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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라임(애굽과 블레셋)과 이스라엘, 그 질긴 접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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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라임(애굽과 블레셋)과 이스라엘, 그 질긴 접촉사 

 

애굽과 팔레스틴의 조상은 누구인가?- 함의 자녀 미스라임

(노아 후손들은 어디로 갔을까?)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창세기 10:6)

미스라임 후손들의 정착지

 

함의 둘째 아들 “미스라임”(히브리어로 “미츠라임”은 “동쪽”이라는 뜻임)은 우리 성경에서 통상 “애굽”으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즉 미스라임의 후손들은 지금의 이집트 땅에 정착하였다.

 

하지만 미스라임의 후손들이 정착한 곳은 단순히 애굽만이 아니었다. 미스라임은 많은 자녀들을 낳았다. 성경에는 루딤, 아나밈, 르하빔, 납두힘, 바드루심, 가슬루힘, 갑도림 등의 미스라임 후손들 이름이 등장한다.

 

이 중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팔레스틴)이 나왔다고 했다(창 10:14). 애굽과 블레셋은 같은 미스라임의 후손들인 것이다. “아나밈”은 “바위 같이 단단한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나밈의 후손들은 고대 구레네 혹은 나일강 델타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르하빔은 북아프리카 리비아 족의 일부가 되었다. 납두힘의 후손들도 델타 지역의 원주민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바드루심은 바드로스(상 애굽) 지역을 차지하였다. “갑도림”은 “갑돌”의 복수형이다. 갑돌은 블레셋의 기원이 되는 땅이었다(렙 47:4; 암 9:7). 성경은 가슬루힘뿐 아니라 갑도림도 블레셋의 일부가 되었음을 묘사한다(신 2:23).

 

그렇다면 블레셋의 참 주인은 누구일까? 이 문제는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도 난제로 남아있다. 이 문제를 풀려면 블레셋 사람들이 어디로부터 팔레스틴 땅으로 이주하여 왔는지 먼저 밝혀져야 한다. 블레셋의 상당수는 가슬루힘이 거주했던 나일강 삼각주와 지중해 크레타 섬 서편에 거주하던 족속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기근으로 서진(西進)하여 애굽 노예로 살다가 출애굽한 후 다시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듯이 블레셋 사람들도 애굽 땅 나일강 삼각주와 크레타 섬에 진출했던 함의 일부 족속들이 다시 돌아와 갑도림의 후손들과 섞여 팔레스틴 땅에 거주하게 되면서 오늘날 팔레스틴의 원주민을 형성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함족 미스라임 후손인 애굽 제 18왕조 시대 후기 소년왕 투탄카멘 왕의 황금 데드마스크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은 투탄카멘 왕 통치 100여년 전 혹은 통치 100여년 이후에 있었던 사건이었다>

고대 애굽 문명을 이룬 미스라임의 후손들

 

애굽이라는 이름이 역사의 기록에 보이는 것은 성경을 제외하면 기원전 8세기 경 호머의 오딧세이에 ‘아이굽토스’(Aiguptos)라는 명칭으로 처음 나타난다. 이 말은 하 애굽(북 애굽)의 수도 멤피스의 일반적 명칭을 음역(音譯)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하 애굽만을 지칭한 이 말은 상·하 애굽 전체를 가리킬 때에도 사용되었다(호 9:6; 사 19:13).

세상 기록에는 기원전 8세기에 등장하나 성경은 이미 창세기에 아브라함 시대부터 애굽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애굽 문명의 연대가 대단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애굽은 비옥한 나일강의 양쪽 주변을 중심으로 일찌감치 문명을 이루어 세계 초대 문명을 이루었다. 이 비옥한 땅에 미스라임 후손들과 셈의 후손 일부가 모여들었다. 그 셈의 일부 가운데는 물론 이스라엘 민족도 끼어 있었다. 상·하 애굽을 통일한 ‘나르멜'의 제 1왕조가 시작된 것은 주전 3200년경이었다. 애굽 역사학자 매네토의 구분에 따르면 구 왕국에 속하는 3-6대 왕조(주전 2690-2181) 시대에 이미 애굽은 피라밋 황금 시대를 맞는다.

애굽 문명이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의 한 곳으로 알려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미스라임 후손 중심의 이 지역에 셈족 후예인 힉소스 족이 침범하여 잠시 이 땅의 주인 노릇을 한 때는 제 2 중간기로 불려지는 제 13-17왕조(주전 1785-1570)때였다.

투탄카멘 왕 무덤의 수호동물

 

기근과 굶주림으로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간 것은 아마 이 무렵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애굽은 이렇게 아브라함이 족장의 삶을 살고 있을 때 이미 피라밋을 건설할 정도로 세속 문명이 발달한 대 왕국이었다.

 

성경은 애굽의 바로가 아브라함의 “심히 아리따운” 아내 사래에게 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창 12:14). 65세의 사래가 얼마나 아름다웠길래 애굽 왕이 반했던 걸까? 당시의 생태와 환경은 지금과 조금 달랐다. 아브라함은 175세를 살았고 사래는 127세를 살았다. 그렇다면 아마 당시 여생의 절반을 산 사래의 미모는 지금의 30-40대의 모습과 유사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뺏기지 않고 애굽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개입(섭리) 덕분이었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