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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신약

빌라도 앞에 선 예수(요 18:28-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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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 앞에 선 예수(요 18:28-40절)

 

 

 18:28-40/자발적 고난의 길 :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

예수가 거니신 광야 풍경

 

. 들면서

1. 가끔 예수 믿는 사람들조차 버리지 못하는 미신이 있습니다. 바로 부정탄다는 말입니다.

2. 여기 유대인들도 바로 그렇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본문에 바로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내용이 나옵니다.

 

. 본문

1. 유대인 대표 지도자들의 무지: 유월절 축제의 주인공을 모르는 유대인

1) 유월절과 그 유월절 주인공에 대한 무지

(1) 유월절이 무엇인가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사람들의 장자는 심판하지 않고 살려주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2)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와 심판에서 막아주신다는 구약 계시의 모형입니다.

(3)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예수님이 바로 유월절 어린 양임을 전혀 몰랐습니다.

 

2) 예수를 대제사장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간 유대 지도자들

(1) 이른 아침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끌고 총독 관저로 갑니다.

(2) 예수께서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이지요.

(3) 하나님 모독죄는 율법에 따르면 당연히 사형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하지만 대제사장은 사형 집행 권한은 없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로마 총독에게 예수를 데려간 이유이지요. 예수를 대신 처형해 달라는 것이지요.

(4) 그런데 유대인들은 관정에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바로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면 일주일 동안 부정합니다. 그러면 유월절 축제 참여 가 불가능해집니다. 소위 우리말 "부정탄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지요. 유월절 주인이신 예수를 앞에 놓고 벌이는 이들 유대 지도자들의 무지한 행태를 보십시요.

(5)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살면서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는 바이러스를 핑계 삼아 교회와 교회의 예배를 멋대로 통제하고 함부로 대하는 무지한 권력자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참으로 신성모독의 참람한 일들이 자유민주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2. 이방인 대표 빌라도의 무지 : 예수 심문

1) 당시 총독 빌라도

(1) 빌라도는 총독 일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일에 충실한 자였지요.

(2) 총독에게 식민지 종교 문제는 늘 골치거리였습니다. 로마에서 파송된 총독들은 당시 잘 훈련 받은 대단히 노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종교 재판이 간단치 않은 실무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종교 재판을 회피한 이유입니다.

(3) 빌라도는 당신들 공회에서 재판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유대 지도자들은 자신들은 사람을 죽일 권리가 없음을 알립니다(31절).

(4) 정말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신 13 거짓 선지자나 하나님을 욕되게 한 자는 돌로 쳐죽일 권리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스데반 순교 참조).

(5) 예수님 만이 이 의미를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어떠한 죽음을 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3:14/8:28/12:32,34 참조).

(6) 예수님은 이 미련한 자들의 반역을 사용하여 저주 받은 우리 불쌍한 인간들을 구원하시려 하십니다.

2) 빌라도에게 찾아온 영적 도전 : 영적 삶에의 무관심!

(1) 빌라도는 영적 교훈을 듣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직접 듣는 기회는 최대 영광입니다.

(2) 발라도는 예수님에게 네 가지 질문을 합니다.

첫째,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33

둘째,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35

셋째, 네가 왕이 아니냐/37

넷째 진리가 무엇이냐/38

(3) 예수님은 네 가지 질문 중 앞의 세가지 질문에 답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게 아님(36절)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빌라도가 거듭 질문하니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을 위해 오신 왕은 맞다고 응답(37)하십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진리를 증거하러 오셨다습니다. 예수님은 네 번째 질문에는 답하지 않으십니다. 답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이었을까요?

(4) 아무튼 빌라도는 영적인 일에 무지하고 무관심하였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불행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시편 49:20은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5) 빌라도처럼 세상일에는 충실하나 하나님 음성 듣기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출세 지향, 물질 지향, 썩어질 것에 대한 집착하는 무리입니다. 바로 이들 대제사장/산헤드린 공회 회원/로마 병사/빌라도처럼 잘나가던 무리들입니다. 소위 출세한 무리들이지요. 배불리 먹던 살만한 무리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이 진지하게 말하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는 관심도 없을뿐더러 알 턱이 없습니다. 코로나 상황을 핑계로 교회를 무자비하게 다루는 중국이나 우리 정부 관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3. 무지한 한 인간을 살리시는 예수

1) 바라바 석방

(1) 유월절이 되면 총독은 죄수 하나를 석방하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2)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기에 "유대인의 왕" 예수를 풀어주고자 했습니다.

(3) 유대인들은 큰 소리로 예수가 아닌 바라바를 풀어달라 합니다.

(4) 예수님은 죽음의 순간 까지도 자기 몸을 바쳐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셔서 살리신 것입니다.

2) 세상에 대한 인간의 집착

사람은 끝까지 세상에 집착이 강합니다. 과거 안타까운 한 방송인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숨지기 전날까지 방송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참 대단한 정신력입니다. 하지만 그리 죽음 하루전날까지 세상에 충성하고 집착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람은 참 이상합니다. 그렇게 삶의 일에 집착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오히려 죽음 너머 영원한 세상을 준비해야 타당하지 않은가요? 죽음이 다가 온다면 죽음 다음을 준비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죽음 다음에 벌어질 일이 더 중요합니다. 죽음 다음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것을 준비하는 게 바른 마지막 모습입니다. 바로 여기에 답한 유일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3) 다르신 예수님

(1) 예수님은 정말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삶에 전혀 집착하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요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그 의미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중요하기는 하나 그보다 더더욱 귀한 미래를 내다보셨습니다. 다른 세상을 바라보셨습니다. 바로 영원한 세상입니다! 고통없고 질병없고 싸움없고 미움없고 시기없고 죽음없고 눈물없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즐거움과 기쁨을 뉠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실 진리요 사랑이신 하나님이 계신 그곳!

(2) 자발적 고난의 길:

그것이 바로 예수님 스스로 바보가 되어 자발적 고난의 길에 들어선 이유입니다! 사람들이 귀한 것을 놓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 세상에 대한 인간의 집착 증세:

예수를 믿어도 보이는 세상만을 전부로 여기고 집착합니다! 그런 집착으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 그곳이 잘 보이지를 않습니다. 머리로는 아나 가슴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예수 믿으면서도 더욱 세상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머리로만 예수를 알았던 가룟 유다! 그래서 가룟 유다처럼 결국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룟 유다 목사/가룟 유다 교인을 없을까요? 부지기수입니다.

 

. 본문이 주는 도전과 교훈

1.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다.

대제사장/군인/이방 총독 빌라도/바라바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군중은 예수님을 무시했어도 예수님은 이들을 무시하신 적이 없다. 늘 진지하셨다. 심지어 빌라도 앞에서 조차! 하지만 빌라도는 예수님을 무시하였다. 빈정대는 투로 취급하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진지하게 바른 말을 하셨다. 빌라도는 진리에 눈을 뜨고 예수님 말씀을 눈치 챘어야 한다. 유한한 피조물에 불과하면서도 오늘날도 예수와 교회를 조롱하고 무시하며 함부로 대하는 무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더욱 그런 행태를 목격하고 있다.

2. 우리들에게도 기회가 있다.

그 기회를 빌라도처럼 놓치는 사람들은 되지 말자. 어떤 이들은 예수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서도 그 은혜를 놓쳐버린다. 교회를 다녀도 그 길과 진리를 놓치는 사람은 없을까? 어떤 이는 세례 받고도 예수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본문은 여전히 여러분에게 묻고 있다. 지금 여러분은 누구인가? 빌라도? 유대지도자? 참 된 하나님의 자녀?

조덕영 목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평택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