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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신약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뜻- 예수 고별 기도문의 마지막 장면(요한복음17장 24-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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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뜻- 예수 고별 기도문의 마지막 장면(요한복음17장 24-26절)

 

 

요 17:24-26절/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뜻

 

 

가. 들면서

 

 

1. 예수님은 두 가지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1) 첫째, 성경의 예언대로 오셨습니다. 즉 성경의 주인공입니다.

 

2) 둘째,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1) "유대인의 왕", "유대인의 메시야"는 화려한 중심 도시 예루살렘이 아닌 변두리 베들레헴 말 구유에 오셨습니다.

 

(2) 왕이요 메시야가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위로와 소망을 불러일으킵니다.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자들의 위로가 되시는 것입니다.

 

(3)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는 낮은 자의 친구가 되어 죄와 악에 물들어 소망이 사라져버린 병든 이 땅에 평화와 기쁨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러 오셨습니다.

 

(4) 실제로 공생애 동안 어떤 인간도 행하지 않았던 기적과 이적과 신유를 통해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단순한 구주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전인적, 통전적으로 치유하셨습니다.

 

 

2. 본문은 예수님의 마지막 간절한 다락방 기도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17장 본문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첫째, 기도의 서론/기도의 목적(1-5절):

(1) 기도의 목적은 단순히 기복적인 것이 아니다.

(2) 예수의 기도 제목은 하나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3) 우리 기도가 대부분 우리 영광을 추구하는 것과 얼마나 다른가!

 

2) 둘째, 제자들을 위한 기도(6-19절):

(1) 예수 기도의 요지는 세상을 위함이 아니었다.

(2) 세상 중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그리스도께 주신 제자들이 주(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하는 일이었다.(6-19절)

 

3) 셋째, 교회를 위한 기도(20-26절)

 

 

나. 본문

 

 

1. 동행: 우리들을 예수님 계신 곳으로 예수님과 함께 데려가시려는 뜻

 

1) 간절한 부르짖음(24절):

아버지여!라는 구절에서 이 고별기도는 간절한 점에서 종말론적입니다.

2) 아버지를 아는 것: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를 알았습니다. 이제 그 아버지를 아들을 믿는 제자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아버지께서 보내심도 알게 되었습니다.

3) 사랑: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죽으면 그보다 더한 사랑이 없나니 예수님은 제자들을 친구라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친구가 되어 제자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하십니다.

4) 양자됨:

(1) 우리들도 가끔 친구의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릅니다. 친 아들 만큼은 아니더라도 아버지/어머니들은 친구의 절친한 친구들을 친아들처럼 여깁니다.

(2) 예수님처럼 독생자(친아들)는 아니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친구로 불러주심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친구보다 조금 더 가까운 양자가 되었습니다.

5) 예수 묵상:

(1) 예수를 아는 것과 예수를 알지 못하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성찬절이 다가오면 예수를 모르는 자들은 세상 즐거움과 쾌락에 들뜹니다. 하지만 예수의 친구들은 십자가와 낮은 말구유에 오신 예수를 묵상합니다. 세상은 예수를 모르나 교회는 예수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아는 게 아니라 힘써 알아야 합니다. 느긋하게 예수를 알거나 믿는 게 아니라 힘써 알고 힘써 믿어야 합니다.

(2) 신앙생활은 힘써 해야 합니다. 예수를 알고 성령 받으면 결국 시기가 문제이지 삶의 모든 것의 관점이 달라지고 삶의 패턴이 바뀌어 집니다. 오직 세상의 것들을 목적 하던 것에서 십자가와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것으로 바뀌어 집니다. 그게 지금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3) 가끔 한국교회가 세상 목적을 추구하거나 기도하는 듯하기에 하는 말이지요.

(4) 세상 목적이 아니라 예수를 힘써 알아 자신의 근본 변화와 함께 복음의 횃불이 번지도록 기도합시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심:

 

1) 예수님은 세상이 생기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예수를 사랑하심(=내게 주신 영광)을 보게 하심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주신 이 영광은 어떤 영광이었을까요?

2) 칼빈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새롭게 되고 하나님을 닮은 모습을 영광이라 합니다.

3) 쯔빙글리는 인간 누구도 가지지 못했던 예수님만이 이 땅에서 행하신 특이한 기적을 영광이라 했습니다.

4) 어거스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해 주신 천국, 영원함 즉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충실히 섬긴 자들에게 주시는 것을 영광이라 했습니다.

5) 영광이란 인간적 측면에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복 된 단어인 것이지요. "영광"이라는 이름의 교회나 사람 이름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지요.

 

3.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 일의 중요성

 

1)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은 하나님 그 자체를 아는 것입니다.

2) 세상은 아버지를 잘 모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아는 자 들 안에 계시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3) 어떻게 계신다는 의미일까요?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함께하실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를 통해 성령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4) 이제 예수님의 이 땅 사역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를 계속 거부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 밖에 몰랐습니다. 오직 갈릴리 촌뜨기들 몇 사람만 겨우 예수님을 알았을 뿐입니다. 그들은 세상사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외쳐도 세상은 예수 없이도 잘 먹고 잘살고 있습니다. 당신들이나 예수 믿고 잘 살아라 조롱합니다. 이게 바로 무지한 사람들의 인생입니다. 오죽하면 구 소련의 레닌은 종교(기독교)를 아편이라 했을까요?

5) 본문은 예수님께서 주님과 함께 사는 새로운 길이 있으므로 주눅 들지 말고 아버지를 따를 것을 주문하는 고별 기도문의 마지막 장면임을 기억합시다.

 

 

다. 본문의 도전과 교훈

 

1) 신앙의 진정한 목적과 복은 무엇인가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신앙의 복이 아니다. 예수 안 믿어도 잘 먹고 잘산다.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도 한다. 그럼 신앙이란 무엇일까? 신앙은 본질적 변화이다! 세상적 목적에서 영원한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인은 변해 가야한다! 예수를 믿고 예수를 알도록 변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루려는 것 즉, 하나님의 영광에 교회가 동참해야 한다. 이게 신앙생활이다!

 

 

2)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우리는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주님의 영광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졌다. 세상에 속하려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는 듯 보인다. 세상은 오히려 진노의 대상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쟁이들은 예수 안에서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자들이다.

 

3) 그리스도의 영광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므로 인류는 영원한 천국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분주히 땅만을 바라보며 살다 어느 날 문득 사그라져 가는 육신을 탄식하다가 죽음을 맞는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면서 달라졌다. 예수님은 인간 누구도 알려준 적 없는 하나님 계신 곳의 영광을 우리 말씀하셨다. 놀랍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그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은혜가 있었다!

 

4) 17장 기도의 요지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교회를 이 땅에 두심은 하나님 영광과 그 영광에 대한 동참을 위함이다. 17장은 대단히 심오한 기도이기에 해석도 심오하다. 요한복음 17장 예수님 기도를 늘 묵상 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주님을 알아가야 한다. 그래서 이 땅 베들레헴 구유에 찾아오신 성자 예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가야 한다.

조덕영 목사(창조신학연구소,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