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Calvin과 그의 아내 Idelette de Bure는 1540-1541년 이 집에서 살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 프랑스 종교개혁가는 당시 스트라스부르 고등학교에서 성경 주석을 가르치고 있었다.
1534,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바젤로 향했던 칼빈은
1536년 라틴어로 된 기독교 강요 제 1판(만 26세)을 냈고
1536년 파렐의 권유로 제네바로 간다.
1538년 추방 당한 칼빈은 3년 간 마르틴 부처와 함께 스트라스부르에 체류한다.
그러다 1541년 부처와 함께 다시 제네바로 향했다.
이 스트라스부르 체류 기간 동안
그는 기독교 강요 프랑스어 판을 준비한다.
©조은선
칼빈의 스트라스부르에서의 교회
1) 칼빈은 스트라스부르에 체류하면서 목회사역에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된다.
2) 이곳에서 칼빈은 목회자로 상당한 존경을 받고 있던 마르틴 부처를 만나, 이후 칼빈의 교회론은 개인적으로 부처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3) 예를 들면, 칼빈이 말하는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의 구별은 부처의 저술들 속에서 발견된다. 또한 칼빈은 부처가 사용한 교회의 사중직(quadruplex, 목사, 장로, 교사, 집사)을 제 2차 제네바 귀환 후 그대로 수용하여 교회법에 명시하였다.
4) 칼빈에 따르면, 성경에서 “교회”는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먼저, 교회는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포함하여 "불가시적인 전체의 선택된 무리"를 지칭하며, 다른 경우 현존하는 회중들로 대표되는 “가시적 교회”를 지칭한다.
5) 칼빈은 가시적 교회의 올바른 목회 질서를 위한 구체적 성경적 원리에 따른 교회 행정(세속정부가 사용하는 administratio)을 “순수하게 선포되는 복음”속에 포함시킨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스트라스부르 노틀담성당
개신교 루터파 성 토마스교회
유럽의회
유럽의회를 방문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모습
유럽 인권재판소
스트라스부르 유대 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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