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둘째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쁨 (1) 기쁨이 솟는 이유= 보이지 않는 믿음 (2)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영광 스러운 가치있고 고상한 즐거움
3) 셋째 참된 정서로 나타난다 (1) 정서는 영혼의 성향과 의지의 보다 활발하고 기울어진 활동이다. (2) 사람은 생각하고 깨달아서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참된 정서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5. 참된 정서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1) 신앙적 들뜬 흥분: 호산나 부르며 흥분한 예루살렘 주민들- 그러나 실제 참된 제자들은 몇 명 뿐이었다
2) 육신에 나타나는 반응: 마귀의 속임도 많다.
3) 뜨거움: 사람의 입과 혀는 무성한 나뭇잎 같을 수 있다.
4) 애쓰는 노력이 전부가 아님(시한부 종말론자자들의 수고)
5) 성경도 잘못 남용할 수 있음(벧후 3:16)
6) 사랑에도 거짓이 있다(모조품이 더 아름다운 경우가 많다, 갈 4:11,15)
7) 여러가지 신앙적 정서에 대한 착각: (1) 거짓된 경외심(시 106:12) (2) 고가품일수록 가짜가 많다 (3) 열심(예후(왕하 10:16)와 거듭나기 전의 바울) (4) 은혜 없는 신앙적 소원(발람, 민 23:9,10) (5) 거듭나지 못하고도 신앙적 흉내는 잘 낸다(호산나 무리들) (6) 하나님 나라 도래 착각(사탄도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여 줄 수 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
8) 고정 관념도 조심할 것(바둑의 속맥이라는 것을 아는 가. 바른 듯 하나 전문프로들이 아닌 하급수들이 고정관념처럼 자주 사용하는 바둑의 맥을 말한다. 놀랍게도 하급자들은 속맥이 아닌 정맥을 스스로는 영원히 찾지 못한다. 전문가를 통해 교정 받아야 비로소 자기가 늘상 두던 맥이 바른 맥이 아님을 알게 된다. 오늘날 믿음의 잘못된 고정관념들이 교회와 신자들 사이에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가. 특별히 속맥과 유사한 가짜 영성을 조심하라! 사람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멸망의 길이 있다!)
9) 신앙적 수고와 예배(이단들도 그렇게 잘 한다)
10) 찬양(이단들도 멋지게 찬양 잘 한다)
11) 확신도 전부가 아니다(마귀는 하나님을 일정 부분은 우리보다 잘 아나 그릇된 확신!)
12) 신앙 체험도 전부가 아니다(삼상 16:7= 사무엘의 실수, 직통 계시자들의 착각)
6.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현대적 평가
1) 장로교 신학의 탁월한 인물로 인정 받아온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반론이 최근 등장하였다. 2) 바로 장로교(합동) 목회자 정이철 목사(주미)의 반론이다. 정 목사의 반론은 주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비주의적 체험과 관련되어 있다. 모든 신비 체험은 주관적 체험이기에 성경에 부추어 바르게 판단 받을 필요가 있다. 신앙은 늘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에 비추어 해석되고 판단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바른믿음> 정이철 목사의 평가는 존중 받아야 한다. 다만 신앙에 있어 이 부분은 주관적 체험과 관련이 있는 동시에 진행 중인 이슈이기에 여기서는 판단을 유보한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시기에 오늘날도 분명 이적과 은혜 체험은 존재한다. 다만 그것들은 성경에 부추어 해석되는 동시에 복음의 열정과 신앙의 바른 성숙과 열매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