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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신앙/창조와 과학

창조과학·지적설계 운동, 과학인가?(과학-철학-신학-법적 판단,창조론과 진화론 이해 13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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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과학 논쟁

교재: 강건일 박사(창조론과 진화론 이해)

조덕영 교수(조직신학, Th. D.)

창조과학의 원조, H. M. Morris

1) 창조과학 운동의 등장

 

(1) 일반적으로 근본주의 운동과 맥을 같이 하는 창조과학 운동은 성경의 문자적 해석에 관심을 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 뿌리를 둔 운동이라는 점에서 복음적이다. 창조론(Creationism)은 모든 자연 현상이 지성적인 창조주 하나님의 개입으로 시작되었다는 규정으로부터 시작된다.

(2) 그런데 이 용어는 오늘날 그 의미가 축소되어 우주와 생명의 창조에 대한 창조의 연대를 극히 젊게 보고 지질학적 전세계적인 홍수(창세기 대홍수)를 믿는 견해로 남아있다.

(3) 이와 같은 창조론이 19세기 보수적인 개신교나 20세기 초 근본주의자들의 전통적믿음은 아니었다. 20세기 초기 근본주의자들은 결론에 있어서 성급하지 않았다. 1930년대 이전의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은 대부분 창세기 1장의 “날”이 지질학적 발전의 오랜 시대를 나타낸다고 믿거나, 세상의 첫 창조와 그 이후의 일련의 창조 행동 사이에 긴 공백이 있어서 그때에 화석의 형성되었다고 믿었다.

(4) 성경 해석에 있어 "적응 이론"의 영향은 분명히 존재하였다. 하지만 진화론이 단순한 이론에 그치지 않고 모든 학문 영역으로 뻗어가면서 양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법률 검사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 1860-1925)은 진화론의 반대편에 선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에 진화론을 대중적으로 반대했던 사람들도 지구가 태고에 형성되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즉 그들은 엄밀한 의미의 창조과학자들이 아니었다. 브라이언은 진화론의 가장 큰 문제는 과학적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자연주의와 그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적 다윈주의에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그런데 사회적 다윈주의는 그 정당성을 과학적 진화론에서 찾는 경우가 많았다.

(5)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대 창조과학운동은 열성적인 제 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의 영향이 크다. 그들은 예수 재림교의 창시자요 예수 재림교(일명 안식교)의 선지자인 엘렌 G. 화이트의 거룩한 문서들이 지구의 역사 연구의 기본 틀을 제공해준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했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특히 중요한 공헌을 했던 인물은 장로교 목사였던 해리 림머(Harry Rimmer, 1890-1952)와 예수 재림교의 이론가인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 1870-1963)였다. 프라이스는 스스로 지질학을 연구하면서 1923년에 절정에 달했던 창조론의 몇몇 결과물을 ⌜새로운 지질학⌟ 이라는 이름으로 발간했다. 이 책은 창세기의 첫 부분에 대한 “단순한” 혹은“문자적” 해석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6,000-8,000년 전에 창조하였고 지구의 지질학적 과거를 형성하기 위해 대홍수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라이스는 이전에 훈련이나 현장 경험이 전혀 없었던 독학의 지질학자였다. 그는 태고의 지구를 알려 주는 지질학적 단층과 분명한 증거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문제 삼기 위해, 자연의 역사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를 추적하였다. 물론 전문 지질학자들은 지질학에 있어 딜레탕트요 아마추어에 가까웠던 프라이스의 생각을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프라이스의 생각은 안식교의 모임 밖에서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6) 개신교에서는 루터 교회의 미주리 회의가 있었다. 미주리회의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다른 종교적인 질문들은 제 7일 예수 재림교의 그것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지만, 현대 세계를 열정적으로 비판했던 몇몇 사람들은 프라이스의 성서적 문자주의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프라이스와 그의 여러 동료들이 여러가지 창조론 단체들을 결성했지만, 이 모임들은 오래 가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초기 창조론의 문헌들은 협소한 모임으로 외부적으로는 영향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였다. 장로교 사역자인 해리 림머와 같은 몇몇 근본주의자들이 창세기홍수에 관해 프라이스와 비슷한 견해를 제시했지만, 림머의 영향력도 그가 사망할 즈음에는 크게 약화되었다.

 

2) 헨리 모리스의 등장

 

(1) 오늘날 창조과학 운동에 있어 헨리 모리스(H. M. Morris)가 차지하는 상징성은 대단히 크다. 모리스는 자신이 창조론에 눈을 뜨는 데에는 프라이스의 공헌이 크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리스는 자신이 침례교도로서 프라이스가 믿는 안식교(SDA)의 교리는 분명 수용하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2) 모리스 개인의 이름이 창조론의 표면에 등장하기 전, 먼저 대학에서 훈련받은 보수적 복음주의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군단이 나타난다. 이들은 1941년에 미국 과학 연맹(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 ASA)을 결성한다. 창조론의 홍수 지질학자들은 이 단체가 자신들의 결론을 수용하는 토론의 장을 마련해 줄 것을 기대했다.

(3) 하지만 이들은 성경의 권위에 대해 확고한 견해를 고수하며 자연 세계 위에 있는 하나님의 주권을 옹호하기는 했으나, 대부분은 과거의 날-시대 이론 혹은 단절 이론(gap theory)의 편에 선 사람들이었다. 비록 ASA가 창조에 대해 명확한 공식 입장을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초기에는 엄격한 창조론자들에게 흡족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4) 그런데 이들 중에는, 창세기 안에 있는 거룩한 계시와 실증적 연구를 통해 주어지는 자연 계시가 19세기 초반 이후에 계속 시도되었다가 개정되고, 다시 시도되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조화를 이룰 필요는 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ASA 안에서 이러한 질문들의 대한 내적 논쟁이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ASA가 유능한 과학자들의 건실한 산실로서 유지되었고, 논쟁적인 과학적 문제에 대해 탁월한 자료들을 발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상투적인 태도-즉 근본주의적 의제에 매달리는 상투적인 태도-로 인해 좀더 폭 넓은 과학 세계에는 제한적인 영향만 주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과학이 ASA를 바라보는 시선은 대단히 부정적인 편이다. 즉 ASA를 창조과학의 편이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다. 창조과학이 얼마나 근본주의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보기이다.

(5) 창조과학이 ASA와 대화하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1950년대 후반에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은혜 형제 교단인 그레이스 신학교의 신학자인 존 휘트콤(John C. Whitcom, Jr.)과 남 침례교 배경의 수력 공학자인 헨리 모리스(Henri M. Morris)는 각각 프라이스의 대홍수 지질학에 영향을 받은 인물들이었다. 또한 두 사람은 복음주의적인 침례교 신학자인 버나드 램이 1954년에 「과학과 성경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The Christian View of Science and Scripture)이라는 책을 발간했을 때 혼란을 느꼈다. 그 책은 자연의 증거와 성경의 이해를 화해시킬 수 있는 좀더 유연한 접근 방법을 제안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ASA 구성원들의 호응을받았다. 예를 들어, 램은 근본주의자들이 적절한 문화적 상황 안에서 성경을 읽지 못하고 19세기 베이컨 시대의 본문인 것처럼 읽고 있다는 이유로 근본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지나친 교조주의의 가장 심각한 오류는 조화에 방법이 있다는 점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의 언어와 그 언어에 수반된 문화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주어졌다는 명제가 진실이라고 믿는다.”

(6) 버나드 램은 또한 프라이스와 림머가 제시한 일치를 호되게 공격하였다. 램의 책이 나온 바로 직후 휘트콤과 모리스가 만났다. 그들의 협력은 드디어 1961년, 모리스를 일약 창조론의 중심에 서게 만든 「창세기의 대홍수」(Genesis Flood) 발간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프라이스 저작의 현대판이기는 하지만, 휘트콤의 신학적 기여와 모리스의 과학적 전문 기술을 통해 프라이스의 논점을 좀더 설득력 있게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은 현대 지질학의 동일과정설(同一過程說, uniformitarianism)의 입장을 창조론적 관점에서 조목조목 비판한 책이었다. 이 책에 대한 평판은 압도적이었다. 그것은 잘 마른 나뭇잎에 성냥불을 던져 넣은 것과 같았다. 엄청난 주문량이 쏟아졌으며, 수백 만의 다른 책과 논문, 소책자, 그리고 주일 학교 강의를 통해 창조론의 관점이 대중화되었다. 창조론은 곧 영국에 영향을 주었는데, 이전까지 영국에서는 보수적인 반진화론자(antievolutionist)들도 지구의 형성 연대가 오래지 않다는 생각을 발전시켜 본 적이 없었다. 이후로 모리스는 지금까지 수 십 권의 창조론 도서를 쏟아내며 창조과학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7) 창조론의 자료들은 이슬람교의 교육을 위해 터키를 비롯한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어떤 창조론자들은 기독교 중심의 “성경적 창조론”에서 탈피하여, 공공 교육 기관에서 “창조 과학”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대중적인 요구를 호소하는 운동을 후원하기도 했다. 창조론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 연구 기관들이 설립되었고, 열정적인 평론가들은 공식적인 공개 토론에서 진화론자들과 논쟁하면서 창조론을 옹호했다. 대학에서 훈련받은 지질학자들 중에서도 점차 창조론의 관점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나중에 법정에서 뒤집어지기는 했지만, 알칸사스와 루이지애나의 입법자들은 창조 과학을 진화론의 대안 이론으로 가르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8) 당시 미 대통령 후보였던 로널드 레이건은 창조 과학을 가르치는 시간을 똑같이 배분해야 한다고 공립 학교에 요청했다. 이에 상처 입은 기존 과학의 옹호자들은 이에 대한 응답으로 책을 발간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진화론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가르쳐서는 안 되는지 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 마을과 도시에서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1960년 이후 창조론은 미국의 공공생활에서 낙태 문제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문제보다 더욱 격렬한 문화적 전쟁을 불러 일으켰다. 노벨상 수상자들도 이 논쟁에 뛰어 들었다. 1967년 과학자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왈드(George Wald) 박사는 사람들이 진화론을 과학적인 사실로 널리 인정되는 이유는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단지 또 다른 오직 하나의 대안인 창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선택의 길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9) 창조를 피해가려는 이론은 진화론을 천체로 옮겨 놓기도 하였다. DNA의 2중 나선 구조를 밝힘으로서 노벨상을 공동수상한 크릭(F. Crick)은 생명체는 지구에서 직접 생겨난 것이 아니라 먼 옛날 언젠가 지구 밖 외계에서 유입(directed panspermia)을 주장하였다.

(10) 1980년, 한국의 창조과학회가 설립되는 데에도 모리스는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모리스의 저서들은 도서출판 생명의 말씀사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하면서도 활발하게 번역되고 있다. 창조과학 운동과 그 논쟁에 있어 모리스의 영향력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3) 창조과학 운동의 전투적 특징

 

(1) 복음주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과학도 피조물의 한 부분이다(골 1:16-17). 그러므로 성서 해석에 있어 과학과 기독교의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적 창조 과학운동이 갑작스럽게 등장하고 부각된 이유는 무엇인가? 창조론이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공적 세력으로 분출되었던 첫 번째 원인은 창조론이 성경의 단순한 가르침을 구체화한 것이라는 복음주의자들의 직관적 신앙 때문이었다. 헨리 모리스(H. Morris)와 휘트콤(J. Whitcomb)의 책은 성경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수많은 복음주의자들에게 확신을 주었다.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창조과학의 성경적 근거에 대해서는 별도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근거의 사실 여부를 떠나 창조론이 과학적 세대주의라고 불려진다는 데 안타까움이 있다. 세대주의자들이 성경에서 그렇게 했던 것과 똑같이 창조과학자들은 자신들의 과학뿐만 아니라 대재난과의 엄격한 단절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조과학은 순수 복음적이라 할 수 있는가? 창조 과학의 몇 가지 전투적 특징을 살펴보자.

(2) 먼저 창조과학의 핵심은 지구와 우주의 오래된 나이에 대한 많은 증거들을 부정한다. 지구와 생명체들이 6천년에서 1만년 사이에 24 시간이 하루일 때 6일 동안에 창조되었다는 주장을 주로 고수한다. 문제는 창조 역사가 단 한번 이었으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적 메카니즘 안에서 이것을 검증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치명적 난점이 발생한다.

문제는 이것을 모든 복음주의자들이 수용하는 것은 아니라는데 고민이 생긴다. 헨리 모리스의 ⌜창세기 대홍수⌟(The Genesis Flood)는 침례교 계통의 복음주의 신학자 버나드 램(1912-1992)의 책 ⌜과학과 성경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The Christian View of Science and Scripture)을 반박하기 위한 시도로부터 시작한다. 복음주의 진영의 분열이 생긴 것이다. 미국 미시간 칼빈대의 복음주의 지질학자 데이비스 영(Davis A. Young)은 대부분의 창조주의자들(과학적 창조주의자를 뜻함)은 성서가 지구는 젊다고 가르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 같은 주장을 열정적으로 믿고 발전시킨다고 했다. 그러나 데이비스가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는 젊은 지구에 대한 주장은 틀렸으며 창조주의자들은 지구의 젊은 나이를 전혀 입증하지 못한다. 소위 이들의 과학적 증거들은 불완전한 정보, 희망적 사고, 실제 지질학적 상황의 무시, 그들이 원하는 가정들을 뒷받침하기 위한 선택적인 자료의 이용, 그리고 잘못된 추론 등에 기초를 두고 있다. 문제는 과학적 증거는 전체적으로 고려되어야 하고,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증거들은 지구의 나이가 아주 오래되었음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이비스가 볼 때 헨리 모리스의 ⌜창세기 대홍수⌟(The Genesis Flood)는 맞지 않는다. 데이비스는 한 때 잠시 ⌜창세기 대홍수⌟의 주장에 호감을 가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1969년 모리스가 창조 과학 협회(CRS)에 자신을 초청하였을 때 자신의 입장이 모리스와 달라졌음을 분명히 하였다.

(3) 둘째로 창조과학은 진화론적 과정들이 기계적으로 따라서 자연주의적이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하나님과 자연적인 과정들 사이에 이원론적 쐐기를 박는다. 이에 대한 유일한 핵심 증거는 화석 유물이다. 이 유물에는 많은 공백 기간이 있기 때문에 진화는 완전히 자연주의적 메카니즘으로 간주된다. 진화는 분명 비성경적이며 과학적 근거가 없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잘못하면 심각한 모순에 빠질 수도 있다. 어떤 한 현상이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면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견해를 지혜롭게 적용해야 한다. 잘못하면 우리를 19세기의 자연신학 시대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 창조과학 운동이 신앙적 운동임에도 보다 자연신학적인 지적 설계 운동에 우호적인 것은 이런 이원론적 사고의 영향이 크다. 특별히 미국 창조과학 운동보다 한국의 창조과학 운동이 보다 더 지적 설계에 우호적인 것은 복음주의 신학에 대한 오해와 미숙의 경향으로 보인다. 이 견해에 대한 당연한 결과는 하나님은 오직 초자연적인 수단으로만 창조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물들은 처음 지구상에 나타날 때 완전히 발달되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이미 우리가 보았듯이 이는 창조의 의미에 대한 매우 부적절한 견해이다. 다만 우리는 대진화(Macro-evolution)와 소진화(micro-evolution)를 구별할 필요성이 생긴다. 성경은 종간(種間) 변이(macro-evolution)는 부정하는 듯하고 종 내(內)의 변이(micro-evolution)는 허용하는 듯하다.

(4) 셋째로 창조과학 운동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나온 건설적 비평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특징이 있다. 데이비스 영(D. Young)은 “창조주의의 가짜 논의들이 그렇게 많은 책, 논설, 잡지 등에 계속 반복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창조론자들은 그들이 비교적 잘 알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비평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창조과학 운동은 비판을 정중한 태도로 받아들이고 유능한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의 주장들에 대한 비판에서 덕을 보려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같은 주장이 책마다, 논설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앞에 놓여지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오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5) 복음주의 안에 창조과학의 전투적 특징에 대해 현실적 비평론자들과 반대론자들이 있다는 것은 기원 문제가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님을 보여준다. 창조과학이든 그 반대편의 복음주의 과학자들이든 성경이 결코 명확히 말하지 않는 이슈(adiaphora)들에 대해 자신의 판단을 무조건 성경적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좀더 신중해질 필요성이 있다. 즉 이것은 적응(accommodation)의 문제이다. 서두르지 말고 좀더 겸손하게 성경이 말하는 명료한 입장이 무엇인지 점진적으로 찾아갈 필요가 있다.

 

4) 한국에서의 창조론 운동

 

(1) 지난 1980년에 있었던 80 세계 복음화 대성회 기간 중 한 분과(分科)로서 ‘창조냐 진화냐’에 대한 세미나(8.12 ~8.15)가 4일간에 걸쳐 한국대학생선교회(Campus Crusade for Christ, CCC)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이 때 강사는 미국 창조연구소(ICR)의 소장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와 탁스톤(Thaxton), 월터 브래들리(Walter Bradley), 듀안 기쉬(Duane T. Gish) 그리고 김영길(당시 KAIST)박사였고 일부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통역 강사로 봉사하였다. 이 세미나는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학생, 일반인, 교역자, 과학자 등 연 4천 여 명이 참석하는 경이적인 모임이 되었다 이를 통해서 일반인들이 ‘기원의 문제’에 대하여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당시 국내 강사로는 유일하게 참석하였던 김영길 박사(당시 KAIST 교수, 한국창조과학회 초대 회장 및 현 명예 회장)를 중심으로 외국 강사의 통역을 맡았던 국내 학자 등 크리스챤 과학자 25명은 간담회를 갖고 국내에서의 창조과학회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기로 하였다.

(2) 이때 참여한 외국 인사가 주로 미국 ICR의 핵심 멤버라는 데에서 한국의 창조과학 운동도 시작부터 미국의 창조과학 운동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었다. 다만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적 상황의 특성상 창조 과학 운동은 큰 반향과 호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국내외적 신학적 흐름에 무지한 과학도들이 중심이 된 이 운동은 미국보다 더 전투적인 면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에서의 창조과학 운동도 여전히 미국의 창조과학 운동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게 된 것이다.

 

5) 미 대법원 판결과 레몬 테스트(1971)

(1)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에 재정적 지원을 하는 펜실베니아 주의 정책에 대한 위헌심판이다.

(2) 이 판결로 대법원은 유명한 레몬심사기준 (레몬 테스트)을 만듬

첫째, 정책의 목적은 합당한 비종교적, 즉 세속적이야 한다.

둘째, 정부 정책이 초래하는 주된 결과가 어떤 종교를 향상시키거나 억제해서는 안 된다.

셋째, 정부와 종교가 지나치게 얽매이게 하는 상황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3) 만약 3가지 중 하나라도 위반될 경우 정부 정책은 연방헌법 수정 제1조 국교금지조항에 의해 위헌이다.

(4) 예를 들어 정부가 성당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컴퓨터나 복사기를 제공하는 것은 그 장비가 종교적 목적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국교금지조항의 위반일 수 있다. 그러나 과학 교과서를 기증하는 것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쓰일 수 없기 때문에 위반이 아니다.(feat. 코셔, 할랄, 창조과학 등)

6) 복음주의와 창조 과학

 

(1) 창조 과학이 창조론의 최전선에 서서 성경과 기독교를 옹호한 것은 분명 칭찬할만한 일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말씀이요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흔적이 담긴 일반 계시의 광장이라는 복음주의의 견해와 일치한다.

(2) 그런데 성경을 과학에 잘못 적용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도 분명 있었다. 문자적 해석은 간혹 엉뚱한 해석을 이끌어 내었다. 또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중 유리한 것만 취사선택하는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들면 프레드 호일(Fred Hoyle)과 찬드라 위클라마싱(Chandra Wickramasinghe)이 주장한 우주 설계(창조주)에 대한 확률적 주장을 창조과학적 결론으로 기쉬(D. Gish)나 한국창조과학회가 곧장 이용하는 경우이다. 이들이 계산해보니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능성 단백질들이 한 곳에서 우연히 생성될 확률은 겨우 10의 4만승 분의 1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우주에 겨우 모든 원자의 숫자가 10의 80승 밖에 되지 않으므로 설령 우주 전체가 단백질 스프(soup)로 이루어져 있더라도 단백질이 우연히 생길 확률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은 성경을 신뢰하는 학자도 아니고 창조과학자도 아니다. 호일은 지구의 생명이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주로부터 날아 왔다는 판스퍼미아(panspermia)설을 주장하려고 이런 주장을 편 것이다. 복음주의 과학자들과는 대화를 거부하고 충돌하면서 이들 진화론 과학자들의 주장을 입맛에 맞게 포장하여 활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이 창조과학 운동이 복음의 탁월한 전사(戰士)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도 불구하고 많은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과학들에게 비판받는 원인이 되고 있다. 창조과학이 호일(Hoyle)과 같은 비성경적 과학자들의 견해는 취사 선택하여 유리한 증거로 삼으면서도 오히려 신학과 과학의 대화에는 진지한 문을 열지 않고 강한 분리적(分離的) 입장에 머무른 것은 정말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 창조과학이 성경의 무오성을 사수하고 하나님의 흔적을 성찰하는 자연 계시를 주목한 면에서는 탁월했으나 칼빈의 적응에 대한 이론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못한 면이 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헬라인의 하나님이요 남녀노소, 시대적 모든 사람들에게 적응할 수 있을 만큼 몸을 낮추시는 분이심을 간과한 것이다. 창조과학이 성경을 과학책으로 오해하는 잘못된 전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그런 잘못된 전제가 창조과학이 우리 과학자들이 이 어리석은 세상과 신자들을 과학을 가지고 과학적으로 계도해야 한다는 과학적 엘리트주의에 빠져버리게 만드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이 때 성경 해석은 전혀 다른 길로 가게 된다. 즉 성경은 창조과학자들의 눈에는 그만 전혀 엉뚱한 창조과학적 관심의 책이 되고 만다. 성경이 창조주를 지시하나 과학에 관심의 중심을 둔 책은 아님을 간과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창조과학은 성경과 과학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불가능해지기 시작한다. 인간의 기원, 지구의 연대, 그리고 지질학적 생물학적 변화의 메카니즘에 대해 분명하게 사고하는 일을 어렵게 만듦으로써 복음주의에 손상을 주게 된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과 우리가 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능력을 어둡게 만들었던 것이다.

(4) 근본주의적 사고 습관은 창조론의 개별적인 결론보다 더 파괴적이었다. 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편향적 특성과 19세기의 반지성적인 특성이 이러한 사고 습관에 덧붙여졌기 때문에 이러한 사고 습관은 기독교 지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고 말았다. 문제점은 자연 세계의 지식에 대해 너무 공격적이고 이원론적이다. 창조론자들이 과학의 기만적인 주장을 공격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전략은 기독교 (기독교는 경험적으로 관찰 가능한 사건의 실체의 중요성을 항상 주장했다)와 실증적인 과학(과학은 항상 세상에 대해 종교와 비슷한 가정을 전재한 상황 속에서 진행되어 왔다)의 접촉점에 대한 이후의 논의에 혼란을 초래했다. 서구 역사에서 종교와 과학 사이의 타협은 항상 뒤얽혀 복잡했고 어떤 경우에는 역설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타협의 지성적인 전쟁 상태로 갔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창조론과 창조과학자들은 종교와 과학의 타협을 전쟁의 가장자리로 밀어 넣었다. 현대 창조론의 가장 큰 비극은 창조론의 전투적 경보음 때문에 탁월한 복음주의 기독교 사상가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이들의 저작은 복음주의자들이 이전 시대의 메마른 곤경을 뛰어 넘을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창조과학은 그렇게 대화하지를 않았다. 직접적인 실증적 증거가 없으면 억측하면 안 된다. 억측에 의한 것으로부터는 연역할 수 없으며, 폭 넓은 실증적 증거가 없으면 과학은 불가능하다. 창조과학이 성경과 관련해서는 잘못된 베이컨주의를 고수하고 과학과 관련해서는 건전한 베이컨주의를 포기했다는 점은 계속 지적당하는 뼈아픈 실책이 되고 있다.

(6) 사실 창세기의 앞 부분을 정확히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고대 세계에 대한 철저한 역사적 연구와 그 뉘앙스를 조심스럽게 살린 주해가 필요하며 그리고 과학적 과정과 결과에 대해 폭 넓게 정통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 져야 한다. 편협적 울타리를 치고 무조건 고집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유하신 분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다채롭고 풍성한 세상에 대한 이해에 있어 인간 개인의 생각의 울타리 안에 묶어두어서는 안 된다. 복음주의자들은 서로 겸손하게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창조과학은 그러하지를 못하였다. 견해가 다른 복음의 친구들에게 조차 문을 잠궈 버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였다는 비판을 복음주의자들에게 조차 받게 되었다. 하나님이 자연을 만드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7) 칼빈의 적응 이론이나 복음주의 학자 워필드(B. B. Warfield)가 과학의 문제와 관련하여 휘트콤(J. Whitcomb)이나 모리스(H. Morris)와 기시(D. Gish)와 조금은 다른 결론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창조 과학의 결론을 포함하여 복음주의 과학의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단순하거나 상식적이거나 직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은 복음주의 지지자들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도덕적 문제와 분명히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8) 지질적 분야에 정통한 한 복음주의의 결론과 좀 더 넓은 복음주의 세계의 확신을 대조시켜 볼 때 과학에 대한 복음주의 사상의 사회적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성경의 영감을 옹호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경험 많은 지질학자인 데이비스 영(D. Young)은 자신의 과학적 연구를 근거로 모리스(H. Morris)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영(D. Young)에게도 복음주의자로서 성급한 면이 없지 않다. 즉 성경과 자연 세계 둘 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다른 견해가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결론이 기독교의 본질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전히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고백하는 신앙인들의 숫자는 적지 않다. 창조과학에 대한 무조건 반대보다는 대화의 필요성이 더 절실하다는 의미이다. 그렇지 않으면 창조과학과는 또 다른 형태의 극단주의에 빠질 위험이 생긴다.

(9)창조과학은 반성경적 주장으로부터 신앙을 수호하기 위한 전투적 헌신과 복음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있는 운동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성경과 과학 해석(解釋)의 누(累)를 범하거나 복음의 친구를 잃어버려서도 안 된다. 창조과학이 가끔은 지사(志士)적이고 계몽 운동가적인 의협심을 내려놓고 예수님처럼 겸손히 눈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같은 비 복음적 대학자도 가끔은 겸손해질 때가 있었다. 1983년 호킹은 빅뱅(Big Bang)과 특이점(singularities)에 관한 자신의 연구에서 빅뱅과 같은 경우가 일어날 확률은 매우 작음을 고백한다. 그러므로 우주의 기원에 대한 언급은 으레 종교적 측면이 발생함을 인정한다. 과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종교적 측면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복음의 학자가 아닌 세속의 대학자 호킹이 학문에 대해 겸손해지는 만큼 자신이 피조물임을 깨달은 복음의 학자들은 당연히 우리의 한계를 겸손히 깨닫고 복음의 이웃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이런 경우를 염두에 두고 창조(일반·자연 계시)와 구속(특수 계시, 성경)과 점진적 역사의 발전 속에서 적응 이론이 유용한 해석의 삼위일체적 도구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논증한다. 창조과학이 창조와 구속과 과학의 발달에 따른 적응의 방법 모두에 귀를 기울인다면, 대화를 거부하는 독단적 운동이라는 사람들의 의구심을 벗어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활로를 열고 복음의 대타협과 대연합의 길을 열어 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창조과학이 지닌 그 본래적 한계가 늘 이 운동의 확장을 막고 있음은 분명하다. 즉 신앙은 과학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신학의 영역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7) 유신진화론과 딜레마, 그리고 지적설계

(1) 가톨릭적 관점에 더 코드가 맞는 지적설계

(2) 지적설계 삼총사 중 한 사람인 <다윈의 블랙박스>의 생화학자 마이클 비히(로마 가톨릭 신자)

(3) 마이클 비히는 유신진화론자인가 논쟁

8) 미국에서의 지적 설계 교육 논쟁

(1) 진화론 창조론 여론("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주도한 프랜시스 콜린스의 등장-> "과학적 방법의 가치를 신뢰하는 것과 신앙인이 되는 것 사이의 근본적 갈등은 없다. 과학으 자연을, 신앙은 초자연을 탐구한다". )

(2) 캔사스 대 물리, 천문학 교수 멜로트: 종교적 의도를 감추고 나타난 지적설계-> "지적설계는 값싼 야회복 속의 창조론이다"

(3)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 물리학 교수 싱햄: "지적설계 토의에 철학은 필수적이다"

(4) 미 공화당 의원 샌토럼 수정안(Santorum smendment) : 연방차원 교육 지원 프로그램을 규정한 '연방교육법'(2002년 1월 8일, 부시대통령)에 대한 상원 본회의 수정안(진화론 창조론 문제관 관련 수정안)으로 2001년 7월 91대 8로 통과.

① 과학교육은 학생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철학적 또는 종교적 주장과 과학의 자료 또는 시험될 수 있는 이론을 구별하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② 생물학적 진화론을 가르칠 때 교과 과정은 학생들이 이 주제가 그렇게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유를 이해하도록 돕고 학생들이 이 주제와 관련된 대중적 논의에서 지식을 가진 참여자가 되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5) 지적설계 교육을 지지하는 상원의원들의 지지를 받음. 부시 대통령 최종 서명 교육 법안에서는 샌토럼 수정안이 빠짐. 그러나 협의 위원회 보고서에는 "학생들이 생물학적 진화론과 같은 이슈에서 여러 과학적인 견해가 있다는 것을 배울 자격이 있다"는 샌토럼 수정안의 취지를 인정한다는 언급을 삽입함(법적 효력은 없음).

조덕영 교수(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