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저
- 노정태 역
- 출판: 부키
- 2021.04.27.
"2024년, 지구촌 풍경이 만만치 않다!"
"다시 한번 이 책을 적극 권한다"
조덕영 박사(작가, 시인)
"<침묵의 봄> 이래 가장 탁월한 업적!"
"반전과 파라독스의 책"
"분명 유엔보고서나 노벨상보다 환경에 더 많은 일을 할 것"
"환경운동에 현실주의라는 생명력을 부여한 책"(타임지)
"환경휴머니즘 운동의 대제사장"
당신이 안다고 믿는 환경주의는 과연 옳은가?
타임 선정 “환경 영웅”이 “환경 종말론”에 던지는 충격적 이의 제기!
환경관련 정치적 여론몰이의 행태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의 교훈과 환경정책 실수의 교훈은 닮지 않았는가?
“환경 구루” “기후 구루” “환경 휴머니즘 운동의 대제사장”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환경, 에너지, 안전 전문가 마이클 셸런버거가 30년간의 현장 활동과 연구, 고민과 열정, 대안과 해법을 총결산해 선보이는 문제작이다.
환경 문제에 대해 무언가 눈을 뜨게 하는 책이다(그린라이닝 연구소 설립자, 존 갬보이)
이 책은 기후 변화를 둘러싼 논란,
특히 최근 만연하고 있는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여,
환경 운동 진영과 과학계뿐 아니라
언론과 일반 대중에게까지 큰 파장과 충격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얼음이 녹아 북극곰이 굶어 죽어 가고 있다”
“아마존이 곧 불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린피스가 고래를 구했다” 같은
익숙한 통념과 정반대되는 과학적 근거와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또 “공장이 떠나면 숲이 위험해진다” “자연을 구하려면 인공을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우리의 직관에 반하는 역설을 이해하게 된다.
나아가 “원자력은 지극히 위험하고 비싸다”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가 유일한 길이다”라는 주장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분명히 깨닫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환경 문제에서 허구와 사실을 또렷이 구분하고, 기후 위기 대응에서 우리가 가진 긍정적 잠재력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번영을 가져다주는 진정한 해결책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또 “플라스틱은 진보다” “경제 성장이 환경 보호다” “자연을 구하려면 인공을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우리 직관과 반대되는 중대한 역설을 마주하게 된다. 아울러 “가난한 나라는 신재생 에너지를 도입하면 부유해질 수 있다” “원자력은 핵폭탄과 다름없는 위험한 것이므로 필요 없다”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로 전 세계 모든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다”라는 주장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깨닫게 된다.
사실 고래를 살린 건 그린피스가 아니라, 바로 기술과 경제 발전이었다고 필자는 말한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1800년대 중반 유전 개발로 등유가 생산되어 조명 연료 시장에서 고래기름을 몰아냈다. 1900년대 중반에는 식물성 기름이 마가린과 비누 원료인 고래기름을 대체해 고래를 구했다. 바다거북과 코끼리를 살린 것 역시 오늘날 최악의 쓰레기로 지탄받는 플라스틱이 발명되어 거북 껍질과 상아를 대신한 덕분이다.
필자는 "천연 소재를 사용하자는 환경주의자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자연을 지키려면 우리는 인공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인류는 100억 명을 먹여 살릴 식량을 생산하고 있으며 기후 변화에도 불구하고 식량 생산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식량농업기구 따르면 식량 생산량 증가는 기후 변화보다는 트랙터, 관개 시설 개선, 비료 등의 요소에 더 크게 좌우된다. 지난 30여 년간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은 계속 줄어들었다. 유럽의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보다 23퍼센트 낮다. 미국은 2005년부터 2016년까지 15퍼센트 감소했다. 이에 따라 지구 평균 기온도 티핑 포인트인 4도가 아닌 2~3도 상승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성과는 지구 종말을 외치는 기후 양치기들 덕분이 아니라 석탄에서 천연가스와 원자력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룬 덕분이고, 농업과 어업의 산업화와 현대화 덕분이며, 제조업의 발달 덕분이다. 기후 활동가들이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기술과 경제 성장의 힘으로 우리는 기후 변화를 막아 내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이 유일한 길이라고?
환경주의자들은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로 온 세상의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비싸고, 불안정하며, 특히 에너지 효율과 밀도가 너무 떨어진다. 풍력 터빈의 최대 효율은 59.3퍼센트, 태양광 패널의 최대 생산 전력은 1제곱미터당 50와트다. 반면 천연가스와 원자력은 1제곱미터당 2000~6000와트다. 산업혁명은 석탄의 에너지 밀도가 나무보다 훨씬 높아서 가능했다. 같은 원리로 에너지 밀도가 훨씬 낮은 태양광과 풍력으로는 오늘날의 고에너지 도시 산업 사회와 문명을 지탱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문제는 태양광과 풍력이 날씨에 좌우되는 신뢰할 수 없는 간헐적 에너지라는 점이다. 그래서 태양광 또는 풍력 시설이 대대적으로 들어선다면 그 불안정성을 감당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더 많은 천연가스 발전소가 세워져야 한다. 이 때문에 전력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가 더 많아지고 전기 요금도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대폭 높인 독일은 2007년 이래 전기 요금이 50퍼센트 늘어났으며, 2019년 요금은 유럽 평균보다 45퍼센트 높다. 신재생 에너지 의존 비중이 높은 캘리포니아는 2011년 이후 다른 주에 비해 6배나 빠른 속도로 전기 요금이 올랐다.
국문학 전공, 비전문가가 원자력 안전위원회 수장을 맡고
원자력 발전을 무너뜨리고
풍력과 태양광 패널로 온 나라를 뒤덮어 산야와 저수지를
중금속, 불완전한 중국 제품들로 도배하다시피한
포퓰리즘 정권의 위선을 우리들은 목격한 바 있다.
그러면서 체코 가서 관광하며
원자력 수출한다고
체코 대통령도 이스라엘 출타로 없던
프라하 관광을 만끽하던 우리 대통령이 오버랩된다.
원자력을 무너뜨린 대통령이
체코에 원자력을 수출한다고?
어찌 국가를 그 지경으로 경영하였을까?
셸렌버거는 친환경이라는 풍력 발전도 도리어 박쥐와 대형 조류, 곤충 등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고 주장한다. 태양광 발전 또한 넓은 면적이 필요해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건설 시 원전보다 자원은 16배 많이 소비하고, 300배나 많은 폐기물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위선적이고 비윤리적인 “환경 식민주의”
더욱 큰 문제는 환경주의자와 선진국이 여전히 나무와 숯을 주된 연료로 쓰는 가난한 나라들에 비효율적인 신재생 에너지를 강요하면서 화력, 수력 발전을 못 하게 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작 자신들은 화석 연료로 부유한 선진국이 되어 오늘날 자동차와 비행기, 인공조명과 난방을 풍족하게 누리는 삶을 살면서도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 발전과 성장은 가로막으려 드는 것이다. 위선적이고 비윤리적인 “환경 식민주의”다.
세계은행은 2차 세계대전 이후 20여 년간 댐, 도로, 전력망 등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돈을 개발도상국에 빌려주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들어 세계자연기금이나 그린피스 같은 환경 단체들의 입김이 드세지면서 유엔은 이른바 “지속가능한 개발” 모델을 개발도상국에 제시하기 시작했다. 이 새 모델에 따르면 가난한 개발도상국은 댐 같은 대규모 전력 인프라 대신 소규모 신재생 에너지를 계속 사용해야만 했다. 1990년대에 이르자 세계은행의 금융 지원 중 인프라 구축 자금은 고작 5퍼센트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유엔과 환경 단체들은 이것이 산업 사회가 겪어 온 시행착오를 피하도록 가난한 나라를 돕는 일이라고 강변했다. 2018년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 보고서는 댐, 천연가스, 원자력 등 중앙 집중식 에너지원을 버리고 태양광 같은 탈중앙 집중식 에너지원을 택함으로써 가난한 국가들이 에너지 도약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인류는 신재생 에너지가 아니라 석탄 덕분에 산업화 이전의 유기농 태양 저에너지 사회로부터 해방되었다. 화석 연료가 아닌 신재생 에너지로 산업혁명을 하거나 가난에서 벗어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셸런버거는 이처럼 산업화도 못 한 나라들에 탈산업화를 요구하는 터무니없는 “환경 식민주의”를 경계하면서 산업화와 농업 현대화, 특히 제조업의 도입이야말로 번영과 환경 보호를 함께 달성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그린피스나 멸종저항의 주장은 틀렸다. 가난한 나라에 에너지 밀도 높은 공장이 들어서는 것은 숲을 위협하지 않는다. 공장이 떠나 버릴 때 숲은 진짜 위기에 빠진다.” 한 기후학자의 말대로 “경제 성장을 추구해 많은 이들을 가난에서 건져 내는 일, 기후 변화에 맞서는 일, 이 두 가지는 양자택일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기후 변화의 영향이라고 걱정하는 것 중 다수는 실제로는 관리 부실이나 저개발 때문에 생겨난 증상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개발도상국 노동자가 만든 옷을 입을 때 우리가 느껴야 할 감정은 죄책감이 아니라 자부심이다.
“환경 종말론”을 넘어 “환경 휴머니즘”으로
천연자원보호협회, 환경보호기금, 시에라클럽 같은 모든 주요 환경 단체들은 화석 연료와 원전 추방에 앞장서 왔다. 그런데 그들은 동시에 천연가스나 신재생 에너지 회사로부터 돈을 받거나 그 기업들에 투자해 왔다. 돈으로 얽힌 사이인 것이다.
탈원전을 추진하면 화석 연료와 신재생 에너지 기업은 수지맞는 장사를 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가 생산하는 전력량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원전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그 막대한 돈이 천연가스와 신재생 에너지 기업으로 흘러들어 간다는 말과 같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환경 운동가 빌 매키번, 정치인이자 환경 운동가로 노벨상을 수상한 앨 고어 전 부통령 같은 인물들도 모두 화석 연료 업계로부터 돈을 받았다.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이 화석 연료 업계로부터 돈을 받는다고 비난하면서 자신들도 뒤로는 돈을 받아 온 것이다. 한마디로 위선이다. 셀레브리티들과 기후 활동가들이 구글 주최로 기후 변화 대응 행사를 한다면서 5성급 리조트에다 제트기, 호화요트, 슈퍼카, 헬리곱터를 동원해 화석 연료를 펑펑 써 댄 것과 다를 바 없는 행태다.
오늘날 환경 종말론은 일종의 세속 종교가 되어 버렸다고 셸런버거는 지적한다. 이 종교는 신도들에게 새로운 인생의 목적뿐 아니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영웅과 악당을 구분하는 기준까지 제공한다. 셸런버거는 우리가 사랑 없는 공포, 구원 없는 죄책감을 설파하며 문명과 인류를 증오하는 비인간적인 이 신흥 종교를 넘어 “인류의 번영과 환경 보호가 함께 달성”되는 “환경 휴머니즘”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후 변화, 삼림 파괴, 플라스틱 쓰레기, 멸종 등은 탐욕과 오만의 결과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 발전 과정의 부작용일 따름이다. 그리고 이 부작용은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
그리스도인들의 지성적 도전을 위해서도
다시 한번 일독을 권한다.
664쪽에 달하는 이 책은
탁월한 철학적 칼럼니스트로 잘 알려진
노정태 작가가 번역하였다.
목차
프롤로그 : 기후 변화의 진실을 찾아서
1_ 세계는 멸망하지 않는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 자연은 회복하고 인간은 적응한다 | 진짜 지옥은 이런 곳이다 | 수십억 명이 죽는다고? |
자연재해 피해 규모를 좌우하는 진정한 요인 | 기후 변화 대책보다 발전이 더 절실한 사람들 |
누가 위기를 부풀리는가 | 기후 종말은 없다
2_ 지구의 허파는 불타고 있지 않다
지구의 허파를 구하자 | “그 말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어요” | 환경 식민주의자의 모순된 눈물 |
하늘에서 내려다본 낭만과 가난한 땅의 현실 | 인류 발전의 밑거름이 된 불과 삼림 개간 | 그린피스와 파편화된 숲 |
“아마존 기부금 따위 도로 들고 가시오” | 환경 양치기를 넘어서
3_ 플라스틱 탓은 이제 그만하자
“정말 미안해, 거북아” | 플라스틱의 끈질긴 위협 | 말뿐인 재활용 | 그 많은 플라스틱은 다 어디로 갔을까 |
거북과 코끼리의 목숨을 구한 발명품 | 사람이 문제다 | 플라스틱은 진보다 | 자연을 지키려면 인공을 받아들여야 한다 |
어떤 이들은 쓰레기 문제보다 더 속상한 일이 훨씬 많다
4_ 여섯 번째 멸종은 취소되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 부풀려진 멸종 위기 | 숯이 야생 동물을 위협한다 |
누가 왜 댐 건설에 총부리를 겨누는가 | 환경 보호의 탈을 쓴 새로운 식민주의 | 원주민의 우선순위는 다르다 |
“야생 동물이 우리보다 더 소중해?” | 무장 집단이 날뛰는 무법천지 | 그들에게는 석유가 필요하다 | 발전을 위한 동력 갖추기
5_ 저임금 노동이 자연을 구한다
패션과의 전쟁 | 고향을 떠나 도시로 | 산업화와 농업 생산성 향상이 숲을 회복시킨다 | “위대한 탈출”이 가져다준 혜택 |
부는 힘이 세다 | 나무 연료 사용을 끝내야 한다 | 공장이 떠나면 숲이 위험해진다 |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만든 옷을 입자
6_ 석유가 고래를 춤추게 한다
고래의 위기와 그린피스의 등장 | 유전이 발견되고 고래는 목숨을 구했다 | 포경을 사양 산업으로 만든 기술 발전 |
에너지 전환은 어떻게 일어날까 | 〈가스랜드〉의 ‘불타는 물’ 사기극 | 프래킹의 기후정치학 | 야생 물고기 대 양식 물고기 |
계층과 정치에 좌우되는 에너지 전환
7_ 고기를 먹으면서 환경을 지키는 법
동물을 먹는다는 것 | 채식주의와 리바운드 효과 | 방목형 축산 대 공장식 축산 | 고지방 식단의 진실 |
동물의 죽음에 생명을 빚진 우리 | 무엇이 동물에게 가장 인도적인가 | 교조적 채식주의자들이 저지르는 오류 |
‘프렌치 패러독스’가 알려 주는 과학 | 가축 혁명과 야생 동물 고기 집착에서 벗어나기 | 선악을 넘어 공감으로
8_ 지구를 지키는 원자력
원자력 에너지 최후의 날 |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오해와 진실 | 원자력이 정말 더 위험할까 |
대단히 싸고 안전하고 효율 높은 에너지원 | 원전 폐쇄가 초래한 결과 | “원자력은 자연 보호의 희망이다” |
평화를 위한 원자력 | 원자력을 향한 전쟁 | 원전 반대로 치르는 값비싼 대가 | 원자력 발전은 비싸다? | 핵전쟁을 막는 핵무기
9_ 신재생 에너지가 자연을 파괴한다
태양광이 유일한 길이다? | 신뢰할 수 없는 신재생 에너지 | 신재생 에너지가 야생 동물을 죽인다 |
친환경 에너지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꿈 | 신재생 낭비 에너지 | 저밀도 에너지가 불러오는 생태 재앙 |
바람길은 새와 곤충의 것 | 자연산 선호 오류와 스타벅스 법칙
10_ 환경주의자와 친환경 사업의 겉과 속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의 돈줄 | 위선으로 일군 환경 운동 | 이해관계로 얽힌 환경 단체의 민낯 | 원자력을 프래킹하다 |
어느 주지사의 추악한 탈원전 전쟁 | 캘리포니아주의 뿌리 깊은 정경 유착 | 친환경은 인터넷보다 더 큰 사업 기회 |
유일하고 실질적인희망이 사라지게 놔둘 것인가
11_ 힘 있는 자들이 가장 좋은 해결책에 반대한다
가진 자들의 초호화판 환경 놀이 | 가난한 나라의 성장을 가로막는 환경주의자들 | 가난한 나라의 인프라 구축에 반대하는 선진국 |
맬서스, 처칠, 히틀러가 초래한 인류 역사의 비극 | 진보 좌파의 이념이 된 맬서스주의 |
구명보트의 윤리학: 일부는 죽게 내버려 둬야 한다 | 맬서스식 인구 폭발과 기아 만연은 틀렸다 |
인구 폭탄이 실패하자 기후 폭탄을 들고 나오다 | 세계 최고 극빈층을 상대로 한신재생 에너지 실험
12_ 왜 우리는 가짜 환경 신을 숭배하게 되었나
북극곰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 | 기후 정치가 과학을 위협한다 | 누가 로저 펠키 주니어를 모함했나? |
사이버네틱스와 생태학, 그리고 새로운 가짜 신의 탄생 | 환경주의는 어떻게 종교가 되었나 | 불안은 환경주의를 잠식한다 |
기후 종말론이 마음을 병들게 한다 | 환경 휴머니즘의 길 | 우리에게는 ‘그린 뉴클리어 딜’이 필요하다 |
모두를 위한 자연과 번영 이루기: 우리의 불멸 프로젝트 |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는 가장 간단명료한 이유
에필로그: 기후 소식은 생각보다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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