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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현대 신학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창조 신앙의 소유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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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창조 신앙의 소유자인가?

 

1. 융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스위스 바젤 태생의 정신의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였다.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바젤 대학과 취리히 대학의 교수를 지냈으며 처음에는 정신 분열증을 연구하다가 점차 정신 분석학에 흥미를 갖게 된다. 부르크 휠츨리 정신병원에서 일하면서 병원의 원장이었던 오이겐 블로일러의 연구를 응용해 심리학 연구를 시작하였는데, 이전 연구자들이 시작한 연상 검사를 응용하면서 자극어에 대한 단어연상을 연구하였다. 이 연상은 성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당시 학계에서 자주 금기시 되고는 하였다. 그는 특정한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지금은 유명해진 '콤플렉스' 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에 관련된 학설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는 프로이트, 아들러(Alfred Adler)와 함께 국제 정신분석학회를 창설, 초대 회장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성욕중심설을 비판하고 독자적으로 연구하여 인간 내면에 무의식의 심층이 있다고 생각하고 분석심리학설을 수립하였다. 그 뒤 프로이트의 범성설에 반기를 든 그는 분석적 심리학, 복합 심리학 등의 독자적인 심리학 체계를 세우게 되었다. 연상 검사, 내향형, 외향형, 집단 무의식, 꿈과 상징의 연구 등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 Zürich)의 심리학 교수, 바젤 대학교의 의학심리학 교수로 재직하고 비교적 장수하면서 <무의식의 심리>, <심리학과 종교>,<인격의 완성> 등의 여러 저서를 남기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그의 신앙은 어떠하였을까? 사실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는 말년에 이르기 까지 전통적 의미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나는 신앙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고백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2. 융의 학문

 

융의 관심은 주로 경험적이었으며 현실적이고 실재적인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종교적인 신앙도 그에게 흥미의 대상은 될 수 있었다. 그는 정신이라는 단어 대신 영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로든 그가 영혼에 관한 관심을 지닌 심리학자임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단지 하나의 심리 현상으로 환원시키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가져다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융의 심리학에 대한 접근방식이 매우 개방적이었다는 데서 그의 영혼에 대한 관심을 찾아야 된다는 것이 옳은 표현으로 보인다.

 

융은 의식이 무의식으로부터 유래된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그는 정신을 무의식과 동일한 것으로 보려고 하였다. 융은 인간의 물질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은 다만 하나의 실제의 양 측면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같은 원자 안에서 두 개의 전자는 네 개의 양자수에 있어 절대로 같은 값을 가질 수 없다”(No two electrons in the same atom can have the same values for the four quantum numbers)는 물리학의 유명한 “배타율”(排他律)을 발견한 파울리와 공동으로 저술한 “자연과 정신의 해석”이라는 책에서 융은 실제의 두 측면 즉 양과 질,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으므로 동시에 포용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융은 인간의 마음 구조 안에는 의식과 무의식이 있다고 보았다. 특히 그는 심리학에 있어 탐구의 대상이 되는 무의식을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으로 구분하였다. 개인 무의식이란 어느 개인의 삶이나 경험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망각되어 있으며 억압되어 있고 승화되어 지각되는 모든 종류의 사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반하여 집단 무의식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특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소들의 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융은 집단 무의식이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생겨난 모든 영적 유산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개인의 두뇌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으로 보았다. 즉 그는 심리학 안에 진화론적 사고를 도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집단 무의식의 내용들을 표현하는 단어로 그는 원형(arche type, 原型)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인생의 단계에 있어 융의 주된 관심사는 “인생 후반기”라고 부르는 성인기였다. 그러나 융의 사상 체계 속에 아동기에 있어서의 심리적 발달 단계들이 암시되어 있다고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인 미카엘 포드햄은 주장한다. 즉 융이 아동기에 전혀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체적인 융의 이론은 인간의 의식은 유아기 때부터 무의식에서 생겨나와 계속 발달하고 있다고 보았다. 융은 보통 사람들이 사회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가지게 되는 사회적 인격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페르소나(persona)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데 이것은 그가 지닌 사람의 인격발달에 관한 입장을 나타내는 용어 가운데 하나로 느껴진다. 그가 고대 인도 차크라의 체계를 개별화 과정으로 생각한 것도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그는 개별화란 “개인들이 한 개인으로서 성장하여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되는 과정의 절차로 보고, 개별화는 한 개인의 특성이 발달되어 가는 차별의 과정”으로 보았다.

 

융은 심리학 이론의 기초에서 인생의 전반부에서 사람들이 감내해야 될 과제와 인생의 후반부에서 감당해야 할 과제를 구별 지어 이야기 하기도 했다. 융은 후반기가 될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 심리학자로서 그는 정신 치료의 과정을 어떻게 보았을까? 융의 정신 치료 이론은 우리가 원인들 뿐 아니라 목표에 의해서도 상당히 많은 지배를 받고 있다고 본다. 즉 프로이트의 무의식적인 동기 개념에 대하여 동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융의 심리학도 역시 심층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신 치료에 있어 융의 심리학의 기본 원리는 인간의 정신과 무의식 사이에 존재하는 보상 작용에 의해서 스스로를 조절해 나갈 수 있는 체계로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치료의 방법으로서는 첫 단계로 화자 자신이 기억하여 낼 수 있는 모든 중요한 경험들을 가지고 분석가와 검토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즉 대부분의 다른 정신 요법에 있어서와 유사하다고 하겠다. 그 후 현재 그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이 일반적인 연속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그는 치료자의 과제는 환자의 정신적 도상에 놓여 있는 장애물들을 제거해 주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3. 융과 종교 심리학

 

융은 종교 심리학에도 공헌한다. 융은 세계 종교들을 정신 치료를 위한 위대한 상징체계라 불렀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든 환자들에게서 그들 삶의 종교관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그들 문제의 궁극적 접근이라는 것이다. 모든 종교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생겨난 어떤 균열들을 치료해 주고자 한다는 것이 융의 생각이다. 그는 이러한 상처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균열이라고 보았다. 이 분열상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보다 높은 의식 수준 위에서 대극을 재통일 하는 것이라고 융은 주장하고 있다.

 

융은 상징의 통합성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이스 어로 ‘함께 던진다’는 의미를 지닌 상징은 두 개의 실재에 대하여 알려주며 그것을 이어주고 새로운 통일체로 이끄는 것이다. 사실 상징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데 “우리의 마음이 상징을 읽어내고자 할 때 상징은 우리를 이성으로서는 포착할 수 있는 것들을 뛰어넘어 다른 사유들에게로 이끌어간다”는 융의 말 속에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융에 의하면 상징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융은 또한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여 주는 것은 종교적 상징의 역할 이라고 주장했다. 융이 볼 때 신화도 의미 부여자였다. 융에 따르면 신화나 옛날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무의식 과정을 표현한다. 원시인들은 결코 신화를 창작해내지 않고 그 신화들을 몸으로써 체험한다는 것이다.

 

융은 삶에 기쁨과 의미를 주며 대극들을 통일 시켜 삶을 참으로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심리적 체험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대극적인 가능성들을 화해시켜 주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 융이 옳다면 그의 연구는 종교 심리학에 아주 중요한 공헌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융에게 있어 구원은 치유를 의미하는데 세계의 위대한 종교들은 세계의 위대한 정신 치유 체계들이 되어 온 것이다. 융에게 있어 종교 체험이란 궁극적으로 대극 통일의 체험이었다. 융에 의하면 종교적 자기 체험이라는 것도 이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4. 융과 기독교

 

그럼 기독교에 대한 융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융은 여러 면으로 기독교에 도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 도전의 저변에 깔려있는 주제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독교인들은 종교 언어가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된다고 하였고, 둘째,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상징주의로서의 기독교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재발견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기독교의 언어들은 융의 말년의 관심 분야였다. 그는 확대라고 하는 자신의 꿈 해석 기법을 통하여 기독교의 상징 언어에 접근하고 그것을 감정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융의 사상에 의하면 교리와 개인적인 종교체험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있다. 그 연관 관계 속에 함축되어있는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에 익숙해진다는 사실은 기독교에 있어서 하나의 도전이며 동시에 기회였다. 융은 서구 문화의 발달에는 기독고가 자리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교리에 대한 그의 기본입장은 다음과 같다.

 

(1)교리는 무의식의 원형의 표현이다.
(2)교리는 합리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지성적이다.
(3)종교 체험 중에 있을 때 상징들은 의식이 요청하는 수준보다 더욱 깊은 무의식의 수준에서 작용한다.
(4)각자의 개인적인 종교체험을 통하여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대극의 통일이라는 긴장을 참아낸다. 또는 그것을 즐긴다.

 

융은 어느 면에서 교리는 유용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그것이 산만하게 만들 수도 있으며 종교체험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고 하였다. “제도화된 교회가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 하고 있으며 행동을 제약하고 해를 끼친다”는 융의 언급은 교리에 대한 그의 입장이 무엇인지 말해준다고 하겠다.

 

하나님에 대해 융은 어떻게 여겼을까? 융의 저택 현관 문 위에 새겨져 있었다는 “우리가 불러 보았든지 안 불러 보았든지 하나님은 거기 계신다”는 말을 그의 사상에 비추어보면 하나님에 대한 그의 입장이 어떤 것이었는지 어렴풋이 짐작 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여러 곳에서 여전히 하나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기는 하나 그는 항상 과학자이자 경험주의자의 입장이였으며, 관찰 가능한 기초 위에 서지 않고는 아무런 단정도 내리려 하지 않았다. 융은 다른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그러하듯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예수를 구분해서 생각하였던 사람이었다. 융은 15세때 성찬식을 거부함으로서 목사인 아버지의 제도 교회 안에서 탈출한 사람이다. 융은 집단주의가 의식의 저하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인류 최고의 목표가 의식의 발달이라고 여긴 그의 입장에서 교회의 집단적 성격은 분명 그가 교회에 반발한 이유가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융은 교회가 상징 체계를 통하여 심리적 발달에 필요한 단계를 밟게 하고, 대중을 움직일 수 있고 교회의 메시지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응답을 촉구함으로써 집단 정신이나 독재 국가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다고 하여, 교회의 긍정적인 측면도 지적하는 등 교회에 대한 양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나님에 관하여 융은 선과 악의 양면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을 선과 악 양면을 가지고 살펴보려는 것과도 유사하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단지 선이 조금 많으신 분 일 뿐이다. 그것도 그저 그분은 자신의 체험 안에서 만이 해석된다. 결국 과학과 경험을 중요시 하는 융의 입장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종교 체험안으로 모시기에는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체험이란 융의 표현대로라면 자기가 만나는 것이다. 그가 기독교에 도전하면서 촉구하는 것은 기독교로 하여금 우리들에게 상징적인 의미의 뼈대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에 있었다. 결국 융의 희망은 기독교 공동체가 자신의 이 도전과 소망을 받아들이기를 바랬다고 생각된다.

 

5. 나가면서

 

프로이트가 종교를 일종의 환상이라고 본데 비하여, 융에 있어서 하나님은 심리적 실재였다. 즉 신 자체가 아닌 신 이미지였으며 일종의 원형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비인격적인 신도 아니었다. 이 실재는 개인의 삶에 깊이 관여된 사건으로 나타나는 힘이었다. 즉 그가 말하는 종교란 정확히 말해서 <종교적인 태도> 또는 <보다 높은 힘에의 귀의>라고 정의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그는 유일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자연스럽게 벗어나게 되었다. 그가 UFO나 고대 인도의 상징 차크라 등과 같은 온갖 유별난 유사과학적 현상들에 주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결국 그가 가진 창조 신앙은 최소한 정통 기독교의 창조 신앙은 분명 아니었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