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시리아, 아프간… 계속되는 중동의 종교 비극, 그 뿌리는?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NEW 노아 후손들은 어디로 갔을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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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부터 이스라엘과 아람 민족, 공방
인간의 역사란, 경쟁과 갈등과 전쟁의 역사
예수님 빼고, 죄 없다 할 수 있는 인간 있나
노아의 마지막 손자 아람(2)
▲탈레반에게 공격당한 아프가니스탄. ⓒBBC 보도화면 캡쳐 |
탈레반의 수중으로 들어간 아프가니스탄-복음의 길은 간단치 않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결국 다시 탈레반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마음이 아프고 쓰리다. “전쟁 준비야말로 평화를 지키는 가장 유효한 수단의 하나”라는 미 초대 대통령 G. 워싱턴의 미 의회 연설을 간과한 결과다.
미국은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동일한 실수를 거듭 범했다. 미 키신저와 월맹 레둑토의 평화협정은 이들에게 노벨상을 선물하였으나, 실은 (남)베트남 멸망의 전조였다. 그 노련한 키신저가 공산주의와 악의 실체에 대해 그렇게나 우둔했었다니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아프가니스탄 평화협정이란 것도 사실은 베트남의 경우처럼 탈레반의 승리를 예견하는 휴지조각 맹세에 불과했다. 혹여 철수를 하더라도 대국인 미국은 유엔 등에 관리와 통제를 의탁하든지, 철군이 그렇게도 소원이었다면 오히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탈레반과 대응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존재인지를 최종적으로 명확하게 평가했어야 했다. 그리고 철수를 진행하더라도 베트남의 뼈아픈 교훈을 기억하여 먼저 병력을 오히려 더욱 강화한 다음 약자와 민간인들을 완전 철수 시킨 다음에야 최종적으로 병력을 철수했어야 했다.
이렇게 좀 더 정밀한 방식으로 신앙인들과 노약자들과 여성들과 탄압이 예측되는 관련 인력 등을 배려 했어야 했다. 군사전문가가 아닌 미 대통령 바이든이 최종 책임을 져야할 미숙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주전 1500년부터 주후 1860년까지 영구적인 평화보장을 전제로 하는 평화조약이 약 8천건 체결되었으나, 그 효력이 지속된 것은 평균 2년”이라 했다(《The Sane Society》). 즉 심리학자 프롬이 간파한 것은 평화협정이란 평화의 위기가 오고있다는 전조증상이라는 것이 역사가 알려주는 진실이라는 얘기다.
한반도의 좌파들이 왜 그리 종전선언, 평화협정, 미군 철수에 집착하는지 짐작이 간다. 즉 평화협정이란 평화를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사기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프롬의 이 명구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슬람 국가 아프가니스탄이나 베트남과는 전혀 다르다.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아프가니스탄이나 베트남과 달리 주도적 국격 성장을 이루고 종교적 자유를 체험한 국가다.
하나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가 있는 한, 대한민국은 유물주의 공산 주체 귀족들의 꼼수에 쉽게 넘어갈 만큼 그리 만만한 나라는 아니다. 그리고 일부 정치 군인들로 시끄럽기는 하나, 여전히 6.25의 비극과 시련을 극복하면서 견고하게 잘 준비된 든든한 군대가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처럼 이 견고한 군대를 당나라 군대화하려고 간교한 전략을 펴는 것이 보이기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까지 진출한 아랍어 문양(독일 페라가몬 박물관). |
아무튼 아프가니스탄은 대영제국과 구소련에 이어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면 이제 평화가 온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성경은 악이 얼마나 질긴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승리가 전부가 아니다. 다민족, 다종족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의 진정한 평화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강한 수니파 이슬람의 탈레반을 보며 오히려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종교 탄압국 중국이 긴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라크 희대의 독재자 후세인이 부시에 의해 제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중동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더욱 심한 핍박과 고통의 수렁 속으로 빠져버린 아이러니와 유사하다.
이슬람 영역 속에서 독재자 후세인은 오히려 그리스도인 부통령을 세울 만큼 세속 통치 가운데 절묘한 종교 균형을 유지했던 인물이었다. 후세인이 제거되자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탄압은 더욱 거세졌다. 이 종교적 역설과 아이러니를 기독 역사가들과 정치인들은 뭐라 평가할까?
하나님의 사람이요 기도의 사람이었던 다윗은 기도만 하지 않았다. 그는 전쟁 용사였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이어 탁월한 전사였던 다윗으로 인해, 오늘날 이스라엘의 기반이 잉태한 것이다.
평화는 기도만으로 오지 않는다. 단세포조차 갖추지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신유 은사를 받았다던 그 많은 기도의 사이비들은 모두 어디로 숨어버렸단 말인가! 정말 신유 은사를 가졌다면 지금이, 그 때를 위함이 아니던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하나님은 책상 신앙과 책상 신학도 일거에 뒤집어 엎어버리셨다.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는 피조물인 인간의 상상을 초월해 계심을 늘 기억하라!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생각은 죄악된 피조물인 인간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 했다(사 55:8-9).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당하고 순교를 했던가.
필자 지인의 동생 목사도 수 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순교를 당하였다. 복음은 단순하다. 하지만 기도하고 순교해도 복음의 선한 길은 여전히 그리 만만치가 않다.
순교한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후서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딤후 4:7)”고 고백한다.
우리가 살펴볼 노아의 마지막 손자요 성경 무대의 중심 민족이 된 아람도 아르박삿 후손인 이스라엘과 더불어 복음에서 점점 더 멀어져만 가고 있으니, 가슴이 미어지기만 한다.
아프가니스탄과 더불어 21세기 가장 종교적 비극의 민족으로 남은 시리아(아람)는 도대체 성경 속 어떤 민족이었을까?<계속>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평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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