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주거지였던 브엘세바에서 발견된 번제단©조덕영
당연히 에스겔이 본
번제단이
문자적 재건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성경적 해석이 아니다.
네 개의 뿔을 가진 번제단을 소개하는 팻말
에스겔서 후반부(겔 40-46장)는
새성전에 대한 환상이 전개된다.
여기에는 성전 측량과 성전 완성,
그리고 제단 봉헌과 예물과 제사 규례가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새 번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번제를 드리며
피를 뿌리는 규례를 지키라 했다(겔 43: 13-18).
이 계시가 임한 지 2,50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새성전은 문자적 재건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유대교인이 그런다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독교 성직자라는 사람들이
문자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믿어야 한다고
만일 모든 교회가
제사장 복장(에봇)을 만들고
양을 잡고
번제단을 만들어
피를 뿌려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독교는 먼저 동물보호단체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실제 수년전 한국교회 안에서
그런 유사한 일들이 벌어져 큰 소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다고 자처하는 일부 근본주의자들(목사, 장로들)의 행태였다.
브엘세바의 물 저장고
10만 여명의 목회자들이
해마다 모든 교회에서 양을 잡아 불에 태우며 온갖 피비린 내를 풍기고
번제를 드리기 위해
교회마다 번제단을 만든다면
목축업자와 석공 업자들만 대환영할 일이다.
유월절 양을 잡았던 일부 한국교회의 무모한 시도는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주었다.
바로 바른 신학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소동이었다.
에스겔 새성전의 재건에 집착한다면
성서문자주의자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번제단이 없었던 갈대아 우르 시절
믿음으로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으며
이삭과 야곱도 동일한 유업을 약속으로 받아
함께 장막에 거했다고 했다(히 11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장막 브엘세바 유적
에스겔 후반부는
모형으로서의
유월절 어린 양 예수를 보여주는 계시다.
문자적 율법 준수가 아닌
십자가 지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게 하는
계시인 것이다(히 12:1-2).
브엘세바 이스라엘 국립공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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