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뽑기라는 쑥스럽고 어색한 절차를 언제까지…”
제비뽑기는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주요한 의사 결정 수단이었습니다(대상 26:13-16; 잠 16:33; 레 16:9; 몬 1:7; 느 11: 1; 수 15:1, 16:1). 성경은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는 것은 하나님(잠 16:33)이라고 말합니다. 즉 제비를 뽑든 인간이 하든 모든 것은 인간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모든 통치와 섭리의 주인이심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성경 구약의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 일부다처를 하였다고 우리가 그것을 옳다고 볼 수 없는 것처럼(하나님이 일부다처를 권장하시는 것이 절대 아닌 성경의 주요 인물들도 시대적, 역사적 한계 아래서 악한 제도에 편승하였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시는 자료임) 제비뽑기도 과연 하나님의 선하신 제도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제비뽑기 방식의 선호 여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으나 다만 제비뽑기가 다툼을 줄이는 방법(잠 18:18)은 됨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없는 은혜스러운 공동체나 상식을 지닌 공동체는 굳이 이런 방식을 도입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신약 시대의 경우 가룟 유다의 죽음으로 인해 베드로는 시편 69장 25절(유다에 대한 심판과 저주)과 109편 8절(심판의 경우 직분을 다른 사람이 취해야 함)을 인용하면서(행 1:20) 새 제자 선출의 당위성을 주장합니다. 그렇게 해서 선발된 사람이 바로 바사바 또는 유스도라고도 하는 요셉과 맛디아였습니다. 그리고 기도 후 제비뽑아 맛디아가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로 선출됩니다.
그 이후에는 기독교 역사에서 제비뽑기에 대해 뚜렷하게 주목할만한 사건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공생애나 부활 이후 한 번도 제비뽑기를 언급하시거나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초대 교회의 위대한 설교자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맛디아를 선발한 제비뽑기가 아직 성령이 임하지 않았을 때에 행해지던 일시적 선출방식이었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사도행전 1장에 나타난 맛디아 선출 방식이 교회의 목사나 장로처럼 일상적인 공적 직무자를 뽑은 게 아니라 교회 설립을 위임 받은 사도의 결원(缺員)을 보충하는 특별한 경우였음을 지적합니다. 즉 그것이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는 하나 극히 이례적인 일시적이요 단회적인 성격을 지님을 말합니다.
몰간(C. Morgan)은 초대교회가 제비뽑기로 맛디아를 선출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선출 방법이었다고 단정합니다. 성령 강림 이전에 교회 지도자들이 참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기에 무능하여 잘못된 제비뽑기라는 방식을 동원하여 맛디아를 뽑는 인간적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지요. 마치 하나님은 다윗을 준비하고 계셨음에도 좀 더 차분하게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성질 급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 나라처럼 사울을 자기들 왕으로 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떼를 쓴 것과 유사합니다. 사도들은 동료 사도로 맛디아를 서둘러 제비뽑기로 선발하였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바울을 사도로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인간은 이성과 경험과 합리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물론 이것들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일반은총 영역입니다. 이성과 합리와 경험이 구원의 핵심적 요소는 아니나 신앙 구성의 주요 요소임은 사실입니다. 이들 일반은총으로 인해 우리 인간은 삶을 영위하고 세상을 깨닫고 배우며 신앙을 키우고 지식을 쌓아가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아기들도 중생(重生)은 가능하나 믿음은 지적 능력이 생긴 다음의 일이지요. 신앙 안에서 이들 요소들을 통해 가장 합당한 사람을 선출하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은 죄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성과 경험과 합리성 아래서 자유 의지 아래 전 존재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였습니다. 따라서 제비뽑기가 유리한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정반대로 제비뽑기가 인간 죄성으로 인해 원치 않는 사람을 선발하는 경우(하나님이 주신 기본적 경험과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가 닫혀짐으로 인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선한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모두 죄인인 마당에 기도하고 제비뽑기하는 것도 좋으나,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선한 양심에 따라 이성과 경험과 합리적인 방식으로 그나마 가장 적합한 인물을 선출하는 게 더욱 은혜 시대의 순리에 맞다고 봅니다.
기독교 역사 안에서 조용하던 제비뽑기 문제가 근래 갑자기 불거진 이유는 어느 교단이 제비뽑기를 주장하고 실제 주요 임원들을 그렇게 선발하면서부터 였습니다. 우리나라 저명한 교단에서 일어난 최근의 이 제비뽑기 도입에 대해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성경 해석에 대한 무지와 오해로 인해 구약 시대 존재하다 거의 사라진 제비뽑기를 다시 도입한 것은 아주 생뚱맞은 사건이었다고 봅니다. 구약 시대에 시행되었다고 다 옳은 게 아닙니다. 형수(兄嫂)취수 제도가 율법이라고 따를 수 없는 것이나 구약 믿음의 인물들이 일부다처했다고 오늘날 따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제도를 통해 오늘의 우리들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질책하시는 가를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 그 교단 누군가가 제비뽑기를 하자고 강력하게 제안하였고, 그 문제에 대해 성경적, 순리적, 신앙적으로 타당성 문제를 슬기롭게 따져보고 제어하지 못한 그 교단 당사자(신학자, 교단 책임자)들의 책임이 크겠지요. 물론 지연, 학연, 금권 선거에 앞장서다가 급기야 제비뽑기로까지 나아가는 데 원인을 제공한 과거 그 교단의 지도자들이 먼저 참회해야 할 겁니다.
둘째, 지금은 구약 시대도 아닌 은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제비뽑기를 도입하여 스스로 하나님이 주신 경험과 이성과 성령의 도우심보다 단순한 뽑기를 통해 중요한 일을 해결할 경우,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 역할이나 책임을 전가해버리는 큰 실례를 범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셋째, 따라서 교회 역사나 개혁주의 전통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은혜 시대의 교회 모습에도 전혀 맞지 않는 이런 어색한 제도의 시행은, 교단이 금권 타락 선거를 버리고 은혜스럽게 바뀌어 정상화 되면 반드시 성경적 모순을 깨닫고 스스로 시행착오를 확인하면서 언젠가 자연스럽게 폐지될 거로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무리한 제도가 시행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제비뽑기 실시는 성령 받고 지적이며 신앙의 경험과 연륜을 가졌으며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과 이성을 가졌음에도 그것을 슬기롭게 선용하지 못하고 지도자 한사람 제대로 바르게 선발하지 못하는 대형 교단의 부끄러운 모습을 하나님께서 인간들 스스로 만천하에 공개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이 주신 경험과 이성의 일반 은총을 통해 지도자들을 알아서 잘 선발합니다.
하지만 늘 지연, 학연, 금권 선거로 시끄럽고 혼탁하여 하나님의 교회지도자 한사람 제대로 선출하지 못하는 조국 교단의 부끄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도 영적, 육적 지도자를 제비뽑기로 시행한 좋은 모델이 보이지 않는 상황(모세, 아브라함, 요셉, 다윗, 솔로몬, 사무엘, 예레미야, 이사야, 에스겔, 히스기야, 에스라, 느헤미야, 다니엘 등을 제비뽑기로 뽑지 않았음)에서 은혜 시대에 제비뽑기를 도입한 것은 분명 민망한 일입니다. 제비뽑기가 정말 그렇게 중요하고 필요하다면 예수님이 친히 제비뽑기를 하라고 한번쯤은 언급을 하셨겠지요. 그런데도 제비 뽑기가 성경적이라 우기는 분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니 이 미숙한 제도를 버리지 못하는 겁니다. 제비 뽑기가 그리 타당하다면 총회장 뿐 아니라 부작용이 없도록 신학생들도 제비 뽑기, 담임 목사, 장로도 제비 뽑기, 결혼도 제비 뽑기, 공부보다 교회 봉사 열심히 하다가 수능 답안도 간절히 기도하고 제비뽑기로 답을 써야 하겠지요.
제비뽑기가 비성경적임은 명약관화합니다. 제비뽑기가 옳으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지연, 학연, 금권에 얽혀 순리대로 하나님의 사람을 선발하지 못하고 제비를 뽑는 지경에 까지 이른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참회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행 교단은 지금이라도 속히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철회하는 것이 순리일 거라 봅니다. 하지만 제비뽑기를 철회한다고 하면 당장 금품 선거가 재현될 거라면서 극렬하게 반대하는 분들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서는 유대 종교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야 한다고 여론을 몰아간 것처럼 목소리 큰 사람이 대개는 이깁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는 일이 계속'되는 것이지요. 즉 금품 선거 무서워서라도 당분간은 제비뽑기라는 쑥스럽고 어색한 절차를 포기하기 어려울 겁니다. 거룩한 교회 안에서 세상 사람들만도 못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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