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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삼위일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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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바도기아 교부들의 삼위일체론

1. 가이사랴의 바실리우스(329-379):

(성령 신학의 창시자R. P. C. Hanson, "The Divinity of the Holy Spirit", Church Quarterly, v. 1. 1969, 300.)

※주요 공헌

(1) 아리우스파 반대.

(2) 갑바도기아 수도 가이사랴의 대주교.

(3) 저서: <유노미우스 논박>(아리우스 반박), <삼위일체론>, <성령론>,

(4) 하나의 ousia(본질, 실체, substance)와 세(성부, 성자, 성령) 휘포스타시스(실체, 위격, substance) 구분.

1) 바실의 생애 요약

(1) 바실(St. Basil the Great, 330년 경-379년)은 아타나시우스가 감독이 되었을 무렵, 지금의 중앙 튀르키에(구 터키) 갑바도기아의 가이사랴에서 태어남(갑바도기아의 가이사랴는 성경에 나오는 팔레스틴의 가이사랴와는 다른 곳).

(2) 동생이 바로 닛사의 그레고리(335-395), 친구 나지안주스 그레고리(330-389)와 함께 갑바도기아 세 교부로 불리며 역사 속 삼위일체, 정통 신학의 중심 역할

(3) 훗날 그의 조모, 모친, 누이, 두 형제가 성인으로 추대될 정도로 독실한 신앙적인 분위기 . 바실의 형제자매는 모두 10명이었는데, 장녀는 누나인 마크리나였으며, 바실은 장남이었다.

(4) 부친 바실은 10세 바실을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블)로 보냈으며 웅변술을 배우다. 이후 법률가와 연설가가 되려는 계획을 세워 아테네로 건너가 수사학과 문학을 배우다. 아테네에서 미래 로마 황제가 될 율리안과 교류하며, 평생 친구 그레고리를 만나다.

(5) 고향에서 수사학을 가르쳤으나 누나 마크리나의 신앙의 모범과 가르침을 따라 세상 성공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다.

(6) 세례 후 금욕적 생활을 위해 357년, 27살의 젊은 바실은 애굽,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등지의 광야를 여행하면서 여러 수도원들과 사막의 은자들을 방문하며 수도원적 삶을 배웠고, 여기서 큰 감명을 받은 바실은 그들의 본을 따라 그리스도께 헌신하기로 서원하다.

(7) 동생 닛사의 그레고리, 친구 나지안주스 그레고리와 함께 재산을 정리하고 조모의 집이 있는 소아시아의 본도로 가 모친과 누이가 설립한 여수도원 근처에, 기도와 명상에 전념할 수 있는 작은 수도공동체를 창설하다(28세).

(8) 367-368년에도 갑바도기아에 심각한 기근이 발생하여 고통을 당하자 바실은 자신의 남은 가문 부동산과 재산들을 팔아 굶주리고 있는 자들을 위해 음식 제공. 그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전혀 구별 하지 않았으며 병든 자들을 위한 병원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거주소 그리고 여행자들을 위한 숙박소를 지었다.

(9) 수도원 공동체 생활 중 훗날 모든 동방 수도원 운동의 규범이 된 기본적인 수도사들의 기본적 삶을 위한 '대규율'(Longer Rules), 즉 55개의 규율과 '소규율'(Shorter Rules), 즉 313개의 작은 규율을 썼다. 바실은 이 규율에서 특히 상부상조의 사랑과 헌신을 가진 기독교적 삶이 성경적 공동생활임을 강조하였다.

(10) 362년 남동생 세바스테에게 수도원의 지도직을 이양, 자신은 금욕적 삶을 통한 수행, 밤새 기도, 한 가지 옷 이상을 입지 않기, 목욕을 하지 않으면서 완전한 덕을 세우는 삶을 살기 위한 노력. 수도원적 금욕주의 발전. 또한 복음적 가난, 자선 그리고 무조건적 복종보다는 그리스도의 두 가지 면의 명령,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따른 완전한 순종을 강력히 주장.

(11) 372년, 궁정 사역 제안을 거절한 바실은 가이사랴의 감독의 설득으로 갑바도기아 수도인 가이사랴의 메트로폴리탄 대주교가 되다.

(12) 아리우스파에 반대하는 설교를 그만두라는 로마 황제(율리안, 발렌스) 명령을 완강히 거부.오리겐과 아타나시우스의 성자의 영원한 발출 교리 옹호. 동방의 감독들이 니케아신조를 따르는데 노력을 기울이다.

갑바도기아 풍경©S. W. Cho

2) 당시 성령과 삼위일체 관련 이단들

(1)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 : 성령은 최고 원인에서 나온 셋째

(2) 아에티우스와 유노미우스(아리우스주의자들): 성령은 상이본질, 성령은 성자께서 성부의 부탁에 따라 만드신 피조물(Vasil, Eunomius 반박서 5권)

(3) 형상론자(Tropici): 성령은 아버지와 서로 다른 본질

(4) 성령의 신성 부정하는 Macedonians, Pneumatomachian<"영의 신성이나 인격 부인", “영의 반대자”>):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은 인정하나 성령의 동일성은 부정. 성령을 하나님이라 부르지도 않았고 피조물이라 부르지도 않음(중간 위치?).

(5) 중도파(예루살렘의 키릴): 성령의 완전한 신격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일본질” 용어 사용은 거부(명료성 결여).

3) 삼위일체 관련 바실의 성령론(On the Holy Spirit, De Spiritu Sancto, 375)

(1) 성령의 신성을 강조하고 성령을 송영으로 찬송하는 일을 변호하기 위한 논문

(2) 성령의 신성 부정하는 Macedonians(성령의 피조성 주장, 콘스탄티노플 감독이었던 Macedonius에서 유래)와 Pneumatomachian(영의 항쟁자들, <"영의 신성이나 인격 부인", “영의 반대자”>) 반박

(3)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을 성령께서도 행하신다. 다시 말하면, 피조물들의 창조, 갱생, 그리고 성화에 관한 일은 성령이 하시기에 성령께서는 신성을 소유하셔야한다.

(4) 성부는 제 1원인, 성자는 창조주, 성령은 완전케 하시는 분.

(5) 성령의 고유한 인격성

(6) 성령의 신격

*성령은 피조물(κτίσμα)이 아니시다.

*성령은 ‘거룩성의 원천’이다.

*성령은 생명의 수여자

*성령의 신적 존재성은 성화 행위에서 분명하게 입증된다. 성령은 성화의 기원(αγιασμού γένεσις)이다.

*성령은 주님(고후 3:16-18)

*성령을 공개적으로 ‘하나님’이라 부르지는 않음

*하지만 사적 편지들(360)에서는 분명하게 성령을 ‘하나님’(Θεός)이라 부름.

2.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329년 경-90):

1) 생애

(1) 아테네 유학 시 바실리우스 만나 두터운 교분

(2) 갑바도기아 나지안주스의 주교로 사역하던 부친을 도우려 장로 임직

(3) 콘스탄티노플 주교, 공의회(381) 의장

2) 신학 사상

(1) 신학연설들(Theological Orations):

삼위일체론에 대한 고전적 해설(성부는 비출생, 성자의 나심<게네시스>과 성령의 출래는 시간을 초월하여 이루어진 일- 성령은 아들과 동일실체)

(2) 성령의 신성 : 나음을 입지 않고 발출되신 분(토 에크포류톤)

(3) 세 위격의 구분은 하나의 본성 안에서 보존

(4)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성부와 동일본질(바실리우스)

(5) 아타나시우스의 "동일 영광", "동일 경배" 사상

3. 닛사의 그레고리(335경-395)

1) 생애:

(1) 바실리우스의 동생

(2) 수사학 교수

(3) 372년 형에 의해 닛사의 주교 임명

(4) 381년 공의회에서 활약

2) 신학 사상

(1) 삼위일체의 신학적 균형, That We Should Not Think of Saying There Are Three Gods

(2) 세 휘포스타시스(위격, Hypostaseis)의 구분을 강조함으로써 아타나시우스의 동일본질과 균형

(3) "페리코레시스"(상호내주->상호 관통, 상호상통) 이론을 통해 "한 실체"로 나아감

(4) 보편구원설과 온 창조계(마귀를 포함한)의 구속과 회복을 가르친 점은 아쉬움(영지주의적 요소도 아쉬움)

조덕영교수(조직신학, T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