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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신약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복음의 강력성(갈 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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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베드로의 모자이크©데살로니키 교회 전시물, 2019. 8

 

 2:11-21/오직 믿음으로 얻는 복음의 강력성

. 들면서

1. 베드로는 누구인가

1) 예수님의 수제자요

2) 바울보다 먼저 사도된 자(1:17)요

3) 할례 받은 유대인의 사도(2:8)였으며

4) 기둥 같은 지도자(2:9)였다.

2. 그런데 이 베드로를 사도 바울이 직접 책망한 사건이 일어난다!

1) 은혜롭게 지혜롭게 권면해도 되었을 텐데 면전에서 직접 책망한 대단히 심각한 사건이 었다!

2)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 대사도 베드로를 책망했을 만큼 <오직 믿음>의 이 복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본문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 본문

1. <오직 믿음>이 아니면 베드로도 책망 받았다(11-14)

1) 유대인들은 할례 없는 절대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지 않았다.

(1) 식사는 서로 터놓고 사귄다는 친밀한 교제를 의미한다.

(2) 다라서 영적으로 충실한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과 사귀지 않았다. 그것은 모세 율법 위반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3) 유월절 행사는 이스라엘 구원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4) 출애굽기 12장 48절에 보면 할례 받지 않은 자는 유월절 행사에서 추방할 정도였다.

2) 그런데 게바가 안디옥 교회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다.

(1) 안디옥 교회는 이방 땅에 있는 다양한 인종이 섞인 다국적 성도들의 교회였다.

(2) 그런데 베드로가 여기서 식사를 하다 야고보가 보낸 할례 받은 이들을 보고 민망하고 두려워 도망친다. 일관성이 없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3)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엉렁뚱땅 회피병이 도진 것일까?

(4) 남은 이들도 함께 이방인들과 식사하다 안 먹은 체 하며 밖으로 나갔고 심지어 바나바까지 분위기에 휩쓸려 시험을 받았다.

3)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1)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았으면 누구와 식사하든 무슨 문제가 있는가.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례 받은 유대인이 두려워 도망간 베드로의 처신은 신앙을 저버린 부끄러운 행동이었던 것이다!

(3) 다른 사람들의 신앙까지 시험들게 만든 아주 비겁한 행동이 아니던가!

2. 바울이 바로 이 문제에 대해 베드로를 책망하다.

1) 사도 베드로의 면전에서 가한 사도 바울의 아주 직접적이고 강력한 책망

(1) 베드로는 바울의 신앙의 선배요 바울의 후원자였다. 책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2) 그런데 권고도 아닌 책망이라니! 베드로 당신의 믿음이 과연 정말 신실하다 할 수 있는가! 어찌 예수의 수제자 당신이 예수를 핍박하던 나보다도 못하단 말인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그렇게도 부끄럽단 말인가! 말로만 율법에 구애 받지 않는다 하고 율법을 따르고 있지 않은가! 대 사도를 앞에 놓고 사람들이 보는 데서 대놓고 이런 책망을 가한 것이다. 이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2) 오늘날 세상교회들에 주는 경고

(1) 사실 오늘날 엉터리가 되어 버린 교회와 신자들이 많다!

(2) 혹시 누군가 다시 이런 큰 외침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은 아닌가?

(3) 우리나라 교회도 이단 사이비가 그득하게 된 지 오래다. 오히려 기성 교회가 이런 가짜들을 용납하고 있지는 않은가.

(4) 사도 바울이 있었으면 상하를 가리지 않고 강력하게 경고, 책망하지 않았을까?

(5) 복음을 왜곡하여 많은 사람들을 실족 시키는 교계 를 보았다면 다혈질의 사도 바울은 어떻게 외쳤을까?

 

2. <오직 믿음>이다!(15-16).

1)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복음은 이렇게 강력하다. 이것은 절대 깨지지 않는 진리이다. "의롭게 되다"는 "의롭다고 선포"하는 것이고 "의롭다고 여기는 것"이다. 내가 의로워 지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그렇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즉 자녀가 자신을 낳지 않고 부모가 낳는 것처럼 <오직 믿음>조차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그래서 늘 사람 마음 속에는 구원 받은 이후에도 옛 사람이 살아나려 꿈틀거린다. 그런 엉터리를 주님께서 법적으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유아들은 늘 미숙하고 실수투성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자기가 낳은 유아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고 기다리고 자녀를 양육하며 기다린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의 자녀들을 돌보시고 이끄시는 방식도 유사하다.

2) 이렇게 아무도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다.

율법으로 의롭게 될 육체는 전혀 없다. 따라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간 베드로의 미숙한 행동은 분명 잘못되었다.

 

3. 내가 믿는 다고 스스로 의로워 지는 게 아님(17-21)

1) 단지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해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칭의라 한다. 법적 용어를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법적으로 의롭다 인정하는 것이다! 죄 있는 자를 대통령이 죄 없다 사면하면 법적 책임이 면제 되는 데 바로 칭의란 이와 비슷한 용어이다. 즉 믿음 안에 살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는 것이 칭의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믿는 사람들에게 전가 시켜 주신다(17-21).

2) 그런데 율법에 대해 죽어야 하나님이 이렇게 살리신다.

율법으로는 할 수 없다고 고백해야한다. 그리고 율법에 대하여 죽어야 한다!

3)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 이제 사는 것은 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4)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즉 교회 안에는 두 부류의 그리스도인이 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사람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없으면서 마치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착각하여 그리스도를 내 삶에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다.

5) 만일 율법으로 의롭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다!

 

. 본문의 교훈

1) 공로주의에 대한 경계

여기서 오해 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으니 행함으로 상급을 받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이것은 공로주의다.! 성경은 공로주의가 아니다.

2) 분리될 수 없는 믿음과 행함

믿음과 행함은 분리될 수 없다. 믿음에는 반드시 순종이 동전 양면처럼 따라다닌다. 즉 의롭게 된 사람들은 반드시 순종에 따른 열매가 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으나 믿음과 선행은 결코 나뉘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성령은 열매를 거둔다. 따라서 세례 받고 주일 교회 다닌다고 구원 받는게 아니다. 그건 이단사이비들이 더 잘한다.

3) 성령의 증거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임을 사람이 증거하는 게 아니다. 사람은 참 된 증인이 될 수 없다. 예수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성령의 사람임을 성령이 증거한다. 그리고 그 증거는 열매(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로 나타날 것이다(갈 5:22-23)!

조덕영 목사(창조신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