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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신앙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

'추미애 전 장관 아들, 휴가 미복귀 의혹' 2년여 만에 검찰 재수사 착수 '추미애 전 장관 아들, 휴가 미복귀 의혹' 2년여 만에 검찰 재수사 착수 동영상 캡처 결국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 대한민국에서 병역 문제는 자식 가진 부모에게 민감하고 폭발성이 대단히 큰 문제다. 또한 군복무에 관한 영역은 일개 장관이나 검찰 등이 해결사 노릇을 하던 낡은 시대도 이미 지나갔다. 요즘 세대가 얼마나 공정에 민감한 지를 알아야 한다. ​ 2년 전, 추미애 전 법무 장관 아들이 군 복무 중에 휴가를 갔다가 제 때 복귀하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추 장관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죽을 병도 아니고 전화로 휴가 연장이라니 말이 되나? 그것도 당사자가 아닌 남(보좌관 등)의 손으로? 아들은 철저히 숨고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추 장관이 맞서 대응했다는 것이 더욱 의아한.. 더보기
비시(Vichy) 프랑스와 유대인 그리고 빅토르 위고고등학교 비시(Vichy) 프랑스와 유대인 그리고 빅토르 위고고등학교 프랑스 페탱(Henri Pétain) 정권은 수도를 파리에서 남부의 휴양도시인 비시(Vichy)로 옮기고 신 헌법을 공표해 프랑스 자치 정권이자 친독의 독재 정권을 개시한다. 이렇게 프랑스는 나치가 점령한 북쪽 지역과 남쪽의 독재 정권으로 분열됐다. 프랑스 비시 정부의 시작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인 1940~1944년 남프랑스에 존속한 이 정부는 나치 독일의 협력국으로 국호는 전과 다름없이 프랑스였지만 해외 망명정부인 자유 프랑스 망명정부와 구분하기 위해 비시 프랑스라 불렀다. 페탱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표어였던 자유(Liberté), 평등(Égalité), 박애(Fraternité)를 '노동(Travail,), 가족(Famille), 조.. 더보기
로댕이 조각한 빅토르 위고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이 조각한 빅토르 위고 ©조은선 1889년 프랑스 정부는 로댕에게 1885년 작고한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를 기리기 위해 파리 팡테온 기념비를 만들도록 의뢰한다. 로댕은 한 팔을 쭉 뻗은 채 건지섬의 바위 사이에 앉아 있는 빅토르 위고를 보여주는 전신 조각상을 구상한다. 이 조각품의 영감은 1853년 위고의 아들이 찍은 잘 알려진 사진에서 비롯되었다. 더보기
슬픈 성모 카트린 드 메디시스(1519년 4월 13일 - 1589년 1월 5일)는 프랑스의 왕비이자 섭정을 한 사람이었다. 카트린은 유럽 명문가 출신의 아버지 우르비노 공 로렌초 2세 데 메디치와 부르봉가의 피가 흐르는 어머니 마들렌 드 라 투르 도베르뉴의 딸로 본명은 카테리나 마리아 로물라 디 로렌초 데 메디치(이탈리아어: Caterina Maria Romula di Lorenzo de' Medici) 간단하게 카테리나 데 메디치)였다. 그가 조각가 Germain Pilon 에게 부탁해 제작한 작품이 바로 대리석의 La Vierge de douleur(슬픈 성모)였다. 더보기
바스티유 광장Place de la Bastille의 야경 바스티유 광장의 밤 풍경 바스티유 광장 Place de la Bastille 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광장이다. 4구, 11구, 12구에 걸쳐 있으며 광장 주변 지역은 단순히 바스티유라 불린다. ©조은선 원래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곳이지만, 1789년 7월 14일에 프랑스 혁명의 발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이 발생하여 해체되었기 때문에 감옥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현재는 광장 중앙에 1830년에 일어난 7월 혁명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으며, 주변에는 바스티유 역이나 생마르탱 운하가 있다. 또한 예전에는 국철 바스티유 역도 있었지만 현재는 철거되었고, 부지에 오페라 바스티유라는 극장이 건설되었다. 더보기
파리의 중국식 건축물, 파고다 파리 Pagoda Paris 파리 한 가운데의 중국식 건축물 파고다 파리 Pagoda Paris PAGODA PARIS는 몽소 공원(Parc Monceau)에 인접한 파리의 유명한 8구에 위치해 있다. 원래 프랑스 루이 필립 스타일의 호텔 파티큘리에로 건축된 이 건물은 1925년 중국과 아시아 예술품 및 골동품의 유명한 수집가이자 딜러인 Mr. Ching Tsai Loo(1880-1957)가 구입했다. 저명한 건축가 Fernand Bloch(1864-1945)의 도움과 Mr. Loo의 세심한 감독과 지시에 따라 이 건물은 Pagoda로 탈바꿈했으며 Galerie C.T. Loo & Cie.는 중국과 아시아 예술품 및 골동품의 절묘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E. S. Cho 오늘날에도 파고다는 계속해서 파리에서 가장 매혹적인 건물.. 더보기
나폴레옹이 나온 프랑스 국립 군사학교 나폴레옹이 나온 프랑스 국립 군사학교 국립 군사학교 L'École Militaire는 1750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후 Louis XV가 Maurice de Saxe 원수의 제안과 Madame de Pompadour와 금융가 Joseph Paris Duverney의 지원을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이전 사관학교는 귀족 배경의 아이들에게만 제공되었다. 일반 사대부 출신의 사관학교를 목표로 하면서 왕실 사관학교가 가졌던 배타성은 사라졌다. 1751년 1월 칙령에 따라 루이 15세는 500명의 평범한 귀족 청년을 교육하기 위한 기관을 설립한다. 칙령의 제11조는 카드 놀이에 대해 "최초의 영구 기부" 방식으로 세금을 거두었다. Royal Military Academy에는 귀족의 증거로 학생들이 입학 한 B.. 더보기
‘흑색’ 김의겸… 상습적 선동음모론자들 제대로(?) 대접을 [조덕영 칼럼] MBC, 조국, 김의겸, 청담동 ‘첼로 채아’, 그리고 거짓말 ▲김의겸 의원 가짜 브리핑 관련 뉴스 화면. ⓒ채널A 문정동 법조타운 인근 탄천변은 필자의 산책길 가운데 하나다. 조용하던 이곳에 어느날 시끄러운 군중들이 등장했다. 조국 전 장관의 구속적부심 심사가 있던 날이었다. 소위 “내가 조국이다”는 무리들이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바닥에 앉는 아주 기이한 장면이 펼쳐졌다. 생각보다 행렬이 길지는 않았다. 더욱 낯선 장면은 이들이 한결같이 키 작고 진하게 화장한 중년 여성들이었다는 점이다. 길 건너에서는 민속악기가 동원된 구속 촉구 데모대들도 있었다. 거짓과 위선의 대명사 조국을 그렇게 바보 같이 두둔한 군중들의 실상을 보고 말았다. 조국지지 집회를 딱 봐도 “100..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