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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구약

죄에서 돌이킴과 이스라엘의 구원을 구하는 히스기야의 기도【김대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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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운 목사】 죄에서 돌이킴과 이스라엘의 구원을 구하는 히스기야의 기도

김대운 목사(수원경성교회, 예장 합동)

 

이사야 36-38장은 히스기야 왕에 대한 기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부름을 받아 남유다 역사 중 가장 타락이 심했던 아하스 왕 시기에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회개였습니다. 우상과 주변 열방과 같은 세속을 의지하는 자세를 버리고 오직 주님의 언약을 신뢰하고 의지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주어지는 심판과 징계에 대한 말씀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으면 바벨론을 일으켜 멸망시킨 후 70년 포로 생활이라는 무서운 징계가 임할 것이라는 경고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 무서운 징계를 통하여 이들을 강제로 돌이키게 하신 후 메시아의 오실 길을 준비하게 하시겠다는 은혜로운 계획까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메시지의 중앙 부분에 선지자는 의도적으로 엉뚱하게(?) 히스기야 왕의 기사를 삽입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세속을 의지하던 태도를 버리고 돌이킴으로 극적인 승리를 얻은 왕이었습니다. 장세훈 교수님은 『한 권으로 읽는 이사야서』에서 이런 히스기야 왕의 승리와 치료 기사는 이사야 선지자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잘 드러내 주는 소재라고 말하면서 히스기야 기사를 빌미로 이사야서가 각기 다른 세 개의 자료가 합쳐져서 편집되었다는 성경비평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셨습니다.

 

히스기야 기사 중 백미는 당연히 천사 하나를 보내서 185,000의 군대를 단박에 몰살시킨 위대한 승리와 병 고침 장면일 것입니다. 이사야서 전체 주제와 관련해서 보았을 때 이 본문은 단지 기도의 능력을 말해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이뤄놓은 공로를 내세워서 기도 응답을 받은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38:3). 하지만 이사야 38:1-8을 이사야 전체 문맥에서 들여다보면 히스기야를 다루시는 주님의 은혜의 손길을 통하여 유다를 교정하시려는 주님의 은혜로운 계획을 조명해 준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글을 통하여 사망 통보의 목적, 그의 기도의 목적과 주님의 응답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히스기야 병과 사망 통보의 목적

“그즈음에 히스기야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38:1).”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히스기야에게 갑자기 사망을 통보하셨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일대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의 선친이었던 아하스는 온갖 우상을 다 끌어들여서 예루살렘 성전은 물론 유다 전 국토를 우상으로 덮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대적인 종교개혁으로 유다를 정상으로 회복시켜 놓았습니다. 이뿐이 아니었죠? 그의 아버지가 앗수르와 맺은 조약까지 파기하면서 오직 주님만 의지하겠다는 신앙 자세를 천명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행했습니까? 주님만 의지하기보다 세속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애굽을 중심으로 한 반(反)앗수르 동맹(이사야 30, 31장, 36:6)에 참여했습니다. 자신을 배신한 히스기야를 징벌하겠다며 앗수르의 산헤립이 침공해 오자, 히스기야는 전쟁 배상금을 지불한 뒤 그냥 돌려보내려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와 책망에도 불구하고 그는 앗수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세속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주님은 아무리 선지자를 통해서 경고해도 말을 듣지 않는 히스기야를 교정하시기 위하여 이 병을 주신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 사건은 기술 순서로 보면 앗수르 군대를 물리친 후에 기록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주께서 히스기야에게 응답하신 내용을 보면,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기 전에 있었던 사건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사 38:1은 이 일이 ‘그즈음에’ 일어났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한 그즈음이 언제였을까요? 히스기야는 이 기도를 통하여 15년이나 생명이 연장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몇 년 동안 왕위에 있었는지 아십니까? 열왕기하 18:2은 히스기야 왕이 29년을 통치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일은 언제 일어났을까요? 29년에서 15년을 빼면 14년입니다. 이 사건은 그가 왕위에 오른 지 14년이 되었을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4년째 되는 해에 한 가지 중요한 사건이 더 있었습니다. 이사야 36:1입니다.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산헤립의 유다 침공이 바로 같은 해에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정확히 언제였을까요? 병고침 전이었을까요, 후였을까요? 38:5, 6절입니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성을 보호하리라.”

이 말씀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응답으로 주님은 병 고침과 함께 산헤립에 대한 승리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응답을 통해서 보았을 때 앗수르 왕 산헤립의 공격과 사망통보가 함께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아시리아의 통치자 산헤립은 패배할 것으로 예상된 후에 자신의 두 아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렇게 절체절명의 순간에 주께서 히스기야의 생명을 취하시겠다는 말씀은 말 그대로 청천벽력과 같았겠죠? 이런 순간에 그가 죽게 된다면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백성들은 말 그대로 목자 잃은 양처럼 구심점을 잃은 채 혼란 속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이런 위기 속에서 주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사망 통보를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무당들의 점괘처럼 그의 운명이 이미 정해졌으니까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을까요? 니느웨의 백성들에게 40일이 지나면 멸망하겠다는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대로 멸망하라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멸망하기 전에 돌이키라는 의도였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주어진 예언의 목적이었습니다. 만일 성경에 기록된 예언이 점괘라면 이사야 선지자나 니느웨나 그냥 멸망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목적은 언제나 그 대상의 돌이킴에 목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동일합니다. 주님은 그가 잃어버린 신앙 자세를 회복할 수 있도록 유다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그의 사망이 가까이 왔음을 예언하게 하심으로써 그의 각성을 촉구하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어지는 그의 기도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히스기야는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함으로 종교개혁을 완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 자세를 잃어버리고 앗수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주님이 아닌 세속을 의지하여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그를 고치시기 위하여 죽을병에 걸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이 병에서 회복될 수 없다는 사실을 통보하게 하심으로 히스기야의 마음을 완전히 낮추셨습니다.

이제 주께서 왜 사망을 통보하게 하셨는지 아시겠습니까? 성경 예언의 목적대로 예언 대상의돌이킴, 그의 잃어버린 신앙 자세 회복이 이 예언의 목적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

 

 

​2. 히스기야의 기도의 목적

유다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병에 걸린 히스기야는 자신이 회복될 수 없다는 예언을 듣게 됩니다. 이 예언을 전달받은 그는 절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이사야 38:2,3입니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3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그가 선지자의 예언을 듣자마자 주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의 첫마디가 무엇이었나요? 그가 종교개혁을 진행하면서 가졌던 신앙 자세, 진실함과 전심으로 주님만 의지하던 모습을 주님 앞에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주님만 전심으로 의지하며 그 어려운 일을 해냈었죠? 얼마나 많은 반대가 있었겠습니까? 온 유다와 예루살렘 전역이 우상숭배로 뒤덮여 있었으니까 거기에 수많은 이권을 가진 자들이 연결되어 있었겠죠? 그런데도 그는 주님만 의지함으로 그 어려운 과업을 수행했습니다. 선대 왕들이 제거하지 못했던 산당들까지도 완벽하게 제거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의 위협 앞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앗수르가 얼마나 두려웠는지 이사야 선지자의 반복되는 경고까지 무시할 정도였습니다(이사야 30, 31장). 그런데 그는 이 위기를 맞아서 당시 전심으로 주님만을 의지했던 진실한 신앙을 기억하면서 통곡했다고 합니다. 그는 앗수르의 위협 앞에 무너져내린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통곡하며 돌이킨 것이었습니다.

 

그가 주님의 응답을 받은 다음에 쓴 글이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9-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그는 이 병과 사망 통보의 목적이 바로 주께서 자신에게 평안과 구원과 죄로부터 돌이킴을 주시는 데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이 말씀 그대로 그는 주님만을 의지하는 신앙 자세를 회복함으로 평안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히스기야의 기도는 단순히 병 고침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세속을 의지하던 죄를 버리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기로 돌이키는 기도였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목적이 더 있었습니다. 5, 6절입니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성을 보호하리라.” 주님의 약속은 단순히 그의 생명 연장만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바로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보호, 특별히 예루살렘 성의 보호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히스기야의 기도는 단순히 자신의 생명 연장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안전에 있었습니다. 즉, 주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정리하면, 히스기야의 기도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죄에서 돌이킴과 더불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3. 주님의 응답

그는 이 어려움을 통하여 다시 온전히 주님만 의지하는 신앙 자세를 회복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세속을 의지하는 그의 잘못된 태도를 교정하시기 위하여 이런 어려움을 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죄에서 돌이켜 주님만 온전히 의지하는 모습을 회복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응답이 어떻게 나타나야 할까요? 회복입니다. 주님은 그의 병을 고쳐주셨을 뿐 아니라 당시 유다를 위협하던 산헤립으로부터의 안전도 함께 보장해 주셨습니다. 이와 함께 한 가지 표적도 보여주십니다. 38:7, 8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한 것을 네게 이룰 증거로 이 징조를 네게 주리라 보라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그림자를 뒤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가니라.”

 

아하스의 일영표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해의 그림자를 측정하는 계단을 말합니다. 쉬운 말로 하면 해시계입니다. 아하스 왕이 이 시계를 만들어서 아하스의 일영표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해의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가는 징조를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징조는 주께서 그에게 주신 약속의 확실함을 보증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병 고침과 함께 산헤립의 몰락을 함께 내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 응답은 히스기야의 기도는 단순히 자신의 병 고침을 위한 통곡이 아니었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185,000의 군대에 의해서 포위된 상태에서 랍사게의 입술을 통하여 들려졌던 산헤립 왕의 주님을 훼방했던 말들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이 징조를 통해서 보여주시며 주신 약속,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라는 말씀을 굳게 붙들기 위한 기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의 기도는 주님의 약속을 흔들림 없이 신뢰하기 위한 기도였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자신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히스기야에게 주신 약속을 시행하심으로 자신의 신실하심을 입증해 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 기도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죠? 어떤 상황에서나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흔들림 없이 주님의 뜻에 따를 수 있길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문제의 처분은 가장 지혜로우신 주님께 맡기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만 의지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길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의 도우심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5:14,15 말씀입니다. “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아하스의 일영표에서 해그림자가 십도나 뒤로 물러가는 표적이 나타났다면,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확실한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기도할 때 주께서 들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히스기야처럼 세속을 의지하던 태도를 버리고 주님만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주님만 의지함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살펴본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히스기야의 병과 사망 예언의 목적은 그를 돌이키는 데 있었습니다.

(2) 히스기야의 기도의 목적은 자신의 돌이킴과 더불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안전에 있었습니다.

(3) 이렇게 돌이킨 히스기야에게 주님은 15년이란 시간과 함께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에 더하여 징조까지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뜻에 따라서 기도할 때 이러한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늘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리할 때 주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훈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단행했으나 앗수르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한 신앙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세속을 의지하던 히스기야를 교정하신 주님은 우상과 주변 열강을 의지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언약 백성을 바벨론을 통하여 징계하심으로 주님만 의지하는 백성으로 교정하신 후 메시아의 오실 길을 준비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유다를 다루셔서 교정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세속이 아닌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언약 백성의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를 가르치시고 징계하시고 교정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히스기야 기사를 통해서 이사야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