 애굽 고센 땅에 정착하여 4세기 동안 애굽에서 살았다(창 15:13).

하지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 파라오가 등장하면서 야곱 후손들은 시련에 처하고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때가 차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이 노예의 질곡(桎梏)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귀향 시키게 된다.

이 내용은 마귀의 지옥 권세에서 하나님 자녀들을 건지신 그리스도 십자가의 모형(模型)이었다.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은 도대체 언제쯤 애굽을 떠났던 것일까?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애굽 제 18왕조 시대> :

아흐모세 1세(기원전 1567년 ~ 기원전 1546년)

아멘호텝 1세(기원전 1546 ~ 기원전 1526년)

투트모세 1세(기원전 1526년 ~ 기원전 1512년)

투트모세 2세(기원전 1512년 ~ 기원전 1504년)

하트셉수트(기원전 1503년 ~ 기원전 1482년)

투트모세 3세(기원전 1504년 ~ 기원전 1482년)

아멘호텝 2세(기원전 1450년 ~ 기원전 1419, 1425년)

투트모세 4세(기원전 1400년 ~ 기원전 1390년)

아멘호텝 3세(기원전 1390년 ~ 기원전 1352년)

티예

아멘호텝 4세(아크나톤, 기원전 1352년 ~ 기원전 1335년)

스멘크카레(기원전 1334년 ~ 기원전 1333년)

네프루네프루 아텐 (기원전 1333년 ~ 기원전 1331년)

투탕카멘(기원전 1331년 ~ 기원전 1332년)

아이(기원전 1322년 ~ 기원전 1318년)

호렘헤브(기원전 1318년 ~ 기원전 1304년)

그 가운데 보수적 견해는 제 18왕조(주전 1570-1293) 아멘호텝 2세(1450-1425, 19) 시대 전후로 보는 입장이다.

아멘호테프 user와 그의 아내 타 네트 와지(Ta-net-wadj)의 그룹 동상, 제 18왕조, 주전 1428- 1397년©조은선/베를린박물관섬 전시물

윗 사진의 아문(아문은 이집트의 나일강 하류에 위치한 테베에서 숭배되던 바람과 공기의 신으로서 후에 태양신 라<레>와 합쳐진 후 아문-라 또는 아문-레로서 태양을 상징하는 신으로 자리를 잡았다)의 문지기인 아멘호텝 user와 그의 아내 타 네트 와지(Ta-net-wadj)의 그룹 동상(제 18왕조, 주전 1428- 1397년)은 테베의 카르나크에서 발견되었다(추정). 바로 아멘호텝 2세 시대였다.

 

재무장관 소벡 호텝의 서기관 동상, 제 18왕조, 아멘호텝 2세 시기, 주전 1428 - 1397년, 파윰의 Dimeh al-Siba 발견(추정)©조은선/ 베를린박물관섬 전시물

이스라엘에서 성전 건축이 시작된 것은 출애굽 후 480년이 지난 솔로몬 4년(왕상 6:1)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 시기는 주전 960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출애굽 시기는 대략 주전 1440년 경이 된다. 바로 이때 파라오는 아멘호텝 2세였다는 얘기다.

파란색 왕관을 쓴 무덤 부조: 아멘호텝 3세. 제18왕조, 기원전 1360년경, 석회암©조은선/아멘호텝3세(Amenhotep III)는 이집트 신왕국 제18왕조의 파라오이다.이집트가 가장 번성했던 시대의 왕으로 시리아·팔레스타인 등을 지배하였다. 당시는 히타이트·바빌로니아에서 여러 가지 산물이 수도 테베로 흘러들어 왔다.

사사 입다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헤스본 일대를 정복한 지 300년이 흘렀다(삿 11:26)고 말한다. 입다 활동 연대는 주전 1100년 경이었다. 이 기록도 아멘호텝 2세의 시대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시기였다는 결론을 뒷바침한다. 이 주장은 성경의 연대기와 잘 맞아 떨어져 보수적 성경학자들이 선호하는 견해이다. 하지만 성경이 아닌 세속고고학 성과를 따르는 진보적 견해도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치된 견해는 아직 없는 셈이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