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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창조과학운동의 원조 헨리 모리스와 신학적 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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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자 H. M. Morris

 

1. 창조과학 운동의 태동

(1) 일반적으로 근본주의 운동과 맥을 같이 하는 창조과학 운동은 성경의 문자적 해석에 관심을 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 뿌리를 둔 운동이라는 점에서 복음적이다. 창조론(Creationism)은 모든 자연 현상이 지성적인 창조주 하나님의 개입으로 시작되었다는 규정으로부터 시작된다.

(2) 그런데 이 용어는 오늘날 그 의미가 축소되어 우주와 생명의 창조에 대한 창조의 연대를 극히 젊게 보고 지질학적 전세계적인 홍수(창세기 대홍수)를 믿는 견해로 남아있다.

(3) 이와 같은 창조론이 19세기 보수적인 개신교나 20세기 초 근본주의자들의 전통적 믿음은 아니었다. 20세기 초기 근본주의자들은 결론에 있어서 성급하지 않았다. 1930년대 이전의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은 대부분 창세기 1장의 “날”이 지질학적 발전의 오랜 시대를 나타낸다고 믿거나, 세상의 첫 창조와 그 이후의 일련의 창조 행동 사이에 긴 공백이 있어서 그때에 화석의 형성되었다고 믿었다.

(4) 성경 해석에 있어 성경을 모든 인류와 모든 역사의 눈높이에 맞춰 보통 사람들에게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책이라는 "적응 이론"의 영향은 분명히 존재하였다.

(5) 하지만 진화론이 단순한 이론에 그치지 않고 모든 학문 영역으로 뻗어가면서 양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법률 검사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 1860-1925)은 진화론의 반대편에 선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에 진화론을 대중적으로 반대했던 사람들도 지구가 태고에 형성되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즉 그들은 엄밀한 의미의 창조과학자들이 아니었다. 브라이언은 진화론의 가장 큰 문제는 과학적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자연주의와 그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적 다윈주의에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그런데 사회적 다윈주의는 그 정당성을 과학적 진화론에서 찾는 경우가 많았다.

(6)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대 창조과학운동은 열성적인 제 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의 영향이 크다. 그들은 예수 재림교의 창시자요 예수 재림교(일명 안식교)의 선지자인 엘렌 G. 화이트의 거룩한 문서들이 지구의 역사 연구의 기본 틀을 제공해준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했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특히 중요한 공헌을 했던 인물은 장로교 목사였던 해리 림머(Harry Rimmer, 1890-1952)와 예수 재림교의 이론가인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 1870-1963)였다. 프라이스는 스스로 지질학을 연구하면서 1923년에 절정에 달했던 창조론의 몇몇 결과물을 ⌜새로운 지질학⌟ 이라는 이름으로 발간했다. 이 책은 창세기의 첫 부분에 대한 “단순한” 혹은“문자적” 해석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6,000-8,000년 전에 창조하였고 지구의 지질학적 과거를 형성하기 위해 대홍수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라이스는 이전에 훈련이나 현장 경험이 전혀 없었던 독학의 지질학자였다. 그는 태고의 지구를 알려 주는 지질학적 단층과 분명한 증거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문제 삼기 위해, 자연의 역사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를 추적하였다. 물론 전문 지질학자들은 지질학에 있어 딜레탕트요 아마추어에 가까웠던 프라이스의 생각을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프라이스의 생각은 안식교의 모임 밖에서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7) 개신교에서는 루터 교회의 미주리 회의가 있었다. 미주리회의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다른 종교적인 질문들은 제 7일 예수 재림교의 그것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지만, 현대 세계를 열정적으로 비판했던 몇몇 사람들은 프라이스의 성서적 문자주의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프라이스와 그의 여러 동료들이 여러가지 창조론 단체들을 결성했지만, 이 모임들은 오래 가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초기 창조론의 문헌들은 협소한 모임으로 외부적으로는 영향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였다. 장로교 사역자인 해리 림머와 같은 몇몇 근본주의자들이 창세기홍수에 관해 프라이스와 비슷한 견해를 제시했지만, 림머의 영향력도 그가 사망할 즈음에는 크게 약화되었다.

2. 헨리 모리스의 등장

(1)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 1918–2006. 2. 25)는 미국 텍사스 출생의 남침례교인으로 토목공학자요 제 7일 안식교를 제외하면 창조과학의 원조 같은 인물이다.

(2) 오늘날 창조과학 운동에 있어 헨리 모리스(H. M. Morris)가 차지하는 상징성은 대단히 크다. 모리스는 자신이 창조론에 눈을 뜨는 데에는 프라이스의 공헌이 크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리스는 자신이 침례교도로서 프라이스가 믿는 안식교(SDA)의 교리는 분명 수용하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3) 모리스 개인의 이름이 창조론의 표면에 등장하기 전, 먼저 대학에서 훈련받은 보수적 복음주의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군단이 나타난다. 이들은 1941년에 미국 과학 연맹(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 ASA)을 결성한다. 창조론의 홍수 지질학자들은 이 단체가 자신들의 결론을 수용하는 토론의 장을 마련해 줄 것을 기대했다.

(4) 하지만 이들은 성경의 권위에 대해 확고한 견해를 고수하며 자연 세계 위에 있는 하나님의 주권을 옹호하기는 했으나, 대부분은 과거의 날-시대 이론 혹은 갭 이론(gap theory)의 편에 선 사람들이었다. 비록 ASA가 창조에 대해 명확한 공식 입장을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초기에는 엄격한 창조론자들에게 흡족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5) 그런데 이들 중에는, 창세기 안에 있는 거룩한 계시와 실증적 연구를 통해 주어지는 자연 계시가 19세기 초반 이후에 계속 시도되었다가 개정되고, 다시 시도되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조화를 이룰 필요는 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ASA 안에서 이러한 질문들의 대한 내적 논쟁이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ASA가 유능한 과학자들의 건실한 산실로서 유지되었고, 논쟁적인 과학적 문제에 대해 탁월한 자료들을 발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상투적인 태도 즉, 근본주의적 의제에 매달리는 상투적인 태도로 인해 좀 더 폭 넓은 과학 세계에는 제한적인 영향만 주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과학이 ASA를 바라보는 시선은 대단히 부정적인 편이다. 즉 ASA를 창조과학의 편이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다. 창조과학이 얼마나 근본주의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보기이다.

(6) 창조과학이 ASA와 대화하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1950년대 후반에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은혜 형제 교단인 그레이스 신학교의 신학자인 존 휘트콤(John C. Whitcom, Jr.)과 남 침례교 배경의 수력 공학자인 헨리 모리스(Henri M. Morris)는 각각 프라이스의 대홍수 지질학에 영향을 받은 인물들이었다. 또한 두 사람은 복음주의적인 침례교 신학자인 버나드 램이 1954년에 「과학과 성경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The Christian View of Science and Scripture)이라는 책을 발간했을 때 다른 견해를 가진 인물들이었다. 그 책은 자연의 증거와 성경의 이해를 화해시킬 수 있는 좀더 유연한 접근 방법을 제안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ASA 구성원들의 호응을받았다. 예를 들어, 램은 근본주의자들이 적절한 문화적 상황 안에서 성경을 읽지 못하고 19세기 베이컨 시대의 본문인 것처럼 읽고 있다는 이유로 근본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지나친 교조주의의 가장 심각한 오류는 조화에 방법이 있다는 점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의 언어와 그 언어에 수반된 문화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주어졌다는 명제가 진실이라고 믿는다.” 조직신학자로 성경해석학의 권위자였던 버나드 램은 성경이 과학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눈높이를 모든 역사, 지식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 모든 연령의 인류에게 맞춘 모든 사람에게 "적응"한 계시임을 상세하게 밝힐만큼 칼빈의 성경해석과 일치한 성경해석관을 가지고 있었다.

(7) 따라서 버나드 램은 프라이스와 해리 림머가 제시한 문자적 해석을 비판한다. 램의 책이 나온 바로 직후 휘트콤과 헨리 모리스는 1961년, 모리스를 일약 창조론의 중심에 서게 만든 「창세기의 대홍수」(Genesis Flood)를 낸다. 이 책은 프라이스 저작의 현대판이기는 하나, 휘트콤의 신학적 기여와 모리스의 과학적 전문 기술을 통해 프라이스의 논점을 좀더 설득력 있게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은 현대 지질학의 동일과정설(同一過程說, uniformitarianism)의 입장을 창조론적 관점에서 조목조목 비판한 책이었다. 이 책 당시 미 대륙 보수적 기독교 분위기의 관심을 끌며 엄청난 주문량이 쏟아졌다. 동일과정론이 아닌 이 책의 격변론적 논점은 교회와 주일 학교 강의에도 영향을 주며 창조론적 관점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창조론은 곧 영국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이전까지 영국에서는 보수적인 반진화론자(antievolutionist)들도 지구의 형성 연대가 오래지 않다는 생각을 발전시켜 본 적이 없었다. 이후로 모리스는 지금까지 수 십 권의 창조론 도서를 쏟아내며 창조과학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8) 창조론의 자료들은 이슬람교의 교육을 위해 터키를 비롯한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어떤 창조론자들은 기독교 중심의 “성경적 창조론”에서 탈피하여, 공공 교육 기관에서 “창조 과학”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대중적인 요구를 호소하는 운동을 후원하기도 했다. 창조론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 연구 기관들이 설립되었고, 열정적인 평론가들은 공식적인 공개 토론에서 진화론자들과 논쟁하면서 창조론을 옹호했다. 대학에서 훈련받은 지질학자들 중에서도 점차 창조론의 관점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나중에 법정에서 뒤집어지기는 했지만, 알칸사스와 루이지애나의 입법자들은 창조 과학을 진화론의 대안 이론으로 가르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9) 당시 미 대통령 후보였던 로널드 레이건은 창조 과학을 가르치는 시간을 똑같이 배분해야 한다고 공립 학교에 요청했다. 이에 상처 입은 기존 과학의 옹호자들은 이에 대한 응답으로 책을 발간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진화론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가르쳐서는 안 되는지 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 마을과 도시에서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1960년 이후 창조론은 미국의 공공생활에서 낙태 문제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문제보다 더욱 격렬한 문화적 전쟁을 불러 일으켰다.

(10) 노벨상 수상자들도 이 논쟁에 뛰어 들었다. 1967년 과학자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왈드(George Wald) 박사는 사람들이 진화론을 과학적인 사실로 널리 인정되는 이유는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단지 또 다른 오직 하나의 대안인 창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선택의 길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11) 창조를 피해가려는 이론은 진화론을 천체로 옮겨 놓기도 하였다. DNA의 2중 나선 구조를 밝힘으로서 노벨상을 공동수상한 크릭(F. Crick)은 생명체는 지구에서 직접 생겨난 것이 아니라 먼 옛날 언젠가 지구 밖 외계에서 유입(directed panspermia)을 주장하였다.

(12) 1980년, 한국의 창조과학회가 설립되는 데에도 모리스는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모리스의 저서들은 도서출판 생명의 말씀사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하면서도 활발하게 번역되고 있다. 창조과학 운동과 그 논쟁에 있어 모리스의 영향력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3. 창조과학 운동의 신학적 평가

(1) 창조 과학이 창조론의 최전선에 서서 성경과 기독교를 옹호한 것은 사실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말씀이요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흔적이 담긴 일반 계시의 광장이라는 복음주의의 견해와 일치한다.

(2) 그러나 성경을 과학에 잘못 적용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도 분명 있었다. 문자적 해석은 간혹 엉뚱한 해석을 이끌어 내었다. 또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중 유리한 것만 취사선택하는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들면 프레드 호일(Fred Hoyle)과 찬드라 위클라마싱(Chandra Wickramasinghe)이 주장한 우주 설계(창조주)에 대한 확률적 주장을 창조과학적 결론으로 기쉬(D. Gish)나 한국창조과학회가 곧장 이용하는 경우이다. 이들이 계산해보니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능성 단백질들이 한 곳에서 우연히 생성될 확률은 겨우 10의 4만승 분의 1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우주에 겨우 모든 원자의 숫자가 10의 80승 밖에 되지 않으므로 설령 우주 전체가 단백질 스프(soup)로 이루어져 있더라도 단백질이 우연히 생길 확률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은 성경을 신뢰하는 학자도 아니고 창조과학자도 아니다. 호일은 지구의 생명이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주로부터 날아 왔다는 판스퍼미아(panspermia)설을 주장하려고 이런 주장을 편 것이다.

(3) 또한 창조과학운동이 복음주의 과학자들과는 대화를 거부하고 충돌하면서 이들 진화론 과학자들의 주장을 입맛에 맞게 포장하여 활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이 창조과학 운동이 복음의 탁월한 전사(戰士)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도 불구하고 많은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과학들에게 비판받는 원인이 되고 있다. 창조과학이 호일(Hoyle)과 같은 비성경적 과학자들의 견해는 취사 선택하여 유리한 증거로 삼으면서도 오히려 신학과 과학의 대화에는 진지한 문을 열지 않고 강한 분리적(分離的) 입장에 머무른 것은 정말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4) 창조과학은 과학자들이 이 어리석은 세상과 신자들을 과학을 가지고 과학적으로 계도해야 한다는 과학적 엘리트주의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 때 성경 해석은 전혀 다른 길로 가게 된다. 즉 성경은 창조과학자들의 눈에는 그만 전혀 엉뚱한 창조과학적 관심의 책이 되고 만다. 성경이 창조주를 지시하나 과학에 관심의 중심을 둔 책은 아님을 간과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창조과학은 성경과 과학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불가능해지기 시작한다. 인간의 기원, 지구의 연대, 그리고 지질학적 생물학적 변화의 메카니즘에 대해 분명하게 사고하는 일을 어렵게 만듦으로써 복음주의에 손상을 주게 된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과 우리가 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능력을 어둡게 만들었던 것이다.

(5) 근본주의적 사고 습관은 창조론의 개별적인 결론보다 더 파괴적이었다. 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편향적 특성과 19세기의 반지성적인 특성이 이러한 사고 습관에 덧붙여졌기 때문에 이러한 사고 습관은 기독교 지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고 말았다. 문제점은 자연 세계의 지식에 대해 너무 공격적이고 이원론적이다. 창조론자들이 과학의 기만적인 주장을 공격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전략은 기독교 (기독교는 경험적으로 관찰 가능한 사건의 실체의 중요성을 항상 주장했다)와 실증적인 과학(과학은 항상 세상에 대해 종교와 비슷한 가정을 전재한 상황 속에서 진행되어 왔다)의 접촉점에 대한 이후의 논의에 혼란을 초래했다. 서구 역사에서 종교와 과학 사이의 타협은 항상 뒤얽혀 복잡했고 어떤 경우에는 역설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타협의 지성적인 전쟁 상태로 갔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창조론과 창조과학자들은 종교와 과학의 타협을 전쟁의 가장자리로 밀어 넣었다. 일부 창조과학 진영이 타협이라는 말 자체를 거의 불신자처럼 그리스도인을 매도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대 창조론의 가장 큰 비극은 창조론의 전투적 경보음 때문에 탁월한 복음주의 기독교 사상가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이들의 저작은 복음주의자들이 이전 시대의 메마른 곤경을 뛰어 넘을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창조과학은 그렇게 대화하지를 않았다. 직접적인 실증적 증거가 없으면 억측하면 안 된다. 억측에 의한 것으로부터는 연역할 수 없으며, 폭 넓은 실증적 증거가 없으면 과학은 불가능하다. 창조과학이 성경과 관련해서는 잘못된 베이컨주의를 고수하고 과학과 관련해서는 건전한 베이컨주의를 포기했다고 계속 지적당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6) 사실 창세기의 앞 부분을 정확히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고대 세계에 대한 철저한 역사적 연구와 그 뉘앙스를 조심스럽게 살린 주해가 필요하며 그리고 과학적 과정과 결과에 대해 폭 넓게 정통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 져야 한다. 편협적 울타리를 치고 무조건 고집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유하신 분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다채롭고 풍성한 세상에 대한 이해에 있어 인간 개인의 생각의 울타리 안에 묶어두어서는 안 된다. 복음주의자들은 서로 겸손하게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창조과학은 그러하지를 못하였다. 견해가 다른 복음의 친구들에게 조차 문을 잠궈 버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였다는 비판을 복음주의자들에게 조차 받게 되었다. 하나님이 자연을 만드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7) 창조과학이 성경의 무오성을 사수하고 하나님의 흔적을 성찰하는 자연 계시를 주목한 면에서는 탁월했으나 칼빈의 적응에 대한 이론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못한 면이 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헬라인의 하나님이요 남녀노소, 시대적 모든 사람들에게 적응할 수 있을 만큼 몸을 낮추시는 분이심을 간과한 것이다.

(8) 칼빈의 적응 이론이나 프린스턴의 복음주의 학자 워필드(B. B. Warfield)가 과학의 문제와 관련하여 휘트콤(J. Whitcomb)이나 모리스(H. Morris)와 기시(D. Gish)와 조금은 다른 결론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창조 과학의 결론을 포함하여 복음주의 과학의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단순하거나 상식적이거나 직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은 복음주의 지지자들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도덕적 문제와 분명히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9) 지질적 분야에 정통한 한 복음주의의 결론과 좀 더 넓은 복음주의 세계의 확신을 대조시켜 볼 때 과학에 대한 복음주의 사상의 사회적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성경의 영감을 옹호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경험 많은 지질학자인 데이비스 영(D. Young)은 자신의 과학적 연구를 근거로 모리스(H. Morris)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영(D. Young)에게도 복음주의자로서 성급한 면이 없지 않다. 즉 성경과 자연 세계 둘 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다른 견해가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결론이 기독교의 본질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전히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고백하는 신앙인들의 숫자는 적지 않다. 창조과학에 대한 무조건 반대보다는 대화의 필요성이 더 절실하다는 의미이다. 그렇지 않으면 창조과학과는 또 다른 형태의 극단주의에 빠질 위험이 생긴다.

(10) 창조과학은 분명 좋은 역동적 특징을 가진 운동이다. 반성경적 주장으로부터 신앙을 수호하기 위한 전투적 헌신과 복음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성경과 과학 해석(解釋)의 누(累)를 범하거나 복음의 친구를 잃어버려서도 안 된다. 창조과학이 가끔은 지사(志士)적이고 계몽 운동가적인 의협심을 내려놓고 예수님처럼 겸손히 눈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11)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같은 비 복음적 대학자도 가끔은 겸손해질 때가 있었다. 1983년 호킹은 빅뱅(Big Bang)과 특이점(singularities)에 관한 자신의 연구에서 빅뱅과 같은 경우가 일어날 확률은 매우 작음을 고백한다. 그러므로 우주의 기원에 대한 언급은 으레 종교적 측면이 발생함을 인정한다. 과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종교적 측면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복음의 학자가 아닌 세속의 대학자 호킹이 학문에 대해 겸손해지는 만큼 자신이 피조물임을 깨달은 복음의 학자들은 당연히 우리의 한계를 겸손히 깨닫고 복음의 이웃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12) <창조과학>이 성경을 텍스트 삼는 것은 분명하나 기독교 초창기부터 시작된 해석 방식이 아니기에 일종의 "신앙적 과학 운동"의 성격을 가진다. 과학이 늘 "반증가능성"에 열려 있는 것처럼 "과학 운동"도 늘 가변적이기 마련이다. 즉 창조과학이 좀 더 창조와 구속과 과학의 발달에 따른 역사 속에서 신앙의 다양한 선배들이 다져온 기독교 신학의 '적응의 방법'에 귀를 기울인다면, 대화를 거부하는 독단적 운동이라는 사람들의 의구심을 벗어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활로를 열고 복음의 대타협과 대연합의 길을 열어 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4. 결어

(1) 기독 과학 철학자 델 라치(Del Ratzsch)는 자신의 책 ⌜과학과 그 한계⌟에서 ‘사랑 안에서 진리 말하기/발에 관한 몇 가지 생각’(Speaking the Truth in Love/Some Thoughts About Feet)이라는 제목으로 아주 흥미 있는 제안을 한다. 델 라치는 기독교 공동체 내부에서 논쟁 할 때의 세 가지 원칙으로 첫째. 말할 때(Speak) 공동체 내부를 쉽게 깨뜨리는 누(累)를 범하지 말 것(토끼 발을 모두 잘라 버리는 발이 되지 말 것) 둘째, 당신의 입에 당신의 과학적, 신학적 또는 철학적 발을 집어넣지 말고 참 진리(the truth)를 찾도록 애쓸 것(입에 이런 것들이 들어가면 말하는 것을 방해할 뿐 아니라 두 발로 서 있기도 힘들어 짐) 셋째, 사랑 안에서(in love) 한 몸을 이루는 (복음의) 친구들에게 총을 쏘지 말 것(그것은 자신의 발을 쏘는 것이요 엽총으로 티눈을 잘라내는 격이다). 그러므로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고 말한다. 이 세 가지 중에 델 라치가 보기에 제일은 사랑이다. 필자가 보기에 진정한 사랑과 평화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안에서 한 몸이다.

(2) 지금까지 창조론 운동은 주로 과학적 창조론의 입장에서 대단히 전투적 길을 걸어왔다. 그 열심히 너무 지나쳐 다름을 조금도 용납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많은 복음의 친구들을 잃게 된다. 창조과학의 이름으로 칼을 겨누게 되면 교부 이레네우스와 어거스틴, 종교 개혁자 루터와 칼빈, 프린스턴의 장로교 신학자 찰스 핫지와 벤자민 워필드 같은 기독교의 인물들이 모두 적이 되고 만다. 그뿐 만아니라 오늘날 탁월한 대부분의 구약 학자들과 아브라함 카이퍼, 버나드 램, 프란시스 쉐퍼, 존 스토트, 반틸(H. J. Van Til), 마크 놀, 알리스터 맥그라스 등등 탁월한 복음의 학자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고 마는 누를 범하게 된다.

(3) 복음주의자들은 모두 창조 사실을 믿는다. 복음은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창조도 사실이나 창조론은 사람마다 다르다. 수 만 가지의 서로 다른 창조론이 있다. 다르나 모두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과 창조 질서를 바라보며 감탄한다. 어찌 서로 다르면서도 함께 찬양하고 감탄할 수 있는가!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성경과 창조 질서를 통해 하나님이 그렇게 작정 하셨기 때문이다.

(4) 이제 창조론자들은 누구든지 자신과 조금 견해가 틀리다고 복음의 친구들에게 화살을 겨누고 문을 닫지 말았으면 한다. 오히려 문을 열고 함께 손을 잡아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섭리를 부정하는 우연적 사고와 무신론적 진화론의 세상과 싸워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복음과 상황(2008. 4월호)이 <한 창조과학자의 ‘회심’을 옹호하며>라는 제목을 특집기사로 내보내며 필자와 <창조론 오픈 포럼>을 주도하고 있는 전 캐나다 벤쿠버 세계관 대학원 원장(현 에스와티니 기독 의대 총장)이신 양승훈 박사의 입장을 적극 옹호한 것을 필자는 주목한다. 양승훈 박사와 필자는 창조론에 있어 서로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양승훈 박사의 신앙과 그의 입장을 복음 안에서 신뢰하고 지지하고 존경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 안에서 하나됨이다. 또한 한국창조과학회 중흥기 대표간사로 사역했던 필자의 기도 제목이기도 하다.

조덕영 교수(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