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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는 초혼(招魂)처럼 누우셨다
서울 명동 노련한 신경외과 의사는 생각 없이 아버지를 포기하였다
내가 만일 의사라도 탁월한 판단이었으리라
돌아서는 고향 길 비포장도로는 상여 길처럼 멀기만 했다
아버지는 가볍게 하늘 가까이 눈만 멀뚱거렸다
내 평생 눈물의 절반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흘러내렸다
포기는 의사가 하고 절망은 자녀들이 가져왔다
식물인간 아버지의 팔다리는 썩은 나무토막처럼 벗겨졌다
그래도 늘 고마워 그저 부둥켜안고 울음을 울었다
비스듬히 기대어 싱겁게 졸면서 나는
감정 없는 아버지 발을 가끔 게으른 눈물로 씻겼을 뿐이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바둑알 움직이듯 살아났다
형님의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명의(名醫)가 포기한 아버지를 하느님이 약간 불쌍히 여기셨다
다만 吳청원 9단과 사카다 본인방(本因坊)과 趙남철 국수를 통달하던
아버지의 실력 바둑을 내가
꺾을 수 있는 아주 쉬운 기회가 고맙게 찾아왔다
내 나이 든든한 10살 때였다
시
조덕영
전 한국문학연구회 충북지부 사무국장, 전 국내최장수 월간지, 월간<새벗> 편집자문위원, 1978년 <충청문예>에 시(독경 소리는 젖어서)를 내며 고향에서 시인 고 고찬재(전 민예총 충주지부장), 정재현(전 민예총 충주지부장), 정한용(시인), 한우진(시인), 홍종관(대구교대 교육심리학 교수, 목사), 서효원(무도인) 등과 교류하며 동인 활동. 기독교 최초 한국기독교 최고 권위의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어린이도서부문 최우수상을 2년 연속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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