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호 괴테의 초상화(Städel museum)
-이탈리아 여행 중의 괴테 초상화-Johann Heinrich Wilhelm Tischbein, 1787년 작품, 《캄파냐 로마나에 있는 괴테》(독일 Städel museum)
괴테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신앙은?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잘 알려진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요 과학자였으며 바이마르 대공국에서 재상직을 지낸 정치가이기도 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한국 굴지의 재벌 <롯데>가 그 명칭을 괴테의 작품 속 인물에서 가져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루터교 가정에서 태어나 목사의 딸과 교제한 적도 있었지만 괴테는 정통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다.
리스본 지진(1755)과 7년 전쟁(1756-1763)은 그에게 신앙의 회의를 불러일으킨 계기가 된다.
1782년, 괴테는 "난 반 기독교인이나 말뿐인 기독교인(un-christian)이 아니라 비 기독교인(non-christian)이다."라고 했다. 즉 19세기 비평가들이 생각한 것처럼 괴테는 완전한 이교도도 아니었다. 그의 생각은 철학적 연작시 〈신과 세계 Gott und Welt〉에 잘 나타나 있다.
세계를 창조한 후 신은 더 이상 세계운행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이신론적(理神論的, Deistic) 개념을 거부하였고 스피노자의 범신론(汎神論)에 공감을 가지기도 했다. 만유 속 신의 내재를 나타내는 만유(내)재신론(萬有在神論, Panentheism)이 괴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작가로, 철학자로, 과학자 등 다재다능한 재능 속에 많은 것을 누리며 산 괴테는 신앙도 그 다재다능 속의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은" 내세의 영역이 아닌 현존하는 삶의 다양한 영역 가운데 하나였다.
결국 신앙의 유무를 떠나 그의 언어가 성서에 뿌리를 둔 기독교 전통의 계승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칼라일은 R.W. 에머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명랑하게 보이는 고상한 괴테가 자신의 내부에는 단테처럼 예언자적인 깊은 슬픔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T.S. 엘리어트는 괴테가 “시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인”이라고 했다. 괴테를 바르게 평가한다는 것은 지금도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조덕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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