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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도서 소개

〈한국교회를 빛낸 칼빈주의자들〉, 제1세 칼빈주의자 59명이 남긴 아름다운 신앙 유산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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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이들에 큰 빚지고 있다” 〈한국교회를 빛낸 칼빈주의자들〉

 

 

〈한국교회를 빛낸 칼빈주의자들〉

“한국교회, 이들에 큰 빚지고 있다”

 

제1세 칼빈주의자 59명이 남긴 아름다운 신앙 유산 소개

 

“정암이 설교를 담당한 날은 강대상에 서서 준비해 온 설교원고를 언제나 양복 안주머니에서 꺼내어 강대에 놓고 설교하였다. 처음에는 한 두 번 그러겠거니 했으나, 정암의 그러한 모습은 끝까지 변함이 없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통해 그의 후학들은 주석을 완간할 정도로 성경에 대한 해박한 실력을 갖춘 석학인 정암도 설교할 때는 항상 새롭게 설교 준비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승구 교수, ‘정암 박윤선 박사의 생애와 신학’)

한국교회 제1세대 칼빈주의자들의 생애와 신학을 집대성한 <한국교회를 빛낸 칼빈주의자들>(안명준 편집, 킹덤북스)의 일부분이다. 박윤선 목사에 대해서 쓴 이승구 교수(합동신대원)는 그의 성실함을 강조했다. 또 그가 교회와 사회정치에도 관심을 가졌음을 알려줬다. 박윤선 목사는 “칼빈주의는 신령한 천국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현실과 사회 정치면에서도 찾아드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장로교회의 정신을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당회장’, ‘노회장’, ‘총회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했고, 회의할 때만 ‘당회 의장’, ‘노회 의장’, ‘총회 의장’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 <한국교회를 빛낸 칼빈주의자들>에는 박윤선 목사 외에 칼빈주의신학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했던 국내의 조직신학, 성경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자들과 목회자 등 59명을 소개했다.

김홍만 교수(사우스웨스턴리폼드신대원)는 ‘매선 김양선 박사의 생애와 사상’에서 김양선 목사를 균형 잡힌 역사관을 가지고 한국교회사를 해석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김양선 목사는 한국교회 교파의 분립은 신학적 차이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1930년 대부터 자유주의 신학이 확산되면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의 충돌은 불가피했고 이로써 교파가 분립되었다고 해석했다. 또 김 목사가 한국에서의 선교가 성공한 이유를 교회설립, 성경공부, 지도자 양성 등 9가지로 분석하고, 1960년대 이후는 기독교 대학 설립과 청년학생운동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내다본 것은 탁견이었다.

평안북도 태생이었던 김 목사는 사료 수집에도 힘썼는데 남한에 내려와 사역하는 중 북한에 자신이 모아두었던 유물들을 틈틈이 반출하려고 노력했다. 이 일을 위해 사모 한필려 여사와 막내딸이 이북에 들어가 유물을 가지고 내려오다가 해주 앞바다에서 인민군에게 발각, 소중한 생명을 잃었던 가슴 아픈 사건도 겪었다.

‘조동진 박사의 생애와 신학’(김현진 평택대 교수 저)을 보면 소위 2, 3세계가 세계선교의 주역이 될 것을 미리 내다보고 대비한 선각자적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시아인들은 피선교지 사람들일 뿐 감히 세계선교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때 조 박사는 1973년 비서구세계 최초의 선교사 훈련과 연구기관인 ‘동서선교연구개발원’을 세웠다. 이곳에서 수많은 선교사와 선교지도자들이 양성됐으며 이들이 예장합동 교단 ‘총회세계선교회(GMS)’ 탄생의 주축이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박용규 교수(총신신대원)가 쓴 ‘소양 주기철 목사의 생애와 신앙’에는 주기철 목사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면모가 드러나 있다. 주기철 목사가 평양신학교를 다닐 때 기숙사는 지방 출신별로 방 배치가 구별되어 있었다. 주 목사는 지방 출신에 따른 방 배정이 학교의 화합과 일치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이를 철폐해 줄 것을 학교 측에 건의했다. 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무자비한 고문과 옥고를 견딘 철인과 같은 존재였지만 면회 온 사모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한 말이 “여보 나 숭늉 한 그릇 먹고 싶소”였을 정도로 평범한 인간이기도 했다.

박형룡 목사에 대해서는 김길성 교수(총신신대원 명예)가 소개했다. 박형룡 목사가 결코 서구신학을 소개하는데 그친 소위 지로적(指路的) 신학자에 머물지 않고 분명한 자신의 신학적 견해를 갖고 있었음을 알려줬다. 종말론에 대해서는 천년기적 재림론을 취하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목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견해만이 절대적이라고 고집하지 않았다. 무천년기 재림론과 천년기후 재림론에 대해서도 관용적이었으며, 과학적 연구와 발견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책의 편집자 안명준 교수(평택대)는 “이 책은 한국의 신학자들이 5년에 걸쳐 한국에서 칼빈의 정신을 가진 학자들과 목회자들을 선별하여 연구한 작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