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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신앙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사회

비시(Vichy) 프랑스와 유대인 그리고 빅토르 위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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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Vichy) 프랑스와 유대인 그리고 빅토르 위고고등학교

프랑스 페탱(Henri Pétain) 정권은

수도를 파리에서 남부의 휴양도시인 비시(Vichy)로 옮기고

신 헌법을 공표해 프랑스 자치 정권이자 친독의 독재 정권을 개시한다.

이렇게 프랑스는

나치가 점령한 북쪽 지역과 남쪽의 독재 정권으로 분열됐다.

프랑스 비시 정부의 시작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인 1940~1944년

남프랑스에 존속한 이 정부는

나치 독일의 협력국으로 국호는 전과 다름없이 프랑스였지만

해외 망명정부인 자유 프랑스 망명정부와 구분하기 위해

비시 프랑스라 불렀다.

페탱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표어였던 자유(Liberté), 평등(Égalité), 박애(Fraternité)를

'노동(Travail,), 가족(Famille), 조국(Patrie)'으로 바꿨다.

이른바 극우 성향의 ‘국민 혁명(Révolution nationale)’으로 불린다.

독일의 나치 정권처럼 반유대주의적 인종차별주의 정책이 시행됐으며,

대기업들은 국가관리 체제로 흡수됐고,

동업조합을 탄생시켜 이를 국가가 통제하기 시작했고

사상과 언론의 통제도 행하였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11,000명이 넘는 프랑스 지역 유대 어린이들이 나치에 의해 추방되었고 그들은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해되었다.

이 아이들 중 500명 이상이 빅토르 위고 고등학교에 다녔다.

©조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