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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신학과 철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신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기독교사상가 탐색, 초대교회 배경으로서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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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신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기독교사상가 탐색, 초대교회 배경으로서의 철학)

 

 

그리스 데살로니가의 아리스토텔레스 광장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기념 동상

 

 

아리스토텔레스는 신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기독교사상가 탐색, 초대교회 배경으로서의 철학)

 

아리스토텔레스(주전 384-322)는 그의 스승 플라톤(주전 427-347) 못지않게 신학에 미친 영향이 큰 철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사상이 초대 교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주로 로마 카톨릭 신학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하나 그 부분들을 살펴봅시다.

1. 그의 범주론(Categoriae, Praedicamenta)과 신의 신비성

 

1) "범주(카테고리)"란 간단히 말해서 "사물과 상황을 종류별로 묶는 틀"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선험적인( a priori) 인식의 틀입니다. 따라서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범주를 명확하게 규정한 필요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Categoriae, Praedicamenta)은 그 적용 범위와 함축적 의미에서 광범위하나 그 기본적 주장들은 다음과 같이 간단히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개별적 인간, 말, 양배추 등과 같은 개체들은 우선적으로 존재하는데, 이런 개체들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일 실체'(primary substances)라고 했습니다.

 

(2) 왜냐하면 사람들, 말들, 양배추들과 같은 개체물들은 각각의 색깔과 각각의 동일한 고유의 성질들을 가집니다. 이런 성질은 제일 실체 '안에 임재 해'있습니다. 즉 성질들은 개체와 독립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종들 사이의 유사성 판명 방식을 유개념들(속, genus)이라면 종개념(종, species)들은 '제이 실체들'(secondary substances)라 부를 수 있습니다.

 

(3)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범주는 모두 열 개였습니다.

그것은 그 유사한 정도에 따라 (1) 실체 (2) 양 (3) 성질 (4) 관계 (5) 장소 (6) 시간 (7)위치 (8) 상태 (9)능동, (10)수동 아홉 가지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칸트는 이것을 양, 성질, 관계, 양상의 4 부분으로 나누어 각 3 가지씩 12범주로 나누었습니다. 여기서 인간 철학의 관심은 참 된 모습이 무엇인가가 아닙니다. 이 철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오직 우리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 가입니다. 즉 철학은 논리적 타당성과 중요성을 따지려 하지요. 그러니 참된 모습, 즉 물자체(Ding an sich)는 철학에서는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서 자연 계시로서의 철학과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신학의 다른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형이상학(Metaphysica)에서 범주들이란 한 개체물이 '존재한다'고 말 할 수 있는 의미적 근거들이라고 했습니다.

 

3) 삼위일체론을 전개한 갑바도기아의 교부인 닛사의 그레고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일반인들이 본질적 실체 (ousia)와 기능적 실체(hypostasis)를 혼동해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일 삼위일체가 명백히 구분이 안 될 경우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의 본질적 실체이면서 또한 동시에 하나의 기능적 실체로 간주되고 맙니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환원될 수 없을 정도로 구별된다는 점을 부정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결국 하나님의 연합적 일체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것은 양태론이라는 이단적 설명이 됩니다.

 

4)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에 대한 이 같은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이제 우리는 니케아 종교회의 (Council of Nicaea)에서 제기되었던 의문들을 더욱 타당하고 납득할 만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이 제 1차 공교회의 종교회의에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중요한 토의가 있었지요. 삼위일체 하나님은 실체(ousia)에 있어서 유사 또는 상호동등(homoiousia)하신 분인가 아니면, 동일한 실체의 일체성(homoiousia)을 가진 분인가 하는 토론이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동일한 일체성(실체에 있어 동일한 본질)을 주장한 기독교 사상가가 바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였습니다. 갑바도기아 학파의 세 교부들에게도 이 문제는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5) 인간은 삼위일체가 아닙니다. 그래서 신성의 독특한 측면들을 인간이 온전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제한적인 설명은 가능합니다. 즉 신성의 본질적 일체성이 비록 독특하고 다양한 피조물들 사이의 관계들(다양한 개체자들을 연합하는 유개념과 같은 것들)로나 또는 개체자가 단독적으로 보여 주는 연합성의 형태(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활동의 다양성이 결국 하나의 개체자의 것으로 전략하게 되고 마는 형태)로 축소되거나 치환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신적 일체성에 대한 제한적 이해를 유비적 방식으로 시도하려는 것이지요.

 

6) 어거스틴(주후 354-430)도 닛사의 그레고리처럼 성부 하나님과 예수와 성령은 제일 실체(너와 내가 각각의 개체자들인 것처럼 하나의 개체자)이거나 하나의 제이 실체(유나 종개념을 공유함으로써 연합체를 구성한다는 의미에서)이기 때문에 결국 궁극적으로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레고리는 하나님의 본질적 일체성에 대한 유비적 구조를 찾기 위해서 제이 실체들-개체자들이 공통적 본성을 공유하는 방식-에 관해 탐구했지요.

 

7) 유비적 모형으로서의 인간정신을 탐구하기 위해서 어거스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를 구별합니다.

(1) 인간 정신,

(2) 그 정신의 인식하고 사랑하는 능력,

(3) 인간의 지식과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인간 자신이 바로 그것이다.

 

8) 주체와 객체, 그리고 인식과 사랑은 서로 구별(distinction) 되지만 분리(separation)되지는 않으며 전적으로 상호 포함의 관계를 형성합니다. 즉, 이 세 요소들은 하나의 실체를 이룹니다.

 

9) 어거스틴은 아리스토텔레스보다 인간의 지식을 증진시키는 방법으로서 플라톤의 형상(image)이라는 개념 활용합니다. 어거스틴에게 신플라톤적인 요소가 있다고 오늘날 신학자들이 말하는 이유입니다.

 

10) 하나님의 신비성이 체험되는 또 하나의 영역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에 대한 것입니다. 초월의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을 향해 오셨다. 성자는 인간이 되면서 동시에 신으로서 정체성을 지닌 분이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정체에 대한 주장 중에는 단지 인성은 외부적인 것으로서 하나님은 그러한 인성의 육체를 사용하셨을 뿐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즉각 부정되었습니다. 신학은 하나님 말씀과 인성은 온전히 결합되었다고 정리하였습니다.

 

그리스 데살로니키의 아리스토텔레스 기념광장

2. 원자론에 대한 생각

 

1) 아리스토텔레스(주전 384-322)가 원자론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2) 아리스토텔레스는 로마 가톨릭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가 스콜라철학에 수용한 철학자입니다.

 

스콜라 철학은 교부시절을 지나 중세철학을 이룬 종교적 철학으로 대체로 8세기부터 14-15세기까지의 가톨릭 신학을 스콜라 철학 시대라 부르고 있습니다. 주전 4세기에 헬라에서 활동했던 이 철학자를 토마스 아퀴나스가 중세 가톨릭에 연결했던 이유는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활발하게 라틴어로 번역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철학을 가톨릭의 스콜라철학을 위해 활용했다고 보면 됩니다. 헬라어에 능통한 신학자들이 많았던 교부들에 비해 헬라어에 능하지 않았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활발하게 번역되고 있던 헬라 철학자 가운데 탁월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활용한 것이지요.

 

​3) 오늘날 원자론의 원조가 되는 고대 원자론(atomism)은 초기 자연철학자들을 거쳐 원자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레우키포스와 유물론(materialism)의 아버지 데모크리토스(주전 460?-주전 370?)에 뿌리를 둡니다.

 

이들 자연철학자들이 우리가 인식하는 달고 쓰고 뜨겁고 차고 보여 지는 다양한 색깔 등에 대해 (미시세계로 들어가면) 실은 원자와 공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는 것은 대단한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만 이들은 창조 신앙이 없었기에 이후 유물론으로 흘러버린 점은 아쉽다할 수 있습니다.

 

​4) 이들보다 후대 인물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질이 아주 작은 원소로 되어 있다는 질료적 개념보다는 만유가 물, 불, 흙, 공기라는 4 원소로 되어 있다는 엠페도클레스(주전 490?-주전 430?)의 주장을 수용합니다.

 

이들 4 원소는 각각 차가움과 뜨거움과 마름과 축축함이라는 속성으로 나타납니다. 원자의 존재를 믿지 않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는 이들 4 원소가 가득 차 있어 이들 원소들이 쉽게 변형되면서 세상을 구성한다고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빈 공간이라든가 진공과 같은 개념을 수용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5) 따라서 자연과학에 관한한 조금은 완전치 못하고 미숙하고 부족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과 이론을 수용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톨릭 신학이 소위 “자연신학”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고 빈틈을 가지게 된 것은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속에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점은 우리 인간 누구도 완전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3. 누스(nous)는 성경의 신인가?

 

1) 정신, 마음, 이성이라는 의미를 가진 누스는 고대 헬라어로 아낙사고라스(주전 500-428)가 처음 사용한 단어입니다.

 

2) 엠페도클레스가 물, 불, 흙, 공기라는 4 원소를 질료의 기본 원소로 본 반면 아낙사고라스는 질료는 수많은 원소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질료의 힘 자체는 보다 관념적인 비물질적인 실체로부터 온다고 보았는데 그것을 바로 “누스”라고 했습니다.

 

3)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누스를 강조합니다.

 

4)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누스”를 플라톤의 이상주의적 이데아론에 반발해 현실적 의미를 강조하면서 아예 현실 속에서 이 초월의 “누스”를 추구합니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탈인격적 신이었습니다.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 개념도 그런 것입니다. 초기 자연철학자들이 신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오히려 토마스 아퀴나스로 상징되는 중세 시대에 로마 카톨릭의 자연신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스콜라 신학자들은 성경의 신과 신으로서의 “누스”의 유사성을 찾으려 했던 것이지요. 바른 신학이나 좋은 신학이라고 보기는 쉽지 않네요.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평택대 <과학과 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