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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신앙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느낌이 있는 시

안림(安林) 소 장터(느낌이 있는 시 7) 안림(安林) 소 장터 마한(馬韓)의 땅을 비비던 장날 모여드는 한(限) 삐 걱 삐 걱 마스막재 작살 고개 넘어 달구지에 실려 오고 반백(半白) 다 된 농부(農夫)와 젖 부른 농우(農牛) 뭉우리진 오천 년이 부대끼는 눈물 고삐 선술 집 목로(木爐) 불 피울 때 몸으로 울고 가는 넉 장 반(半)짜리 부룩송아지 *안림 소장터는 1970년대까지 충주 "안림"에 있던 우시장터였다. 남산 안림 화장터 밑 산비탈에 과수원이 있었다. 지금 기억해보면 조금 과장해서 초등학교 반친구들의 3분지 1은 과수원집 아이들이었던 것같다. 지금은 건물들이 들어선 소 장터와 논 일부를 제하면 안림의 도로 좌우가 모두 과수원이었다. 철수, 목사가 된 근수 등 자영농이든 소작 과수원이든 그만큼 1960~70년대에도 충주는 과수원이 많은 .. 더보기
겨울 만두국(느낌이 있는 시 6) 겨울 만두국 좌판에 의지하고 겨울이 선다 화덕에 놓인 겨울 맨두국, 할머니 며느리가 사다준 겨울 조끼, 할머니 누군가 막걸리 한 사발로 회개하는구나 할머니의 용서로 내가 회개하는구나 이 세상 어디서나 도너츠 굽는 손으로 맨두국을 먹는다 해장국 육수 냄새로 맨두국을 먹는다 배차, 알타리 무, 아줌마 소리로 맨두국을 먹는다 어물전, 포목전, 철물전 소리로 맨두국을 먹는다 그렇게 사람 그리워 겨울 만두국을 먹는다 할머니, 주름살이 떠나가지 못하게 붙들고 할머니, 부르튼 손등이 양은 냄비 떡 가래를 들뜨게 하는구나 용서하라, 세상 어디에 터진 생살 같은 겨울 맨두국이 있는가 할머니의 시장 좌판에 오면 상투처럼 머리 틀고 따뜻하게 기다리는 부드러운 겨울 세상 아, 그래도 휘파람 소리처럼 세상은 가고 이 세상 겨울.. 더보기
디지털 고향(느낌이 있는 시 5) 디지털 고향 내 고향 蘂城은 늘 산과 돌, 물이 참 넉넉했다 월악이 가끔 물 그늘에 잠기고 수석은 지천에 널려 고향 강마을을 비추었으니 심심하면 종민동 트럭도 희디흰 곱돌을 뿌리기에 아이들은 신선처럼 신나는 공기놀이를 하고 오죽하면 박두진 시인도 청록 배낭 메고 주말마다 남한강 좌우 강가를 探石하며 늘상 세월 버리는 연습을 하였으니 내 고향 언저리엔 늘 낭만파 바람이 거리와 들판을 서성거렸다 허나 고향도 요즘 참 많이 달라졌다 수석들은 돌멩이, 자갈 되어 호수 속 몸을 감추고 마스막재 너머 그립던 곱돌 광산은 그늘에 잠겨있다 그러고 보니 고향처럼 조국 사회도 참 많이 거칠어졌다 곱돌들은 살아 디지털 돌덩이로 되살아났으나 낭만파 욕설은 디지털 생명 속에 젊잖게 명퇴하였고 직설의 날고기 화법만이 유행의 꼼수.. 더보기
국군광주통합병원 회개(느낌이 있는 시 4, 조덕영) 국군광주통합병원 회개(느낌이 있는 시 4) 가을에 후송 온 그 친구는 풍 일병이라 했다 빛고을 이곳이 고향이라 했다 싱거운 검은 안경을 쓰고 있었고 그나마 더러 내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였다 태종대 전교사 김 병장이 교회로 모두를 내몰고 있을 때 그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세상과 내게 침을 뱉고 있었다 '아니다' '아니다'라고 무엇이 아니든 침 맞은 내 얼굴은 연실 흉내 바둑처럼 고개를 흔들어야 했다 그는 약대 털옷 입은 세례 요한이요 나는 겨우 더러운 낙타 발톱의 티끌만도 못한 존재였다 그는 무릎 슬개골보다도 마음의 병을 더 크게 앓고 있었고 나는 늘 이기심으로 내 평생 고통의 짐, 불치병 류마치스를 생각하고 있었다 박 중위가 늘 나에게 바둑판으로 다가오듯 그의 안경은 늘 다케미야(武宮正樹.. 더보기
장날(느낌이 있는 시 3, 조덕영) 느낌이 있는 시 3- 장날 글쓴이 : 최고관리자 (110.35.187.242) 조회 : 8,486 장날 내가 노래하지 않아도 내 고향 예성의 5월은 장날로부터 시작된다, 누가 분명 노래했네 온 들 잡초들이 부산한 힘을 내고 마스막재 넘어 친구의 점퍼에 깊은 봄 향기가 배어올 때 스스로 장날은 사과 꽃 향기와 섞여 힘찬 한 해의 뼈대를 익숙하게 예비하네 무학 시장 장류의 냄새가 보수적이듯 5월은 냄새조차 늘 보수적이라 하지만 노래는 여전히 진보가 되어야 하기에 시 쓰기는 늘 여기서 서성이네 그래도 국밥 냄새 향기에 취해 살아온 나는 5월의 장날에 당연히 취해버리네 할머니의 때 절은 손톱 속에 아이들 꽃핀이 소중하게 반짝이고 대장간 도씨 아저씨 팔뚝이 거룩한 힘줄을 뿜어낼 때 낯설어하는 몇몇 어린 강아지들과.. 더보기
우리 동네(느낌이 있는 시 2, 조덕영) 우리 동네 얼굴만 슬쩍 알아도 외상 먹을 수 있는 어울릴 것같지 않던 삼손 선술집과 막달라 마리아 국밥집이 모두 있어 사람 냄새와 사랑 향기가 함께 어우러지던 동네 제재소 톱밥이 풍성하고 헛간 능구렁이가 있고 누구도 겁 안나는 저녁 화투 도사(道士) 제재소 일꾼 도(都)씨 아저씨가 늘 지켜주던 동네 특전사 출신 맥가이버 소사(小使) 형이 나를 반쯤 왕자처럼 여겨 든든하던 동네 내가 평생 회개해야 하는 德順네 가게 아흔 살 모기(耄期) 할머니가 있던 푸근한 동네 칼국수 방앗간은 자그마치 서너 개나 있어 풍성하던 동네 마수걸이 가래떡을 가끔씩 훔쳐 먹어도 치골이 형에게 욕 한번 얻어먹으면 풀려나는 넉넉한 동네 치매라는 말조차 없어 노망(老妄) 들린 할머니가 정겨웠던 동네 평생 실업자 왕눈 친구 아버지가 당당.. 더보기
내 사랑 잭키(느낌이 있는 시 1, 조덕영) ​ 내 사랑 잭키 ​ 잭키는 우리 집 개였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고 미녀 강아지였다 세상에서 그처럼 아름다운 개를 굳이 찾을 필요가 없었다 약간은 우수에 젖은 오드리 햅번처럼 우아한 우리 집 스피츠였다 짖어야할 사람에게 짖을 줄 알고 짖어서 안 될 높은 분께는 슬그머니 뒤꽁무니만 가볍게 물 줄 아는 영리한 개였다 잭키는 세상에서 제일 착한 우리 어머니가 지극히 아끼고 사랑한 개였다 우리 목사님도 개탕을 즐기고 내가 아는 모 목사님도 개탕을 즐기고 친구 목사도 개탕을 즐기고 살면서 개탕 좋아하는 사람들을 무척 많이 보았다 우리 민족은 참, 개 같은 것을 죽도록 사랑하는 민족인가보다 어느 날 뒤란에 우연히 벼락이 떨어졌다 그날 저녁 하나님은 만삭의 잭키를 데려가셨다 그게 잭키에 대한 내 기억의 마지막 전부였.. 더보기
상사화相思花(느낌이 있는 시: 양채영) 상사화相思花(느낌이 있는 시: 양채영) 상사화相思花 ​ ​ 우린 그냥 난초꽃이라 불렀다. 이 나라에 흔한 언년이처럼 늦봄 한철 마당구석에 무성했다가 깊은 여름 아무도 모르게 잎이 지고 꽃대궁만 풀쑥 혼자 솟아나 있다. 꽃대머리엔 희뿌우연 알살의 꽃 지금은 잊혀진 그곳의 하늘이나 마당 한가운데 누가 서 있을까. 꿈은 높은 천상天上에 매달려 있다. 달려가는 간이역 뜰에도 그 꿈은 몇 대궁 풀쑥 솟아나 있다. ​ 시: 양채영(1935-2018, 제 33회 한국문학상, 2004년 제3회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수상, 중원문학 회장 역임) ​ 풀들도 많이 자라고 폭염을 뚫고 밤이 되면 어느덧 가을도 슬며시 다가오는 듯합니다. ​ 평생 창조 세상의 "꽃"들과 "풀"들을 노래한 필자의 스승이신 존경하는 고 양채영 선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