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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신학과 철학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 기독 실존철학의 아버지 키엘 케골(키에르 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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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엘 케골©위키

 

"회피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인 것은

군중 속에 숨어서 하나님의 감독을 피하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개별자의 음성으로 듣기를 회피하려는 시도"

"각 사람은 개별자로서 하나님께 결산보고를 해야"

(Purity of Heart is to Will One Thing, London, 163)

실존주의

인간을 ‘신 앞에 선 단독자’라 한 기독실존철학자 케엘 케골(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은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는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라 한 장 폴 사르트르와 더불어 인간의 심연과 본연의 존재를 드러내려 했던 대표적 실존철학자였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 Jean Wahl, 1888~1974)는 인간 전체의 본질보다 인간의 삶과 내면을 중시한 철학이다.

사르트르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라 한 이유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먼저 실존한 다음 세계 안에서 서로 만나고 세계 속에서 문득 모습을 나타냈다가 그 후에 정의 된다고 했다.

따라서 인간 중심의 이 사상은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무신론을 말하는 광범위한 주제들과 저자들이 포함된다. 또한 실존주의가 인간의 음악, 미술, 문학, 연극, 시, 정신분석 등 다양한 인간 문화와 예술 활동이 이 사상을 전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된 것도 이해가 된다.

​실존주의는 외부 사물이 인간 주체 안에 현상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탐구한 현상학(하이데거 등)에 영향을 받은 철학의 분야라 할 수 있다. 또한,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idealism, 인간의 체계적 이해, 사물에 본질은 없고 사물에 대한 관념만 있다)과 콩트의 실증주의(모든 것은 과학적 실증이 중요하다)를 반박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실존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인간이 헤겔이 이해하는 것처럼 그렇게 체계적 존재가 아니고 구체적인 일상생활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강조하고 있다. 즉 실존주의는 때로 구체적 삶을 강조한다.

이것은 실존주의가 추상적 이론 철학을 위주로 했던 근대철학의 주류를 비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존주의의 관심은 인간의 모든 삶 즉 본질, 내면, 불합리, 부조리, 고뇌, 두려움, 죽음, 소외, 선택 앞에 놓인 인간 등으로 확장된다.

사르트르는 33세에 발표한 자신의 소설 <구토>의 주인공 로캉탱을 통해 실존주의의 주요 관심들을 모두 드러낸다(시인 고 조상기 동덕여대 교수의 작품 감상이 실렸던 1975년판 <구토> 참조).

실존주의는 하나의 철학사상이라기 보다 하나의 정신적 운동이었다. 그것은 이 철학사상이 등장한 시대적 분위기, 즉 이차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지배했던 서구 과학문명의 폐해를 직면하는 시대적 반성의 분위기와 크게 부합되는 점에서 그렇다. 즉 실존주의는 서구의 과학문명 쇠퇴의 전주곡이고, 서구문명의 위기의식과 보조를 같이 한다. 다시 말하면 실존주의는 합리주의에 대한 반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실존주의는 인간의 본질을 부정한 대신 인간 개인의 절대성과 고유성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인간 중심적 사상이다.

실존이라 번역되는 existence란 단어는 합리론 체계에서 인간의 내면, 심리적 인식을 고찰해서 관념적 본질을 발견하려는 것과는 달리 그 체계가 밖으로 나온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를 중시한다.

실존주의가 철학에서 싸르트르에게 오면서 문학과 예술 등으로 확장 또는 변형이 이루어진 것은 실존주의가 가진 본질적인 인간 중심 사상이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합리론적 체계가 인간보다 인식의 대상인 법칙에 매인 하나의 기계로서의 자연, 또는 객체/대상에 주목하고 그것을 다루는 사람 그 자체에 대해 관심두지 않으므로 인간은 강조하는 것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음을 비판한다.

인식의 주체는 단지 인식하는 기계, 거울일 뿐인 것으로 여겨진다. 또 본질, 원칙, 원리란 사실상 구체적인 사실들의 이론적 추상일 뿐, 오히려 삶을 왜곡하고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할 수 있다.

기독교 실존주의

기독교 실존주의는 어거스틴, 파스칼 등까지 거슬러 올라가려 하나 일반적으로 키에르 케고르(1813-1855)가 기독교 실존주의의 아버지로 불려진다. 그는 서구철학에서 흔히 도외시되었던 파토스적 인간에 주목하고 인간의 불안, 죄, 절망, 허무, 공포, 죽음을 주제로 삼았다.

그는 인간을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라 했으며.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 "가장 아름다운 행복 속에도 절망은 둥지를 틀고 있으며 모든 노력과 수고의 배후에는 정신적인 절망에의 짐이 더해가고 있을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도 키엘 케골의 말이었다<죽음에 이르는 병>.

이 같은 키엘 케골의 실존주의는 죄와 죽음이라는 유한한 인간의 한계 속에서 싹텄다고 볼 수 있다. 루터파 교회가 뿌리깊은 코펜하겐 출신의 키엘 케골은 7남배 중 막내로 태어나 위압적인 부친 밑에서 성장한 후 루터파 교회에서 목회를 한다.

하지만 케엘 케골의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부친은 광야에서 양을 치다 겪은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을 저주한 일이 자신이 구원 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일로 판단하고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았던 인물이었다. 이것은 막내 케엘 케골의 삶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케엘 케골은 약혼(1837)과 파혼(1841)을 겪으며 실존적 인간 내면 속으로 들어간다. 파혼의 이유는 지금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요절(1855년 가을) 하기까지 12년 동안 그는 20권이 넘는 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때도 그는 언론과의 심한 갈등 가운데 극한 마음 고생 가운데 지낸다.

이 같은 배경들이 아마 그의 신앙과 철학과 학문을 결정했을 듯하다. 역설적으로 고통에 대해 신앙인들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설로 수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케엘 케골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케엘 케골이 다양한 저작(<이것이냐 저것이냐>, <반복>, <인생 행로의 제 단계>, <기독교의 실천> 등)을 통해 "인간은 어떻게 참 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에 천착한다.

그는 참 된 자아가 되기 위해 인간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보았다.

첫째는, 정신적 육체적 향락을 목적으로 사는 일반적 삶이다. 사람들이 단순히 미적, 취미들을 향유하고 즐기는 단계다. 이 단계서 사람들은 삶의 참 된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둘째, 사람이 윤리에 대한 관심과 도덕적 결단 속에 살아나는 단계다. 키엘 케골이 동경하던 단계였으나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던가. 여기서 그는 참회하는 인간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셋째 단계는 참회의 단계였다. 이 단계는 윤리적으로 소망이 없는 단계다. 후회와 고통으로 자기가 자신을 정죄하는 단계다.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을 보라! 자식을 바치는 도덕적으로 그릇된 상황이다. 일시적 윤리 중단 상태다. 명령과 복종만이 있다. 이성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신앙의 순종만이 존재한다.

여기서도 역설이 있다. 신앙은 절망의 비약이다. 즉 절망이란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믿음의 피난처를 찾으려 방황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 지점에서 이삭을 되 찾을 수 있었다. 인간은 절망에 이르는 병인 죽음을 늘 맞대고 사는 존재에 불과하다. 이렇게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 서는 것이다. 여기에 신앙의 파라독스가 있다.

키엘 케골은 인간 실존을 강조하면서, 전통적 신앙이나 교회관이나 가정의 경건성과 유비와는 조금 멀어진 독특한 기독교 신앙관을 가진 기독철학자로 남게 되었다 할 수 있다. 국내 키엘 케골 학회에 기독 학자(신학, 철학 등)들이 많은 것은 그의 진지함과 내면적 성찰 속에서 여전히 신앙의 광맥을 찾고자 하는 학문적 열심이 뜨거움을 알 수 있다.

검은숲©조은선

"인간을 세계 안에 내던져진 존재"라 한 검은숲의 실존철학자 하이데거의 통찰도 그의 배경이 기독교였음을 배경으로 한다. 헤겔의 합리적, 사변적 사고와 반대로 역설의 진리 속 실존주의는 해답을 찾아간다.

이 인간이 지닌 역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키엘 케골이 찾으려 했던 기독교 실존주의자라 할 수 있다. 헤겔이 절대자와 객관성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 한 반면. 키엘 케골은 상대성과 주체성과 역설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조덕영 교수(조직신학, T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