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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신학과 철학

논리실증주의, 반증가능성, 상대주의, 토마스 쿤 그리고 창조론과 진화론(12-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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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과학 철학

1) 논리실증주의

(1) 논리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일체의 주장 무시

(2) 1920년대부터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미국 등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철학 사조. 논리 경험주의(Logischer Empirismus)와 비슷한 말로 쓰이기도 한다. 

(3) 오스트리아의 빈을 중심으로 결성된 빈 학파(Wiener Kreis)가 대표적.

2) 반증가능성

(1) 칼 포퍼

(2)논리 실증주의를 낡은 이론으로 만듬

※ 반증 가능성(反證可能性, Falsifiability)이란?
칼 포퍼(Karl R. Popper, 1902. 7.28- 1994. 9.17)
(1) 반증 가능성이란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기준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즉 어느 가설이 반증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 가설이 어떠한 실험이나 관측에 의해서 반증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학적 진술의 자격이 있으려면 반드시 반증될 여지를 구획의 기준으로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것을 시험 가능성 또는 반박 가능성이라고도 합니다.
(2) 종전에는 과학적 진술이란 단지 경험에 의해 그 진정성을 알 수 있다고 보았는 데 칼 포퍼(Karl R. Popper, 1902. 7.28- 1994. 9.17)에 의하면 반증 가능성이 있는 진술이 과학적 진술이라고 역설적으로 본 것이지요.
(3) 예를 들어보면, 이 이론에 따를 경우 순수 존재적인 성격의 형이상학적 이론들, 프로이트, 아들러, 칼 융의 정신분석이론, 점성술 지식 같은 이론들은 반증 가능하거나 시험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이런 영역들은 과학적 영역이 아닌 유사과학(pseudoscience)에 속하는 것입니다.
(4) 칼 포퍼에 따르면 창조과학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측이 불가능하고 시험이 불가능하며 재현 불가능하다는 면에서 반증 가능하지 않은 영역이 되는 겁니다.
(5) 따라서 창조과학이라는 말보다는 창조론, 창조신학, 기원에 대한 과학철학 등이 어울리는 말이지 창조과학이라는 말 자체는 스스로 언어적 모순(반증가능하지 않은 '창조'와 반증가능한 '과학'이라는 서로 충돌하는 단어의 결합)에 부딪히게 되는 겁니다. 창조과학은 언어적 충돌 뿐 아니라 <창조를 과학> 속(아래)에 묶어둠으로 창조에 대한 신학과 철학과 학문의 영역을 차단하고 폐쇄하여 스스로 <과학 서적이 아닌 성경>과 <과학이 전부가 아닌 신앙과 삶>에 대해 해석의 풍성함을 버리거나 잃게될 가능성에 빠지게 됩니다. 베이컨이 말하는 자체 '동굴화'하게 되는 것이지요.
(6) 이것이 창조과학의 영역이, 신앙 학문보다는 신앙 운동의 영역에 늘 머물고 신앙의 풍성한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의미를 깨닫고 이제는 풍성한 신앙의 길(요 10:10; 엡 4:14; 히 5:12-14)로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게 초창기 '창조과학 운동의 중심'에 섰던 제가 간곡히 기도하는 기도제목입니다.
(7) 창조과학 운동은 초창기 분명 장점이 많은 운동이었습니다. 한국교회 많은 공헌을 남겼습니다. 무신론적 우연주의가 팽만하던 한국에 과학도들이 신앙의 깃발을 높이든 역동적 신앙 운동이었습니다. 즉 신앙의 입장에서 시대적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장성한 자의 모습>(히5:14)으로 서야할 거라고 봅니다. 창조론오픈포럼이 탄생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8) 또 다른 예를 들면 ‘귀신이 있다, 없다’는 것을 누가 반증할 수 있을까요? 천국이 어떻고 지옥이 어떻고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날았다는 것을 누가 검증 하거나 반증할 수 있을까요? 따라서 이런 것들도 모두 과학적 진술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이런 것은 신학이나 심리학의 영역에 들게 되는 겁니다.
(9) 가령 뉴턴이나 아인시타인의 중력 이론은 반증이 가능합니다. 요컨대 반증 가능 기준에 따르면 이런 것들은 과학이 됩니다.

3) 상대주의

(1) 세상의 모든 일은 단정적으로 옳다 그르다 말 할 수 없다

(2)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인간(개인)은 만물의 척도

(3) 여러 가지 다 옳을 수 있다

(4) 반론: 옳은 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회의주의)

4) 칼 포퍼와 과학적 방법

(1) "다윈론은 시험될 수 있는 과학 이론이 아니다"(1976, 포퍼)

(2) "나는 자연선택에 관한 내 마음을 바꾸었다"(1978, 진화론을 과학 이론으로 인정)

(3) 포퍼는 진화론이라는 가설에 대해 물리적 증거와 일치하는 지, 그 가설이 미래의 발견에 따라 반증될 수 있는 지를 고민한 결과 진화론을 반증 가능한 논리로 인정했다고 보임.

(4) 상대주의 속의 창조론: 과학사학자 토마스 쿤(1922-1996)의 <과학혁명의 구조>(1962)-> 

① 반증주의 등 전통과학은 금지 목록을 설정하여 과학의 정수를 추출한다고 하나 실제 어떤 과학도 이런 모형과 같이 되지는 않는다. 

② 과학발전의 중심에는 전문화된 과학자 집단이 있다. 이들의 패러다임이 중요.

③ 과학혁명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상 과학을 만들어낸다. 포스트모더니즘적!

④ 따라서 포퍼에 반대하여 1919년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 시험과 같은 것은 과학에서 비교적 드믄 혁명 과학의 보기로 소개.

⑤ 전통과학의 의미의 불변성에 도전한 인물(점성술은 과학인가? 아닌가?) 

토마스 쿤

(5) 쿤의 패러다임과 정상과학에 대해 

① 패러다임이란 과학사학자 토마스 쿤(Thomas Kuhn)이 주장한 이론이다. 쿤은 과학의 통일성을 부정한다. 그러면서 과학이 일직선으로 점진적 발전을 해온 것이 아니고 한 시대의 과학의 틀이 한계에 봉착하면 다른 체계가 대체해왔다는 패러다임(paradigm)이론을 주장하였다. 

② 쿤에게 있어 과학혁명이란 하나의 패러다임이 그것과는 양립할 수 없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전체 또는 부분적으로)되는, 누적적이 아닌 변화의 에피소드를 가리킨다. 그리고 과학혁명들 사이에서 과학자들이 정상적으로 행하는 안정된 작업을 정상 과학(normal science)이라 하였다. 즉, 쿤에 의하면 정상과학은 과거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히 기반을 둔 연구 활동으로 패러다임 아래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정상과학은 이론과 실험 사이에서 정확성을 높이는 활동, 더 많은 현상들을 포괄하도록 패러다임을 확장하는 활동, 보편적 상수의 값을 측정하는 활동, 패러다임을 분명하게 표현해 줄 정량적·수학적 법칙을 만드는 활동, 어떤 분야가 가장 연구할 가치가 있는 가를 모색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③ 다시 말하면 정상 과학의 상태에서 확립된 패러다임에 따라 패러다임이 제공한 현상과 이론을 명료화 하는 것이 과학자들이 지향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결국 패러다임을 연구하는 한 연구는 세계관과 미적 가치를 포함한 패러다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가치 중립적이라 보기 힘들어진다.

④ 그런데 문제는 이 패러다임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패러다임이란 한 공동체의 일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이론, 법칙, 방법, 지식, 믿음, 가치, 전통, 기술 등의 전체적 집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과학의 기초가 궁극적으로 사회적이요 상대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과학도 다양한 세계관에 의존한다는 일종의 상대주의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그래서 쿤은 자그마치 스물 두 가지 의미로 패러다임을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⑤ 오늘날 쿤의 생각은 자연과학 뿐 아니라 사회학, 과학사, 철학, 과학철학, 경제학, 정치학, 심리학, 언어학 등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대적 고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과학의 포스트모던 화에 있어 쿤의 역할은 결코 과소평가되지 않는다.

⑥ 아직 패러다임의 정의가 정확하지도 않다는 면에서 쿤의 이론은 다분히 포스트모던적이다, 

⑦ 포퍼의 경우 과학의 발전은 점진적인데 비해 쿤이 말하는 과학의 발전은 패러다임이 변하면 대단히 급진적으로 일어난다. 즉, 과학은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과격하기까지 하다. 지적 설계가 자연신학에 대한 재검토로부터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기존 과학의 무신론적 틀에 대해서 볼 때는 대단히 혁명적인 면도 있다.

⑧ 패러다임은 분명 과학도 유동적이고 혁명적 변이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리에 수긍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복음은 새로운 진리를 찾지는 않는다. 과학의 포스트모던 화에 공헌한 패러다임 이론은 과학 혁명의 흐름을 예견하기에는 유용한 이론이나 그 자체를 복음주의는 진리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와 무관한 개념이라고 패러다임 이론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정상적 과학이 지속되면 과학자들의 모든 과학적 행위의 기준점이 되는 패러다임이 생긴다. 그리고 당연히 이 패러다임을 따르는 과학자 집단이 생겨난다. 이것을 쿤은 과학자 사회(scientific community)라 불렀다. 즉, 무신론적 윤리나 진화론적 윤리가 패러다임화 한다면 그것이 과학자들의 과학적 행위의 기준점이 된다는 말과 같다. 복음주의는 복음과 복음 전파의 사명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 동시에 반(反) 기독교적 과학자 사회가 조성되는 것을 늘 경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조덕영 교수(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