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창조에 대한 오리겐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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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박사. |
오리겐 당시 신학자들은 많지 않았다. 필로나 순교자 저스틴 그리고 오리겐의 스승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등이 잘 알려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 초대 교회 신학자들은 물질의 기원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고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필로는 하나님께서 물질을 창조하시기 이전부터 물질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았다. 오리겐은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물질이 창조되지 않았다거나 단지 우연한 결과라고 여기는 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로 구성된다. 오리겐은 모세가 세상 기원에 관해 쓴 창세기 1장이야말로 역사적 사건 이상의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즉 많은 구절에 단순한 세상 창조를 너머 영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계시의 문자 속에는 신비적이며 깊은 실재가 담겨있다. 또한 오리겐은 물질의 선재(先在)에 대해서 단호히 거부한 사람이었다. 세상은 특정 시점에 분명 창조된 세상이다. 비록 그가 철학에 능통한 인물이기는 하였으나 하나님이 물질과 영원히 공존한다고 보는 철학의 관점과는 분명 다른 성경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것을 볼 수 있다.
신학자로서 오리겐이 지닌 세상 창조론에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어찌하든지 그가 삼위일체의 틀, 특히 기독론의 틀 안에서 세상의 창조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오리겐은 눈에 보이는 물질계는 일시적이며 잠정적인 것으로 보았다. 세상은 형체가 사라지고 있으며(고전 7:31) 종말을 향한다. 즉 물질계에 속한 생명은 시작이 있되 유한하다. 피조물은 시작이 있었으나 종말을 가진 '허무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다. 해 아래 새것은 없다. 오리겐은 세상의 창조에 대해 성경이 '카타볼레'(καταβολή, 기초 놓음)라는 새롭고 고유한 말을 사용한다는 데에 주목한다. 이 말은 철학이나 신학에서는 전문 용어로 잘 쓰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라틴어 성경에서 "구성"(constituo)이라는 부정확한 단어로 번역되어 있다. 헬라어로 이 말은 단순히 세상이 피조 되었다는 의미가 아닌 "떨어뜨리다"(deicere), 곧 아래로 향하여 던지는 행위(deorsum iacere)를 표현한다.
이 설명에서 우리는 오리겐이 세상 창조를 바라보는 독특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곧 세상은 가장 완전한 상태로 하나님에 의해 하강(下降)한 것이다. 또한 이렇게 세상이 하강하듯 피조된 것은 세상(물질적 세계)이 타락의 결과로 형성되었기 때문임을 암시한다. 그것이 '카타볼레'의 특징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크티시스'(κτisis, 창조)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한 세상은 세상에서 훈련 받도록 정해진 모든 영혼 그리고 그 영혼들을 곁에서 보살피고 다스리고 도울 준비가 된 모든 세력을 담을 수 있는 속성과 크기로 창조되었다고 오리겐은 역설한다. 즉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게 펼쳐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통제가 가능한 만큼만 물질을 창조하시고 지성적 존재도 그렇게 제한적으로 창조하신다. 즉 자신의 섭리 속에서 모든 것들은 통제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질서 속에 있다면 당연히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결국 모든 회복하시고 모든 것을 성화하시며 영광 받으실 하나님이다.
이렇게 오리겐은 사랑의 하나님의 본성 속에서 창조된 이 세상이 언젠가 완전히 회복될 것임을 아주 강하게 믿은 사람이었다. 이 같은 사상은 오늘날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에게서도 감지되고 있다. 오리겐은 자신의 성경 해석에 있어 사도적 전통을 늘 강조한다. 하지만 만물의 궁극적인 회복이라는 오리겐의 종말론적 개념이 사랑의 하나님만을 강조하여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과 영벌에 대해서 혹시 간과해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 되는 점이 없지 않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조직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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