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과학에 대한 버틀란트 러셀의 편협한 생각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세상 생각의 중심에 서고 싶었던 철학자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먼저 그는 장수한 사람이다. 우리 나이로 99년이라는 오랜 삶을 살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40여권에 달하는 수많은 저작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보다 더 많은 저작을 남겼다는 기록도 있다. 어떤 저서 목록을 보면 제목만 해도 68권에 이른다. 저술에 관한 한 이렇게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지적 열정으로 하루 평균 약 3천 단어 이상의 글을 써낸 초인적 사람이었다. 그 분야는 철학에서 수학, 과학, 사회학, 교육, 정치, 예술 및 종교 영역에 이를 만큼 전방위적이었다. 사실 그는 세상이 관심을 두는 주요한 핵심 주제 대부분을 다룬 철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러셀이 장수하면서 그에 따른 단순한 다작의 철학자로서의 삶만을 산 사람은 아니었다. 수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그는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와 <수학의 원리>에 대한 공저를 내면서 수리 철학, 기호 논리학을 집대성하여 분석 철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 뿐 아니라 평화주의자로 제1차 세계대전과 나치 정권에 반대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 시대에는 원폭 금지 운동과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쟁에 대해 ‘러셀국제법정’을 열고 침략에 반대하며 투쟁하였다. 1950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같은 화려한 그의 경력들이 러셀 사후에도 여전히 그가 세상에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이유가 되겠다. 이렇게 그는 세상 생각의 중심에 서고 싶어했던 철학자였다.
비기독교인임을 표방한 철학자
이런 그가 기독교인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그가 자신의 저서를 통해 비기독교인임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때로 그는 기독교인이 아닌 동시에 무신론자는 아닌 불가지론자로 자신을 불렀다. 이 같은 러셀의 입장이 기독교 선교에 미친 불건전한 영향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러셀의 이런 태도와 입장은 그에 대한 기독교도들의 반감과 비방으로 이어졌다. 주로 그의 자유분방한 사생활이 비난의 재료들이었다. 하지만 기독교는 무조건 러셀을 비방하고 조롱할 뿐 그가 가진 종교와 기독교와 과학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진지한 분석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바르게 믿지 않고 무조건 믿는다는 것이 위험을 초래하는 것처럼, 상대를 전혀 모르고 무조건적인 비난과 조롱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태도이다. 도대체 그가 가진 종교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무엇일까? 그리고 과학은 그 같은 사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최소한 그는 왜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것일까? 종교와 과학에 대한 이 천재 철학자의 입장은 전혀 논리적 모순은 없는 것일까?
종교와 과학에 대한 편협한 생각
러셀이 종교와 과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방한 구체적 저서를 내놓은 것은 1935년이었다. 만 63세가 된 이 때는 러셀 학문의 성숙기였다고 볼 수 있다. 러셀은 자신의 책에서 종교와 과학을 주로 대립의 관점에서 추적한다. 종교와 과학은 오랜 투쟁 관계에 있었으며 러셀의 시대까지 늘 승리는 과학이 편이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것은 러셀의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너무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청교도 시대부터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대단히 폭넓게 이루어져 왔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학자들은 단순한 대립의 관계만 아닌 전쟁, 갈등, 충돌, 대화, 조화, 독립, 분리, 상생, 공격, 양자 유익, 공명 등 다양한 단어들을 추출해 내었다. 종교와 과학의 충돌과 대립 개념이 불교나 유교보다는 주로 그리스도교와 과학의 관계를 논할 때 거론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현대 과학은 기독교의 토양에서 자라났다. 현대 과학이 태동할 시기인 17~18세기, 종교 특히 청교도주의는 과학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청교도주의의 진전과 17세기 영국에서의 과학의 부흥기의 직접적 상응관계를 감지했던 로버트 멀톤(Robert Merton)은 영국 왕립 학술원(the Invisible College) 내의 주도 세력이 청교도들이었음을 지적한다. 학술원 내의 청교도적인 성향은 지적으로, 과학적 탐구와 추구에 적합성이 있었다. 자연에 대한 사랑, 하나님의 영광, 인간의 복지, 만인 제사장주의와 같은 주제들은 청교도적인 사유 속에 깊이 연관되어서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철저히 실증적인 과학이 교회의 위계 구조나 “왕권신수설”과 같은 것에 대해 자신들이 표현하는 반권위주의(anti-authoritarianism)의 한 표현일 뿐이라고 여겼다고 호이카스는 설명한다. 그들에게는 과학이란 경험에 근거한 것이지. 고대인들의 권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호이카스는, 청교도 지질학자였던 나다나엘 카펜터(Nathanael Carpenter)의 과학적 저작들에 편만해 있는 철학적 자유의 정신이 온 분야에 대한 청교도들의 탐험 전체의 상징으로 보았다. 이런 기독교신앙과 과학 사이의 “협조” 모델 지지자들은 여러 분야에서 나왔다.
철학에서는 마이클 포스터(Michael Foster)가 “기독교 창조론과 현대 자연 과학의 부흥”이라는 영향력 있는 논문에서 이 입장을 옹호했고, 신학자로는 토렌스(T. F. Torrance)가, 특히 우발적 피조계(a contingent creation)에 대한 종교개혁의 재발견이 중세사상을 대치한 것을 강조하면서, 이 입장을 지지했으며,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인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은 왕정복고 이후의 영국에서 과학적 진보와 비국교파들(religious dissent) 사이의 밀접한 연관을 발견해 내었다. 화이트헤드(A. N. Whitehead)는 과학의 태동기에 희랍 사유형과 성경적 사유형의 독특한 종합이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폭넓은 독서량을 자랑하는 러셀이 이와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종교와 과학에 대해 대립 모델로만 파악하려 든 것은 분명 기독교에 대한 러셀의 어떤 편견이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불신자였던 부모를 2, 4세 때 모두 잃고 독실한 청교도였던 할머니의 손으로 키워졌던 러셀이 신앙을 버린 것은 18세 때 존 스튜워트 밀의 자서전을 읽은 다음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이것은 그가 평생 철저한 지성주의자요 합리주의자로 살았음을 말해준다.
포스트모던 시대를 맞아 종교와 과학을 다루는 관점은 더욱 더 폭넓게 확장된다. IVP 신학 사전은 과학 신학의 관계에 대해 독립(independence), 갈등(conflict), 상호 보완(complementarity), 공생(symbiosis)의 모델로 분류한다. 포스트모던 신학자인 테드 피터스는 과학과 종교가 어떤 영향과 관계를 맺어왔는가에 대해 매우 다양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일찌기 간파하고 연구하는 학자이다. 테드 피터스는 과학과 신학이 관계하는 여덟 가지 입장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테드 피터스는 이 8가지 입장을 잘 논증한다. 그는 과학과 신학의 대안적 견해를 다루는 어휘를 통해 이 문제를 접근하고자 하였다. 여기서도 핵심은 그것이 과학적으로 탐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주의(scientism), 과학제국주의(scientific imperialism), 교회권위주의(eccleciastical authoritarianism), 과학적 창조론(scientific creationism), 두 언어 모델(two-language theory), 가설적 조화(hypothetical consonance), 윤리적 중첩(ethical overlap), 뉴 에이지 영성(New Age spirituality)이 그것이다. 그레거슨(Niels Henrik Gregersen)은 자신이 편집한 책에서 다원주의 세상에서 과학과 신학 사이의 대화를 위한 6가지 모델을 제안한다. 이 6가지 모델을 각 전문가가 논증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안 바버(Ian Barbour)는 ⌜종교와 과학⌟(Religion and Science)에서 갈등(conflict), 독립(independence), 대화(dialogue), 통합(integration) 이렇게 4가지 이론으로 분류한다. 뎀스키는 과학과 신학의 작용에 대해 상호 무관, 다른 관점, 서로 갈등, 서로 긍정으로 나누고 있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풀러 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과 과학 분야의 방문교수로 있는 칼슨(Richard F. Carlson)은 자신이 편집한 책에서 과학과 신학의 문제가 단 하나의 기독교적 입장이란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창조론(creationism)적 입장에 생물학계 원로인 웨인 프레어(Wayne Frair)와 화학 물리·고분자학을 전공한 게리 패터슨(Gary D. Patterson), 독립(independence) 이론에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하고 미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진 폰드(Jean Louise Bertelson Pond), 조건적 일치(qualified agreement)에 1990년, 캠브리지 대학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하고 지적 설계 논쟁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스티븐 마이어(Stephen C. Meyer), 이론화 과정에 있는 파트너로서의 과학과 기독교 신학의 파트너십(partnership)의 입장에 미시간 주 그랜드 래피즈(Grand Rapids)에 소재한 칼빈 대학의 물리학 및 천문학 명예 교수로 있는 하워드 반틸(Howard J. Van Till) 등 다양한 견해를 가진 4그룹의 학자들을 등장시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종교와 과학에 대한 편견 그리고 과학주의
러셀의 책이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다룬 고전 취급을 받기는 하나 관련 학자들에게는 그리 주목받는 학자로 여겨지지 않는 데에는, 종교와 과학에 대한 이 같은 풍성한 논의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오직 대립이라는 한 방향으로만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몰고 간 러셀의 편중된 전개가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저명한 저널리스트 폴 존슨(Paul Johnson)이 러셀에 대해 비평하면서 그의 삶을 ‘그럴 듯한 엉터리 논리’라고 표현한 것은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본래 이 말은 러셀에 대한 존슨의 평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러셀이 기자였던 존슨이 쓴 러셀 자신과 관련된 기사에 대한 불만 때문에 존슨을 향해 감정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존슨이 굳이 이 말을 러셀에 대한 평가의 글 제목으로 붙인 이유는 아마도 이 대철학자의 논리와 삶은 전혀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종교와 과학에 대한 러셀의 이 같은 편견은 그가 과학주의자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준다. ‘과학주의’는 때로 ‘자연주의’(naturalism)나 ‘과학적 유물론(唯物論)’ 또는 ‘세속적 휴머니즘’(secular humanism) 등으로 불린다.
과학주의는 일종의 대립, 충돌 또는 전쟁 모델이다. 과학주의는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를 위한 전쟁을 추구한다. 다른 ‘주의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주의 역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과학이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지식을 제공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과학주의자들에게 있어 세상에는 오직 한 가지 실재 즉 자연밖에 없으며, 과학은 우리가 자연에 대해 갖는 지식에 대한 독점적인 권한을 지닌다. 그리고 종교는 자신이 초자연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을 공급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사이비 지식을 말한다. 다시 말해 종교란 존재하지 않는 허구에 대한 거짓된 제공자란 인상을 주게 만든다. 유명한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Fred Hoyle)이나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 리처드 도킨스 등은 모두 과학주의에 근접한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과학과 신학의 전쟁에서 과학주의로 적을 섬멸할 것을 요구한다. 신앙이란 그들에게 거추장스러운 도구요 존재일 뿐이다. 러셀도 바로 이들처럼 과학주의자라 할 수 있겠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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