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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섭리론의 유익(참조: 박해경 박사 칼빈의 섭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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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론의 유익(참조: 박해경 박사 칼빈의 섭리론)

 

이스라엘 광야©조은선

섭리론의 유익(참조: 박해경 박사 칼빈의 섭리론)

1) 섭리론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며 성급한 확신을 벗겨내고, 하나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하며, 우리를 위협하는 수백 가지의 위험을 확신과 용기로 대처하게 합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분의 돌보심을 경험하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제공하시는 분임을 확신하게 하는 신앙적 유익을 줍니다.

2) 때로 하나님의 계획에는 언제나 최선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하나님은 그의 섭리를 통해 자기 백성을 인내하게 하고, 악한 감정을 바르게 교정하시고, 그들의 욕망을 길들이시며, 복종시켜 자기부인을 훈련시키시며, 그들의 나태함을 깨우치게 할 뿐 아니라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불경한 자들의 교활함을 파쇄하시고, 그들의 계획을 좌절시키는 것을 알게 합니다.

3) 따라서 섭리론을 통해 우리는 여러 가지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무엇이나 다 설명하여 달라는 식으로 조르지 않게 되며, 절제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모든 일의 최고의 정당한 원인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은밀한 심판을 경외하게 됩니다.

4) 세상의 혼란한 일들이 우리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할 때에라도 하나님은 공의와 지혜와 순결한 빛으로 올바른 목적과 최선의 질서로 조절하시고 통제하시는 분임을 믿게 되는 것이 섭리론의 유익입니다. 우리가 두려움과 경외하는 마음으로 창조자이시며 우주의 조성자이신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을 겸손하게 순복시키는 사람이 섭리론의 유익을 아는 사람입니다.

5) 하나님은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시는 여호와요 그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사 45:7).

6) 섭리에 대한 지식은 우리에게 경솔함과 자만을 내버리게 하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게 합니다. 즉 사람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수단으로 하여 근본적인 도움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합니다.

7) 인간의 삶은 수많은 악으로 둘러 쌓여있고, 수많은 죽음의 위기에 의해 위협을 당하고 있으나 하나님은 만물 중에 가장 고귀한 인간을 맹목적이고 우발적인 모든 종류의 운명의 타격을 받도록 내버려두시지 않고, 돌보십니다. 즉 하나님의 섭리의 빛(lux divinae providentiae)은 극단적 번뇌나 공포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며 모든 염려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8) 심지어 마귀와 그 부하들도 말이 재갈에 의해 제어되듯 하나님의 손에 제어되어 있으므로 우리를 멸하려하는 마귀의 그 어떤 음모도 하나님의 허락과 명령이 없이는 실행에 옮기거나 행동 개시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마귀와 그의 부하들은 결박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봉사하지 않을 수 없게끔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귀와 귀신들이 자기들의 욕심을 따라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분량과 한계를 정하시는 것도 주님의 권세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확신에 힘입어 그의 여행이 사단에 의해 방해를 받았다고 말하지만(살전 2:18),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in Dei permissione) 출발하겠다고 말합니다(고전 16:7).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것이 모든 비참 중에 가장 비참한 것이며, 이것을 아는 것은 최고의 축복입니다(칼빈).

9) 우리의 죽음과 생명도 하나님의 섭리의 지배를 받습니다.

10) 억울한 일과 괴롭고 슬픈 일, 비참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 환경만 바라보는 불신자들과는 달리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을 볼 때 위로를 얻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응답을 기다리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섭리를 믿는 사람은 먼저 기도할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얻고자 힘쓸 것이며, 서둘러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고통의 훈련과 괴로움의 과정을 통해서 믿음을 단련하고, 강화하며, 거룩하여 지는 계기로 삼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고, 저절로 되어지는 일도 없으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발생하므로 자기 위에 세워진 권세들(부모, 스승, 선배, 상사)과 아랫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볼 것이며, 또 여러 가지 환경 속에서 그는 감사하는 것을 배우고 또 실제로 그런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참조: 그렇다면 하나님이 후회하신다는 말씀은 섭리론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개혁주의 관점)

1) 성경에 보면 어떤 때에 하나님이 후회하신다거나(창 6:6, 삼상 15:11), 뜻을 돌이키신다거나(렘 18:8, 욘 3:4), 이미 선포된 심판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예(사 38:1, 왕하 20:1, 대하 32:24)들이 있다.

2) 이에 대해 칼빈은 우리의 이해를 위해서, 또는 하나님의 실천적 행위에 있어서 변화를 일으킨 것이지 그의 뜻이나 계획이 변경된 것이 아니라 했다.

3) 인간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갑자기 변경된 것 같으나 그가 영원부터 예견하고 인정하고 결정하신 것은 변함 없이 일관성있게 그대로 수행하신다.

4) 하나님이 회개를 목적으로 통보(선포)하신 것은 절대적인 작정의 수행의 과정이다.

5) 요나의 니느웨 사건이나 아비멜렉(창 20장)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주님은 자신이 선언하신 내용을 취소한 듯 보이나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이 회개를 원하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는 일이었고, 그의 영원하신 법도가 이루어지도록 큰길을 가면서 보여주는 작은 길의 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조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