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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신학과 철학

스콜라주의의 두 유형, 실재론과 유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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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라주의의 두 유형으로서의 실재론과 유명론

실재론(realism)

 

인간의 경험 밖에 참된 사물이나 보편적 진리가 있을까? 실재론은 그렇다고 말한다.

 

실재론은 크게 존재론적 실재론과 인식론적 실재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인식론적 실재론은 관념론(idealism)과 대응하고 존재론적 실재론은 유명론과 대립하는 이론이다.

 

플라톤(주전 427-347)은 보이지 않는 실재의 이데아(Idea) 세계가 존재하고 우리가 눈으로 보는 감각 세계는 형상들의 그림자라고 가르친다. 이 이데아는 영구적 본질이나 진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후에 질료(質料, Matter)에 대응하여 형상(形相, Form)이라 알려진 용어이다. 이 보편적인 것들은 개별적 사물 이전(ante rem)dp 실재한다.

 

예를 들면 ‘사랑’의 이데아도 있고, ‘바람’의 이데아도 있을 것이다. 이 이데아적 형상들은 비물질적이고, 불변하고 영원한 반면 나타난 현상들은 물질적이며 소멸하고 덧없는 것들이다. 즉 플라톤에 의하면, 우리 마음속에는 보편적인(universals) 이데아의 세계가 있는데, 우리는 그런 개념들 때문에 사물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신플라톤주의자인 어거스틴(354-430)이 볼 때 보편적인 것들은 개별적인 것들의 초월적이고 본질적이다. 따라서 이것들은 하나님의 창조 속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출발한 실재론은 신학적으로는 초기 스콜라주의 시대(약 1200-1350년경)를 지배하게 된다.

 

캔터베리의 안셀름(1033-1109)은 플라톤의 실재론을 배경으로 이데아의 세계에 보편적인 개념이 실재한다고 믿고 그것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논증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대어록(對語錄, Proslogion)에서 누군가 완전한 존재("하나님")의 관념을 갖고 있고 그 용어를 사용한다면 그는 분명히 더 위대하거나 더 우월한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존재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그가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있던 존재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나타나게 된다면, 그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닌 것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란 개념 자체에 최고의 존재라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안셀름의 존재론적 증명(ontological argument)이다.

 

실재론을 수용한 이와 같은 안셀름의 믿음은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Credo ut intelligam)는 성 어거스틴의 입장에 서게 된다. 이를 이어받은 대표적 스콜라학파로는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로 대표되는 토마스주의(Thomism)와 스코틀랜드의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266-1308)의 영향을 받은 스코티즘(Scotism)이 있다.

 

 

유명론

 

후기 스콜라주의(약 1350-1500년경)를 지배하는 유명론은 실재론에서 말하는 보편자(Universal) 개념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유명론은 실재론이 말하는 “보편자는 개별 사물에 앞서 존재한다”(universalia ante rem)를 거부하고 “보편자는 개별 사물 뒤에 존재한다”(universalia post rem)는 명제를 택한다. 로스켈리누스(Roscellinus)를 거쳐 윌리엄 오컴(William of Ockham, 1285?-1349)은 유명론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유명론자들은 이름뿐인 보편적 개념보다는 개별자(particular)에 집중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프란시스 쉐퍼도 지적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바로 그 개별자이다.

 

사실 유명론 자체는 신학에 어떤 직접적 연관성이 있거나 어떤 특정한 신학적 의견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문이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관련을 맺기 마련이다.

 

초기 실재론이 신앙 변증에 나선 반면 초기 유명론은 해석상 보편자를 거부하는 그 사유와 논지의 특성상 삼신론(tritheism)적 요소와 보편적인 무형의 참된 교회에 대한 거부, 원죄 교리에 대한 회의 등으로 인해 중세 교회와 불편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범신론적이며 보편적 인간 구원과 전 인류의 불사성(보편성) 등, 이질적 주장이 담긴 플라톤의 실재론도 중세 교회와 충돌 요소는 많았으나 그럼에도불구하고 왜 중세 교회가 플라톤의 실재론을 더 친근하게 여겼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유명론과 실재론은 그 철학적 주장에 담긴 신학적 요소들로 인해 종교개혁과 그 이후 신학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조덕영 교수(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