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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성경 관련 변증(질의 응답)

진화론과 천년왕국 후천년설은 관련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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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렇습니다. 

 

4 가지 천년왕국설 가운데 진화론과 연관된 천년왕국설은 후천년설입니다.

2. 대표신학자

 

1) 대표적 신학자로는 데이빗 브라운, 삼대 핫지로 불리우는 구 프린스턴의 Charles 핫지·A. A․ 핫지·C. W. 핫지, A. H. 스트롱, B. 워필드, 로레인 뵈트너(이 견해에 대한 대표작은 Loraine Boettner의 ‘천년왕국'The Millennium), 감리교 계통의 알미니안 신학자들, 천년왕국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2) 후천년을 주장한 학자들은 칼빈주의와 웨슬리안알미니안 신학자가 섞여 있고, 보수주의 신학자와 자유주의 신학자의 구분도 없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3. 후천년설이란

 

1) 후천년설은 천년왕국이 이 세상에 도래한 후 예수님께서 재림한다는 이론입니다(왕국 후 재림).

2) 즉, 복음전파와 성령의 역사로 전 세계가 성화되고 기독교화되리라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적절한 때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견해이지요.

3) 따라서 후천년설은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역사적 성화를 긍정적, 낙관적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4) 무천년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무천년설이 세상의 끝이 다가와도 여전히 무법과 신을 부정하는 사상이 창궐하고 적그리스도가 출현한다고 보기에 세상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반면, 후천년설은 인간과 세상에 대해 긍정적이며 낙관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성경을 좀 더 인본적이며 진화론적 사상에 더 가깝게 보는 입장입니다.

5) 물론 후천년설에서도 말세에 죄가 완전히 제거된다고 보지는 않으나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이라 보며, 전천년주의자들처럼 말세에 유대인들의 큰 개종(롬 11:25-26)을 예측하나, 전전년주의 세대주의자들처럼 유대의 정치적 왕국 회복까지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6) 요즘의 지구촌 시대적 상황을 보면 후천년설에서 주장하는 메시아 재림 전에 온다는 복음의 황금 시대는 아직 오직 않았다고 보여집니다.

7) 그렇더라도 후천년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마태복음의 말씀(마 16:18, 마 28:18-20)이 단순한 복음 전도를 넘어 교회를 이기지 못하는 지옥 권세와 그리스도 재림 전에 완성될 온 백성의 효과적인 복음 전도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 낙관적 미래를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에 대한 희망적 기대인 것이지요.

8) 뵈트너는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 세계가 개선되었고 도덕적 영적으로 큰 진전이 있었다는 점에서 후천년설을 옹호합니다. 노예 제도 폐지, 일부다처제 폐지,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지위 향상, 무지와 빈곤의 타파, 의료 시설 개선, 성경 번역과 반포의 확산 등이 모두 그 증거라는 것이지요.

9) 진화론이 근본적으로 엔트로피 감소를 전제한 개선과 변이, 사회적 진보, 발전 속 인류 미래가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사회적 진화, 문화 진화의 속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후천년설과 보조를 같이 한다고 보여집니다.

4. 후천년설에 대한 반론

 

1) 성경 말씀처럼 복음은 분명 모든 족속 가운데 지속적인 전파가 되고 있으나, 역사 속 인류의 죄성이 집단적으로 극적 변화나 개선된다는 성경이나 역사 속 증거는 없으며 오히려 인류 집단의 광기와 스트레스는 오히려 그 강도가 완화되고 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2) 오히려 긍정적 미래 천년의 황금 시대를 가리킨다는 구절들(시 2:8; 렘 31:34; 사 65:17-25)은 천년왕국이 아닌 최종 천국의 상태(새 하늘과 새땅)를 가리킨다고 보입니다.

3) 재림 이전 세상은 황금 시기가 도래한다기 보다 오히려 여전한 환난(마 24장)과 배교(살후 2장)가 난무한 세상에 더 가깝다고 보여집니다.

4) 아마겟돈 전쟁(계 16:13-16)이나 곡과 마곡의 전쟁(계 13:36-43)이 기다리고 있으며 예수께서도 알곡과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그대로 두라 말씀하신 것처럼 후천년설에서 말하는 진화론적 황금 시대는 그저 유토피아에 그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여집니다. 선과 악은 추수 때까지 공존할 뿐인 것이지요.

조덕영 교수(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