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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성경 관련 변증(질의 응답)

아브라함, '평강 왕' 멜기세덱과 '팔레스틴 왕' 아비멜렉 만남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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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만난 두 지도자 멜기세덱과 아비멜렉이 주는 교훈

아브라함과 세계 3대 종교

아브라함은 세계 주요 종교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이 시작되기도 전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난 인물(창 12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이 세 종교의 주요한 모티브가 되어 있다.

성경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대하 20:7)요 유대인들의 조상으로 묘사한다. 후발 종교인 이슬람조차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요 무슬림이라 기록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본래 이름은 아브람이었다. 창조주 하나님은 계약의 갱신과 함께 그의 이름을 "열국의 아비"로 직접 개명해 주었다.

'평강 왕' 멜기세덱의 신비

 

이 아브람이 멜기세덱과 만난 사건은 소돔과 관련되어 있다. 소돔에 살던 아브람의 조카 롯은 중동세계대전 당시 그돌라호멜 연합군에 의해 재산을 약탈당하고 포로가 되었다. 아브람은 개인 사병 318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야음을 틈타 네 왕을 기습 공격한다. 다메섹 북쪽 호바까지 추격한 아브람은 조카 롯과 롯의 식솔들과 약탈당한 재물들을 모두 되찾아왔다. 아브람이 적은 인원의 사병으로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기습 공격하여 성공한 것은 분명 단순한 사건이나 우연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었다.

 

The Church of Saint Peter, Leuven, Belgium에 위치한 Dieric Bouts 의 그림 "아브라함과 멜기세덱" ,1464-1467, /출처www.heiligenlexikon.de

성경은 아브람이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오면서 소돔왕 뿐 아니라 '살렘왕'('평강의 왕)이자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나의 왕은 세덱'이라는 뜻, 세덱은 문자적으로 '의')을 만난 사건을 소개한다(창 14:18).

사웨 골짜기(왕의 골짜기, 王谷)에서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람을 축복하며 아브람의 승리가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린다(창 14:17-18). 우상숭배가 팽배하던 당시 가나안 땅의 다신교 상황 속에서 멜기세덱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엘 엘욘')을 우주의 창조주(창 14:19)로 간주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에 아브람이 전리품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리므로 이 사건 전반은 성경 전체를 해석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창 14:19-20절 참조). 즉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시작한 날도 생명의 끝도 없는 ‘왕이요 제사장’인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으로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히브리서 7장 참조).

Antonio Tempesta (1555–1630), 시딤계곡(사해지역)의 전투, 9왕의 전투 또는 그돌라오멜의 학살이라 불리는 전쟁을 묘사한 작품, 아브라함이 조카를 붙잡은 적을 물리치는 장면, 1613, etching print /출처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 C.

레위의 조상 아브라함보다도 더 뛰어난, 즉 아론 계열의 제사장보다 탁월한 제사장이 멜기세덱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 좋은 언약의 보증(히 7:22)이 되신 영원히 계신 예수(히 7:24), 즉 그리스도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이 된 멜기세덱은 아브람보다 뛰어난 존재로 아브람을 축복했으며 십일조를 기꺼이 받았던 것이다(히 7: 4-10). 이 아브라함과 멜기세덱 만남 사건의 신비를 이해하는 것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을 가르는 핵심적 신앙의 모티프이다.

'팔레스틴 왕' 아비멜렉

이후 성경 역사 속 아브라함과 이삭은 가데스와 술 사이 곧 지금의 가자 지역 근처 그랄 땅을 다스리던 블레셋 왕 아비멜렉(Abimelech, ‘아버지는 왕<멜렉>이시다’는 뜻)과 대면하였다. 아비멜렉은 아마 애굽의 바로(Pharaoh)나 로마의 가이사(Caesar)와 같은 블레셋 통치자의 명칭이었을 것이다.

블레셋 문자? Deir Alla의 점토판, 1964 년에 선형 문자로 새겨진 점토판은 Transjordan의 Deir Alla에서 H. J. Franken 교수가 발견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점토판이 블레셋의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토판이 블레셋 도자기와 관련하여 발견되었기 때문이다.(출처 Biblical Archaeology Society Online Archive),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누이로 알고 그 미모에 반한다. 아비멜렉은 그녀를 취하려 했으나 꿈에 현현한 하나님의 경고를 받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지자라 칭하면서 그가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하는 자라 소개한다.

창조주 하나님이 블레셋 통치자 앞에 직접 현몽하여 대면하였다는 것은 대단히 미스터리한 사건이다. 하나님은 모든 세상과 모든 인간의 창조주 아니신가. 우리 인간은 얼마나 자기중심으로 사람들을 편 가르기 해왔던가. 하나님은 블레셋의 하나님이기도 한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그녀를 돌려주며 자기 땅에 거하도록 허락한다(창 20:1-18).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삿 20:1,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 빨간 선)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양과 소와 노비뿐 아니라 은 천 개를 주며 블레셋 땅 어디든 아브라함 보기에 좋은 곳에 거할 수 있는 편의를 베풀었다. 이때 아브라함이 기도하매 하나님은 막혀있던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胎)를 열어 출산의 은혜가 임하게 하였다.​

브엘세바의 유적©조덕영

이 사건 속에서 아비멜렉은 자기 목숨을 위해 아내 사라를 블레셋 통치자에게 바치려던 졸장부 선지자 아브라함보다 훨씬 더 너그러운 인물로 묘사된다. 이후 자기 종들과 아브라함의 종들이 우물로 인해 분쟁이 생기자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고 그곳을 ‘브엘세바’(‘맹세의 우물’)라 했다(창 21:22-34). 왕국 시대 이스라엘 영토의 남방 한계선인 곳이 바로 이곳 브엘세바였다(삿 20:1; 삼상 3:20; 왕상 4:25).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삶의 터전이었던 바로 그곳이다.

팔레스틴 후손과 아브라함 가족 사이의 긴장과 화해는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정치적 통치만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을 뿐 팔레스틴 땅의 주요 지역인 요르단 서안과 가자 지구는 팔레스틴과 아랍인들이 다수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소수로 느껴질 정도다. 헤브론도 예수님 탄생지 베들레헴도 예루살렘도 심지어 예수님 유년의 고향 나사렛조차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곳의 팔레스틴 인들도 평범한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것처럼 정많고 소박하다. 마치 아비멜렉이 아브라함보다 더 정많고 너그러운 인물처럼 보이는 것과 유사하다. 필자도 그것을 직접 체험했다. 기독교 신앙도 팔레스틴인이든 유대인이든 우리 한민족같은 이방인이든 차별이 없다.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는 차별이 없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세거지였던 브엘세바에도 하마스의 포탄이 어김없이 떨어졌다. 2024년 옛 가나안 땅, 이스라엘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도한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조직신학, 작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