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9: 17-21절)
가. 들면서
1. 계시록을 강해하며 성경은 상징과 역설 계시로 가득 찬 책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습니다.
2. 성경이 무조건 읽으면 되는 책이 아니라 바르게 해석되어야 하는 책이라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3. 따라서 성경을 접하는 신앙을 가진 성도들조차 계시록 속에 반전(反轉)도 많고 때로는 기이할 정도로 충격적인 묘사들이 많음을 접하면서 심리적 혼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4. 오늘 본문도 바로 이 같은 장면 가운데 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5. 해석이 쉽지 않아 계시록을 잘 접하지 않는 성도들의 경우 계시록의 낯선 구절들을 대할 때 때론 당황하기도 하고 은밀하게 질문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어떤 의미의 충격적 계시가 기록되어 있는지 살펴봅시다.
나. 본문
1. 하나님의 큰 잔치의 충격적(?) 장면
1) 해(the sun) 안에 한 천사가 서 있는 충격적 장면
(1) 내재(內在)의 세상 속 생명체는 해 안(in the sun)에서는 절대 생명의 형태로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2) 따라서 한 천사가 해 안에 있다는 것은 초월적 계시의 장면임을 알려줍니다.
(3) 즉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로만 해석이 가능한 충격적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하늘을 나는 새들을 큰 소리로 잔치에 초청하는 충격적 장면
(1) 천사는 큰 소리로 하늘을 나는 새들을 초청합니다.
(2) 천사의 새 초청은 이 잔치가 단순한 인간 중심의 잔치가 아닌 차원이 다른 잔치임을 알려줍니다.
3) 천사가 새들에게 사람과 말들의 살(the flesh)을 먹으라고 명하는 충격적 장면
(1) 정말 충격적입니다. 천사는 새들에게 세상의 왕들과 장군들과 장사(mighty men)들과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과 자유인과 종과 높고 낮은 모든 사람들의 살(the flesh)을 먹으라 명합니다.
(2) 유대인들은 사람 시체가 새나 다른 동물들에게 훼손되는 것을 가장 큰 저주로 여겼습니다.
(3) 사악한 이스라엘 왕 아합의 사악하고 잔인한 아내 이세벨이 바로 그와 같은 저주를 받은 여자였습니다(왕상 21:23). 이세벨은 여호와의 많은 선지자들을 죽이는 데 앞장서고(왕상 18:4, 13)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이스라엘에 들여온 자였습니다.
(4) 교회를 폐쇄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처형한 북한의 김일성주체귀족무신론집단의 모습이 투영됩니다. 교회를 무참히 폐쇄하고 교회에 지도자 초상화를 거는 중국의 만행은 또한 어떻습니까?
(5) 먼지 한톨 만들지 못하고 수십만종의 바이러스 가운데 겨우 한종에 불과한 코로나 바이러스조차 제어하지 못해 3년째 방황하고 허둥대는 지구촌 인간 과학자들의 실력을 보십시오! 장수해도 겨우 100세 전후밖에 살지 못하는 티끌 만도 못한 인간, 누가 이 창조주 하나님의 우주적 잔치의 충격적 장면을 외면할 수 있을까요?
2. 최후 결전의 충격적 장면
1) 백마 탄 분과 그의 군대와 싸우려는 세력들의 최후 결전
(1) 인간은 역사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계시하시고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질긴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습니다.
(2) 본문은 백마 탄 분과 그의 군대와 싸우려는 미련하고 완악한 세력 사이의 최후 결전을 보여줍니다.
2) 짐승과 그를 따르던 거짓 선지자의 최후의 충격적 장면
(1) 이 싸움은 너무나 허망합니다. 백마 탄 분과 그의 군대가 어떤 물리적 힘을 쓴 흔적이 없습니다.
(2) 짐승과 그를 따르던 거짓 선지자는 함께 잡혀 산 채로 유황이 타는 불 못에 던져졌다는 결과만 기술되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전쟁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승패가 이미 예정된 심판주로서의 하나님의 최종 섭리임을 보여줍니다.
(3) 하나님을 대적한 거짓선지자의 정체는 짐승을 대신해서 기적을 행하여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던 사람들을 유혹하던 자였습니다.
3) 남은 자들이 백마 탄 분의 입에서 나오는 칼로 죽은 충격적 장면
(1) 남은 자들은 백마 탄 분의 입에서 나오는 칼로 죽었습니다.
(2) 입에서 나오는 칼(검)은 15절의 반복으로 이 심판은 실제적인 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한 심판임을 시사합니다.
4) 모든 새들이 사람 시체로 배를 채우는 충격적 장면
(1) 시체가 매장되지 않는 것을 사람은 가장 수치스럽게 여깁니다. 부관참시라는 흉칙한 말도 여기서 비롯된 말이지요.
(2) 요한은 사람이 가장 수치스러워 하는 그 모티브를 하나님 대적자들의 시체가 새의 먹이가 되었다는 비유로 심판의 엄숙함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흙으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북한 주민들 먹을 곡식 값을 대신하여 푸르둥둥 값비싼 방부제를 뒤집어쓰고 옛 예배당 터에 안치되어 있는 독재자의 시신이 기억나는 오늘 본문입니다.
(4) 즉 본문은 겨우 한줌 흙에 불과한 존재로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던 모든 자들의 말로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충격적 본문이라 하겠습니다.
"사람"이 먼저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조덕영 목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Th.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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