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의 생애와 사상(기독교 사상가 탐색 후반부)
이탈리아 토리노 서점 전시물
Theologia est infinita sapientia
quia nunquam potest edisci.
신학은 무한한 지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교육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틴 루터)
마르틴 루터의 간략 연보(1483-1546, 기독교 사상가 탐색)
칼빈, 루터, 멜랑흐톤(왼쪽부터, 사진: 비텐베[르크 멜랑흐톤 하우스)
“Theologia Crucis”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십자가는
모든 것을 시험하는
시금석이다."
비텐베르크 루터 하우스에서
1. 1483년 11. 10 독일 동부 아이슬레벤에서 출생
2. 1502. 9.29 에르푸르트 대학 학사 학위
3. 1505. 1. 7 문학 석사
4. 1505. 7. 2 뇌우 속 수도사 서원(어거스틴 교단 수도원, 1505. 7. 17)
5. 1510. 11 로마 여행
왼편에 비텐베르크 성채교회, 오른편에 루터 하우스(옛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가 보인다.
비텐베르크는 지금도 우리의 소읍 정도(4-5만)의 작은 도시이다. 현재도 기차역(그림 오른편)에서 종교개혁의 현장(성채교회)까지 도보로 10여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 도시 중앙에는 시청 광장이 있으며 1821년 세워진 루터 동상이 있고 광장 옆에는 루터의 친구였던 필립 멜랑흐톤의 동상도 있다. 멜랑흐톤 하우스는 사진에서 루터 하우스 바로 왼편에 자리하고 있다. 광장 인근의 성 마리아 시립교회는 루터가 독일어로 처음 설교했던 장소다.
6. 1511. 4 비텐베르그 대학
비텐베르크 교회
7. 1512. 10. 19 신학 박사
8. 1517. 10. 31 비텐베르그 성채 교회 문에 “95 개조 논박”
9. 1518. 8. 25 멜랑흐톤 비텐베르그 대학 부임
게오르게스 기사(Knight George) 로 행세한 마르틴 루터(비텐베르크 루터 하우스 전시물)
1502년 비텐베르크 대학를 세우고 마르틴 루터를 교수로 초청한 사람은 작센의 선제후(재위 1486년-1525년)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 1463-1525)였다. 그는 현명한 제후였으므로 '현공'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그는 마르틴 루터를 보호하고 자신의 성(바르트부르크)을 루터에게 도피처 성으로 제공하였다. 그곳에서 루터는 게오르게스 기사로 행세하면서 지낼 수 있었다.
10. 1518. 12. 18 프리드리히 선제후 루터 추방하지 않음
11. 1519. 7. 4-14 에크와 라이프치히 논쟁
12. 1520. 8 독일 귀족에게 고함
13. 1520. 10. 6 바벨론 유수
14. 1520. 11. 12 쾰른에서 루터 저서 불사름/그리스도인의 자유
15. 1521. 12. 25 칼슈타트 미사에서 평신도 포도주 나눔
16. 1524. 9. 에라스무스의 자유 의지
17. 1525. 6. 13 노예 의지에 관하여
18. 1527. 여름. 심각한 우울증으로 앓아눕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지음
19. 1543. 7. 창세기 주석 출판(1535-1545년 강의)
20. 1545. 3. 25 마귀가 세운 로마의 교황 제도에 대한 반박
21. 1546. 2. 18 아이슬레벤에서 사망
※마르틴 루터의 창조론(M. Luther's Thought on Creation)
Dr. Charles P. Arand(Concordia Seminary)
1. 전체 사도 신경의 구조 속에서 본 사도 신경의 첫째 항목
*사도신경 전체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주어졌으며 3개의 각 항목도 동일한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2.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과 함께 나를 만드셨다.
1) 루터는 '천지'를 더 인격적인 말인 '모든 창조물과 함께 나를'로 바꾼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음 3 가지 주제를 다룬다.
(1) 창조물(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
(2) 창조물(피조물)에 대한 우리의 관계
(3) 그의 창조물(피조물)을 도구로 한 하나님의 내게 대한 관계
(1) 창조물(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
* 하나님은 광대한 은하수로부터 미세한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을 만드셨다
* 하나님은 무로부터(ex nihilo) 우주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다
* 따라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형이상학적 경계가 있다
(2) 인간과 인간 이외의 창조물
* 하나님은 나와 모든 창조물을 만드셨다. 따라서 둘 사이에는 상호 연대와 의존성이 있다.
* 이 말은 동시에 인간들을 다른 창조물로부터 구분한다. '내'가 하나님 창조 활동의 중심이다.
* 물질과 영적 영역을 나눔 금지(둘 다 창조물- 서로 관련되나 구분도 가능)
(3) 하나님의 가면인 피조물
* 창조물은 존재의 낮은 질서에 속하는 것이 아닌 신적인 선하심의 도구이다.
*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의 가면(Larva Dei) 역할을 한다.
* 인간은 하나님의 선한 도구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 믿음은 가면을 넘어 가면을 쓰고 계신 분을 붙잡는다.
3. 세상에 대한 인간 중심적 관계
1) 루터는 인간중심적(Anthrophocentric))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믿음으로부터 출발함으로써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내게(mir) 육신과 영혼, 눈, 귀 그리고 나의 모든 신체의 부분, 나의 이성과 모든 감각들을 주셨고, 지금도 이 모든 것을 보호하신다.<첫번째 원>
3) 하나님은 또한 의복과 신을 것과 음식과 음료, 집과 가장, 아내와 자녀들, 전토, 가축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모든 것을 주시고 나를 보존하신다.<두번째 원>
4) 하나님은 내 몸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날마다 풍족하게 내려주신다<세번째 원>
결론
하나님은 이 세상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보존하심으로써 그리스도 사역을 통하고 성령의 능력에 의해 창조물이 발견되고, 복구되고 갱신되도록 하신다.
종교개혁의 인물들(1625/1650년 제작). 중앙 열에 마르틴 루터를 중심으로 좌우에 칼빈과 멜랑흐톤 그리고 위클리프, 베자, 얀 후스가 보인다. 쯔빙글리(아래 그림 6번)와 하인리히 불링거(그림 9번)는 상열에 배치하였다(베를린 소재 독일역사박물관 전시물).
※루터의 신학
1.계시론
1) 말씀의 신학(칼빈은 말씀과 성령을 동시 강조)
2) 성경을 창조주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로 믿음
3)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의어로 사용
4) 말씀이 육신이 됨(그리스도 중심)
5)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아니면 나는 성경에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2. 신론
1) 스콜라 신학의 신관을 버림
2) 오직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3) 십자가 신학
4) 죄인의 눈에는 감추인 하나님
5) 유명론의 오컴의 영향
6) 하나님은 진노와 사랑의 하나님
3. 인간론
1) 죄는 아담의 타락을 통해 세상에 들어왔다
2) 경죄와 중죄 구별 배격
3) 루터의 인간론 특징=
(1) 창조된 존재(ens creatum)
(2) 무에서 창조(creatio ex nihilo)
(3)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4) 형상과 모양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칼빈)
4) 삼분설
5) 원시의를 하나님의 형상과 동의어로 사용
4. 기독론
1) 철두철미한 그리스도 중심
2) 루터의 후계자들은 케노시스(Kenosis) 교리와 속성의 교류 교리를 수용(정통 신학은 아니고 루터의 제자들이 만듬)
3) 루터의 기독론은 위 두 교리를 제외하면 구속적 관점에서기독론을 논한다는 점에서 정통신학
4) 루터의 기독론은 "말씀-육신 기독론"이요 칼빈은 "말씀-사람 기독론"이다(D. Wells).
5) 루터는 고전적 기독론자다(G. Aulen).
5. 구원론
1) 칭의론(하나님의 선언) 강조
2) 신앙론 강조
3) 믿음으로만 의롭게 됨(롬 1:17)
4) 죄의 교리와 은혜의 교리가 중심(어거스틴적 요소)
5) 신앙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회개 더 많이 주장
6. 교회론(성례관)
1) 만인제사장설 주장
2)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
3) 교회는 칭의 교리와 연관
4) 속성의 교류에 의한 “공재설”(Consubstatiation)
5) 말씀이 있는 곳에서 그리스도를 찾음
비텐베르크 광장
※마르틴 루터와 칼빈의 비교
1. 루터와 칼빈의 비교는 가능한가
1) 가능합니다.
2) 두 사람은 26년(1483-1509)의 나이 차가 있고, 국적은 독일과 프랑스로 서로 다르고, 함께 생존한 기간은 37년(1509-1546)이었습니다.
3) 칼빈(1509-1564)과 칼빈주의가 약간 다르고 루터(1483-1546)와 루터파가 조금 달라서 그 비교가 쉽지는 않습니다. 또한 루터의 초기, 중기 사상과 후기 사상이 다른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예를 들면 칭의론에 있어 루터는 초기 펠라기우스적 입장에서 서서히 어거스틴의 견해로 옮겨옴).
4) 다만 칼빈주의에 있어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있고, 칼빈의 신학적 입장과 교리를 알 수 있는 기독교 강요라는 탁월한 책이 있으며, 루터란들에게는 신앙고백서(The Book of Concord, The Confessions of the Evangelical Lutheran Church, Fortress: Philadelphia, 1959)가 있으므로 일정한 비교가 가능합니다.
5) 칼빈의 요리문답과 기독교강요가 개혁교회 신앙고백서들의 기초가 되었고 루터의 신앙고백과 요리 문답이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의 기초가 되었으므로 이들을 비교하면 유사성과 차이점을 알 수 있습니다.
2. 루터란들의 신앙 고백서(The Book of Concord, The Confessions of the Evangelical Lutheran Church, Fortress: Philadelphia, 1959)
1) 루터란들의 신앙고백서는 세 가지 공동신조로서의 사도신경, 니케아신경, 아타나시우스신경을 받아들입니다(본 홈피에 모두 원문이 있으니 참조바랍니다).
2) 그리고 루터란들의 중요 고백문서인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Confessio Augustana=The Augsburg Confession, 1530),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 변증서(Apology of the Augsburg Confession, 1531), 슈말칼트 조항(The Smalcald Article, 1537), 교황 권위와 수위권에 대한 조항(Treatise on the Power and Primacy of the Pope, 1537), 소교리 문답(The Small Catechism, 1529), 대교리 문답(The Large Catechism, 1529), 일치 신조문(Formura of Concord, 1577)을 포함합니다.
3. 종교개혁가로서의 두 사람의 일치
1) 칼빈과 루터가 세부적으로 보면 당연히 미세한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남한강과 북한강이 모여 한강이 되듯, 루터와 칼빈이 연합하여 종교개혁사상을 이루었다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2) 파울 알트하우스의 <마르틴 루터의 신학>을 지난 3년간 주말마다 원서로 스터디하면서 담론할 때마다 함께한 교수님들 모두 결국 칼빈 사상과 루터 사상은 종교개혁으로 가는 같은 물줄기( Sola Gratia, Sola Fide, Sola Scriptura)라는 데 대해 동의하였습니다.
4. 루터와 칼빈이 대표적으로 다른 점
물론 미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두 사람이 많이 다릅니다.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성만찬 교리
칼빈은 1541년 <성만찬 소고>에서 다섯 차례 루터를 인용하면서 대부분 루터를 긍정적으로 인용합니다. 또한 카톨릭의 화체설을 비판하는 데 있어서도 일치합니다. 루터는 <교회의 바벨론 유수>에서 카톨릭의 성례를 공격합니다). 다만 루터의 실재적 임재(공재설, Consubstantiation)에 대해 츠빙글리(1484-1531)는 기념설(Commemoration), 칼빈은 영적 임재(Spiritual presence) 쪽으로 기웁니다.
2) 영혼 기원론
루터는 유전설, 칼빈은 창조설
3) 인간 구성 요소
루터는 영, 혼, 육 3분설, 칼빈은 2분설
4) 말씀과 성령
루터란들은 성령은 말씀을 도구로 역사한다고 보며(말씀이 더 중요), 개혁주의자들은 성령이 말씀과 함께(cum vervo) 역사한다고 봄.
5) 교회론에 있어 카톨릭 신부로 출발한 루터가 카톨릭에 대해 약간 모호한 입장인 경우가 있으나 칼빈은 분명하게 성례와 말씀 선포에 있어 카톨릭과 다른 명료한 의견을 가짐.
루터 회관 앞 루터 동상(서울 송파구 잠실)
5. 칼빈이 본 루터(유사성)
1) 루터를 존경하고 그의 저서들을 탐독함
2)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므로 루터가 설령 오류가 있더라도 덮어둘 것을 요구함
3) 독일어를 모른 칼빈은 루터의 라틴어 원본과 번역서를 참조함
4) 간결하고 용이한(brevitas et facilitas) 칼빈 신학의 특성상 루터의 문헌을 직접적으로 인용하지는 않으나 칼빈은 분명 일치신조를 제외한 위에서 언급한 신앙고백서들을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대부분을 읽었을 거라고 봅니다.
5) 신 중심신학이나 고난을 영광으로 보며 영광 신학을 비판하는 등의 십자가 신학에 있어 루터와 칼빈은 유사함(따라서 칼빈이 루터의 십자가 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6) 따라서 계시와 신학의 점진성에 비추어 볼 때, 칼빈은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시작한 사역을 존중하면서 그 개혁을 지속시키고 완결시키려 노력한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7) 이런 과정에서 서로 간 약간의 구분이 생기고 입장의 다름과 수정이 생겨남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이 들어 쓰신 위대한 종교개혁자였습니다.
조덕영 교수(창조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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