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기원-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인간론 2)
©오스트리아 자연사 박물관 전시물
“Imago Dei”
1.Without knowledge of self there is no knowledge of God
2. Without knowledge of God there is no knowledge of self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Book 1. Chapter 1. 1-2)
Ⅰ.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창 1:26-28) 【인간론】
1) 사람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2)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인간을 알 수 없고, 인간에 대해 모르면 하나님도 모른다’는 유명한 말로 자신의 책 「기독교강요」를 시작합니다.
3) 성경 최고의 주제인 우리 인간에 대해 본격 살펴봅시다.
타임지 표지
1. 인간의 기원/ Origin
1) 인간 기원론: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창조론과 우연히 진화되었다는 진화론이 있습니다.
*Objetions to the Theory of Evolution.
(1) 성경:
contrary to the explicit teachings of the Word of God(창 2:7->그의 코에 생기를~~, a living being, 고전 15:39->all flesh is not the same , 시 8:5-8-> 사람은 엘로힘보다 조금 못하게, 주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2) 우주의 기원:
① 인간 생명의 배경이 되는 물질, 공간, 시간은 어디서 진화?
② The great objection is that the theory has no adequate basis.
(3) 인간 생명의 기원:
① 생명 현상(DNA와 세포)의 경이로움
② 열역학 법칙과 진화론
③ 지구에 존재했던 수천억 종의 생명종(현재는 겨우 200여만종) 가운데 오직 인류만 지닌 특성(하나님의 형상): 언어, 수학, 논리, 지혜, 종교성, 사랑의 의미, 샬롬의 의미, 가치론, 도덕성, 윤리성, 경제, 문화, 예술, 목적성 등등
④신앙의 관점에서 기원에 대한 본질적 구도는 <창조냐 진화냐>보다는 <창조냐 우연이냐>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고 봅니다.
(4) 우주의 경이로움 앞에선 유일한 생명체 인간
① 갈대 같은 인간, 속으로 울다 "무한한 우주의 영원한 침묵 앞에 선 인간의 두려움"(파스칼), 와디 럼 천막에서 바라본 우주!!!
② 갈대이나 생각하는 갈대로서의 인간(파스칼)
③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내기 할까?(인류 최고의 요절한 천재 블레즈 파스칼)
④ 우주의 미세 조종(fine-tuning): 우주의 형태와 변화에 작용하는 '기본 상수', 우주의 구조를 결정(물리학자 주니어 게이츠), 생명 탄생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우주의 구조(알리스터 맥그래스, 헤럴드 슈뢰더)
⑤ 우리의 본향은?
2) 인간 창조론:
성경은 인간도 다른 피조물처럼 하나님께서 분명히 창조하셨다 말합니다(창 1장 26-28절).
(1)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사람 창조를 구상할 때는 기존 재료(곧 흙)를 사용하는 "만들다"는 용어인 "아사"(עשה)를 사용하십니다(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 1:26).
(2)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남자와 여자)을 창조할 때에는 다른 생명체와 달리 "바라"( "창조", ברא) 용어를 사용하십니다(2회 거듭 사용, 창 1:27, 참조 창 1:1).
(3)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의 미스터리(창 1:1-2, 요 1:1-3).
3) 특별하게 창조된 인간:
하나님은 사람을 다른 생명과 다르게 만드셨습니다(창 1:26-28).
(1) preceded by a solemn divine counsel(하나님의 거룩한 경륜diakonia, οικονομία이 선행됨).
(2) an immediate act of God(간접이 아닌 하나님의 직접 사역).
(3) created after a divine type(Imago Dei).
(4) The two different elements of human nature(the two fold nature/육과 영, 전 12:7, 마 10:28, 히 12:9)
(5) at once in an exalted position(즉각적 고양高揚된 존재로 창조, 창 1:28, 시 8:4-9).
(6) 따라서 일반적인 진화의 방식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주장은 여전히 낯설게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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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론 해설
1) 창조
복음은 말 그대로 복 된 소식이다.
그 기독교 복음에는 두 가지 핵심이 있다. 하나는 창조요 또 하나는 구속이다. 구속은 타락을 전제하므로 창조와 타락과 구속은 기독교 세계관의 근간을 이룬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선포하신 말씀은 창조였다. 사실 기독교의 창조 계시는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해 주는 가장 중요한 주제요 사실이다.
다른 어느 종교에서도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독교는 창조주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창조와 그 창조에 대한 계시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창조가 있기 때문에 구원도 있는 것이다.
구원의 참 된 의미는 잠시의 어려움에서 우리가 구출된다는 것이 아니고 창조가 된 원래의 상태대로 회복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에덴 동산으로의 복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새 창조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창조하실 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고 사망이 들어왔다. 따라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 구원 받게 된다는 것은 새 생명, 영원한 생명을 지닌 본래의 창조되었던 상태로 회복된다는 의미다.
2) 진화
그런데 오늘날 어찌된 일인지 교회에서 구원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듣지만 하나님의 창조 사실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듣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학교 교육을 통해서 창조론이 아닌 우연론적 진화론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화를 과학으로 믿고 받아들이기에 성경에 아무리 창조라는 말이 있어도 창조의 사실을 용감하고 자신있게 믿음을 가지고 선포하지 못한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과학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으며 과학적 증거가 있어야만 신뢰하려고 드는 과학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과학적인 증거가 없다면 아무리 성경말씀이 진리라고 하여도 잘 받아들이지 않을려는 것이다.
또 그와 반대로 일부 기독교인들은 과학을 무조건 무시하려고만 든다.
1839년, 영국의 맥밀란은 페달로 된 자전거를 처음으로 발명하였다. 그 때 일부 성직자들은 이것이 사단의 발명품이라 하여 한때 대부분의 성도들이 자전거 타는 것을 거부한 적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수고하고 일하라고 두 다리를 주셨는데 어떻게 편하게 그런 괴물처럼 생긴 도구(?)를 탈 수 있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오늘날 교회로 몰려드는 차량 행렬을 본다면 그들 성직자들은 과연 무어라고 말할까? 과학에 관한 무지는 오늘날도 이와 같은 오류를 거듭할 수 있다.
과학을 단순히 하등 학문이라 외면하고 잘 알지 못하면 오늘날 과학과 관련된 환경문제나 인공 수정 및 인공 임신 중절, 건강, 핵문제, 컴퓨터 디지털, AI, 유전공학 등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기독교적으로는 어떤 입장을 취하여야 하는 것인지 우리 기독교인들이 자전거 에피소드와 같은 실수를 언제든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는 오늘날(단12:4), 창조를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주셨다는 성경적 관점에서 과학을 해석할 당위성을 가진다.
오늘날 사단은 기독교의 복음을 깨뜨리고 방해하며 못믿게 하기 위해 십자가의 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 복음의 기초가 되고 핵심이 되는 창조를 공격하고 있다.
창조가 사실이 아니라고 해버리면 기독교와 다른 종교는 차이가 없어지게 된다. 오히려 다른 종교만도 못한 기반을 가진 종교가 되고 만다. 기독교에서 창조를 제거하면 고층 건물에 그 기반이나 1층이 없는 것과도 같다. 마치 큰 교량이 있는데 교각이 없는 것이다.
기독교의 복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제시하고 이 진화론을 사람들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그 후 150년이 지난 오늘날은 마치 진화론을 믿어야만 과학자이고 창조를 믿으면 과학자가 아니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실 중세의 갈릴레이나 케플러, 뉴턴과 같은 유명한 과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창조 신앙을 가진 과학자였다.
당시 과학자들은 하나님의 창조 사실을 의심없이 믿었으며 과학하는 태도에서도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갈릴레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권의 책을 주셨는데 하나는 성경이고 또 하나는 자연이라는 책’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자연이라는 책을 자세히 연구하고 조사해 보면 하나님의 솜씨를 자연이라는 책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하였다.
그런데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하여 진화론을 소개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기계론적이며 유물론적 진화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3) 진화에서 우연으로(즉 창조인가 우연인가의 구도)
사실 진화라는 말 자체가 근본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세상은 늘 가변적이기에 하는 말이다. 진정한 문제는 진화라는 말 속에는 담긴 엉뚱한 세뇌와 함축이다. 즉 진화라는 말은 이제 단순한 진화를 넘어 발전, 발달, 변이, 변화, 과정이라는 모든 진보적 이념의 씨앗이 되어버렸다.
진화는 어느새 세상이 우연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상한 논리적 귀결의 단어로 둔갑하여 우뚝 서 버린 것이다. 즉 진화는 우연이라는 단어와 이상한 이란성 쌍둥이 단어가 되어 사람들 마음 속에 착시 현상을 진실처럼 각인 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창조냐 진화냐" 구도는 합당한 대응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창조인가 우연인가, 섭리인가 우발(자발)인가의 논쟁이, 종교나 논리 차원에서 보다 선명한 구도일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창조론, 우연론, 진화론 논쟁은 단순한 과학적 논쟁이 아닌 인류의 보다 다른 차원의 영적 모티프를 다루는 영역일지도 모른다.
사단은 진화론이라는 가설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창조의 사실을 희미하게 희석하려 했다. 그래서 오늘날 과학하는 사람들은 마치 창조론을 믿으면 과학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오해를 한다.
결코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과학자는 하나님이 주신 창조 세계 안에 있는 질서를 가지고 과학이라는 도구로 그 질서를 주신 설계자의 오묘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좀더 가깝게 알려주는 사람일 뿐이다.
사실 성경은 천지만물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증거하고 있다고 계시하고 있다(롬1:20,시 19:1-5).
4) 인간-생명, 그 비참함과 패러독스
하나님께서는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우리들에게 직접 알아보라 명하셨다(사40:26). 사색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진지하게 삶과 생명의 근원과 본질에 대해 성찰할 때, 결코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의 본 모습 앞에 스스로 홀로 서게 된다. 역사와 우주의 무한 속에서 사람은 유한한 생명에 불과하기에, 그것도 하늘의 한 경점만도 못한 인간이기에, 안타깝지만 이것이 인간 스스로에 대한 직설의 정의요 본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한한 우리 인간은 왜 그렇게 질기고 고집스럽고 자화자찬하고 교만은 하늘을 찌르는 것일까?
컴퓨터의 원조, 천재 크리스천 과학자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 부유하는 존재"라 했다. 이보다 더 적나라한 말이 있을까? 또한 파스칼은 "인간이 위대한 것은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이 비참한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
여기 인간에 대해 반전의 정의를 내리신 유일한 분이 계신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신다. 그 인간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시는 예수님의 패러독스를 이해하는것이 믿음이요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 창조에 대한 신학적 해석
1. 어거스틴(354-430)과 그 이후
1)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401-415): 창조의 날들은 동시 창조를 이야기 형식으로
2) <신의 도성/신국론>(413-326): 지구 나이 문자적 해석 경향, 그러나 “욤”을 서로 다른 “날”로 해석(토마스 아퀴나스), 1-3일-> 오랜 연대, 4-6->짧은 연대
3) 어거스틴의 시라크의 잘못된 라틴어 번역 의존 비판(종교개혁의 루터와 칼빈)
2. 찰스 핫지(1797-1878, 구 프린스턴신학)와 그 이후
1) 처음에는 간격설 지지, 이후 날-시대론
2) ‘씨앗의 나무 성장 논리’-> 6일 창조 은유적 해석, 창조의 6일을 오랜 연대로 해석
3) 아더 피어선(평택대 전신 피어선신학교 설립자): ‘욤’을 24시간으로 볼 수 없다.
4) 스콥스 재판의 반진화론 변호사 브라이언: 날-시대 이론 지지
3. 로마 가톨릭
1) '날'을 24 시간으로 보지 않음
2) 벧후 3:8(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3) 빛 창조(첫째 날)와 이후 두 큰 광명 해와 달 창조(넷째 날)의 딜레마
4) “열매를 따먹는 날 정녕 죽을 것”(창 2:17)에서 “이렇게 아담은 930세까지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남"(창 5:5)의 딜레마
※ 빅뱅(대폭발)설
“빅뱅”은 정말 창세기 1장을 부정하는가?( 창세기 1장,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1. 빅뱅과 성경 계시 비교는 다른 차원이다.
1) ‘빅뱅’론은 성경적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성경 계시는 초월(超越) 계시요 과학 영역은 초월에 대응하는 내재(內在)의 영역이다. 초월과 내재는 직접적 비교 대상이 아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주신 계시로 믿는다. 반면 과학은 그 피조 세계의 질서를 탐구하는 즉 내재를 다루는 도구의 학문(causa instrument)일 뿐이다.
2) 인류 역사를 통해 목격한 것처럼 과학은 오류를 토대로 발전한다. 즉 과학은 오류를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한다(Carl Sagan). 언제나 특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으나 그것은 잠정적이다. 가설이 세워지지만 그 가설도 언제나 반박될 수 있다. 이렇게 과학은 언제든지 수정과 반박이 가능한 학문이다(Karl Popper). 반면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다.
3)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과학의 질서를 만드신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므로 참 된 과학은 당연히 성경적 질서와 조화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무리한 성경 적용이 사이비 종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내재의 도구를 다루는 과학(causa instrument)을 내재의 원인이신 창조주 하나님(causa prima)의 초월 계시에 무리하게 적용하려는 미숙한 집착은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이비 학문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2. 정상상태 우주론과 팽창 우주론
1) 우주의 기원에 대한 생각은 ‘우주형태론’(cosmograpy)과 ‘우주생성론’(cosmogony)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인간이 사는 세계의 이미지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설명을 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절대자의 창조-섭리로 보려는 관점과 자연-우연 발생의 관점에서 보려는 두 입장이다. 이 두 설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대단히 다양한 양상을 가진다. 왜냐하면 기원론은 필연적으로 지구와 생명과 인간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 신화와 종교와 민속과 문화와 사회적 해석 시기를 거쳐 기원론은 고대 헬라 철학자 중심으로 시작된 천동설(geocentric theory)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heliocentric theory)을 지나며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3) 한때 우주기원론은 H. 본디, 프레드 호일(1915-2001)이나 위클라마 싱 그리고 한때 아인슈타인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상상태우주론이 지지를 받는 듯했다.
3. 우주 팽창론(빅뱅론)으로 기울어진 과학
1) 정상상태우주론은 오래가지를 못했다. 1929년 허블(1889-1953)이 도플러 효과에 의한 적색 편이(red shift)을 관측함으로써 팽창하는 우주를 발견하고, 1948년 조지 가모프(1904-1968)가 빅뱅(대폭발)에 의한 우주기원론을 제창한 후, 동년 프레드 호일은 정상 상태 이론을 내었으나, 1965년 미국 벨(Bell)연구소 연구원들이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수상(1970년)하면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이론은 최근에는 과학적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2) 물론 빅뱅 우주론도 이론이기에 여전히 딜레마들이 남아 있다. 빛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인 우주의 지평 밖에 위치하는 사건들에는 어떻게 인과 관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느냐 하는 ‘우주의 지평 문제’ 문제나 어떻게 인류가 우주에 서식할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편평도의 문제, 원시 입자의 존재 등에 대한 의문은 빅뱅우주론의 완벽성에도 틈새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계속 던져왔다.
3) 그런 가운데 최근 우주 최초시기에 근접한 분자가 발견되었다는 <네이처>지의 논문 기사가 나왔다.
천문학계에서는 수소화헬륨(HeH+)을 우주 진화(생물 진화와 혼동하지 말 것)의 시발점으로 여긴다. 우주가 식고 수소화헬륨과 수소 원자가 결합하면서 비로소 별과 은하의 주원료인 수소 분자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논문 대표 저자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롤프 귀스텐(Rolf Güsten) 박사는 “수소화헬륨의 존재는 수십 년간 천문학의 딜레마였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초기 우주의 화학반응에 대한 의심이 해소됐다.”고 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빅뱅은 성경적인가를 생각해보자. 최소한 정상상태우주론보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주장이 과학적으로 더욱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는 데 힘이 실리는 관측이 한 가지 더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전부다. 빅뱅이 성경의 오류성이나 무오류성을 확증하는 주장이라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4. 과학의 본질과 성경 계시의 진리는 직접적 비교 대상이 아니다
1) 혹시 우주의 물질이 한때 한 점에 뭉쳐 있었다고 하더라도 왜 그곳에 물질이 한 점으로 있었는지? 그 이전에는 어떤 상태였으며 그 태초 물질은 어디서 왔고 무엇이 폭발을 일으켰는지? 그리고 덧붙여서 물질을 담은 공간은 어디서 왔고 시간은 어떻게 우주에 들어온 것인지,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이 섭리 하셨는지 이런 문제들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고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2) 과학적 판단은 언제든지 변하고 수정될 수 있다. 대 과학자 뉴턴(만유인력, 기계론)도 아인슈타인(통일장, 정상상태론 등)도 스티븐 호킹(타임 머신 주장 등)도 그들의 이론이나 주장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으며 착각이었다고 고백하거나 수정되었다는 점을 기억하라. 오히려 그렇게 수정되는 것이 건전한 과학이고 과학의 당연한 본질이다.
3) 반면 성경은 여전히 세상과 생명의 기원과 인류의 구원에 대한 진리를 계시하는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책으로 굳건하다. 그리고 최근의 수소화헬륨의 관측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한 가지 증거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전부다.
5. 빅뱅은 창세기 1장과 조화될 수 있는가?
1) 그렇다면 이제 빅뱅은 창세기 1장과 조화될 수 있는가 살펴보자. “빅뱅우주론”은 21세기 가장 유력한 과학자들의 신뢰를 받는 우주기원론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또 어떤 탁월한 과학자가 나타나 이 이론을 미세 조정할지 아니면 뒤집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2) 그렇다면 성경은 어떠할까? 필자가 보기에 성경은 ‘빅뱅’을 긍정도 부정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즉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은 빅뱅의 방법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는지 아니면 또 다른 방법으로 하셨는지, 아니면 그 유사한 방법으로 하셨는지 말씀하시지 않는다.
3) 이것은 인류가 찾아서 탐구할 ‘아디아포라’(adiaphora)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과학적 발견은 어떤 또 다른 결론을 유도해낼지 아무도 모르며 언제든 유동적인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은 창조의 사실을 선포할 뿐 과학적 증거인 ‘빅뱅’을 말하는 책이라 할 수 없다.
4) 다만 빅뱅은 무조건 반성경적이라는 억지 주장은 제발 이제 함부로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늘 유동적인) 최근의 가장 유력한 과학적 이론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그래서 201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3명도 어김없이 모두 우주팽창론자들이었음에도 전혀 분노하거나 실망할 거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5) 분노하는 일부가 있기는 하다. 성경적 창조론자들이 아닌 ‘빅뱅’을 수용하면 무조건 불신자라고 정죄하기를 좋아하는 성서근본주의자들이나 ‘창조과학자’들만 실망하고 분노할 뿐이다. 성경은 어떤 과학적 주장이나 발견 앞에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진리 안에서 자유케 함을 잊지 말자.
6. 창조 연대에 대한 자유함
1) 창세기 1-11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창조의 시기를 주전 4000여 년 전으로 보는 것이나 과학이 지구의 나이에 대해 대략 2500만년으로 시작(1850년)하여 2000만년(1862년, 크리스천과학자 Kelvin), 4000만년(1897년, Kelvin), 10억년(1921년, Rayleigh), 45억년(A. Holmes), 최근(2018년) 대략 46억년으로 확장되어 오며 심각한 충돌을 야기하는 딜레마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자유함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창세기 1장 해석의 핵심적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 안에서 자유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7. 과학으로(빅뱅이든 창조과학이든) 창세기 1장을 재단하지 말라
1) 이제 창세기 1장과 빅뱅의 입장을 결론 내어 보자. 즉 빅뱅은 인류가 현재까지 찾아낸 우주 기원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기원론이라 할 수 있다.
2) 다만 이 이론은 물질과 공간과 시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뚜렷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가 없으며 물질은 왜 그곳에 모여 있었으며 빅뱅이 일어난 원인과 동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3) 그리고 성경은 빅뱅과 달리 그저 물질과 공간과 시간의 창조에 있어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신 사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선포한다.
4) 빅뱅으로 창세기 1장을 설명하려는 것은 초월의 성경 계시를 내재 학문인 과학 아래로 격하 시키는 것이며 빅뱅을 비과학적 주장이라고 무조건 반박하는 것도 옳지 않다.
5) 과학적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성경의 내용과 해석을 수정해야 한다면 그것은 전혀 계시가 아닐 것이다. 또한 수천 년 동안 교회 전통을 따라 이루어진 성경에 대한 해석 방식을 20세기 시작된 창조과학이라는 운동으로 수정하고 재해석하는 방식도 전혀 옳지 않다. 이 방식도 성경 계시의 초월성을 무시해 버리는 아주 나쁜 해석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과학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인류는 성경을 아주 어리석게 해석해 왔다는 이상한 결론에 빠져버리게 되어버린다. 그러면서 과학은 과학 시대의 선지나자 제사장의 자리로 올라가 버리게 되는 큰 참사를 만들어버리게 될 것이다.
6) 성령께서 주신 역사 속에서 인류에게 지속적으로 내려주신 참 된 창세기 해석법을 찾아야 한다. 즉 바른 해석의 문제다. 따라서 빅뱅을 긍정하건 빅뱅에 큰 반감을 가지건 그 같은 태도는 창세기 1장 해석에 그리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없다.
조덕영 교수(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Th.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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