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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신약

예수의 12 사도 부르심: 사도들 부르심에 담긴 교훈(눅 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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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2-19/예수의 12 사도 부르심: 사도들 부르심에 담긴 교훈

 

. 들면서

 

1. 예수님에 대한 대중의 상반된 반응

예수의 가르침과 권위와 능력과 치유에 대해서는 상반된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예수의 모든 사역에 대해 부정하고 반대하는 집단이 있는 반면,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 제자들을 사도로 부르심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대중들이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누어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사도들은 어떤 인물들이었을까요?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disciples)을 사도(apostles)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사도들 부르심에 담긴 특별한 메시지를 살펴봅시다.

 

. 본문(12-19)

 

1. 기도로 선발(12)

 

1) 예수의 기도

중요한 일 앞두고 예수님은 늘 기도를 하셨습니다. 본문에는 예수의 산 기도와 철야 기도 장면이 나옵니다.

2) 예수 기도의 두 가지 측면

첫째 예수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를 앞두고 기도하셨음을 보여줍니다.

둘째 예수의 기도는 우리와 조금 차원이 다른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셨습니다.

3) 대단히 개인적인 대중들의 기도

사람들은 대개 산기도·철야 기도를 해도 주로 개인 신상과 관련 된 문제로 기도합니다. 나 중심, 내 일상 문제 해결이 중심입니다. 필자도 자주 기도원을 다녔지만 교회 개척을 준비하며 기도원의 산 정상에 올라 새벽기도, 산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를 하던 기억이 납니다.

4) 예수님의 기도 제목

예수 기도의 제목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일군들 선발 문제였습니다. 예수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위해 한적한 곳으로 가 기도합니다. 제자들 중 이 사도 선발, 즉 복음 전파 사명을 맡게 될 일군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2. 사도들의 면면(13-16)

1) 예수는 지극히 평범한 제자 12명을 사도로 택하셨습니다.

(1) 그들 명단은 베드로라고도 하는 시몬, 시몬의 형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유다 그리고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였습니다.

(2) 사도들 직업이 별로였습니다.

갈릴리 어부가 4, 세무공무원(세리), 실직자, 장사군, 지하 혁명가 등 제자 중 유명 인사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었지요. 명문가 출신, 부유한 자, 귀족 출신,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 통치자, 장로는 거의 없었습니다.

 

2) 평범한 배경의 사도들

(1)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지요. 오히려 성격적인 결함투성이의 인물들이 많았었지요. 훗날 수제자가 된 베드로는 성급하고 실수가 잦았으며 변덕스럽기까지 해서 예수님을 부인한 적도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우뢰의 아들들이라는 별칭처럼 쉽게 흥분하고 화를 잘 내던 제자들이었습니다. 로마와 싸우기 위해 활동하던 열심당원이 있었고 의심 많던 도마도 있습니다.

(2) 성경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전 3:21)>고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3) 마음의 중심이 중요합니다. 인도 선교사 윌리엄 케리는 구두 수선공이었고 전도자 무디 선생은 구둣방 점원이었습니다. 이들을 보면 평범한 우리들도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3) 예수 왕국은 세상적 모습과 전혀 무관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사역은 세상 스펙과 능력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 4:6)으로 하는 것입니다.

 

 

3. 사도 12명 선발의 의미(ft. 구약 12지파 관련)

 

1) 유대인의 게마트리아에서 12는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2) 야곱 12지파는 구속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새 이스라엘을 세우고 계셨던 것입니다.

3) 잡히시던 날 밤 예수님은 너희도 내 나라에 있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참조:  22:30) 하셨습니다.

4) 이스라엘은 야곱이 기초였습니다. 하지만 새 이스라엘은 야곱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과 건축자가 버린 모퉁이 돌에 세워졌습니다( 2: 20)! 바로 교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안식일이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 부활의 주일을 지키게 된 것이지요.

 

 

4. 제자와 사도 구별

1) 제자

(1) 모든 그리스도인은 모두 주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제자 훈련이 한때 한국교회에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제자라는 말이 일종의 유행어, 자랑거리가 되어버렸던 것이지요.

(3) 사실 제자 되는 것은 쉽습니다. 즉 훈련이 제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면 바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즉 제자는 훈련으로 되는 게 아니라 일단 결단하면 됩니다. 물론 그 뒤에 훈련이 따르겠지요.

(4) 바울과 디모데는 모두 주 안에 형제요 제자입니다. 그러나 제자와 사도는 구별됩니다. 바울은 사도였고 디모데는 아닙니다. 골로새서 1:1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로 구별합니다.

 

2) 사도

(1) 제자 중 사도는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많았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가운데 12제자를 12 사도로 부르십니다.

(2) 주님께서 승천 후 성령 임하실 때에 교회의 터를 닦는 사람들이었지요.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들”( 2:20)이라 말합니다.

(3) 사도에 대해 마태와 마가는 오직 한번 사용했으며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여러 번 이 용어를 사용합니다.

(4) 제자가 결단하고 배우는 수동적 의미가 강하다면 사도는 좀 더 역동적 사역에 특화된 능동적 제자의 의미가 풍깁니다.

 

3) 제자와 사도 중 가짜도 있었습니다.

(1)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짝퉁이 있다는 것이지요. 목사도 넘어질 수 있음을 조심해야합니다. 알곡과 가라지, 양과 염소가 교회 안에는 섞여있습니다! 쭉정이, 들 포도, 염소가 아닌 지 늘 자신을 살펴야합니다.

(2) 기적의 목격자 가룟 유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을 친히 목격한 제자였습니다. 그는 지성인이요 특별한 성경 공부와 제자 훈련과 예수 설교를 모두 섭렵한 인물입니다. 제자에서 사도까지 된 인물이었지요. 그럼에도 왜 그는 추락한 인물이 되었을까요?

(3) 가룟 유다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

놀랍게도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요 사도였던 가룟 유다에게 너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거라는 폭탄선언을 합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말씀입니다.

(4) 신자에 대한 경고

특별 훈련 받은 제자요 사도인 가룟 유다가 배반했습니다! 예수를 따르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난리 친 변덕스런 대중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날 소위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이 진정 제자의 길을 가고 열매를 거두고 있는 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5. 치유가 임하다(17-19절)

1) 기독교는 말씀과 치유의 종교입니다.

2)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말씀을 전하려 평지에 서니 온 유대와 예루살렘과 바닷가 두로와 시돈에서 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 몰려들었습니다.

3) 예수님은 말씀(산상수훈)을 전하시기 전, 먼저 더러운 귀신들려 괴로움을 당하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큰 능력으로 모든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 본문의 도전과 교훈

 

1.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시련 가운데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생의 소망을 지닌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맙시다. 오히려 이때야말로 역동적으로 치유하시고 역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은혜를 전해야 하는 것이지요. 교회가 피동적으로 세속 정부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다.,

 

 

2. 평범함과 연약함 속에 있는 기독교의 치유와 신비

갈릴리는 가나안의 변두리였습니다. 오늘날 서울로 말하면 필자가 목회하던 신림, 난곡 같은 변방이었습니다. 예수는 갈릴리 나사렛 사람으로 오셔 치유와 기적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의 신비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잡히시던 날 밤 예수님은 너희도 내 나라에 있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참조:  22:30) 하셨습니다. 코로나19로 정말 그리스도인들도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 힘내세요! 기독교는 언제나 위기 속에서 놀라운 확장성을 가지고 고통 속 세상을 복 된 소식으로 바꾸는 역설적 진리임을 기억합시다.

조덕영 목사(창조신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