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적 종말론은 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시한부 종말론에서 문제가 된다. 시한부 종말론은 세대주의를 근간으로 파생된 종말론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세대주의는 주로 인류 역사의 세대 구분과 문자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본으로 한다. 대개 여섯에서 일곱 세대로 구분하는 세대들은 문자적 일천 년을 기본으로 역사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시한부 종말론의 딜레마에 다다르게 된다. 그래야 문자적 천년왕국(계 20:2-7)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세대 구분은 젊은 지구론의 창조과학과도 커넥션을 가질 수 있는 데 건국대 고 쥬영흠 박사가 창조과학 운동을 세대주의적이라고 한 것이나 마크 놀이 창조과학을 과학적 세대주의라고 한 것이 모두 이 두 운동의 종말론이 서로 창조 연대 육천 년이라는 일치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회복 운동을 하고 있는, 과거 자신이 근본주의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긴 창조과학회 전 회장 송만석 박사(ft. 메시아닉 쥬)나 대표적 세대주의자인 홀 린세이 책을 읽고 회심했다 간증했던 초대 창조과학회 회장 김영길 박사도 일부 세대주의종말론적 경향이 보인다. 온누리 교회(담임 이재훈 목사)가 송만석 장로와 결별한 것도 교회가 송 장로의 세대주의적 예루살렘 회복 운동을 성경적으로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홀 린세이의 <대유성 지구의 종말>The Late, Great Planet Earth은 어떤 책이었을까?
홀 린세이는 세대주의의 본산 달라스신학을 나오고 대학생 선교회 출신 개신교 저술가였다. 그가 1970년 출간한 이 책은 세대주의 종말론 서적이었다.
유성이나 혹성(일본풍의 언어)이라는 말은 합당한 번역이 아니기에 지금 번역을 한다면 <대행성 지구의 종말> 쯤으로 번역해야 할 듯하다.
주요 내용으로는 (1) 냉전과 제3차 중동전쟁의 불안한 정세 가운데 붐을 타 1988년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암시(이스라엘 독립 1948+40=1988년). (2) 이 때 강대국의 이스라엘 침공, ‘동방의 임금’은 중국(2억 여명 군사 동원 가능 유일국가?). (3) 따라서 갑작스런 휴거는 7년 대환란 전인 1981년 경 일어났어야 함! 전 3년반과 후 3년반으로 나뉘는 대환란, (신)바벨론의 등장과 적그리스도의 세계 지배, 짐승의 표, EU 열발가락 설 등이 있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 선정 1970년대 비소설 부문 최고의 베스트셀러. 1970년 대에만 7백만부 이상 판매. 지금까지 수 천만부 발간이 되었으므로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세대주의 신학은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과 많이 다르다는 점에서 신학적 해석 문제가 있다. 즉 자의적인 해석의 경향이 자주 보인다. 당시 베트남전쟁, 정치 불안, 냉전의 공포와 불안한 중동정세 등은 신자들을 향한 종말론적 예언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국내에서도 한국교회에 큰 타격을 입힌 '19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의 휴거 주장' 사태로 이어졌다.
이렇게 문자적 천년왕국을 믿는 세대주의자들은 지구가 창조된 지 이미 문자적 6천 년을 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인류 휴거와 종말이 곧 올 거라는 조바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재림에 대한 무리한 소망은 재림의 재촉과 초조함으로 다가온다.
이 같은 세대주의적 갈망은 종말에 대한 간절한 기도 속에서 신비주의적 합일의 체험을 주장하는 일부 시한부 종말론자들을 양산하게 된다.
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로 해석하여 이스라엘 독립의 해인 1948년에 희년(50년)이나 이스라엘 포로 귀환 기간(70년)을 합산하여 1992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18년 등을 재림과 휴거의 때라고 주장한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있었다.
재림의 갈망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재림의 때와 시(時)를 규정하는 이 같은 시한부 종말론이 문제인 것이다. 종말을 갈망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무리한 환상적 신비 체험을 재림이나 휴거의 날에 꿰맞추려는 무리한 집착의 경향을 보인다.
이들 시한부 종말설들은 모두 건전치 못한 세대주의의 파급 효과라 할 수 있다. 세대주의에 대한 지나친 확신이 급박한 휴거에 대한 확신으로 나타나는 과정에서 좀 더 명확한 표적으로서의 신비 체험이 동원되게 되는 것이다. 비성경적인 주관적 시한부 종말론은 이렇게 신비주의와 조우하게 된다.
세대주의 신학도 21세기 들어 래디컬한 시한부 종말론의 부작용을 인식하면서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다.
조덕영 교수(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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