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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칼빈의생애와 사상(John Calvin, 1509~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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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상가로서의 칼빈(기독교사상가 탐색, 조덕영) 

 

요한 칼빈의

생애와 사상(John Calvin, 1509~1564)

기독교 사상가 탐색 후반부 강좌

인간에게는 신을

의식할 수 있는 본능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 속에 신적 위엄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는 마음을

심어놓으셨다.

"나는 나의 마음을 오로지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칼빈에 대한 간략 연보(일반적 추정임)

1) 1509년 7월 10일, 파리 동북쪽 노와용(Noyon)에서 출생

아버지 제라드는 공장직공과 벳사람에서 노력으로 시 등기관리인과 주교관 행정직 그리고 대성당 소송대리인(일종의 오늘날 변호사 역할)까지 한 사람

칼빈은 12세 때 교직자가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 뜻에 따라 교회 신부 보조하는 목사보에 임명

1520 혹은 1521, 마르슈대학 입학

여기서 훗날 개혁신앙의 동지 파렐 만남

1521~1522,

몽태규 대학(에라스무스, 로욜라)에서 신부가 되기 위한 성경과 스콜라 신학을 배움

2) 1523~27 혹은 1528년 파리 대학

1525 혹은 1526, 석사학위 취득

3) 1527 혹은 1528~29, 오를레앙 대학

아버지의 뜻대로 신학에서 법학으로 전공을 바꾼 시기

4) 1529~31, 부르줴대학

5) 1531~33, 파리와 오를레앙 대학에서

처녀작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관용론> 주석

칼빈이 회심한 시기

6) 1533~34, 파리와 앙굴렘과 노용에서

7) 1534, 스트라스버그를 거쳐 바젤로 향함

8) 1536, 라틴어로 된 기독교 강요 제 1판(만 26세)

9) 1536년 파렐의 권유로 제네바로 가다

10) 1564년 사망

파렐, 칼빈, 베자, 녹스

※칼빈의 신학 구조 요약(이양호 교수 저, 요약:조덕영)

Ⅰ. 칼빈 신학의 중심은 무엇인가

1. 20세기 초까지 칼빈 연구가들은 칼빈 신학의 통일적 원리들을 하나님의 예정으로 보았다. 그 중심에는 트뢸치(Ernst Troeltsch) 가 있다. 트뢸치는 칼빈을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 하나님의 영광을 강조한 하나님 중심 신학자로 보았다.

2. 니젤(W. Niesel)은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하였다.

3. 벤자민 위필드(B. B. Warfield)는 칼빈을 무엇보다 성령 신학자로 보았다.

성령의 역사에 대한 교리는 칼빈이 교회에 준 선물이라고 보았다.

4. 그러나 칼빈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이 주제로 보여진다

5. 지금까지 신학자들은 칼빈의 한면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으로 보여진다.

6. 밀러(Benjamin Charles Kilner, Jr.)는 성령과 말씀을 강조한다.

7. 파티(Charles Partee)는 칼빈의 중심 교리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주장한다.

Ⅱ. 칼빈의 기독교 강요 분석

1) 칼빈 연구가들은 기독교 강요를 분석함으로써 칼빈 신학의 구조를 찾아내려고 하였다.

2) 1868년 쾨스틀린(J. Kostlin)은 기독교 강요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고 주장했으며, 금세기와서 다우위(Edward A. Dowey)는 그의 저작 <칼빈 신학에 있어서 하나님지식>에서 쾨스틀리의 주장을 더욱 발전 시켰다.

3) 1559년 <기독교 강요> 라틴어 최종판은 duplex cognitio domini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4) 파커(T. L. Parker)는 다우위의 주장을 반박한다.

5) 방델(F. Wendel)도 기독교 강요 최종판이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본다.

6) 갬블은 칼빈 연구가 duplex cognitio domini이 그의 신학의 하나의 지배적 원리이거나 유일한 지배적 원리로 간주되어야 한다는데 점진적 일치를 보아왔다고 본다.

7) 반면에 파커는 기독교 강요가 사도신조의 네 부분에 따라 네 권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고있다.

8) 그러나 파커도 그의 칼빈의 하나님 지식론에서 제 1부 창조주에 대한 지식 제2부 구속주에 대한 지식 등 두 부분으로 나누어 논술하고 있다.

9) 밀러는 교회는 칼빈 신학의 중심이라고 본다.

10) 윌리스는 duplex cognitio domini가 “창조주와 그리스도”가 아니라 “창조주와 구속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11) 칼빈에게서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포함된다.

12) 파티는 칼빈의 중심 교리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자신의 주장에 근거하여 기독교 강요를 분석한다.

Ⅲ.

1) 칼빈에게는 하나님의 창조에 보존이 포함된다. 즉 하나님은 지금도 창조활동을 하는 동시에 구원 활동을 하신다.

2) 바우케(H. Bauke)는 1922년 칼빈 신학의 문제들에서 칼빈 사상의 특징이 변증법적 합리주의로서 그의 성서주의에 입각하여 반대되는 것들을 결합시켜 놓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칼빈을 체계론자라기보다 변증론자 기껏해야 변증법적 체계론자라고 주장했다.

3) 엔더슨은 칼빈 사상을 “다양한 원리들의 변증법적 결합”이라고 보는 견해를 주장하는 반면 가녹지는 칼빈 신학의 내용과 방법론을 변증법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4) 칼빈의 사고 구조가 타원형인가 아니면 하나의 중심점을 가지는 정원형인가 변증법적인가 아니면 연역법적인가 이 논쟁은 바우케 지적한대로 독일적인 칼빈 연구가와 프랑스나 다른 민족 사이의 사고 구조상 차이일지 모른다.

독일적 사고 구조에서는 통일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칼빈을 통일적인 사상가로 보려한 반면 비독일적 사고 구조에서는 역설적인 삶의 현실을 인정하고 변증법적 관점에서 대상을 보려하기 때문이다.

5) 이 문제의 해답을 위해서는 엑스트라 칼비니스티쿰(extra Calvinisticum)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성자는-화육 후에도-인간 본성과 연합하여 한 인격을 이루었으나 육체에 제한 되지 않았다는 교리이다.

6) 니젤은 칼빈 신학에 있어 엑스트라 칼비니스티쿰을 과소평가하지만 오베르만은 이것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고 본다.

7) 엑스트라 칼비니스티쿰이 반영된 칼빈의 사고 구조는 일종의 동심원적이다.

8) 한편 암스트롱은 칼빈의 신학 구조가 가설적이라고 주장한다.

암스트롱은 칼빈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라는 두 세계 속에서 친근하게 살았다고 주장한다.

9) 엥겔은 전망주의적 관점에서 칼빈의 인간론을 다루었다.

10) 부스마는 그의 저서 <칼빈>에서 칼빈 안에는 두개의 칼빈이 있다고 주장했다.

제네바 칼빈이 설교하던 강대상(스위스 생피에르교회 내)

Ⅳ. 칼빈 신학이 중심 요약

1) 칼빈 신학의 중심 주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이며 이 둘은 <주변적인 것과 중심적인 것의 관계>에 있다.

2) 이렇게 칼빈은 늘 주변적인 것과 중심적인 것을 구별한다.

3) 예를 들면 칼빈은 자연 계시를 인정하나 이것은 중심적인 것이 아니요 주변적인 것이다.

4) 성서와 칼빈

칼빈은 성서의 교리에는 오류가 없으나 문자적 오류는 있다고 보았다. 즉 칼빈은 중요하지 않은 오류는 있다고 보았다(보기: 마 27:9 주석(토기장이의 밭 값<피값> 은 삼십 => 예레미야는 스가랴의 오류로 봄).

5) 믿음에 대한 칼빈의 입장

칼빈은 신앙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인간의 일도 부정하지는 않았다.

6) 칼빈의 교회론

칼빈의 교회론에서 예정된 신자는 중심부에 있으며 그렇지 않은 자는 주변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7) 칼빈의 성례론

칼빈은 성례의 실체와 표시를 동일시한 카톨릭도 비판하고 성례의 실체와 표시를 분리시킨 급진주의자들도 비판하면서 성례의 실체와 표시를 중심과 주변, 내용과 그릇의 관계로 이해하였다.

8) 칼빈의 정치 사상

(1) 칼빈의 동심원적 사고 구조는 그의 정치 사상에 영향을 미쳐 귀족정과 민주정의 혼합정이라는 사상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오늘날의 말로 표현하면 대의민주주의이다.

(2) 민중들이 민중들 가운데 최선의 사람을 선택하여 그들이 상호 견제하면서 정치를 하게 하는 이 혼합정은 제네바의 정치 제도였다. 동시에 이것은 칼빈주의자들을 통해 전유럽으로 파급되었다.

(3) 하지만 칼빈의 동심원적 구조를 파악하지 못해서 칼빈이 근대 민주주의에 적이라는 주장(세네비에르)과 근대 민주주의의 주창자라는 주장(맥니일, 허드슨)이 맞서게 되었다.

9) 칼빈의 경제 사상

(1) 칼빈의 동심원적 구조는 경제사상에도 나타나 부자도 가난한 자도 없는 복지사회를 지향하게 되었다.

(2) 칼빈의 사고 구조를 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막스 베버의 논쟁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논쟁되어 왔다. 칼빈을 자본주의의 창시자로 보거나 기독교 사회주의의 주창자로보는 양극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3) 그러나 칼빈은 복음적 사랑의 행위를 중심에 두었으나 인간에 타락 때문에 사유재산 제도를 두었다고 봄으로써 자본주의적 요소를 주변적인 것으로 인정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강요 제 1권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통치자이신 하나님> 요약

Ⅰ. 하나님과 계시에 대한 지식

1)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참되고 확실한 지혜로 일컬어질만한 우리들의 지식의 전체는 두 가지 부분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인간 자신에 대한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시작한다.

칼빈은 저서의 도입부에서부터 개혁주의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인 절대적인 하나님의 초월성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분은 전적으로 타자라는 것을 전제로 신학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2)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실체를 알 수 없으며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묻는 것은 헛된 일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실체는 알 수 없는 것이므로 그 주권은 우리의 감각을 초월한 곳에 멀리 떨어져있고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을 깨닫는 특권은 하나님께 위임하라.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분은 자신에 대해 스스로 알 수 있는 자 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속한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3) 그러나 인간이 이러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성경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 한,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교리에 대해 극소량도 맛볼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실체에 대해 깨닫지 못할 것이다.”

사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고 깨달을 수있는가를 제시하고 있다.

4) 그러나 성경 자체만으로는 안 된다.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신비는 오직 그것을 주신 사람들만 깨달아 알 수 있다.”

5) 그러면 진정으로 성경 속에서 무엇을 추구해야하는가?

“초보자를 가르치고자 하는데 하나님에 대한 선한 감격에 의해서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참된 경건 가운데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깨우치게 하려는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과 예언의 완성이시며 복음의 본질이 되시는 한 우리에게는 주를 깨닫는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목적도 있을 수 없다.

옛 성도들은 마치 거울을 보듯이 독생자를 희미하게 보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성경 연구의 모든 목적은 그리스도께 집중 되어야 한다. 성경 전체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6) 이단자들이 아무리 자기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고 고백할지라도 칼빈에게 있어 그들은 단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자신의 이해 범위 내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한정시키려는 사람들과 자신의 감각으로 파악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상들로부터 하나님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할 수 없다.

7) 성경의 권위에 대한 복종에는 어떤 정당한 근거가 있는가?

그것은 성령의 중재가 있기 때문이다. 칼빈은 성령의 역사란 성경의 진실성과 신빙성을 모든 성도의 영혼에 심어주는 성령의 증거임을 규정하였다.

“비록 하나님 한분 스스로가 그의 말씀 안에서 증거하시면 충족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 말씀이 성령의 내적 증거로 인해서 인을 치지 않는다면 사람의 마음 속에 신뢰감을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선지자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 성령께서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오심이 틀림없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하늘로부터 전해진 게명을 우리가 이해하도록 가슴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8) 칼빈에 의하면 성령의 내적 증거는 성경의 권위를 세워주는 최상의 기준이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심에 대해서 성령의 확증을 통해 주신다고 점점 더 강력한 주장을 폈다. 사도들은 성령의 공증에 따른 대리인이었다. 따라서 성경은 믿을만한 것이다. 신구약 성경은 칼빈에게 있어 동등한 권리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9) 이런 주장을근거로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칼빈은 성경의 축자영감 교리를 주장한 창시자로 생각한다. 최소한 이 교리를 강력하게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사실상 칼빈은 축자영감을 주장한 사람이 아니다. 성경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성경 속의 말씀은 그 무엇을 반영하는 거울이며 그 자체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성경 그 자체는 “주께서 신실한 성도에게 성령의 조명을 분배하시는 수단”이며 그것은 하나님과 동일시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10) 자연 계시에 대한 칼빈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자연 속에 특히 인간의 본성 속에서 계시하신다.

둘째로 만물의 자연적인 발전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셋째로 인류의 역사 속에서 계시하신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획득한 지식은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 나아가 인간은 획득된 지식을 선용할 수도 없다.

11)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관한한 자연은 칼빈에게 있어 늘 부정적이다.

즉 그것은 늘 사람에게 하나님 앞에서 변명을 늘어놓게하는 수단일 뿐이다. 즉 범죄를 합법화 시킨다. 만일 타락이 없었다면 자연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유효한 지식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 이후에도 창조물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나타내심은 분명하다. 우리는 그것을 깨달을 수 없게되고 말았다. 우주는 경건을 가르치는 학교이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세주로서, 그리고 우리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믿음과 결합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된다.

12) 칼빈은 타락한 인간이 철학 등 긍정적 지식을 통해 소수의 특권자들은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견해를 철저히 배격하였다.

“철학자들의 저서 속에 하나님의 존재를 말하는 문장들이 이곳 저곳 아주 훌륭하게 기록 되어 있음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관성 없는 외관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의미를 약간 알게 해주었다.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은 아니다.”

철학자들이란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지성을 부여받은 것을 사실이나 그것은 오히려 그들이 종국에 가서 변명의 여지가 없음을 드러낼 정도의 지식에 불과하다.

13) 타락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의지를 타락에 빠뜨렸으며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지식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하고 말았다.

14) 우리는 오직 성령의 영감 아래서 성경을 읽을 때, 그 성경을 통해서만 중보자 그리스도를 깨닫게 된다.

자연적인 계시를 우리로부터 감추고 있던 장막이 벗겨지고 거듭난 인간은 타락 이전의 인간이 보았던 것처럼, 이제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자취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Ⅱ.삼위일체

1) 칼빈은 “하나님께서는 각기 독특한 세 인격으로 우리 마음 속에 나타내심으로 스스로를 게시하신다”고 말한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초판에서 이 문제를 불충분하게 설명해서 카롤리로부터 아리우스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이 삼위일체교리를 옹호했음은 분명하다. 칼빈은 루터의 전통적 삼위일체론의 용어를 옹호하고 있다.

2) 칼빈은 1536년 초판에서 에베소서 4장 5절에 따라 하나님의 유일성을 지지하기 위해 세례와 믿음의 일치를 첨가하였고 동시에 거룩한 삼위일체의 삼위의 이름으로 행하는 세례의 의무를 강조하였고, 나아가 이 세 인격들이 바로 믿음의 대상임을 주장하였다.

3) 1559년 칼빈은 독생자의 신성이이야말로 신앙의 필수적인 기초라는 이론을 폈다. 세 인격의 신성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이요, 동시에 기독교 씬학 뿐 아니라, 모든 구원에 이르는 신앙의 근본 원리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마치 루터가 반 율법주의자들에 대해 그렇게 격렬하게 반발하였던 것처럼 칼빈도 역시 루터처럼 그리스도 중심신앙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이나 혹은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이 지닌 가치를 침해하고 훼손하는 어떤 경우라도 묵과할 수 없었다.

4) 그러나 칼빈에게 있어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본질의 통일성은 삼위일체 삼위 사이에 이루어지는 진정한 구분을 조금도 손상시켜서는 절대로 안된다. 분리가 아니라 구별이 있다는 것을 반드시 직시해야 한다.

5) 칼빈은 하나의 본질이라는 통일성과 동시에 삼위 간의 개별성으로 규정되어야 할 최소한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 전통적으로 내세워진 많은 논쟁들은 자신의 의도에 맞게 사용하였다.

그는 성 어거스틴을 철저히 따르면서 그리스 교부들의 저서를 염두에 두었다. 비록 독창성을 결여되었으나 삼위일체 교리는 칼빈 신학의 기본적 핵심이다. 그것은 특히 칼빈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신성에 역점을 두는 것을 가능케하였다.

Ⅲ. 창조

1) 우리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먼저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비록 인간의 파멸과 타락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을 위하여 오시기까지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은 아버지시며, 구원자시며, 속죄자이심을 결코 깨닫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창조주이시므로 그의 힘으로 우리를 지속시키시고 그의 섭리를 우리를 다스리시고 관대하심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보존하시며 우리에게 모든 종류의 은혜를 끊임없이 주신다는 것은 이미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것에 직면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은혜를 얻을 수 있도록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실이다.”

2) 칼빈은 우주와 인간이 완전한 삼위일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단언하였다.

그 하나님께서 무로부터 이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속성을 제시한다. 진실로 창조 행위에 외부적인 개입은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에서 만물을 창조하는데 충분하였으며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이었다.

3) 만일 인간이 창조의 목적이었다면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모든 계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칼빈의 예정론 속에 이것이 잘 나타난다.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피조물이 없어도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스스로의 영광을 고려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추론해본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하다. 비록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으실 지라도 인간을 창조하신 주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 속에 영광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4) 칼빈은 창조란 우리 감각으로 자각하고 볼 수 있는 세상 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이나 천사가 사는 영적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여러 구절에서 강조한다.

이와 관련하여 칼빈은 수호천사라는 고전적 개념도 받아들인다. 그러나 천사의 계급이나 그 외적인 모습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스스로 완전하지 못한 천사는 우리의 경배를 받을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과 같다.

5) 즉 칼빈에게 있어 천사와 악마, 인간의 영혼의 모두 창조된 영적 존재들로 분류된다.

대체로 영혼불멸설에 대한 그의 교리는 헬레니즘적인 요소를 가진다. 그러나 그 요소들은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는 칼빈을 영혼의 영원성이나 자연불명성에 대한 주창자로 보아서는 안된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무에서 영혼의 본질을 창조하셨으며 영혼의 실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만들어진다. 영혼이란 단 창조된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의 불명성 역시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언젠간 영혼으로부터 거두어 가실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6) 창조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는 인간은 창조의 핵심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독특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으로 창조하셨다. 칼빈은 스콜라 철학의 형상과 모양의 분리를 거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영혼이 인간성의 전부가 아니라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일컬여진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종류의 동물을 초월하여 높임을 받는 것은 바로 존엄성인바, 하나님의 존엄성은 모든 존엄성에 까지 확장된다. 이러한 말 속에는 아담이 창조될 때부터 부여받는 것은 의로운 마음을 향유하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잘 통제하고, 스스로의 감각이나 모든 내면적 사상을 잘 조절하여 창조주의 영광을 아름답게 나타내는 순결성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의 주권적 보좌가 마음과 정신 그리고 영혼과 그 능력에 자리잡고 있지만 심지어 마음 뿐만 아니라 육체 자체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지 않는 부분이란 없다.”

Ⅳ.하나님의 섭리

1) 칼빈은 1539년 판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자신의 논제를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1559년 판에 와서 “창조주 하나님을 단 한번의 역사로 모든 창조를 논의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1559년 판에 와서 “창조주 하나님을 단 한번의 역사로 모든 창조를 완성시킨 일시적인 신으로 생각하는 것은 부당하다. 우리는 이점에 있어 모든 이단과 위선자들과 다르다. 하나님의 힘은 첫 번째 시작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주의 영원한 상태 속에 온누리에 영원하다.

2) 하나님은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계속 세상에 관심을 가지신 분으로 관심을 베푸시고 철저히 중재하시며 자연법칙에 대한 맹목적인 행위나 하물며 우연으로 보이는 일에 이르기까지도 하나님의 권능을 행사하신다.

이것은 루터와 쯔빙글리와 같은 견해이며 특히 부처가 말한 자신의 창조 가운데 하나님의 끊임없이 활동하심에 대한 일치된 사상을 발견한다.

3) 1545년 ‘자유사상가들에 대한 논박’ 이란 논문에서 하나니므이 섭리를 세가지 측면으로 분류한다.

첫째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각기 주신 상황과 특성에 따라 모든 피조물을 인도하시는 “자연의 질서”에 대해 말한다.

둘째 이러한 ‘우주적 작용’에 대조시켜서, 칼빈은 “하나님께서 피조물 속에서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종을 도우시거나 악인을 웅징하는 것, 즉 신실한 성도의 인내를 시험하시고 혹은 부성적인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외로우심과 공의와 심판을 실현” 시키는 ‘특별한 섭리’ 란 개념을 제시하였다. 결과적으로 특별한 섭리란 특히 인간에게 더욱 관련되어 있으며, 특히,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끊임없는 간섭과 더 관련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의 세 번째 측면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령에 의해 믿는 자들을 다스리시고, 살아 계시고, 그들 속에서 통치하신다.”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과 그의 뜻에 직접적으로 복종한다. 이러한 것은 특히 인간이 혼자 있을때나, 사회속에서나 모두 다 적용되는 것이라고 단언하었다. 즉 교회를 하나님의 섭리의 특별한 보살핌의 대상으로 간주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4) 교회는 칼빈에게 있어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의 보살핌의 대상이다. 제 1권 17장에서 그는 하나님의 섭리가 관찰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측면을 설명한다.

첫째 하나님 섭리가 미래와 마찬가지 로 과거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주목할 일이다.

둘째, 그것은 만물을 조성하고 인도하며, 때로는 수단의 개입으로, 때로는 수단도 없이, 또 때로는 모든 수단에 역행하여 역사한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다음의 목적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즉,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어떠하신지, 무엇보다도 그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배려로 그의 교회를 얼마나 관심있게 지켜보시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5) 그러나 우리는 교회를 향한 이러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 때문에 교회가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섭리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것은 버림받은 악인들에게도 동등하게 작용한다. 더욱이, 이미 말했듯이 그들을 유익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그러한 방법으로 사용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따르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든 타락과 부패로부터 떠난 순결하신 분이다.”

6) 우리는 욥기 1장에서, 천사와 마찬가지로 악마 역시 하나님의 명령을 듣기 위해 그 앞에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진실로 다른 의미에서 또다른 목적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꼐서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악마와 사악한 무리들이 하나님의 굴레에 의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는 한, 어떤 악의도 품지못하고 또 악의를 품었을때에도 그일을 저지르거나 그것을 행하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할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속박과 규제로 묶여 있고 굴레의 제갈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이 사실을 성도가 깨달을 때 성도는 충분한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만일 악인들과 사단이 하나님의 역사에 사용된다면, 우리는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악의 창조주이시며 다른 한편으로는 악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수행된 행위에 책임을지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지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칼빈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역사 하시는가?”라는 물음을 한 장에서 충분히 그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욥기 1장 17절을 언급하며, 욥의 약대를 탈취한 갈대아인의 악의 행위에서 하나님과 악마의 인간의 3중 개입을 구별하였다.

“갈대아인들은, 스스로를 악행에 내맡김으로 인해서, 그들의 영혼과 육신을 타락 시켰다. 그러므로 사단은 그 타락한 자들 안에 역사하여 그들안에 자신의 사악한 통치를 행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 하나님의 뜻과 정하심에 따른 분노의 도구인 사단이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기 위해서 여기 저기로 악인들을 모는 한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인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지 않는다고 명백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모든 역사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행위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것에 의해 ,하나님과 악마와 인간의 행위는 동일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이론의 여지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의도와 수단의 차이로 인해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은 모든 곳에서 훌륭히 빛나게 만드는 반면에, 악마와 인간의 악행은 그 자체의 무질서를 스스로를 보여준다.”

7) 악인은 분명 하나님 안에 그 책임을 져야한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통해 은밀한 뜻안에서 선언하신 것을 완성시키실 때, 아무리 하나님 계명에 복종하였다 할지라도, 그들 속에 있는 계율을 사악한 탐욕으로 깨뜨리고 거부하였으므로 용서받을 수가 없다.”

이 모든 정교한 논리는 성 어거스틴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칼빈에 대한 최근 연구 동향>

Calvin, Language, and Hermeneutic

1.Introduction

내 개인의 견해로는 최근의 칼빈 연구에 있어 언어와 해석학 영역은 제 3의 영역이다.

앞서 최상의 연구가 이 분야에서 있어왔으며 계속해서 훨씬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다. 제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이와 같은 많은 변화의 요인들(roots)이 칼빈 연구의 르네상스 안에서 관찰되어 진다.

칼빈 연구를 재개하는데 있어 바르트( K. Barth)와 브룬너(E. Brunner)는 많은 명성을 얻은 학자들이다. 하지만 Herman Balke(1922)의 칼빈 신학의 문제(Die Probleme der Theologie Calvins)과 같은 작품은 상아탑 조직신학자로서의 요한 칼빈의 낡은 모습을 훼파하는데 기여하였으며 칼빈 사상의 새로운 측면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텍스트로서의 유용한 연구뿐 아니라 특히 사회학적, 정치적, 석의적 연구에 있어 최근의 선구적 연구들이 칼빈 연구에 있어 역시 참신함을 더하면서 강도를 높여왔다.

목회자로서와 인문주의자로서의 칼빈의 모습은 칼빈의 연구의 새로운 방향에 있어 중요하다.

휴머니스트로서의 칼빈의 이미지는 근래 윌리엄 부스마에 의해 아주 명쾌하게 제시되어왔다. 이와 같은 연구의 저변에는 인문주의자로서의 칼빈을 지지하는 반면 ‘조직 신학자’로서의 칼빈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

여러 면에서 부스마는 칼빈을 신학자로 다루지 않는다. 이것이 부스마 책의 약점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 사상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는데 있어, 부스마는 대단한 공헌을 하였다. 칼빈을 조직신학자로서보다 목회자로 보는 개념은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의 주제보다 경건하신 하나님의 견지에서 보게 하였다.

내 견해로는, 신학자로서의 칼빈의 이미지에 대해 상대적으로 이와 같은 새로운 뉘앙스가 더 유익한 측면이 있다고 보여진다.

2.Calvin and Language

칼빈을 탐색하는 연구와 환경에 따라 그의 사상에 대한 철학적, 신학적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재평가는 칼빈의 언어와 인식론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창출하였다.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진 이 분야에 대해 추적하고픈 유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섹션에서는 이 주제에 대한 현대의 문헌들을 재평가하고 최근까지의 논증의 흐름을 추적하는 데 목적을 둘 것이다.

그렇게 하므로서 맡겨진 주제에 대한 나이 책무를 완성하고 칼빈 연구의 앞선 희망적 결과들을 가지고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제안을 할 것이다.

칼빈이 언어의 의미와 관련된 동시대의 토론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그와 같은 화법(話法)은 칼빈에게 있어서 중요했다.

부스마(Bouwsma)는 칼빈의 초기 저작물로부터 그것을 명확히 밝힌다. 칼빈은 언어가 어떻게 기능하고 의미가 어떻게 한정되는 지를 알았다.

부스마는 언어에 대한 칼빈의 평가를 분석하므로 칼빈의 언어가 당시의 통례적 방식이었다는 것을 바르게 지적한다. 즉 용법은 언어를 구별하는 것이다. 덧붙여서 칼빈은 언어가 감정을 옮기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토렌스(Torrance)도 역시 칼빈과 언어를 분석하고, 칼빈의 사상과 언어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언어의 올바른 용법에 대한 탐색은 칼빈과 휴머니스트에 대한 연구에 있어 중요한 영역이다.,

이 주제에 대한 더 많은 작업은 수잔 세링거(Suzanne Selinger)가 수행하였다. 더욱이 그녀는 언어에 대한 칼빈의 직관이 어거스틴에 대한 칼빈의 연구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신하였다.

칼빈은 기독교 수사학의 가능성과 관련된 어거스틴의 사상을 많이 계승하였다(역자 주: 어거스틴은 수사학 학교의 교장이었다).

칼빈의 언어 사용 분석은 성례전이나 신학 자체의 본질과 같은 신학 연구의 다른 분야에서 빛을 발하였다. 최근 빈센트(Vincent)는 언어에 대한 칼빈의 견해와 신학에 대한 그 영향을 분석하는 데 있어 가장 심오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Vincent는 자신의 책("Exigence ethique et interpretation dans l'oeuvre de Calvin")에서 칼빈의 언어 사용을 어거스틴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작품과 비교하는 데 온 섹션을 할애하였다.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빈센트는 상당 분량의 페이지를 할애하므로서 언어에 대한 칼빈의 이론을 발전시키는데 공헌하였다. 그 책은 1987년에 한 논문으로 새롭게 갱신되었다.

그 책에서 빈센트는 칼빈과 언어에 관관 상당히 많은 개념들을 진전시켰다. 거기서 빈센트는 어떻게 칼빈이 성서적 텍스트의 의미를 확정하였는지와 어떻게 그 의미를 함축해서 이끌어내었는지를 가지고 씨름하였다.

3. Calvin's Hermeneutic

칼빈 특유의 신학과 그의 인류학, 인식론은 모두 그의 해석학이론과 부딪힌다. 해석학이라는 단어는 현대적이며 우리 자신의 분석에 유용한 단어이다.

칼빈이 문화가 해석학과 관계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과 그가 문화에 의해서 영향받고 차례로 그 문화에 서로 영향을 준다는 것은 현대적 작품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가녹지/셀드(Ganoczy/Scheld), 파커(Parker)와 토랜스(T. F. Torrence)가 이들 토픽을 분석하므로 칼빈의 해석학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에 있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였다. 무엇보다 칼빈이 섹션 1,2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른 석의적 방법론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의 동시대 사람들과 다른 해석학을 지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과제는 그의 고전적 학식과 그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있었다는 경향을 보고하는 것이다. Ganoczy와 Scheld은 칼빈이 그의 프로테스탄트 동료들과 달리 동시에 철저히 새로운 해석법?(“dabei eine vollig neue Schreibweise anzubenden”)을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심지어 칼빈의 이런 방법이 혁명적이라고까지 말한다.

Parker는 멜랑흐톤과 부처와 칼빈이 모두 개혁주의자이나 그들 사이의 주해 방법이나 작문 구조는 큰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토랜스(Torrence) 교수도 마찬가지로 칼빈 해석학의 독특성을 언급한다. 아마도 칼빈의 해석학에 관한 많은 주장 중 가장 논란이 되고 중요한 주장은 토랜스 교수의 가 한 말일 것이다. 그는 “칼빈은 자신 스스로 언어와 나타난 실재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상을 찾아냈고 성서적 진술의 해석 방법을 발전시켰다. 사용된 언어는 유사 내용(subjecta mareria)에 비추어 이해되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들 논제가 맞다고 보며 앞으로 미래에 더 확증될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가녹지/셸드, 파커 그리고 토랜스의 작업은 새로운 차원의 칼빈해석학의 이해를 제공하였다.

Ⅳ. Calvin and Theology

최근 지난 8년 동안 칼빈 연구에 있어 모든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눈부신 발전은 신학자로서의 칼빈 분석에서 발견된다.

1.칼빈 신학의 구조(The Structure of Calvins's Theology)

지난 19 세기 말과 20세기 초기 학자들은 하나님의 주권 교리와 예정이라는 말에 상응하는 칼빈 신학의 기초가 되는 중심 테마를 찾았다. 만일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의 교리가 칼빈 신학의 기초라면 그의 조직신학적 사상은 아주 명확한 구조를 취했을 것이다.

같은 논리가 그의 신학의 일부 논제들(loci)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면 기독론과 종말론이다. 하지만 시대에 뒤진 이와 같은 칼빈에 대한 견해는 거절되어 왔다.

사실 오늘날 칼빈 연구에 주도적인 학자들은 칼빈 신학의 관문을 열 수 있는 오직 단 하나의 열쇠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비록 칼빈 신학의 하나의 기본 주제를 말하는 데 많은 학자들이 주저하였지만 하나님에 대한 이중적 신 인식(duplex cognito Dei, 역주=창조자와 구속주로서의 하나님을 말함)이 칼빈 신학의 하나의 지배적 원리이거나 유일의 지배적 원리로 간주되어야 한다는데 점진적 일치를 보아왔다.

2. Epistemology

칼빈 신학의 하나의 기초나 기초들에 관한 이와 같은 일치의 많은 부분은 칼빈 인식론 자체의 기초에 대한 학문적 분석을 통해 점진적 일치를 분출하였다.

1982년 부스마(William Bouwsma)는 “칼빈과 르네상스의 지식 위기”에서 칼빈 시대 동안 맹위를 떨친 인식론적 질문에 대한 특별한 강조점”을 두고 있다.

부스마는 “지식의 문제에 대한 칼빈의 몰두의 증거 즉 문제로서의 지식은 그의 작품에 모든 곳에 각인되어 있음”을 올바르게 설명한다.

부스마는 기독교 강요를 분석함에 있어 강요 Ⅰ권의 첫 9장은 전체상으로서의 일종의 인식론적 서론이라고 하였다. 부스마는 기독교 강요 자체의 문화적 배경에 비추어 이와 같은 인식론적 자아의식의 필요성을 구축하는데, 거기서 그는 어떤 지식을 소유한 인간 마음의 능력의 문제점에 대해 언급한다.

물론 이와 같은 르네상스 역사의 단면은 중세 후기의 실재론자와 유명론자 사이의 신학적 논쟁으로 향하게 되었다. 칼빈 신학의 구조가 르네상스와 중세 후기 신학 모두의 지식의 증가에 영향 받았다는 것과 관련하여 최근 학자들 사이에서의 변화를 파악하는 데 있어 우리의 입장은 그 이해를 쉽게 한다.

우리는 칼빈 사상의 인식론적 기초와 씨름하는 두 계열의 분석을 요약할 필요가 있다. 한쪽은 르네상스의 측면을 논증한다. 윌리엄 부스마는 르네상스 역사의 측면으로부터 칼빈 사상에 있어 지식의 르네상스 위기의 문제를 언급한 최초의 사람 중 한사람이다. 또 다른 측은, 중세 후기 신학에 대해 새로운 신학적 분석을 시도한 1960년대 시작된 오베르만(Oberman)교수가 공헌한 기초 작업이다.

물론, 이들 사상에 대한 수많은 선행 연구가 지난 8년 이전에 수행되어왔다. 1922년 이래 발케(Balke)의 연구가 있으며, 더 최근 연구로는 1978년, Battles 교수의 “Calculus Fidei"(믿음의 판결 표시돌?)에 대한 연구가 있다. 이것은 칼빈 신학 구조에 대한 탁월하고 복합적인 연구였다.

하지만, 지난 2,3년 동안 몇몇 칼빈 연구자들은 duplex cognito Dei가 칼빈 신학의 기본적 구조 인지의 여부에 대해 역시 의문을 품어왔다. 이런 점들이 ‘철학이냐 신학이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토론을 이끌어내었다.

3. Philosophy or Theology

1987년 찰스 파티(C. Partee)는 칼빈의 중심 도그마의 문제를 추적했다. 그는 하나님의 이중적 인식(duplex cognito Dei)에 대한 점증하는 일치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통로를 추적하였는데 그것은 철학적이기 보다는 신학적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교리가 <강요>를 관찰하는 핵심적 조망으로부터의 기초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칼빈 신학 구조의 기초라는 주장이 탁월하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칼빈 사상의 묘사를 위해 철학적 기초라기보다 신학적이기 때문이다. 신학자로서의 칼빈은 자신의 신학의 기초 구조가 되는 이와 같은 중요한 신학적 원리를 원했을 것이다.

더욱이 최근(1993)에 암스트롱(B. Amstrong)은 '하나님의 이중적 인식(duplex cognito Dei)이 칼빈 사상의 단순한 하나의 기본 원리인가? 아니면 오직 하나의 기본 원리인가를 대답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한다. 암스트롱은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는 많은 논증을 찾아냈다. 그는 칼빈이 분명히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과 갈등 사이에 위치한다고 보았다.

그는 논증에 있어서 배틀즈(Battles)의 초기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거기에는 항상 2 개의 기둥, 두 개의 양상, 두 개의 변증법 그리고 각각의 신학적 토픽이 충돌한다. 이러한 구조는 이상과 실재 사이의 아주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철학적 변증법이다. 암스트롱은 역시 칼빈 신학의 영적 목적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가설적 구조를 찾아내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칼빈 신학의 구조의 분석의 측면에서는 가장 최신의 연구였다. 파티(C. Partee)는 하나님의 이중 인식(duplex cognito Dei)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의 암스트롱은 그 주제의 매력을 느끼고 역사적 상황 안에 그것을 더 배치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2 개의 접근법은 신학자와 역사가 사이의 현대 칼빈학의 긴장을 방영한다.

비록 암스트롱과 파티(C. Partee) 두 사람 모두 가능한 대답들을 제시하고 싶어하나 파티(C. Partee)는 신학자로서 칼빈 사상의 구조에 대해 보다 순수한 신학적 기초를 찾고 싶어한다.

그리고 역사학자로서 암스트롱은 역사적 상황을 맨 앞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암스트롱은 파티(C. Partee)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대한 그 자신의 생각이 비철학적 구조이기 때문에 훨씬 우월하다는 논증은 실제로는 근본적으로 철학적 구조를 탐색한 것이라고까지 극언(極言 goes so far as to say)한다. 이러한 긴장은 부스마의 책에서 다양하게 리뷰(review)된다. 여기에 나타난 일반적 인상은 역사학자들은 그것을 환영한다는 것이고 신학자들은 그것을 조금은 귀에 거슬리는 실망스런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Ⅴ. Conclusion

칼빈 연구는 논란이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 특별히 다음 세 영역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1. Text-Critical Work

Neuser 교수는 비평적 관점에서 세로운 세트로서의 칼빈의 전집을 연구한 일련의 연구 성과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연구는 칼빈 연구에 절대적 기초이다.

같은 관점에서, 킹덤(Kingdom) 교수와 미국과 스위스의 주요한 학자들은 <제네바의 주교 회의의 의사록>을 엮어냈다. 이들의 연구 성과에 대한 검토를 통해 칼빈 당시의 칼빈의 독특한 미니스트리와 주교회의 활동에 대한 보다 풍부한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앞으로의 8년은 킹덤과 그의 동료들로부터 만들어지는 자료들로부터 상당히 다양한 분량의 논문들이 쏟아질 것이라고 추정된다.

2. Historical and Exegetical Research

우리는 칼빈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역사적 상황을 먼저 이해하고 강조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칼빈의 배경과 시대와 주석 작품에 열려있는 책들은 우리들에게 칼빈 주석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을 돕는다. 여러 사람에 의해 검증된 제네바에서 정규적으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 계속되야만 한다. 특별히 주석가로서의 칼빈은 신학자로서의 칼빈의 새로운 전망들을 열어놓았다.

3. Integration

칼빈의 생애와 시대와 작품에 대한 방대한 새로운 정보의 분출은 통합되어야만 할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신학자들의 글을 읽어야하며 신학자들은 역사학자들의 작품을 읽어야만 한다.

우리는 앞으로 학제간(學制間) 연구의 시도와 사회정치학과 신학 그리고 역사적 작품들에 몰두함으로써 창조적인 신학자로서의 칼빈에 대한 더 좋은 초상화(肖像畵)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번역: 조덕영>

조덕영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