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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인간의 본질(인간론 3강-조덕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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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인간론 3강-조덕영)

 
 

인간의 본질

1. 생령(living being)

1) 성경은 인간에 대해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셔서 생기를 불어넣어 만든 생령(living being, "네페쉬 하야", 참조<창 1:21, 24, 30>: 동물에게도 적용)입니다(창 2:7).

2) 그 본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2. 인간의 본질에 대한 견해/ The Constituent Elements of Human Nature

1) 1분설(일원론, monism):

(1) 유물론에서 나왔습니다.

(2) 인간을 오직 물질로 취급(포이에르바하, 마르크스, 엥겔스, 무신론적유물론적 공산주의)

2) 2분설/Dichotomy

(1) 사람을 단순히 물질적 요소와 영적 요소로 봅니다(창 2:7, 전 12:7, 마10:28,눅 8:55,고후 5:1-8, 빌 1:22-24,고전 5:3)

(2) 몸과 영혼<루아흐, 프뉴마>(플라톤, 칼빈, 데카르트, 개혁장로교)

3) 3분설/Trichotomy

(1) 인간의 본질을 3 요소로 구분(히 4:12, 살전 5:23=영과 혼과 몸)

(2) 오리겐,이레니우스.루터, 워치만 니, 부흥사, 성결교? 등

(3) 2분설이 일반적 견해이고 3분설은 사람의 3가지 다른 측면을 말한다고 보면 됩니다(벌콥).

(4) 즉 삼분설은 the soul(혼/nephesh/Psyche)과 the spirit(영/ruach/pneuma)을 구별하는 경향.

*arguments:

1) 루아흐/프뉴마/spirit와 네페쉬/프쉬케/soul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 세계에도 적용(전 3:21, 계 16:3)된다는 논제

2) 프쉬케의 여호와께 적용(사 42:1. 렘 9:9, 암 6:8, 히 10:38)

3) 최고의 종교적 행사도 프쉬케의 일로 간주(막 12:30, 눅 1:46, 히 6:18, 19, 약 1:21)

4) 대단히 어려운 문제임.

5) 2분설적 일반적 해석

the spirit= 인간 안에 있는 영적 요소로서 몸을 통제 하는 생명과 행동의 원리

the soul= 같은 요소 가운데 인간 안의 행위의 주체를 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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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루아흐’(ruach)의 미스터리

1. '하나님의 영‘(성령)

1) 구약에서 성령을 나타내는 대표적 단어인 "하나님의 영"(신, 창 1:2, 히 “루아흐 엘로힘”רוּחַ,אֱלֹהִים , Rûach Elohim)의 교리는 오직 성경에만 나타나는 교리이다. 2) 즉 이 같은 성경 특유의 용어는 헬라적 요소가 전혀 없으며 비이교적(非異敎的)

2. 성경 속 ‘루아흐’의 빈도

(1) 이 단어 "영"(Spirit, 靈, 헬라어 프뉴마)은 사본에 따라 히브리어로 378~389회 나오고 아람어로는 다니엘서에만 11회 나옵니다.

(2) 모세 5경에는 38번

(3) 영혼(Soul, נֶפֶש, [nephesh], 헬라어 프쉬케)이 총 755회 나오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4) 이 성경 속 히브리어 두 단어(루아흐, 영과 네페쉬, 영혼)은 우리 말로는 적절히 표현할 수 없는 성경 특유의 단어입니다.

(5) 따라서 우리식 사고로 이 단어를 단정하고 연상하면 안 됨

3. ‘루아흐’의 다양한 번역 미스터리

(1) ‘루아흐’는 단순히 ‘영’으로만 번역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신학적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킵니다.

(2) '루아흐'가 하나님과 관련되어 표현되면 분명 '하나님의 영'이지만 107번은 단순한 ‘(하나님의) 영’이 아닌 자연계와 인간의 삶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이 '루아흐' 단어의 미스터리입니다.

(3) 따라서, 여기서 삼위일체 해석의 훼손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

4. 양태론을 차단하는 삼위일체 창조 사역

(1) 창세기 1장 2절의 ‘하나님의 영’을 통해 창조가 단순한 성부 하나님의 사역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2) 창조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창 1:1~2; 요 1:1~3)이라는 점은 한 분 하나님이 각자의 역할에 따라 ‘창조는 성부의 사역’, ‘구속은 성자 예수의 사역’, ‘성화는 성령’이 한다는 양태론(modalism)을 차단합니다.

(3) 삼위일체 창조는 창세기 1장을 내재(immanence)의 자연과학으로 증거 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제한적이며 미숙한 접근에 그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합니다.

(4) 따라서 내재의 자연과학은 초월의 삼위일체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고려하지도 않음을 명심할 것!

5. 창조주 성령:

1) 이렇게 창조주 성령(Spiritus creator)은 교회 역사의 중요한 강조였습니다(싱클레어 퍼거슨Sinclair B. Ferguson).

2) 창조조차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창조주 성령"은 예수보다도 낯선 존재이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에 대한 바른 해석과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하겠지요.

​​

Ⅱ. 루아흐와 네페쉬 미스터리

1) 네페쉬(nephesh, 히)=> 프쉬케(헬)=> soul(영혼)

(1) 네페쉬(창 1:20; 창 2:7; 출 1:5)는 성경에 755번 나오는 단어로 보통은 영혼(soul)이라고 번역되나 실은 “영혼”이라 번역된 곳은 성경 몇 군데 되지 않고 우리 성경에는 100여 가지(목, 목구멍, 기관, 목마름, 심령, 욕망, 생명, 개인, 인격 심지어는 시체<민 6:6; 민 19:11> 등)로 번역된 아주 주목할 만한 특이 단어입니다.

(2) 성경에 나타난 이 단어의 3%는 하나님에게 적용되었고 주로 피조물로서의 인간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3) 때로는 동물도 네페쉬이나 식물에게는 적용하지 않은 단어입니다.

(4) 프쉬케는 네페쉬와 동일하게 쓰이기도 하나 두 단어를 구분하면 네페쉬가 육체와 별도로 존재하는 영적 실체를 가리키지 않는 반면, 프쉬케는 육체와 별도로 존재하는 영적 실체를 가리킵니다.

(5) 여기서 히브리인들은 인간을 육체-영혼이 분리되지 않는 불가분적인 통합되어 있는 생명 존재(a unit of vital power)로 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엘라어 프쉬케는 네페쉬처럼 생명의 본체를 가리키기도 하고(행 20:10; 계 8:9), 의인화하여 사용되기도 하나, 사후에 존재하는 ‘영적 실체’로 간주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부분이 이 단어가 히브리어 네페쉬와 유사하기도 하고 약간 차이가 난다고 봅니다.

​​

2) 프뉴마(헬)=> 루아흐(ruach, 히)=> spirit(영)

​(1) 본래 이 단어의 본질적 의미는 "하나님의 영"(창 1:2)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지칭하는 중요한 단어에서 파생되었음을 잊지말아야 합니다(번역상 변질에 대한 쥬영흠 교수의 경고와 탄식!).

(2) 그런데 이 단어는 구약에 약 389번 나오는 단어로 인간이나 동물에게 129번, 하나님을 의미하는 데 136번 사용되었습니다.

(3) 즉 이 말의 기본 뜻은 "영"이지만, 번역상 상황에 따라 물리적인 “바람”(사 7:2)이나 “호흡”(사 42:5) 등으로도 사용되면서 해석상 모호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4) 사도 시대 이후 많은 기독교 사상과 문헌에서 영혼(soul)과 영(spirit)을 종종 동의어처럼 쓰기도 하였으나 위에서 보듯 성경은 두 단어를 서로 구별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도 가끔 영혼과 영 두 단어의 기능을 일치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영혼이란 눈으로 보고 감지할 수 있는 생명인데, 이것을 통해 영이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5) 예를 들면, 내가 영혼(soul)을 가진 생명인데 영(spirit)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러나 다른 점이 분명있습니다. 영혼은 육신적 감각이 있어서 굶주리기도 하고 목마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은 슬퍼하고 근심하며(창 26:35), 겸비하고 가난하기도 하며(마5:3), 생각하고(사 27:24; 욥 20:3), 기억하기도 합니다(시 77:6).

(6) 영어의 영(spirit)은 오늘날 바람, 숨, 마음, 능력, 재능, 힘 등 너무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에 성경적 표현과는 조금 다르게 쓰임새가 다양화 되어 있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이 중요한 단어를 너무 단순하게 해석하면 안 되고 좀 더 신중하고 꼼꼼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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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교수(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