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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역사 & 세상 만사

김포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3 인물(기독교의 언더우드, 임진왜란의 조헌, 축구의 이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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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가 갑자기 2023년 후반기 이슈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얼마전에는 김포 골드라인의 지옥철이 이슈가 되면서

정치인들의 지옥철 체험이 유행이었으나

자신들의 민감한 문제는 아니었기에 금새 잠잠해졌다.

 

김포를 상징하는 키워드들은 무엇일까?

필자가 이곳으로 이사와 먼저 느낀 것은

김포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열림, 강직, 집념, 뚝심 같은 단어들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김포는 바다와 한강 하류와 너른 들판과 산들이 어우러져

마한, 백제, 조선, 서울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고을이었다.

근대에 들어서며 공항까지 들어섰으니

그 관문의 역할에 충실한 도시임이 분명하다.

당연히 지금도 항공 가족이 넘쳐 난다.

여기에 김포 시민들의 특징이 있다.

 

김포 시민들은

지금도 바닷 바람과 한강 하류 바람의 영향을 받으며

그 강인함과 유연한 열린 사고와 진취성이 넘치는 젊은 도시다.

다른 도시와 달리 젊은 부부, 아이들이 넘쳐나고

그래서 손주들을 돌보러 기꺼이 이주한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신구 조화가 멋진 도시다. 필자도 바로 그런 부류다.

김포에 살며

고촌, 풍무, 사우, 걸포, 운양, 장기, 마산까지 도보로 돌아다니고

출근길 김포 지옥 골드라인도 경험하며

정들어 가는 김포가 만만찮은 도시임을 느낀다.

다양한 김포 사람들이 있으나 세 인물을 키워드로 이 도시를 살펴보자.

언더우드는 20대 중반인 1884년 아펜젤러와 함께 인천으로 입항한 최초 미 선교사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의 걸포에 김포 최초 교회, 김포읍 교회를 개척한다. 교회는 신속하게 한양으로 복음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김포읍 교회는 독립운동의 밀알이 된 교회였다(김포 걸포 공원사진 위).

 

인천의 언더우드 동상. 김포 걸포에도 언더우드 기념비가 있다©조덕영

기독교는 자유와 진리의 종교다. 조선은 고려의 불교를 억압한 유교 성리학의 국가였다. 기독교가 이 한반도에 언론, 출판, 결사, 집회, 노동, 종교의 자유를 일깨운 것은 당연하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5천년 한반도는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열린 국가로의 길을 열기 시작했다. 옛 한성 백제가 최초 다문화국가(송파 한성백제 박물관의 근초고왕 설명)의 길을 연 이후 다시 한반도는 국가 융성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민족 3.1 운동 대표 33인의 절대 다수가 종교인이었고, 그 중 기독교인이 다수였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갈망하는 서울대 초대 총장이 목사요, 최초 의원 세브란스나 연세대가 기독교 사학이요 최초 여대 이화여대가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되었으며 고려대가 자유, 진리, 정의를 내세우는 것도 그 기반은 성리학이 아닌 기독교에 근거한다. 이렇게 바닷길과 하늘의 길까지 연 김포는 현대 서울을 있게 한 열린 개항의 고을이었다.

두번째 인물 중봉 조헌은 김포 출신의 문무를 겸비한 임진왜란 3대 의병장 가운데 한분이다. "도끼 상소"로 무능한 선조를 짜증나게 하였고, 이순신을 천거하고 훗날 <징비록>의 저자요 정승까지 지낸 서애 유성룡까지 꾸짖을 정도였으니 그가 얼마나 우국충정의 실천적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다.

장원급제한 후 전라도 의병장이 된 고경명(왜란 중 순국)조차 중봉 조헌을 흠모하였으니 조헌의 그 인물됨을 알 수 있다. 조헌, 고경명, 남명 조식과 같은 문무를 겸비하고 왜란을 강력하게 미리 경고하고 대응한 인물들이 정말 그립다. 눈치에 능한 생계형 정치인들만 가득한 작금의 우리 정치 풍토에서 필자는 문무를 겸비하고 조선 최고의 강직하고 실천적 인물이었던, 이 김포 출신의 의병장이 늘 그립다.

 

김포 사우 체육 공원의 이회택 선수 기념상

김포에는 또 한명의 걸출한 인물이 있다. 바로 축구인 이회택이다. 차범근 이전 오로지 깡과 집념으로하던 한국 축구에 최초로 뚝심과 기술이라는 두 가지를 겸비한 스트라이커가 나타난다. 바로 이회택 선수였다. 손흥민 부친처럼 탁월한 멘토만 있었다면 아마 이회택 선수는 더욱 크게 날개를 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빛을 발한 이회택은 이후 차범근, 최순호, 황선홍, 손흥민으로 이어지는 스트라이커 계보의 원조였다.

김포 사우 종합운동장의 이회택 기념상

이회택 선수는 실향민의 가족이었다. 김포는 고대부터 열린 고을이었다. 김포는 그를 폼었고 김포에서 그는 한국 축구 부흥의 상징이요 원조같은 인물이 되었다. 김포는 마한 시대부터 뱃길로 세상을 향한 열린 관문이었고 글로벌 국가 한성 백제에서도 다문화의 관문이었다. 성리학의 국가 조선은 그 문을 닫았으나, 대한민국은 다시 세계 속 서울의 문을 열고 있다. 하늘 길이 열리면서 김포는 다시 세상을 향한 열린 도시 서울의 관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쩌면 열린 김포에서 그렇게 온 국민들이 갈망하는 100m 한국기록을 깨는 다문화 출신 선수가 나올지도 모른다.

김포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중봉 조헌 선생을 기리는 우저서원의 마실 행사©조덕영

김포는 바다와 세찬 강바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중봉 조헌 선생의 정신과 기개가 살아있는 도시이며 자랑스런 해병이 단단히 지키고 있는 한강의 하류요 이제 또 다른 도약을 꿈꾸는 열린 도시다. 그 단단한 심성과 기개가 흐르기 때문일까? 많은 것을 서울에 내주며 하루하루 김포골드라인의 고통 속에서도 김포 시민들은 남달리 묵묵하게 견디며 꿋꿋하다. 하지만 대도시 서울은 어떤가? 김포 시민같은 불편과 억울함이 있다면 서울시민들은 아마 대소요나 폭동을 벌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대도시 서울은 놀랍게도 그 관문이 없다. 정치인들은 서울의 주요 공기업과 공공기관들을 모두 지방으로 이전하였다. 심지어 김포공항까지 문을 닫으려 선동하였다. 핵심 역량을 모두 잃어버린 지금의 국가 수도 서울은 겨우 성형수술과 K-Culture와 대학촌으로 먹고 사는 기형적 서글픈 닫힌 도시가 되어있다. 자랑스런 세계 5대 글로벌 메가 시티를 꿈꾸는 서울에게 김포는 필수요 필연적인 바닷길과 하늘 길을 여는 관문도시다. 김포로 인해 대한민국의 국운이 날개를 달고 대도약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조덕영 박사(신학자, 작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