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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신학 질의 응답

알렉산드리아신학이 말하는 로고스 사상(기독론)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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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신학이 말하는 로고스 사상(기독론)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거 설명이 아주 깁니다^^ 짤막하게만 설명!

 

1. 기독론에 등장하는 이론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또한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분은 창조주 하나님인가? 아니면 피조물인가? 둘 다 정확한 진술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과 피조물의 속성을 동시에 가진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설명할 수 있을까?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기에 이 같은 오묘한 섭리를 완벽하게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즉 그 참 된 본질과 속성을 사실 제대로 이해하거나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았기 때문일까? 온전한 예수의 상(像)을 그리지 못할지라도 인간은 그 속성상 자신 앞에 놓인 과제를 그대로 방치하고 넘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그 분의 인격과 본성들에 대한 교리를 기독교는 그동안 기독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왔지요. 기독론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면 기독교의 교리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예언되고 신약에 묘사된 예수는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로고스 기독론은 바로 그 해석의 역사 속에서 나온 견해였습니다.

 

2. 헬라어의 로고스(logos)는 본래 “말씀”, “생각”, “이성”, “강론”, “논리”, “생각의 표현”, “인간 정신”, “사물의 근거”, 수학에서는 “비례”, “척도” 등 다양하게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기록 속의 이 단어는 호머의 <일리어드>에 나타난 비전문적 용어였습니다. 그런데 철학적 의미로 이 로고스를 처음 사용한 철학자는 불(火)을 만물의 기원이라고 생각한 에베소의 철학자 헤라클리투스(Heraclitus, 주전 500년 경)로 그는 로고스를 사물의 배후에 있는 세계의 신적 정신이요 유동(변)하는 우주에서 오직 단 하나의 안정적인 요소로 보았지요.

플라톤(주전 427-347)은 로고스를 마음과 더 밀접한 것으로 본 소피스트들과 유사하게 로고스를 사상과 말과 사물을 결합한 보다 큰 실재로 보았습니다. 다만 그 로고스는 사물로부터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또한 사물을 해석한다고 보아 이데아와 구분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주전 384-322)는 로고스를 말과 이해력으로서의 로고스와 말과 이해력의 결과로서의 이해력으로 구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로고스는 행동으로 옮겨지기에 인간 특유의 덕(德)이 나오는 원천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스토아학파는 헤라클리투스와 유사하게 로고스를 ”우주 만물을 합목적적으로 지배하는 법칙“으로 이해하였습니다.

헬라적 유대교인이었던 필로(Philo, 주전 20-주후 50)는 이 용어를 세상이 창조될 때 사용된 도구요, 초월적인 창조주 하나님과 물질 세계를 잇는 다리로 이해했습니다.

"로고스"를 예수께 최초 적용한 젊은 시절의 사도 요한을 묘사한 모자이크(데살로니가 교회 전시물, 5C 작품 모사)

3. 그런데 성경에 “말씀”으로 번역된 이 "로고스(Logos)"는 본래 라틴어, 독일어, 영어에는 동일한 어의(語義)가 없는 헬라어만의 아주 독특한 단어입니다. 이 용어를 사도 요한은 “예수”가 곧 헬라어의 “로고스(말씀)”이라는 놀라운 계시를 요한복음(1:1-3)에 기록합니다. 이렇게 “로고스”는 성경 칠십인 역(譯)과 신약 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4. 질문하신 알렉산드리아의 로고스 사상은 신학에서 일반적으로 <말씀(로고스)-육신 기독론>이라 합니다. 반대로 안디옥(시리아) 기독론은 <말씀-인간> 기독론이라 합니다.

 

5. 이렇게 기독론이 갈라진 이유는 서로 찬반양론의 논쟁거리가 있었다는 의미겠지요. 먼저 <말씀(로고스)-육신 기독론>은 그리스도를 완전히 통합된 위격으로 봅니다.

 

이 개념을 최초 만든 사람은 수리아지역 라오디게아의 주교였던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라) 또는 apollinarios(英), 약310-390)였습니다. 아리우스에 반대하던 그는 그리스도의 참 된 신성을 옹호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기독론의 견해가 알렉산드리아파의 주장으로 알려진 것은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들이 조심스럽지만 아폴리나리스의 견해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아폴리나리스는 예수는 신적인 로고스와 인간 육신의 결합으로, 예수는 “하나의 본성(one nature)"을 보여줍니다.

 

이 주장의 문제는 완전 통합되었다면 인성의 불완전함 또는 신성의 가변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반대로 안디옥(시리아) 기독론인 <말씀(로고스)-인간> 기독론은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가진다고 봅니다. 즉 그리스도를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개의 본성을 가진 분으로 본 것입니다. 이 주장의 주창자는 몹스에스티아(다소의 동쪽)의 데오도르(Theodore of Mopsuestia, 약 350-428)였습니다. 이 주장의 문제로는 위격의 나뉨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6. 이 같은 논쟁의 발생은 인간은 성육신의 존재가 아니기에 인간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상호 관련 되는 지 살펴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7. 이 논쟁의 심각성은 이 논쟁이 개인적 감정싸움으로 더욱 크게 확대되고 촉발되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교회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가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권력은 로마에 있었습니다.

 

이 복잡한 구조 속에서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는데 좀 더 그리스도 안에서 뜨거운 논쟁과 토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하기 전에 감정싸움으로 번져 상대를 그만 서로 파문과 추방이라는 정치적 행위로 해결하려한 안타까움이 역사 속에 남아있습니다.

 

즉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시릴(Cyril, 444년 사망)과 안디옥의 견해를 대변한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훗날 동방의 경교로 발전) 사이의 충돌로 시릴의 강한 성격은 네스토리우스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 논쟁 중에 그만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고 말았습니다(431년 에베소 공의회).

 

8. 네스토리우스뿐 아니라 아폴리나리스도 아리우스를 반대했던 공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부정한 이단으로 정죄(제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된 것을 볼 때 참 된 진리의 바른 신학의 길로 가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초대 교회가 좀 더 냉철하고 치열한 논쟁과 토의 속에서 각자의 견해 속에 있는 서로간의 주장 속에 있는 쟁점의 장단점들을 잘 판단하고 기도하면서 서로를 끝까지 설득하고 끝까지 보듬어 안으면서 일치된 결론을 도출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것이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인간의 죄성과 미숙함 때문이라 해야 할까요? 이 논쟁의 내막을 살펴보면 인간이 얼마나 감정적인 존재인가를 느끼게 됩니다.

 

9. 아무튼 역사는 이 주제에 관한한 알렉산드리아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미세조정의) 논의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덕영 교수(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