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고후 13:13)론 서론
하나님 안에는 세 인격(人格;three persons in one God)이 계십니다.
이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의 근본 진리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이기에
하나님에 대한 이 교리는
영원히 신비한 교리로 믿음의 영역에 속한 교리입니다.
이 삼위일체 교리의 신비에 대해서 배웁니다.
1. 삼위일체는 무엇을 말할까요?
1) 하나님은 그 신격에 있어 삼위로 계시는데 바로 성부성자성령입니다.
2) 삼위는 한 하나님이요 본체는 하나이고 영원하시며 권능과 영광이 하나입니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제 2장 3항).
3) 성부는 스스로 계신분이며 어디로부터도 나오거나 유출된 분이 아닙니다. 성자는 영원토록 성부에서 탄생하시고 성령은 영원토록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십니다(Filioque).
4) 삼위일체란 말은 트리아(헬), 트리니타스(라)에서 온 말로 하나인 셋, 셋인 하나, 하나에 셋을 의미합니다.
5) 역사적으로 이 교리를 확립하는 데는 헬라 교부인 아타나시우스(삼위일체의 일체교리)와 갑바도기아 교부들(삼위일체의 삼위 교리)이 공헌하였습니다.
6) 지역 또는 언어가 달랐던 알렉산드리아의 헬라 교부 아타나시우스(297-373), 소아시아의 헬라파 신학자들인 갑바도기아 교부들 그리고 라틴 교부였던 어거스틴(354-430)이 모두 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 특별한 반대가 없이 서로를 수용하였다는 점에서 성령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7) 이 용어(τρίαϛ, Trinitas)는 성경에 명시된 단어는 아닙니다. 이 용어를 최초 사용한 사람은 시리아 안디옥의 감독 테오필러스(Theophilus, 168-183)와 라틴 교부 Tertullian(160-225)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8) 하지만 주후 3세기초부터 사용된 이 단어는 성경에 근거하여 나왔고 역사 속 교회가 사용된 단어로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적 교리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9) 즉 성령은 이 단어를 역사 속에서 인류에게 계시해주시고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Ⅰ. 삼위일체론이란?
하나 안에 셋인 삼위일체 하나님
1) 삼위일체 근거들
2)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3) 하나님과 신들
4) 일신론에 대한 현대 비판들
5) 하나님은 삼위이시다 : 복수성
삼위가 하나님이신 그 일체성
1) 기능적 그리고 존재론적 기독론들 : 바람과 바다도 순종케 하시는 그리스도(마 8:27)
2) 예수님의 신성을 당연시 여김: 창조주 예수(요 1:3, 고전 8:6)
3) 그리스도, 언약의 주님: 여호와-퀴리오스-주님
4)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나의 아버지"(마 25:34; 26:29; 눅 24:49; 요 14:23)
5) 예수, 그리스도 : 기름부음 받은 자(선지자-> 왕상 19:10, 제사장-> 출 29:7, 왕->삼상 10:1)
6)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 요 1:1(테초에 말씀); 요 1:18(하나님을 본 사람); 요 20:28(나의 주 나의 하나님)
7) 그리스도의 다른 칭호들: 인자(단 7:13-14, 요 8:28), 말씀, 하나님의 형상, 구원자, 구속자, 거룩한 자,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그리고 시작과 끝
8) 예수님의 신적 속성들: 요 14:6->길이요 진리요 생명, 지혜, 지식, 권능, 권위
9) 예수님의 신적 행위들: 용서 선포(사 43:25; 44:22; 막 25:7; 예수 이름으로 사도들의 선포-> 행 5:31), 마지막 심판 사역(계 2:23, 요 5:22)
10) 신앙과 예배의 대상이신 예수님: 동등한 존경(요 5:23), 엎드려 "절 함"("프로스퀴네오")과 예배(마 2:2; 요 9:38)
11) 의심스러운 문제 본문들 : 아버지와 아들은 기독교 예배 대상(고전 8:6),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첫 번째 피조물이 아닌, 부활에 있어서 예수님의 우위성(골 1:15)
12) 성령의 신성: 신적 속성(사 11:2), 거룩, 영원, 전지, 지혜, 편재, 불가해적 성령
아버지, 아들, 성령
Father, Son, and Spirit
※ 삼위일체의 요약
(1)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2) 하나님은 세 위격이시다
(3) 세 위격은 각각 충만한 하나님이시다.
(4) 각 위격은 서로 구분된다.
(5) 셋은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서 영원토록 서로 관련된다.
1. 인격들의 구분
1) 하나님의 가면?(prosopa)
2)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3) 하나님의 주권과 계시 교리
4) 계시 없이 삼위일체를 파악할 수 없는 인간
5) 서로 구분되며 모두 신적이신 삼위
6) 다른 상담자(요 14:16), 아버지가 아들을 주심(요 3:16), 서로 아나(마 11:27) 아버지께서 아시는 것 중 모르는 것이 있는 아들(막 13:32)-양태론 부정
2. 성령의 구분된 인격성
1) 영을 하나님의 능력과 연결시키나, 비인격적 힘이 아니라 신적이면서 인격적
2) 진리의 영(요 14:17)
3) 여호와를 성령과 동일시(고후 3:6)
4)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영(요 15:26)
3. 상호 임재(circumcessio, perichoresis, coinherence)
1) 모든 창조 사역
2) 아들은 아버지 안에(요 10:38)
3) 두 분이 성령 안에 성령이 두 분 안에(롬 8:9)
4) 상호 임재, 상호 교류
5) 예수님을 보면 아버지를 보는 것
6) 아버지는 미리 예정, 아들은 피, 성령은 거룩하게(벧전 1:1-2)
4. 상호 영화롭게 함
1) 갈등 없는 삼위일체
2) 삼위일체의 복종(deference), 버림(disposability)은 상호 영화
5. 본체와 위격들(언어와 용어들)
1) 하나됨: ousia, physis(헬), substentia, essentia(라), 서브스텐스, 에센스, being, nature(영)
2) 셋됨: hypostaseis, prosopa(헬) personae(라), persons, subsistensis, models of subsistence(영)
3) 성경적 용어가 아님(무모하게 만들어진 것은 아님<칼빈>, 법, 철학 용어 차용)
4) 신학적으로 도움이 될 때 사용을 주저하지 말 것
5) 다른 "우시아"가 아닌 다른 "휘포스타시스"로 정리(갑바도기아 교부들)
6) 하나님은 한 분, 다른 의미에서는 셋(어거스틴을 인용, 고든 클락)
7) 완전한 불가지론은 피할 것
8) 어원론과 용법에 있어 헬라어 "휘포스타시스"<복수성>와 라틴어 "수브스탄티아"<하나 됨>는 거의 동일!
9) 본체, 본질, 존재, 실존, 우시아, 에센티아는 모두 신적 속성을 지닌 신적 본질을 정의하는 용어
10) 위격(person)은 사실상 현대 영어로 번역할 수 없는 철학적 용어!
11) 위격은 하나님 안에 있는 관계, 삼신론(tritheism)의 고민
12) 위격들과 서로의 인격성과 중요한 관계성
6. 존재론적 그리고 경륜적 삼위일체
1) 존재론적(내재적) 삼위일체: 창조와는 별개로 필연적, 영원히 실존하시는 하나님으로서의 삼위일체
2) 경륜적 삼위일체: 참조, 섭리, 구속 역사를 통해서 수행되었던 창조와 관련된 삼위일체
7. 영원한 출생
1) 이 땅 삶 뿐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아들
2) 경륜적일 뿐 아니라 존재론적
3) 만일 아들의 신성이 획득된다면 아들은 지존하신(a se)분이 아니다(칼빈)
4) 자존하신 하나님("아우토데오스")이 아니면 신적인 분이 아니다.
5)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성(resiprocal)
6) 즉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은 <그분의 실존이나 신적 본성이 아니라> <그분의 아들의 신분을 받음>(칼빈)
8. 영원한 발현
1) 보냄: 성령의 영원한 발현(요 15:26)은 출생보다 더 넓은 용어
2) 보냄은 시간적
3) "에크포류에타이": 나오다proceeds, goes out
4) 성경은 성령의 영원한 발현의 본성에 관하여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신학적 겸손의 자세 필요)
9. 그리고 아들로부터
1) 아버지로부터(제 2차 공의회)
2) 필리오케 교리 논쟁(1054년)-로마 가톨리과 동방교회
3) 갑바도기아 교부들을 따라 신성의 근원에 있어 성부에만 초점
4) 상호 임재(써쿰인센시오)
5) 동방 신학은 성령의 발현은 오직 독점적으로 아버지에게 만(요 15:26)
6) 종속주의?(서방 신학의 동방 신학 비난)
7) 오직 유비로 이 교리를 전하는 것은 위험
8) 성경은 정확한 저으이를 주고 있지 않다.
10. 종속
1) 아리우스의 존재론적 종속(부인)
2) 위격들의 경륜적 종속
3) 역할의 영원한 종속
4) 종속보다 하나님의 겸손
11. 삼위일체 모델들
1) 어거스틴의 심리적 삼위일체(사랑, 받는 자, 하는 자/ 지능, 기억, 의지)
2) 자연적 지식이 아닌 믿음의 문제(자연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3) 사회적 삼위일체론: 인간 수준에 근거한 상호 인격 파악하려는 견해
12. 삼위일체 유비들
1) 삼위일체 흔적
2) 창조된 세상 전부는 삼위일체의 흔적들이다(프레임)
2. 하나님에 관한 성경적 진술들
자기 함유적 하나님
1) 하나님의 자존성(aseity)
(1) I am who I am.
(2) I will be that I will be(존재할 자로 존재할 것이라)
(3) 독립성(independence)-자기-실존, 자기-충족, 자기-함유
(4) 모든 것 소유
(5) 피조물들의 소유하고 있는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6) 청지기 피조물
2) 하나님은 감정을 가지셨는가?
(1) 하나님은 비육체적-우신 예수님(성육신의 신비)
(2) 영원한 작정 속 감정
(3) 피조물이 아니신 "하나님의 감정"
(4)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부적절한 감정(향수병, 내일 염려, 고통, 강박감, 중독, 열정의 파도, 감정 부족, 공감 부족 등)
3) 하나님은 고난을 당하실 수 있는가?
(1) 십자가 지신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의 열정
(2) 사랑의 본성 속 고통
(3) 고통에 동정하시는 하나님(십자가 위에서의 어떤 상해나 상실의 고통)
(4) 예수는 한 인격 안에 연합된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가지 완전한 본성들을 소유하신다(칼케돈회의, 451년)
4) 신적 실존의 네 가지 양식
(1) 하나님은 무시간적, 비공간적, 초월적 실존 가운데 슬픈 사건을 작정하시고 그것들을 적절하게 평가하신다.
(2)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과 함께 일시적 패배를 겪으신다.
(3) 하나님은 신현적 임재에서 자신의 백성들이 고뇌에 지쳐 있을 때 고뇌하신다(사 63:9)
(4) 성육신에서 아들은 육체적인 아픔, 박탈, 그리고 죽음이라는 상해와 상실의 고통을 당하신다.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의 증거
1) 구약:창 1:26(남성 복수 명칭 약 2,550번)/창 3:22/사 48:16, 시 51:11,139:7, 느 9:20/ 사 63:10.
2) 신약:고전 8:6(한 주)/롬 9:5(그리스도, 찬양 받으실 하나님)/고후 13: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요 10:30(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마 28:19/눅1:35/요 15:26/고전 12:4-6
3. 삼위의 하나님
1) 성부:신 32:6/렘 3:4/롬 8:15/고전 8:6/약 1:17/요일 3:1
2) 성자:요 1:14/11:27/요 3:16/시 2:7/행 13:33/사 9:6/계1:8/마18:20/히 1:6
3) 성령:요 15:26(지성)/사 63:10, 엡 4:30(감정), 행 16:7(의지), 행 5:3-4
4. 삼위일체 교리의 역사
1) 이레네우스(130-200):
폴리캅 제자, 최초 조직신학자 칭호, 영지주의 반대, 삼위일체 교리의 기초
2) 터툴리안(160-225):
삼위일체 교리에 공헌한 세 사람(터툴리안, 어거스틴, 칼빈-벤저민 워필드)
3)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185-254):
삼위일체 교리에 공헌, 하지만 성자종속절(Subordinationism)의 오류.
4) 아타나시우스(296-373):
알렉산드리아 감독의 비서로 니케아공의회(325) 참석. 호모이우시우스(아리우스)<->호모우시우스(동일본질, 아타나시우스)
5) 니케아(325), 콘스탄티노플공의회(381):
삼위일체 교리 확립("동일본질" 확인)
6) 갑바도기아 교부 1. 가이사랴의 바실리우스(329-379):
(1) 아리우스파 반대.
(2) 갑바도기아 수도 가이사랴의 대주교.
(3) 저서: <유노미우스 논박>(아리우스 반박), <삼위일체론>, <성령론>,
(4) 하나의 ousia(본질, 실체, substance)와 세(성부, 성자, 성령) 휘포스타시스(실체, 위격, substance) 구분.
(5) 바실리우스의 성령론(On the Holy Spirit, De Spiritu Sancto, 375)
(1) 성령의 신성을 강조하고 성령을 송영으로 찬송하는 일을 변호하기 위한 논문
(2) 성령의 신성 부정하는 Macedonians(성령의 피조성 주장, 콘스탄티노플 감독이었던 Macedonius에서 유래)와 Pneumatomachian(영의 항쟁자들, <"영의 신성이나 인격 부인", “영의 반대자”>) 반박
(3)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을 성령께서도 행하신다. 다시 말하면, 피조물들의 창조, 갱생, 그리고 성화에 관한 일은 성령이 하시기에 성령께서는 신성을 소유하셔야한다.
(4) 성부는 제 1원인, 성자는 창조주, 성령은 완전케 하시는 분.
(5) 성령의 고유한 인격성
(6) 성령의 신격
*성령은 피조물(κτίσμα)이 아니시다.
*성령은 ‘거룩성의 원천’이다.
*성령은 생명의 수여자
*성령의 신적 존재성은 성화 행위에서 분명하게 입증된다. 성령은 성화의 기원(αγιασμού γένεσις)이다.
*성령은 주님(고후 3:16-18)
*성령을 공개적으로 ‘하나님’이라 부르지는 않음
*하지만 사적 편지들(360)에서는 분명하게 성령을 ‘하나님’(Θεός)이라 부름.
7) 갑바도기아 교부2.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329-90):
(1) 아테네 유학 시 바실리우스 만남
(2) 아타나시우스의 "동일 영광", "동일 경배" 사상
(3) 비출생(성부), 나심(게네시스), 출래 사상- 성령은 아들과 동일실체
8) 갑바도기아 교부3. 닛사의 그레고리(335경-395)
(1) 바실리우스의 동생
(2) "페리코레시스"(상호내주->상호 관통, 상호상통) 이론을 통해 "한 실체"로 나아감
9) 어거스틴(354-430):
(1) 12권의 De Trinitate(399-419) 저술.
(2) 하나님의 본체를 호모우시우스(본질, substance)로 표현(헬라 철학 사상과 구분하기 위해 "휘포스타시스"<실체, 본체> 사용치 않음). 즉 영어 substance보다 영어 'essentia'선호.
(3) "전유"(專有)를 통해 "세 위격"으로 나아감
5. 삼위일체에 대해 알아야 될 사항
1) 오직 기독교에만 있는 신비한 신개념입니다.
2) 단일신종교인 유대교와 이슬람교에는 이런 개념이 없습니다.
3) 그래서 여기서 이단이 많이 나옵니다.
4) 칼빈=>3위와 일체의 어느 한쪽에 치우쳐도 안되고 사변(思辨)이나 유추로 설명하려 들지도 말고 오직 성경에 계시된 그대로만 믿어야 되며, 동일한 위엄과 영광과 경배가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기독교강요 1권 13장).
삼위일체는 그림으로 표현될 수 있는 분이 아니다(©조덕영, 필리핀 마닐라 국립박물관 소장품).
5) 삼신(三神)론과 양태(樣態;모양,mode)론이라는 이단설이 있습니다.
삼신론은 하나님이 세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고 양태론은 한분이신 하나님이 세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계승-성부고난)는 주장입니다.
6) 칼 바르트=성부는 계시자, 성자는 계시, 성령은 계시되어진 것.
6. 정리(묵상과 적용)
1)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존재에 있어 한분이십니까 세분이십니까?
2) 성부성자성령은 권능과 영광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3) 유대교나 이슬람교도 삼위일체종교입니까?
4) 삼신론과 양태론은 왜 이단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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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신경(Symbolum Nicaenum)
Symbolum Nicaeno-Constantinopolitanum
Forma Recepta Ecclesiae Orientalis. A.D. 381
Credimus in unum Deum Patrem omnipotentem; factorem coeli et terrae, visibilium omnium et invisibilium.
우리는 천지의 창조자이며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만드신 한분의 전능한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Et in unum Dominum Jesum Christum, Filium Dei [unigenitum], natum ex Patre ante omnia saecula, Deum de Deo, [Lumen de Lumine], Deum verum de Deo vero, natum [genitum], non factum, consubstantialem Patri; per quem omni facta sunt; qui propter nos homines et [propter] salutem nostram descendit de coelis et incarnatus est de Spiritu Sancto ex Maria virginine et humanatus [homo factus] est; et crucifixus est pro nobis sub Pontio Pilato [passus] et sepultus est; et resurrexit tertia die [secundum scripturas]; ascendit in coelum [coelos], sedet ad dexteram Patris; iterum venturus, cum gloria, judicare vivos et mortuos; cujus regni non erit finis.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한분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영원전에 성부에게서 태어난 신중의 신이며 빛중의 빛이고 참 신중의 참 신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출생되었으며, 모든 것을 창조하신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으신 분입니다. 그는 우리 인류를 위하여, 우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와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받아 인간이 되었고,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 처형을 받았읍니다. 그는 고난을 받고 장사되었으며, 성경대로 사흘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읍니다. 그리고 그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영광중에 다시 오실 것이며,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Et in Spritum Sanctum, Dominum et vivificantem [vivificatorem], ex Patre [Filioque] procedentem, cum Patre et Filio adorandum et conglorificandum, qui locutus est per sanctos prophetas. Et unam, sanctam, catholicam et apostolicam ecclesiam. Confitemur unum baptisma in remissionem peccatorum. Expectamus resurrectionem mortuorum et vitam futuri saeculi. Amen.
우리는 또한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 생명의 부여자와 주님이신 성령을 믿습니다. 그는 성부와 성자와 함께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며 거룩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사도적인 세계교회를 믿습니다. 우리는 죄의 용서를 주시는 하나의 세례를 믿으며,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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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신경 또는 니케아 신조(Symbolum Nicaenum)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는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던 아리우스주의에 대항하여 고백한 고대교회의 신앙고백이다. 팔레스타인 기독교 공동체의 세례 신경을 기초로 하여 '동질'이라는 용어를 보완한 가이사랴의 교회사학자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약 265-339)의 신경을 기준으로 공포되었다. 이 신경은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며, 특히 성자는 참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이며, 창조되지 않고 나시었다는 신앙고백이 들어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부활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예수는 피조물이라고 주장한 아리우스의 잘못된 교리에 대항한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다.
이 신경은 서방교회(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가 갈라지기 전에 함께 고백하던 신경이지만 로마 가톨릭에서는 나중에 성령이 성부로부터 뿐이 아니라 성자에게서 부터도 나오신다고 고백하게 되는데,(일명 '필리오케'라고도 한다- 본문 라틴어 참조)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동서교회가 분열하게된 시발로 본다. 동방교회의 입장은 '햇갈리지 않게 애초부터 정한대로 하자'는 것이고, 로마 가톨릭 입장은 교리에 걸맞는 고백을 하자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미사때 니케아 신경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되 사도신경으로 대체할 수 있다. 성공회에서는 감사성찬례시 니케아 신경을 통해 신앙을 고백하며, 사도신경은 만도(저녁기도)에 사용한다.
정통 교회는 니케아 신경과 아타나시우스 신경 그리고 사도 신경의 권위를 인정한다. 이단과 사이비 문제로 늘 시끄러운 한국 교회는 교회 전통의 성령의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 지 다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고전과 신앙적 전통의 중요성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므로 교회의 위기를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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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사항
성경은 ‘노르마 노만스’(‘norma normans’= 규범 시켜 주는 규범, norma absoluta, norma causativa)이고 교리나 신조는 ‘노르마 노마타’(norma normata= 규범 되어 지는 규범)입니다.
즉 개혁신학에서 성경은 무오하며 교리사는 어느 정도 오류사로 봅니다. 아무리 훌륭한 신조도 무오한 말씀에 판단 받아야 합니다.
다만 정통 개신교는 ‘노르마 노마타’를 하나님 말씀의 최종 권위에 의해 규정된 준칙으로 봅니다. 즉 정통 교리와 신조는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작성한, 성경에 일치함으로써 기독교의 보편 진리들을 훌륭히 요약하고, 하나님 말씀과 다른 이질적 교리들을 분별해내며, 교회 교육과 예배에 긴요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숙하고 노련하며 성령 충만한 이들 신앙 선배들의 이런 노고(교리와 신조의 전통)가 없었다면 교회는 바른 예배와 교육이 어려웠을 것이고 기독교는 이단 사이비들로 인해 대 혼란을 겪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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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교수(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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