鄕愁(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던) 곳,
-그곳이 참하(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傳說(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치도(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아내)가
따가운 해ㅅ살(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줏던(줍던) 곳,
-그곳이 참하(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시 : 정지용
-<정지용 시전집>(문화생활사, 1987)에서
※ ( )안의 단어는 현대 맞춤법으로 바꾼 것이다(조덕영).
한국인이 사랑하는 "향수"의 시인
충북 옥천 출신의
정지용(鄭芝溶, 1902년 6월 20일 (음력 5월 15일?) ~ 1950년)은
휘문고보를 거쳐 교토대와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나와 휘문고보 교원(1929-45), 광복 후 이화여전 문과 교수와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거쳤다.
원래 방지거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 고문)로 순수 시인이었으나, 조선문학가 동맹 측과도 가까이 지냈다. 6.25 당시 납북되면서 남북 모두에서 생사 여부가 불분명하여, 전쟁 와중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 따라서 해금 되기 이전, 그의 이름이나 작품이나 저서는 오랫동안 금기어였다.
1970년 대 고향 친구와 청량리 중고서점에서 그의 시집을 발견하고는 너무나 반가워 친구가 구입을 원했으나 주인장께서 30만원을 불러 함께 단념하고 돌아서던 추억이 애틋하면서도 아련하고 여전히 새롭기만 하다.
조덕영(신학자, 작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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