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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신약

믿음이냐 율법이냐-율법은 오히려 저주이다(갈라디아 3장 6-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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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 3장 6-14/ 믿음이냐 율법이냐

. 들면서

1. 사람의 외모

사람이 겉으로는 얼마든지 성실하고 멋지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외모를 보신 적이 없다. 하나님은 늘 중심을 보신다.

2.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을 통해 복음을 설명한다. 유대인들은 모세와 아브라함 두 사람을 아주 중시하였다. 물론 모세는 당연히 중요한 인물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모세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중요한 의미를 알았다.

 

. 본문

1. 아브라함과 믿음(6-9)

1)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을 믿은 믿음

(1) 아브라함이 결코 능력과 외모 등 어디가 잘나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바로 아브라함의 이것 즉, 하나님을 믿은 믿음을 의로 여겼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고”( 15:6).

(2) 히브리서 11 아브라함을 믿음의 가장 중요한 용사로 지목하고 믿음의 어떤 다른 용사들보다 더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럼 아브라함은 자신의 후손인 예수를 어떻게 믿었는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 8:56).

(3) 아브라함이 이런 중요한 언약을 하나님과 맺고 그 믿음을 하나님이 의로 여기신 것은 할례 의식을 만들기 이전이다! 즉 할례가 믿음보다 앞서지 못한다. 할례 전부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나고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

 

2) 그러므로 누구든지 아브라함처럼 믿어야 한다.

(1)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을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면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 즉 아브라함과 같이 의롭다 여김을 받고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게 된다.

(2) 심지어 믿음 자체도 내가 잘 나서가 아니다. 우리 인간이 잘나서 믿는게 아니다. 그럼 무엇이었을까?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다. 성경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즉 모든 이방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약속하였다( 12:3). 반면에 율법을 지키는 것은 대단히 의로운 행위인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2. 율법은 오히려 저주이다(10-12)

1) 율법을 가지고 구원을 얻으려 하면 저주 아래 있는 자이다.

(1) 성경은 이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율법을 지켜 구원 얻은 자는 한 사람도 없다.

그럼 율법은 무엇인가? 율법 인간이 행위로는 구제불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법일 뿐이다!

(2) 즉 율법 스스로가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한다. 왜 그러할까? 단 하나의 계명을 어겨도 바로 저주 아래 놓이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그렇다. 창조주 하나님과의 단 하나의 계명을 어기자마자 바로 타락하여 저주와 심판의 길에 들어섰다!

(3) 신명기 27장 26절은 모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라 했다. 저주는 10-14절 사이 5번이나 강조된 단어다.! 율법에 놀아나다가 저주받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아무리 거룩한 척 해 보아야 안 된다. 그 기준이 바로 율법이다. 율법을 보면 곧 인간이 왜 구제불능인지를 알게 된다.

(4) 하박국 선지자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2:4) 한 말도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하박국은 하나님은 어찌 이스라엘 민족을 이방 갈대아 인을 몽둥이 삼아 우리 유대인들을 이렇게 치십니까?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5) 인간은 당연히 징계 받아야 한다. 인간은 스스로는 안 된다. 세상의 악함을 보라! 세상은 늘 악과 악의 충돌일 뿐이다! 세상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늘 혼돈과 혼란만 거듭되는 게 역사가 보여주는 인간의 서글픈 모습이다. 세상은 늘 살인/ 시기/미움 /다툼 /질투로 가득하다! 결국 인류에게는 죽음과 사망과 심판의 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6) 오직 믿음으로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즉 그분이 오셔야 한다, 오직 한분!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성령의 참 열매를 맺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한 분!

(7) 아 그렇구나! 하박국 선지자가 깨달음이 그것이다! 바벨론의 몽둥이가 문제가 아니구나! 이 세상 몽둥이가 문제가 아니다. 영원한 심판이 문제다! 오직 믿음이구나!

 

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다.

(1) 율법을 열심히 잘 지켜라가 아니다. 율법에는 율법을 하나라도 남김없이 다 지켜야만 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불가능하니 율법은 인간이 죄인임을 알리는 증거 표시이다.

(2) 믿음의 길과 율법의 길은 큰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럼 어떻게? 이 모든 율법을 단번에 박살내신 한 분! 얼마나 그 능력과 사랑이 크신지 율법의 저주를 물리치신 유일한 분! 13절을 보라!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어주 아래 았는 자라 하였음이라"

 

3.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축복(13-14)

1) 바로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신명기 21장23절은 나무 처형의 저주를 보여주는 율법이다. 십자가 사랑은 너무나 강력하여 모든 율법의 저주를 속량한다. 모든 율법의 저주와 죄는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셨다. 이 능력은 어찌나 큰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차별이 없다! 모든 인류를 포함하는 것이다.

2) 아브라함의 복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에게 미치게 된다. 그리스도가 없으면(구속 언약) 아브라함(은혜 언약)도 전혀 소용없다.

3) 성령은 율법을 잘 지키는 자에게 임하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을 받게 된다.

 

. 본문의 교훈과 도전

1. 율법의 죄/ 율법의 불가능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라!

그분이 아니면 소용없다. 율법을 이긴 참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진다.

참 성령 받으면 율법에 대해서는 능력이 생긴다! 열매를 맺어가기 시작한다. 가짜 성령 받은 사람들은 열매가 없다. 마귀가 열매 비슷한 것을 가지고 그런 사람들을 끝까지 속인다. 무성한 잎사귀와 꽃이 열매와 다를 게 없다고 우리를 속인다.

2.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열매의 중요성

꽃에는 인기와 화려함이 있다. 꽃이 화려하고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데 비해 열매는 양식이요 인격과 같다. 꽃이 사람이 인정하는 인기요 평판이라면 인격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기준을 말한다. 꽃과 같은 사람의 평판은 노력으로 되어 질 수 있다. 사람의 인기를 끌면 높아진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인격이란 존재 자체이다. 우리의 중심의 믿음이다. 성령님이다!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으나 하나님은 정확하게 보고 계신다! 세상 영광/ 세상 꽃은 잠시 잠간이나 열매는 창고에 들어간다. 열매는 꽃이 떨어진 후 열매가 시작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꽃보다 구리고 꽃보다 허무하고 꽃보다 음흉하고 반인격적일 뿐이다. 잎이 무성한 교회와 성도/ 꽃이 핀 교회와 성도/ 인기도 좋고 보기는 좋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열매를 요구하신다. 꽃은 마치 율법과 같다. 우리를 구원할 수없다. 하나님은 성령의 열매를 요구하신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같은 진정한 믿음에서 시작된다. 진정한 열매가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성공 신화나 바라보는 성령 비슷한 것을 받고 성령 받았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진정한 믿음 안의 자유함이 신앙의 생명이다.

조덕영 목사(창조신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