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3장 3-7절에 나타난 홍수의 증거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하신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벧후 3:3-7)
이 성경 구절에서 베드로는 언젠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심각하게 생각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와 같이 회의적 태도를 가지게되는 이유는 동일과정설의 신조(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모든 인류 문명의 파괴가 일어날 것이라는데 대해서 새롭고 더 고등한 쪽으로 진화하는 자연의 법칙과 진행 과정은 결코 방해받지 않고 유지될 것이라는 신조)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착 때문일 거라고 말한다. 과거,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미래에도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대한 이같은 회의적 반응에 대해 베드로 사도는 동일과정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과거에 일어났던 두 가지 사건을 지적한다.
첫째 사건은 세상의 창조다. 즉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언젠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부러 잊으려 할 거라 말하고 있다.
두 번째 사건은 홍수다. 즉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홍수로 상징되는 이 두번째 사건은 베드로 사도에 의하면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최종적인 파멸과 비교되는 사건이다.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지만 이제 하늘과 땅은 또다른 대홍수로는 멸하지 않고(창세기 9:11-19) 하나님의 영원하신 약속대로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는 것이다.
이제 홍수의 지리학적인 범위에 관하여 이들 구절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창조의 둘째 날과 셋째 날의 사건을 말하면서 베드로는 분명 우주적인 의미로 하늘과 땅이 옛적부터 있었다는 용어를 사용한다. 같은 의미로 이제 베드로가 직접적인 우주를 언급하면서 하늘과 땅이라는 용어를 쓰고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베드로가 단지 지구의 일부분에 대한 창조와 최종적인 파멸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요셉 마이어는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베드로 후서 3장 7절,10절,12절을 보면 최종적인 대형참사에 의해서 현존하는 우주의 기본적인 변형이 이루어질 것임을 말해준다. 이 말은 베드로가 동일한 의미로 비교한 홍수에 의한 참화도 과장된 견해임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하늘과 땅은 대홍수 이후에 구별되었던 것이다(<성 유다서>와 <성 베드로의 두번째 서간>, London,Macmillan & Co., 1907, p153).” 여기서 동일과정설은 타당한 것으로 설명되고 베드로가 언급한 대홍수는 과장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진실된 성서 해석은 지구 역사에 대한 이런 철학과는 분명 조화될 수 없다.
베드로가 지구뿐 아니라 하늘에 까지도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하는 하나의 사건은 바로 대홍수였다! 사도 베드로가 생각하는 옛적의 하늘과 지금의 하늘을 구분하는 것이 바로 대홍수인 것이다. 그 때 하늘과 땅은 완전히 파멸되어 옛적(고대) 세상을 가득채웠다. 그와 같은 사건에 대홍수는 거대한 대양의 물을 사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과거 한때 거룩한 분노를 발하고 모든 것들을 압도적으로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스스로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최종적이며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이 대홍수였다고 베드로는 말한다. 이 우주적 대격변은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과 절대적으로 동등하게 적용된다 하나님은 지구를 불로 태우시고 격렬한 열로 모든 원소들을 분해시킬 것이다.(베드로 후서 3:10)
만일 대홍수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만 국한되어졌다고 보면, 모든 것이 세계적인 대격변에 의하여 뒤집혀버린 것은 결코 아니라고 주장하는 동일과정설을 반대하는 베드로의 말을 이해한다는 일이 어렵게 되어버린다. 만일 대홍수가 결국 지역 홍수(local flood)에 불과하다면 그와 같은 우주적 용어와 우주적임을 나타내는 절대적인 문맥을 사용해서 커다란 실수를 저지른 베드로를 용서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달라스 신학교의 저명한 구약 교수였던 메릴 엉거(Merrill. F. Unger)는 홍수의 크기와 효과에 대해 규정한 베드로의 언급에 대한 심각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때의 세상이라고 베드로가 묘사하는 홍수 이전 시대는 분명 이제라고 묘사된 하늘과 땅(베드로 후서 3장 7절)과 기후적으로나 지질학적으로 분명다르다. 이 말씀은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여기고(베드로 후서 3장 4절)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조롱하는 대중의 회의적인 시각에 대한 사도로서의 강력한 경고의 발언임이 분명하다. 어리석은 대중들의 동일과정설에 대한 믿음에 대항해서 베드로 사도는 노아 홍수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초자연적인 대격변의 진실성을 주장한다.
따라서 베드로후서 3장의 말씀은 지리학적으로 전세계적인 홍수였음을 강력하게 증거하는 신약의 구절이다. 그렇게 강력한 베드로의 논증을 뒤엎거나, 그렇게 엄숙하게 경고하면서 사람들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는 그보다 더한 대격변은 없는 것이다.
조덕영 목사(창조신학연구소, 조직신학, Th.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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