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관(신앙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느낌이 있는 시

보고 싶은 서울역 그 친구에게(느낌이 있는 시 20)

728x90

 

보고 싶은 서울역 그 친구에게

 

통행금지가 엄연히 작동되고

참 을씨년한 서울역 풍경과 낭만이

조금은 남아있던

그 어느 날

물푸레나무 같은 한 소년이

쥐똥나무 같은 나를 따랐다

그는 다짜고짜 나를 형이라 불렀고

나는 그에게 그저 건성건성

나를 편한 친구라 부르라 했다

고향이 강원도 원주 산골이라 했고

몸이 아파 귀향하는 길이라 했다

내가 보아도 왜소한

나보다도 약해 보이는 약골소년이었다

내가 아니어도 분명 그는

낯선 서울에서 운명처럼 외로울 친구였다

쇠말뚝 여러 개 박힌 서울 땅에서

그와 나는 그렇게 그때 꺾인 나무들이었다

그를 격려해 준다는 게 그만

치악산 겨울바람은 숨찬 귀래 엄정 옥녀봉을 거뜬히 넘어

내 고향 예성 중원 땅으로 유유히 불어오는

튼튼한 바람이라 칭찬해주었다

문학적 치기(稚氣)에 빠져있던 내가 저지른

말도 안 되는 참 엉뚱한 실언이었다

통금 자정이 가까워지자 순사들은 금속성 호루라기를 불어댔고

사람들은 서둘러 서울역 대합실을 빠져나갔다

일부는 바퀴벌레처럼 총총 어디론가 사라졌고 더러는 익숙하게 양동 쪽으로

우리 둘은 여린 귀뚜라미처럼 남산골로 떠밀려갔다

남산골 쪽방 냄새는 내 호주머니 찌든 돈 냄새보다도 진했다

그래서 사람 그리운 우리는 서로 소중한 친구가 되자고 했다

노숙인만도 못한 미숙한 우리는

쪽방에서 얽혀 그렇게 함께 방울뱀처럼 진하게 잠들었다

방값을 치룬 건 물론 가난한 내 호주머니였다

그날 밤 나는 부끄럽게도 서울 떠나는 그 소년의 새벽이 되었다

예수님이 보고 싶을 때

가끔 나는 그 친구가 보고 싶다

아침밥이나 넉넉히 먹여 보낼 걸

다시 만나자고 처음으로 씩씩하게 약속해놓고

미안하게 그만

이름도 잊어버린 안타까운 친구

 

조덕영

전 한국문학연구회 충북지부 사무국장, 전 국내최장수 월간지, 월간<새벗> 편집자문위원, 1978년 <충청문예>에 시(독경 소리는 젖어서)를 내며 고향에서 시인 고 고찬재(전 민예총 충주지부장), 정재현(전 민예총 충주지부장), 정한용(교사, 시인), 한우진(시인), 홍종관(대구교대 교육심리학 교수, 목사), 서효원(무도인) 등과 교류하며 동인 활동. 기독교 최초 한국기독교 최고 권위의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어린이도서부문 최우수상을 2년 연속 수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